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물노트] 춘분, 생태계 톱니바퀴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강운의 24절기 생물 노트 <6> 춘분
라펜트l이강운 소장l기사입력2017-03-21
생물학자 이강운의 ‘24절기 생물 노트’<6> 춘분

춘분, 생태계 톱니바퀴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개구리 알 낳자 올챙이 주식인 물장군도 잠 깨어나
생태계 먹이사슬 톱니바퀴 착착 맞물리는데, 인간만 철없어


_이강운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소장
(사)한국환경복원기술학회 부회장





명이나물로도 불리는 산마늘이 어린 싹을 탐스럽게 밀어 올렸다. 봄은 이제 거역하기 힘든 기세로 왔다.

봄은 ‘보임’의 준말이라던가. 은밀하게 태동을 준비하던 모든 생물이 불같이 일어나 일제히 활동하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어 봄이라 했다. 경칩이 천둥소리에 놀라 벌레가 깨어나는 시기라면 춘분은 훈풍으로 모든 생물을 움직인다. 눈에 보이지도 않고 손으로 잡을 수도 없는 훈훈한 바람이 잠자는 나무를 깨우고 긴 터널 같은 어둠속에 웅크리고 있던 생물들에게 빛을 선물한다.

오늘은 춘분. 낮과 밤 길이가 같아져 생물이 자기의 참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하는 절기이다. 낮이 길어지기 시작해 새벽 6시면 주위가 훤하다. 우뚝 서 있는 나무에 아직은 앙상한 가지만 있고 숲은 갈색이지만 주변은 점점 푸르러지고, 녹색 속도에 따라 연구소 주변을 산책하는 기분도 함께 상쾌해진다. 그 순간 봄 향기에 취한 꿀벌이 윙윙거리고, 따스한 불 켜지듯 나비가 난다. 영혼과 동의어인 나비(Psyche)는 영적이어서 ‘절대미’의 세계를 맛볼 수 있다.

발밑에서 수컷 노랑나비 두 마리가 날아올랐다. 아직은 몸이 덜 덥혀졌는지 힘껏 날지는 못해도 서로 뒤엉키면서 하늘 높이 날아 아득해졌다. 옛날 어르신들은 “빨간 나비가 날아다니면 아직 봄이 안 온 것이고, 흰 나비가 날면 진짜 봄이 온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빨간 나비는 몸 색깔이 전체적으로 붉은 네발나비나 뿔나비, 작은멋쟁이나비 종류일 것이고 흰 나비는 배추흰나비, 대만흰나비, 노랑나비와 같은 흰나비과 나비를 말하는 것이다.

붉은 나비 종류는 어른벌레로 겨울을 나는 반면, 번데기 상태로 겨울을 나는 흰 나비 종류는 일정한 온도가 계속 이어지며 쌓인 온도(적산온도)가 충족되어 날씨가 따뜻해져야만 어른벌레로 날개를 달고 나온다. 그러므로 일시적으로 기온이 급상승하거나 일조량이 많아질 때 반짝 하고 활동하는 네발나비나 뿔나비와는 달리 완연한 봄이 되지 않은 상태에선 흰 나비를 만나 볼 수가 없다. 나비 종류로 진짜 봄인지 가짜 봄인지를 맞추는, 재밌고도 정확한 이야기다.


상사화의 어린 싹

처음이 아니지만 숲 속에 있다 보면 봄은 늘 나무, 바람, 새, 나비가 자꾸 말을 걸어오는 참 좋은 때다. 날은 한결 풀렸어도 강원도의 해발 450m 높은 지대에 자리한 연구소는 아직도 아침저녁으로는 바람이 차가운 겨울이다. 목련과 산수유, 매화와 개나리가 한창이고, 꽃향기 전해주는 남녘의 성큼 다가온 봄을 느끼지는 못하지만 숲은 쌀쌀한 가운데 봄기운이 스며있다. 기어이 봄은 오고 있다.

밤사이 얼었던 물방울이 낮이 되면 녹았다 해가 지면 다시 얼기를 반복하며 좀처럼 봄을 허락하지 않을 것 같던 날씨가 해가 길어지면서 꽁꽁 얼었던 땅이 녹고 있다. 해가 진 뒤에도 아직 잔 빛이 남아 있고 그 기운으로 3번째 껍질을 벗은 4령 붉은점모시나비 애벌레가 늦게까지 일광욕을 한다. 겨울에 발육과 성장을 하는 특별한 생활사 덕분에 천적의 위험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있으므로 그들에게 혹한은 축복이었다.

생강나무의 샛노란 꽃망울이 터지기 시작했고, 목숨 줄 잇는 명이나물이라고도 하는 산마늘이 마늘 맛과 향이 물씬 나는 시퍼런 잎을 꼿꼿이 세우고 봄을 즐기고 있다. 언 땅 수북이 쌓인 낙엽사이로 ‘이별의 슬픔’ 같은 상사화가 늦은 삼월의 아침 햇살을 맞고 있다.


박새(위)와 쇠딱따구리가 나무에서 애벌레를 찾고 있다.

돌배나무 껍질을 두드리며 쇠딱따구리는 연신 애벌레를 주워 먹고, 쇠딱따구리를 자세히 보려고 카메라를 당겨보자 돌배나무에 둥지를 튼 박새도 열심히 애벌레 찾기에 나섰다. 마음 바쁜 각시멧노랑나비는 벌써 애벌레가 먹을 식량인 갈매나무에 삐죽하게 생긴 알을 가지런히 낳았다.


각시멧노랑나비가 갈매나무 어린 잎에 알을 낳아 놓았다.

저녁 7시 곤충 채집을 위해 불을 밝히자 북방겨울가지나방, 검은점겨울자나방, 흰무늬겨울가지나방 그리고 보온을 위한 털이 가슴에 수북한 털겨울가지나방이 차례로 인사한다. 저온에 활동한다는 뜻의 ‘겨울’이 이름에 들어있는 나방으로 딱 이 때쯤 활동하는 곤충이다.


3월13일 밤에 불을 켜고 나방을 유인해 채집하는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연구원들.


불빛에 이끌려 찾아온 흰무늬겨울가지나방.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곳곳에 자리한 크고 작은 연못에도 봄은 와 있다. 알 속 올챙이들이 꾸물꾸물 움직이기 시작했고, 도롱뇽 알 꾸러미도 연못 가장자리에 자리 잡았다. 새끼 손톱만한 버들치 치어들도 떼를 지어 몰려다닌다. 수온이 5도를 넘어가자 물가 주변의 수초더미에 몸을 걸고 숨구멍을 밖으로 내어 월동하던 물장군이 서서히 몸을 추스른다.

지난해에는 2월 16일 전후해서 북방산개구리들이 알을 낳았고 2015년에는 2월 17일께 알을 낳았지만, 며칠간 계속된 강추위로 알 전체가 깨어나지 못한 채 죽어버리는 재앙을 맞았다. 연구소 주변에 올챙이 씨가 마르면서 물장군 새끼들에게는 시기적으로도 딱 맞는 가장 좋은 먹이인 올챙이를 구하러 전국을 헤매었다.

올해는 경칩을 지난 3월 12일께부터 북방산개구리가 비로소 알을 낳기 시작해 올챙이가 잘 자라고 있다. 몇 년에 걸쳐 철모르고 괜히 서두르다 일찍 알을 낳고 제 명에 못 살고 전멸한 기억을 갖고 학습한 때문인지 이번에는 철을 맞췄다.

개구리 알이 올챙이가 될 때쯤 물장군은 짝짓기를 하고 알을 낳을 것이다. 다시 열흘쯤 지나면 알에서 첫 번째 애벌레가 깨어날 것이다. 그 때쯤 물장군 애벌레가 먹기 좋을 만큼 올챙이가 클 것이다. 식성도 까다롭고 기아 상태였던 그들을 키운 지 10년, 생명을 살리기 위해 다른 생명을 담보해야만 하는 사실이 가슴 아프지만 철따라 나타나는 다른 생명으로 먹이를 제공하면서 멸종위기 곤충 물장군의 목숨만을 연장하고 있다.

올챙이는 물장군 새끼에게는 가장 좋은 먹이여서 그들 삶의 전체라고 할 수 있다. 월동하던 애벌레가 움직이자 박새와 쇠딱따구리가 새끼를 키우기 시작한다. 새순이 나오는 시기와 새로운 생물이 출현하는 철에 맞춰 촘촘한 먹이 사슬이 톱니바퀴가 맞물리듯 생태계가 작동하고 있다.


꽁무니를 물 밖에 내놓고 겨울잠에 빠진 물장군. 주 먹이인 올챙이가 깨어날 때에 맞춰 알을 낳는다.

철이 지나도 한참 지난 새마을 운동을 되살리겠다 하고, 아예 친일·독재를 미화한 거꾸로 가는 국정 역사교과서로 역사를 되돌리려 했다. 역사의식이 없으니 철천지한인 위안부 문제를 제멋대로 봉합하고 실익을 따져 국익을 찾아야 할 외교는 없었다. “언젠가는 진실이 밝혀질 것이다”라는 언행에는 성찰과 반성의 진정성은 전혀 없다. 사회적·정치적 혼란이 극에 달한 상황에서 잘 버텨준 국민들에게 미안하단 말 한 마디 없이 철없이 자기 목소리를 시끄럽게 내면서 대한민국을 위험에 빠뜨리고 있다.

‘백성의 마음을 훔친 도적’이 아니라 ‘백성의 행복을 훔친 도적’이 되었다. 대한민국과 국민들에게 위험과 고통만 남겨준 철모르는 철부지 대통령이었지만, 이제라도 생태학적 반성의 안목을 가져 철이 들어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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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글은 한겨레의 동의를 얻어 발췌한 기사이며, 이강운 소장의 주요 약력은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소장 / 한국환경복원기술학회 부회장 / 한국서식지외보전기관협회 회장 / 국립안동대학교 식물의학과 겸임교수 / 저서로는 <한국의 나방 애벌레 도감(Caterpillars of Moths in Korea)>(2015.11 환경부 국립생물자원관), <캐터필러>(2016.11 도서출판 홀로세)가 있다.
이메일 : holoce@hecri.re.kr       
블로그 : http://m.blog.naver.com/holoce58 
글·사진 _ 이강운 소장  ·  (사)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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