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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을 이야기하다 ; 문화와 문화적이라는 것

월간 환경과조경20071225l환경과조경

‘생태적 혹은 환경친화적’이란 수식이 한동안 조경계를 풍미하더니, 근래 들어 조금씩 ‘공원=문화발전소’, ‘문화친화적인 조경’이란 표현이 들려오고 있다. 공원과 문화를 연결시키려는 이런 시도와 시선에는 두 가지 층위가 있어 보인다.

 

그 하나는 공원에 문화를 담고자 하는 시도들이다. 공원 내에서 문화 예술 관련 이용행태가 유발될 수 있도록 구체적인 공원 이용 프로그램을 기획하거나 문화 예술 관련 시설을 직접 유치하려는 일련의 노력들이 해당된다. 또 거창한 예술 프로그램이 아니라 책 읽는 공원 만들기와 같은 소박한 일상 문화를 꽃피우려는 시도들 역시 같은 맥락이다.

 

다른 하나는 공원을 문화적으로 바라보고, 문화적으로 만들고자 하는 시선들이다. 문화적으로 만든다는 것은 조성과정이 문화적이어야 한다는 의미로, 실체가 모호한 감이 있지만, 이를테면 시민참여에 의한 조성방식 등과 호응하는 바가 클 것이다. 그리고 공원을 문화적으로 바라본다는 것에는 공원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것 자체가 하나의 문화적 시도라는 생각들이 포함된다. 공원이 단순한 여가공간이 아니라는 인식의 전환도 이런 생각의 연장선상으로 볼 수 있다. 이런 예로는, 고립된 녹색 섬이 아닌 도시와 역동적으로 호흡하는 장소로 공원이 거듭나야 한다는 지적을 꼽을 수 있겠다. 아니면, 건축이 엄연히 예술이고 우리네 삶을 담아내는 문화이듯이, 공원 역시 문화예술의 결과물이고 우리의 일상과 호흡하는 문화 공간 혹은 문화적 공간이라는 생각을, 이런 시선의 언저리쯤에 놓아둘 수도 있겠다.

 

용산기지의 공원화 방향과 관련해서 공원과 문화의 관계를 살펴보면, 결은 조금 다르지만 역시나 두 가지 차원에서 용산기지가 문화와 접점을 가져야 한다는 의견들을 접할 수 있다.

 

우선, “민속박물관, 자연사박물관 등을 용산공원 내에 조성해, 미술관과 해양박물관, 천문대 등이 집중되어 있는 시카고의 뮤지엄 캠퍼스처럼 박물관벨트"1)로 만들자는 의견이나, 한참 전의 제안이긴 하지만 “국립중앙박물관, 자연사박물관, 국립중앙극장, 현대미술관 등을 포함한 문화시설단지” 조성을 테마로 한 연구2)나 “용산 기지의 기존 건물을 재활용하여 자연사박물관을 건립”하거나 “기존의 녹지공간을 최대한 살리면서 일부 제한적으로 시민체육공원의 조성과 청소년 생태교육공간으로 활용하는 방안”3)을 검토해볼 수 있다는 이야기 등은 모두 용산공원 내에 문화예술과 관련된 직접적인 시설 건립을 통해서, 미래의 용산에 문화를 담아보자는 의견들로 볼 수 있다. 너무 거칠게 정리되어, 각각의 제안들이 담고 있는 세심한 고려사항들이 채 언급되지 못하긴 했지만, 80만평의 일부에 문화예술시설을 건립하자는 의견들이 사회 일각에서 나오고 있는 것만은 사실이다. 특히나 이번 기회에 제대로 된 자연사 박물관을 건립하자거나, 입지적 단점으로 인해 접근성이 떨어지는 국립극장, 현대미술관 등을 용산공원의 부지에 포함시키자는 의견은 꾸준히 거론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반면 문화생태 혹은 생태문화를 용산에 담아야 한다는 전문가들의 제안은, 문화를 이야기하고 있지만 궤가 다르다. 기존에 들어서 있는 국립중앙박물관등이 천덕꾸러기 신세가 되지 않도록 어느 정도 고려는 하되, 그보다는 “생태적 가치 자체를 우리 시대가 요청하는 긴박한 문화적 과제로 제시”4)해야 한다거나, “도시의 숲 속에서 산책을 통한 생태성과 역사성의 조우를 경험하는 것은 그 자체로서 새로운 문화를 경험하는 것이 되며, 이런 점에서 생태공원화는 생태문화의 창조란 의미를 갖게 된다”5)거나, “어떠한 시설도 보류한 채 서울 시민들에게서 사라진 숲 속의 느린 산책의 길을 마련”해서 “우리들의 생각과 산책과 꿈을 잉태하는” 곳이야 말로 문화생태 공간이라는 의견6)은 모두 장차 만들어질 용산공원이 ‘문화적’으로 만들어지고 우리가 잊고 있는 ‘문화적 가치’를 되새기는 계기로서 의미가 있다는 이야기들이다. 미래의 용산공원이 구체적인 문화 예술 관련 활동이 벌어지는 장으로서 기능하기를 바라는 의견과 적지 않은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다.

1) 손수호, "경복궁은 안녕하신가", 국민일보 2006년 9월 20일자
2) 김원, 『문화예술 종합단지(용산 미8군 이전지역) 조성연구』, 문화부 발주, 1992
3) 서재철, “용산 미군기지 반환에 따른 환경문제 대책”, 『용산 미군기지를 서울 시민의 품으로-용산 미군기지의 반환과 활용 방안 토론회 자료집』, 2003
4) 홍성태, “군사공간의 생태적 재생과 문화정치-용산 미군기지의 경우”, 『공간과 사회』, 2000년 겨울호
5) 조명래, “용산기지의 시민생태공원화 운동”, 『민족예술』, 2000년 6월호
6) 정기용, “부엌 속의 미군기지-도시 원형의 생태적 회복을 위하여”, 『ASEM 2000 한국민간단체포럼 문화분과 워크샵, 용산미군기지를 문화생태공원으로 전환하기 위한 방안 모색 자료집』, 2000

 

사실 역사, 문화, 생태, 시민은 동떨어져 홀로 기능할 때보다 서로 어울릴 때 그 가치가 극대화되는 것들이다. 시민의 적극적 참여 없이 문화 예술과 관련된 이용행태가 일어날 수 없고, 역사를 담는 것은 그 자체가 문화적인 접근이다. 생태와 문화는 문화생태 혹은 생태문화라는 용어에서 엿볼 수 있듯 그 동거가 어색하지 않고, 역사와 시민 역시 가까운 이웃일지언정, 그 거리가 결코 멀지 않다. 생태와 역사는 또 어떤가. 외세 침략의 아픈 역사를 생태계의 천이를 바탕으로 한 자연의 힘으로 치유해야 한다는 의견이 아주 생뚱맞아 보이지만은 않는다. 게다가 외세에 의해, 인간에 의해 쓰여 온 땅의 역사를 이제는 자연이 쓰는 땅의 역사로 탈바꿈시켜야 한다는 생각은 또 어떤가 말이다.

 

그러나 이것들 중에서 어느 하나가 유독 도드라질 때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시민 참여는 진행과정과 결정단계에서 중시되어야 할 가치이므로 일단 논외로 할 때, 역사, 문화, 생태 중 특정 가치만이 앞으로의 용산에 부각된다면, 더구나 그 방식이 민족기념관이나 미술관처럼 하드웨어적인 오브제 위주로 강조된다면, 상충은 피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물론 80만평이라는 적지 않은 면적에 다양한 가치를 채우면 되지 않느냐는 의견도 가능하다. 하지만 지금의 여러 의견 중 한 갈래는 하나의 가치를 전면에 내세워 전체를 비우기를 원하고 있다. 해법이 아주 쉽지만은 않아 보이는 이유이다.

 

이런 와중에 문화가 설 자리는 어디일까? ‘문화’를 상징적 혹은 직설적인 시설로 넣을 것인가, 프로그램으로 넣을 것인가, ‘문화적’으로 은유적인 접근만 할 것인가에 따라 용산의 모습은 달라질 수 있다. 다만 문화가 갖고 있는 다의성이 문제를 쉽게 풀어줄 수도 있으리란 추측은 가능하다. 이 점은 문화가 어려운 점이자 고마운 점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문화’와 ‘문화적’ 중에 하나에 방점을 찍어야 할지도 모를 일이다.
문화와 문화적은 다르다. 특히나 그것들이 구체적인 공간에 영향을 미칠 때에는 더욱 그러하다. ‘문화’를 ‘문화적’으로 어찌할 것인가?

 

남기준  ·  본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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