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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려진 땅, 로어 돈 랜드 설계공모전

월간 환경과조경20095253l환경과조경

폐기물(Dross)

 

20세기 초 인구 백만 이상의 도시는 전 세계에 16개에 불과하였다. 그러나 100년도 되지 않아 인구가 백만이 넘는 도시는 500개를 넘어섰으며 현재도 도시화는 가속화되고 있다. 오늘날의 거대 도시들은 끊임없이 자신의 영토를 확장시키면서 그 발전의 잔해들을 곳곳에 남겨 놓았다. 도시가 생산해내는 배설물(쓰레기, 하수, 오염물)을 처리하기 위한 매립지와 정화시설, 탈산업화 이후에 유기된 공간들(이전적지, 오염지, 사용되지 않는 산업시설), 기능적인 역할을 하고 있으나 의미를 생산해내지 못하는 규정되지 못한 공간들(고속도로, 거대한 주차장, 일시적으로만 사용되는 공지), 이들은 모두 과거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양상으로 진화한 도시의 피할 수 없는 엔트로피적인 부산물이다. 도시의 영역이 거대해질수록 그리고 그 영광이 찬란해질수록 그에 수반되는 폐기물Dross들도 증가되고 복잡한 양상을 띄게 된다.

 

MIT의 앨런 버거(Alan   Berger)는 이 버려진 공간들을 드로스케이프(Drosscape)라고 정의다한. 그는 드로스케이프를 생산해 내는 도시의 프로세스는 유기체가 배설물을 처리하고 배출하는 과정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지적한다. 예를 들면 세포는 뼈를 생성하는데 필요한 칼슘을 반복적으로 배출하고 유기체가 생체작용을 통해서 배출하는 물질들은 다시 유기체의 골격을 구성하는 물질로서 사용된다. 폐기물을 생성하는 도시화의 과정은 단순히 비유적으로 유기체와 흡사한 정도가 아니라 거의 동일한 과정으로 보아도 무방하다. 제조업과 주택 시장처럼 도시가 성장하기 위한 에너지와 물질을 공급하는 경제 체제는 대상이라기보다는 프로세스이다. 그리고 유기체와 마찬가지로 도시가 성장할수록 생성되는 폐기물 역시 늘어난다. 생물학적 유기체처럼 도시화된 경관은 열린 체계를 갖고 있다. 이 체계의 계획된 복잡성은 열역학 법칙을 따르는 계획되지 않은 폐기물을 항상 수반한다. 앨런 버거는 도시화의 폐기물을 문제시하는 기존 학계의 입장에 반대하여 드로스케이프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찾고자 한다. 그에게 버려진 경관은 건강한 도시 성장의 지표이다. 우리는 앨런 버거의 의견에 동의하여 이 버려진 경관들을 긍정할 수도 있고, 기존의 입장처럼 부정적인 시각에서 비판을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가 폐기물을 생산하는 도시의 프로세스에 대해 어떠한 태도를 취하든 변하지 않는 사실은 이 프로세스가 절대로 멈추지 않으며 이미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도시의 일부라는 점이다. 그리고 우리가 그 해답을 알고 있든 모르고 있든 이미 우리 시대는 디자이너들에게 이 프로세스에 대한 대안을 요구하고 있다. 라 빌레트, 다운스뷰 파크, 프레쉬 킬스, 하이라인, 지난 20년간 조경계의 새로운 이론적, 실천적 화두를 제시했던 공모전들에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이 공모전들의 대상지는 모두 탈산업화의 과정 속에서 도시화가 남기고 간 버려진 부산물들이었다. 과거의 공모전들을 통해서 우리는 이 복잡하고 난해한 도시의 한 부분이면서 동시에 도시의 다른 조직과는 이질적으로 존재하는 이 공간들에 대한 유일한 해답이 존재하지 않음을, 그리고 존재할 수 없음을 알고 있다. 왜냐하면 이 버려진 도시 경관들 또한 도시가 끊임없이 변화함에 따라 전혀 다른 양상으로 도시와 맞닥뜨리기 때문이다. 2007년 열렸던 토론토의 로어 돈 랜드(Lower  Don Lands) 공모전 역시 버려진 경관에 대한 또 다른 해석이며 대안을 찾기 위한 노력의 연장이었다.

 

로어 돈(Lower Don)

 

지난 2000년 3월 캐나다 정부와 온타리오 주정부, 그리고 토론토시는 워터프론트 토론토(Waterfront Toronto)라는 명칭의 공기업을 설립하고 연안 지역을 중심으로 토론토를 대대적으로 재개발하여 세계적인 수변 도시로 만들 계획을 세운다. 2006년에서 2007년 사이에 워터프론트 토론토는 그 사업의 초점을 공원과 수변 공간과 친환경적 주거 단지 개발에 맞추고 대규모의 프로젝트들을 동시에 발주한다. 그 중 로어 돈 랜드는 토론토의 동쪽을 남북으로 가로지르는 돈 강(Don  Rive)r의 하구에 위치한 40ha의 부지를 일컫는다. 동쪽으로는 West8의 센트럴 워터프론트(Central Waterfront)와 이어지고 남쪽으로는 필드 오퍼레이션스의 온타리오 호수 공원, 그리고 북쪽으로는 주거 복합 시설이 들어서는 웨스트 돈 랜드(West Don Lands)와 연결되는 로어 돈 랜드는 워터프론트 토론토가 추진하는 프로젝트들 중 가장 까다로운 조건을 가진 부지였다.

 

로어 돈 랜드는 도시의 확장이 남기고 간 유기된 공간이다. 과거 공업시설이 가득 들어선 산업 항구였던 이 대상지는 기본적으로 오염, 거대한 공업시설물, 기존의 도시와 단절된 구조 등 전형적인 이전적지의 문제점들을 갖고 있다. 동시에 로어 돈 랜드는 토론토를 남북으로 가로지르는 돈 강(Don River)이 온타리오 호수와 만나는 하구이기도 하다. 그다지 큰 강은 아니지만 돈 강은 토론토를 관통하는 두 개의 중요한 강줄기 중 하나이기 때문에 이 강이 끝나는 이 대상지는 토론토에서 매우 중요한 생태적 의미를 갖는다. 현재 돈 강은 직강화 처리가 된 키팅 채널Keating Channel을 통해 온타리오 호수로 흘러나가고 있는데, 이 공모전의 최우선적인 과제는 이 콘크리트 수로에 가까운 하구를 자연형 하천으로 바꾸는 것이었다. 돈 강의 하구를 자연으로 되돌려주는 문제는 단순한 문제가 아니었다. 오염 물질의 정화, 범람에 대한 대비책, 7km에 달하는 돈 강과의 생태적 연결 등 이 과제를 성공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복잡한 공학적, 생태적 문제들에 대한 대안이 함께 제시되어야 했다.

 

이 공모전을 더욱 까다롭게 만드는 것은 주최측이 요구하는 프로그램이 단순한 공원이 아니라 공원과 결합된 복합 주거 단지라는 점이었다. 사실 워터프론트 토론토는 40%의 부지만을 공원으로 할당하고 있을 뿐, 전체 대상지의 60%는 개발 지역으로 제안하고 있다. 이전적지를 공원화 하는 경우와 여기에 거주 환경을 만드는 경우는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이다. 사람들이 상시로 거주해야 하는 주거 환경은 일반적인 공원이 고려하지 않아도 되는 교통 체계, 상하수도나 가스관과 같은 추가적인 기반 시설이 도입되어야 한다. 거주 환경을 만드는데 필수적인 기반 시설을 성공적으로 제공한다고 해서 그 프로젝트가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성공적인 거주 환경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주변 도시 조직과의 연결이다. 그런데 로어 돈 랜드는 주변 지역과 거의 단절되어 있다고 봐도 무방한 도시의 외곽 지역에 위치하고 있으며, 고가 도로와 철도 야적장 등 다른 도시의 조직과 연결을 더욱 어렵게 만드는 기반시설들이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 게다가 한 프로젝트 안에 주거 환경과 공원이 함께 공존하는 경우에는 주민들 사이의 복잡한 갈등 관계가 발생한다. 프라이버시를 원하는 주민들과 더욱 많은 공공성을 원하는 다른 지역의 주민들 사이에 발생하는 미묘한 사회적, 정치적 관계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이 프로젝트는 성공하기가 힘들다.

 

유기된 공업지대에 대한 대안, 생태적 복원, 그리고 공원과 함께 공존해야 하는 주거 환경. 로어 돈 랜드라는 대상지가 제기하는 문제는 오늘날 새로운 형태로 진화한 현대의 도시가 해결해야만 하는 새로운 과제들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라 빌레트에서부터 최근의 하이라인까지 도시적인 문제를 다룬 공모전은 많았지만, 로어 돈 랜드 공모전처럼 도시에 대해 복합적이고 포괄적인 해결방안을 요구하는 공모전은 없었다. 사실 이 공모전이 다루어야 하는 것은 40ha의 부지가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오늘날의 도시 그 자체였다.

 

워터프론트 토론토는 이 난제를 해결하기 위해 네 팀의 디자이너를 선정하였다. 하버드 대학교의 교수이자 이 시대의 가장 뛰어난 조경가 중 한 명인 마이클 반 발켄버그(Michael Van Valkenburg)가 이끄는 MVVA, 스위스 ETH의 교수이자 새로운 스위스 조경을 대표하는 크리스토프 지로(Christophe Girot)의 아틀리에 지로(Atelier Girot), 시애틀 올림픽 조각 공원으로 일약 스타덤에 오른 건축가들인 와이즈/맨프레디(Weiss/Manfredi), 랜드스케이프 어바니즘의 모토를 걸고 실험적인 디자인을 계속해서 선보였던 크리스 리드(Chris Reed)의 Stoss. 흥미롭게도 이 공모전에 선정된 네 팀의 디자이너들은 각각 클래식한 미국적 현대조경, 유럽의 현대 조경, 건축적 조경, 그리고 랜드스케이프 어바니즘을 대표하는 전혀 다른 색을 가진 조경가와 건축가들이었다.

 

김영민  ·  SWA Grou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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