[생물노트] 입춘이 반가운 겨울나비, 네발나비와 각시멧노랑나비

생물학자 이강운의 ‘24절기 생물 노트’<3> 눈속에 나오는 네발나비, 각시멧노랑나비
라펜트l이강운 소장l기사입력2017-02-12
생물학자 이강운의 ‘24절기 생물 노트’<3> 눈속에 나오는 네발나비, 각시멧노랑나비


입춘이 반가운 겨울나비, 네발나비와 각시멧노랑나비
어른벌레로 겨울 나다 이맘때 양지바른 낙엽 위에 나와
붉은점모시나비, 애벌레는 추위 견디고 알은 더위 이겨




_이강운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소장
(사)한국환경복원기술학회 부회장



겨울에도 나비가 있다. 눈밭 낙엽 위에 네발나비가 햇볕을 쪼이고 있다.

겨울 끝자락인 입춘 즈음에 몰아친 만만치 않은 강추위와 폭설로 가장 겨울다운 시기를 보내고 있다. 아직은 겨울로 메마른 들판의 갈색과 주변의 흑백이 더 황량하게 다가온다. 

불과 며칠 전만 해도 끝장 추위로 실내에서 꼼짝달싹 못하던 그때 비하면 많이 누그러졌지만 아직 봄 내음 가득한 봄은 아니다. 그러나 옷깃 사이로 스며드는 한기 때문에 몸도 마음도 움츠러들지만 때때로 불어오는 매서운 칼바람에도 꿈틀대는 생물들을 볼 수 있다. 


창백하게 바랜 날개로 겨울 버텨
계절의 변화와 그 변화의 철이 봄이라는 것을 알리는 데 입춘만큼 어울리는 날이 없다. 아직 춥기는 하지만 오랜만에 낮 기온이 영상으로 돌아오면서 어김없이 절기가 이름값을 한다. 곤충에 딱 꽂혀 연구소를 열고 벌레에 몰두한 지 21년이나 되었지만 이때쯤 들로 산으로 곤충 마중하는 일은 아직도 설렌다. 

자연에 가까이 다가가면 미리 온 봄을 만날 수 있다. 숲 속 어딘가에서 추운 겨울을 나느라 온몸을 웅크리고 낙엽 밑에서 월동하던 네발나비가 한낮 영상의 기온으로 잠깐 따뜻해지자 햇볕을 쬐느라 외출했다. 잔설 속에서 갈색 낙엽에 몸을 기대어 위장하고 앉아 양지바른 곳에서 일광욕하며 체온을 올리고 있는 모습을 보면 봄이 아주 멀지 않은 것 같다. 

낙엽 속에서 뭔가 부스럭부스럭하더니 날개가 백지장처럼 창백하고 하얗게 낡아빠진 각시멧노랑나비가 날아오른다. 그 고운 노란 빛은 어디로 간 것인지, 날기도 버거워 보이는 찢어진 날개는 겨울이라는 큰 고비에 대항해 죽을 힘을 다해 버티고 있는 모습이다. 


겨울을 나는 각시멧노랑나비의 날개가 창백하다.

아직 겨울인데 각시멧노랑나비를 만나볼 수 있다니 반가우면서도 걱정이 된다. 완전한 봄이 올 때까지 푹 자고 에너지는 최대한 아껴두었다가 봄이 되면 짝짓기에 온전히 다 써야 할 텐데… 변온동물이라 외부 온도가 상승하면서 체온이 올라가 그저 따라 움직일 수밖에 없다. 각시멧노랑나비도 부쩍 올라간 온도를 주체 못 하고 잠시 겨울잠에서 깨어난다. 

가을에 어른벌레가 되는 가을형 네발나비는 어른벌레 상태로 겨울을 보내고 이듬해 봄까지 활동하니 어른벌레 수명이 약 여섯 달은 되는 셈이다. 각시멧노랑나비는 6월께 어른벌레가 되어 월동한 후 다음 해 짝짓기할 때까지 약 10개월을 사는 셈이다. 

네발나비나 각시멧노랑나비 등은 겨울이라도 일시적으로 기온이 급상승하거나 일조량이 많아질 때, 즉 한낮 기온이 5도 이상이 되면 반짝 활동하는 나비로 개월 수는 조금 차이가 나지만 긴 겨울을 견뎌온 한 살배기들이다. 

여름철의 각시멧노랑나비

많이 받는 질문 중 빠지지 않는 것이 “나비는 혹은 곤충은 얼마나 살아요?”인데, 종류마다, 또 같은 종 안에서도 어느 계절에 나오느냐에 따라 수명이 달라질 수 있으니 정말로 다양한 삶을 사는 분류군(생물종)이다.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 봄이 왔다는 데 봄 같지는 않은, 한겨울도 봄도 아닌 계절이지만 입춘쯤에 돌발적으로 볼 수 있는 각시멧노랑나비나 네발나비는 우중충한 겨울의 기운을 대신할 자연의 선물이다. 

입춘은 낮과 밤이 바뀌기 시작하고 생명 가득한 가슴 벅찬 봄의 세상을 미리 살짝 보여준다. 사계절이 다 아름답지만 봄이 가까운 이때쯤 생명의 꿈틀거림을 보며 한층 따뜻하고 낙관적이 된다. 


겨울과 여름 80도 온도차 견디는 비결

붉은점모시나비의 알을 50배로 확대한 전자현미경 사진. 울퉁불퉁한 껍질이 특이하다.

아무런 생물 활동이 없을 것 같은 겨울의 한복판인 소한과 대한 두 절기에 걸쳐 붉은점모시나비의 혹한기 생활사를 살펴봤다. 애벌레가 영하 35도까지 버틸 수 있는 항 동결 물질을 장착하고 겨울에 성장하는 이유는 알겠다. 

그러나 부화하기 전 180여 일을 버텨야 할 시기는 무더운 여름이다. 6월부터 시작해 7~8월에는 40도를 오르내리는 땀이 줄줄 흐르는 몹시 더운 시기다. 영하 35도와 영상 45도의 인내해야 할 내성 온도 한계가 거의 80도에 가까우니 얼마나 고단할까! 추위와 더위 한쪽도 포기해서는 안 되는, 균형을 잘 맞추어야만 생존이 가능하다. 

체온이 1도만 올라도 열이 나고, 2도가 오르면 펄펄 끓다가 사망에 이를 수도 있는 나약한 인간 입장을 생각하면 실로 어마어마한 온도 차를 극복하고 있다.

더위나 가뭄 때문에 발육하지 못할 상황을 대비해 미리 애벌레로 몸을 만든 후, 알 속에서 애벌레는 항 동결 물질로 무장해 겨울을 준비한다. 하지만 외부로부터 가해지는 한여름의 열과 건조를 견디는 내열성은? 가혹한 더위와 극에 다른 추위를 견디는 물질은 서로 어우러지지 않는데 애벌레 몸속에 열을 견디는 메커니즘은 없을 것이다. 이들이 뒤섞인 곤란한 생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알’을 분석해야 했다. 

붉은점모시나비뿐만 아니라 같은 과(Family)에 속한 다른 종류의 알을 잘라 전자현미경(COXEM. EM-30)으로 촬영·관찰하면서 알의 물리적 구조를 비교·확인했다. 붉은점모시나비 알은 100.1㎛(0.01㎝), 산호랑나비는 5.5㎛(0.0005㎝), 꼬리명주나비는 10.8㎛(0.001㎝)로 측정되었다. 알 두께는 지극히 얇아 보이지만 꼬리명주나비 비해서는 10배, 산호랑나비에 비교하여 20배에 가까운 엄청난 두께다. 


여러 나비의 알 껍질 두께 비교. 붉은점모시나비의 두께가 단연 두껍다.

게다가 알 외부는 올록볼록 엠보싱 형태의 특별한 구조로 공기를 잡아주는 공기층을 형성하여 쉽게 달아오르거나 식지 않도록 해 준다. 항 동결 물질을 지닌 애벌레는 열에 강한 알 속에서 편안히 여름잠을 자면서 겨울을 기다릴 수 있었다. 애벌레는 항 동결 물질로 겨울을 준비하고 알은 열을 버티는 이중적 생존 전략을 가진 것이다.


알은 다른 포식자를 피할 수 있게 하고, 더위를 피할 수 있는 안전한 둥지였다. 
2016년 4월 베를린에서 열렸던 세계소재은행학회(ISBER)에서 붉은점모시나비의 내동결, 내열성 특징인 알에 대해 포스터로 1차 연구 결과를 발표하였다. 그리고 2016년 12월, 6년에 걸친 실험, 조사 결과 중 주제를 좁혀서 생리와 생태로 나누어 2개의 국제 학술지에 논문으로 투고했다. 


세계소재은행학회에서 포스터를 발표 중인 필자

게재 후에야 논문에 발표한 모든 과학적 사실을 밝힐 수 있기 때문에 현재 진행하면서 수락을 기다리고 있다. 게재가 확정되면 알에 대해서, 생태에 대해서, 분자생물학적 연구 결과까지 독자 여러분에게 보다 자세하고 재미있게 들려드릴 예정이다. 

(염병할 것들 때문에 세상이 어지럽다. 울화가 치미는 현실에 많은 사람이 지쳐가고, 삶은 피폐해지고 있다. 입춘쯤 불어오는 언 땅을 녹이는 기분 좋은 바람으로 귀를 씻고 싶다. 마음을 씻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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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글은 한겨레의 동의를 얻어 발췌한 기사이며, 이강운 소장의 주요 약력은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소장 / 한국환경복원기술학회 부회장 / 한국서식지외보전기관협회 회장 / 국립안동대학교 식물의학과 겸임교수 / 저서로는 <한국의 나방 애벌레 도감(Caterpillars of Moths in Korea)>(2015.11 환경부 국립생물자원관), <캐터필러>(2016.11 도서출판 홀로세)가 있다.
이메일 : holoce@hecri.re.kr       
블로그 : http://m.blog.naver.com/holoce58 
_ 이강운 소장  ·  (사)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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