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경기행] 신기자의 유럽 탐험기, 이탈리아 -3

고대 문화유산의 매력을 가진, 로마
라펜트l신혜정 기자l기사입력2017-10-15







고대 문화유산의 매력을 가진, 로마


이탈리아 로마 위치도



대전차 경기장(키르쿠스 막시무스) Circus Maximus
수풀 사이로 보이는 풍경이 무척이나 이국적이다 ⓒ신혜정 기자

드넓은 광장처럼 보이는 이곳이 바로 로마 최초의 전차경기장이다. ⓒ신혜정 기자

이곳에도 오래된 유적들로 둘러쌓여 있다. ⓒ신혜정 기자

로마에서 최초로 건설된 대전차 경기장인 이곳은 '키르쿠스 막시무스'로 불려진다. 아벤티노 언덕과 팔라티노 언덕 사이에 있으며, 로마를 상징하는 주요 명소들과 함께 보존돼 있다. 주로 왕들의 경기장으로 쓰이기 위해 건설됐다고 한다. 

크기는 길이 621m에 너비 150m로 당시 로마 주민의 4분의 1 이상이 들어올 수 있는 장소였다. 나중에는 더욱 확장되어 최대 27만 명까지 수용할 정도였다고 한다. 경기장 뿐만 아니라 오락시설과 축제, 공연장 등으로도 사용됐다.

로마하면 떠올리는 고대의 유적들이 이곳 대전차 경기장을 시작으로 연이어 연결된다. 이제부터 고대 로마의 흔적을 따라 과거로의 여정을 떠나보고자 한다.


팔라티노 Palatino

들판과 고대 귀족들의 거주지가 매력적으로 조화를 이루고 있다. ⓒ신혜정 기자

수목 사이로 보이는 귀족들의 거처 ⓒ신혜정 기자

지금은 흔적으로 남아 있는 기둥 ⓒ신혜정 기자

곳곳에 흔적으로 남아 있는 황제의 궁전과 귀족들의 거주지 ⓒ신혜정 기자

유적과 식물의 아름다운 공생 ⓒ신혜정 기자
이제는 금붕어들의 집이 되어버린 고대 수경시설 ⓒ신혜정 기자 

콜로세움과 포로 로마노 사이에 팔라티노 언덕이 자리잡고 있다. 로마 시대 황제의 궁전과 귀족들의 거주지가 있던 곳으로, 언덕에서는 도심지의 모습이 한 눈에 보인다. 산책하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지는 풍경이다.

지금까지도 귀족들이 이용했던 수경시설과 그로토(grotto)가 그대로 남아 있다. 지금은 금붕어들의 안식처가 됐지만, 고대 로마가 번성했던 시기에는 황제와 귀족들이 즐겨 이용하던 장소였다. 또한 도미치아누스 황제에 의해 건축된 플라비 궁전이 이곳에 위치해 있었으며, 욕실과 식당, 공회당, 연회당 등의 흔적으로 얼마나 호화스러웠는지를 짐작케 한다.

과거와 현재를 잇게 해 주는 것은 남겨진 유적들을 메꾸고 있는 수풀이다.과거 로마인들이 살던 장소가 녹색의 생명들로 하여금 그 찬란했던 기억을 이어간다. 푸른 색의 식물들과 붉은색 건축물이 조화를 이루면서 이국적인 느낌을 준다. 드넓은 들판과 우거진 수목, 그 속에서 비규칙적으로 자라난 잡초들이 남겨진 흔적들을 더욱 빛나게 만들어준다.


지금은 아름다운 꽃으로 수놓은 팔라티노 ⓒ신혜정 기자

수풀로 뒤덮인 고대 유적의 흔적이 신비스러워 보인다. ⓒ신혜정 기자

언덕에서 바라본 구시가지 ⓒ신혜정 기자

언덕 위에서 바라본 도로 풍경, 현대와 고대가 조화를 이루고 있다. ⓒ신혜정 기자

출구로 나가는 길, 사람들로 북적이는 거리 뒤편으로 오래된 흔적들이 보인다 ⓒ신혜정 기자

출구에서 바라본 콜로세움 ⓒ신혜정 기자

특히, 팔라티노 언덕이 인기 있는 이유 중 하나는 그늘을 빽빽히 들어선 수목 때문이다. 팔라티노 언덕에서는 독특한 풍경이 펼쳐진다. 구경을 하는 사람들보다 그늘 아래서 휴식을 취하는 사람들이 더 많다. 잠시 나마 더위를 식히기 위해서이다. 

로마는 대부분 돌로 지은 건축물이 많은 반면, 상대적으로 수목이 적어 여름이면 지옥 같은 더위를 경험할 수 있다. 뜨거운 여름 햇볕으로 달궈진 돌들이 치명적인 더위를 선사해 준다. 왠지 옛 풍경도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 같다. 더위를 피해 온기종기 그늘 아래로 모인 로마인들의 모습이 상상이 된다.  

진짜 더위는 콜로세움부터였다. 이 곳에서 잠깐의 휴식이 얼마나 달콤했는지 새삼 깨닫게 됐다.


콜로세움 Colosseum
웅장한 크기에 놀란 콜로세움 ⓒ신혜정 기자

콜로세움 내부 전경 ⓒ신혜정 기자

콜로세움 내부 모습 ⓒ신혜정 기자

내부가 상당히 잘 보전되어 있다. ⓒ신혜정 기자

콜로세움을 보기 위해 전세계 관광들이 모였다. ⓒ신혜정 기자

콜로세움에서 바라본 티투스 개선문 ⓒ신혜정 기자

둘레 527m, 외벽 48m의 4층 높이인 콜로세움은 플라비우스 왕조인 베스파시아누스 황제가 착공하여 그의 아들 티투스 황제 때 왕성됐다. 완공 시기는 서기 80년이다. 엄청난 크기 답게 무려 5만 명을 수용할 수 있었다고 한다. 

주로 노예나 전쟁 포로들로 구성된 검투사들이 시합을 하거나 맹수들을 사냥하는 경기를 감상하기 위한 오락 시설로 사용됐다. 시합에 투입되는 맹수들은 사자, 표범, 악어 등이였고, 검투사들은 자신의 용맹함을 보여주기 위해 맹수 혹은 동지와 격렬하게 싸웠다. 

그러나 패자에게는 잔혹했다. 패배한 검투사들의 운명은 관중들의 엄지손가락에 달려 있던 것이다. 영화에서도 많이 등장하듯이 엄지손가락을 올리면 살고, 내리면 죽는 일이 이곳에서 실제로 벌어졌다. 그리스도교 박해 시대에는 신도들을 학살했던 장소로 이용되기도 했다.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어야 했지만, 고대 로마인들에게는 최고의 즐길거리였다. 사람이 얼마나 무자비해질 수 있는 생각해 볼 수 있는 장소이다. 현 시대에서는 받아들일 수 없는 악행의 장소이지만, 이 또한 앞으로 계속해서 보존되어야 할 인류의 소중한 기록이기도 하다. 

로마는 계획적인 도시보단 다소 복잡하게 느껴지고, 나무 한 그루 찾아보기도 힘들 뿐더러, 이용에 불편함도 느껴졌다. 그러나 옛 문화유산의 보존에 앞선 로마인들의 노력으로 지금은 어느 도시보다 큰 인기를 누리며 번영하고 있다. 

로마의 고대 문화유산들을 추적해 나간 이번 여정에서 한 가지 아쉬운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우리나라는 왜 이토록 문화재와 관련된 사업에서는 소극적인 것일까. 물론, 우리나라의 문화재 대부분은 서양과 달리 목재로 만들어져 많은 전쟁과 일제 감정기 시대를 거치면서 손실 될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만 불국사와 같은 일부 유명 문화재는 복원 사업을 거쳐 제 모습을 찾기도 했고, 로마도 최근까지 이어온 오랜 복원 사업으로 콜로세움과 같은 문화재가 본 모습을 되찾았다.

조금 불편해도 우리의 정체성을 잇는 작업도 동반되어야 하지 않을까. 화려하기만 한 우리의 도시 이면에도 집중해야 할 필요성이 느껴졌다. 개발과 발전으로 어느 나라보다 살기 좋은 도시가 됐지만, 사는 게 지옥 같고 희망 없는 나라라는 뜻의 '헬(hell) 조선'이란 용어가 갈수록 익숙해지는 이유는 왜 일까. 로마 문화유산을 바라보며, 문득, 지금껏 자랑스럽게만 느껴지던 한국의 모습이 조금은 아쉽게 느껴졌다.

글·사진 _ 신혜정 기자  ·  라펜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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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inkij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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