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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정희의 식물이야기(1): 연재를 시작하며, 금낭화와 가로수

월간 환경과조경20104264l환경과조경

식물부재의 조경계
요즘 식물에 대한 세간의 관심이 증가하고 있다. 세간이라고 하는 이유는 증가하는 관심의 주체가 조경계가 아니라 조경계 외의 세상이라는 뜻이다. 설문조사를 한 것은 아니지만 예를 들어 이메일로 식물에 대해 문의해 오는 ‘일반’독자들이 늘고 있고,‘ 야생화’에 대해서 혹은‘정원’에 대해서 특강을 부탁하는 조경계 외의 단체들도 종종 있다는 점으로 미루어 유추해 보는 거다. 일반인들이‘정원과 식물을 거의 동일시’여기고 있는 반면 정원을 만드는 조경인들은 정작 식물을 대하는 태도가 여전히 시큰둥하다. 유사한 소재를 가지고 조경과에서 특강을 했을 때 오는 반응은“뭔가 멋진 이야기를 듣고 싶었는데 (고작) 식물이야기인가?”정도라고나 할까. 식물을 제외한 조경은 과연 멋진 것일까?
몇 해 째 대학에서 설계 강의를 하고 있는데 식물에 관심을 가지는 학생은 스무 명 중 한두 명 정도에 불과하다. 도면에 멋진 라인을 그리고 싶어 하는 학생들에게 식물의 중요함을 강조하고 식재설계에 신경 쓰라고 압박하는 일에도 슬그머니 지쳐가는 즈음인데〈환경과조경〉에서 고정희의 식물이야기를 연재하자고 한다. 필자는 식물학자가 아니고 다만 조경에서 식물이 가지는 의미와 역할을 대단히 중요시 여기는 사람에 불과하다. 국내의 조경계에서 식물에 대한 관심도가 의외로 낮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에 끊임없이 식물에 대해 얘기한 것이 아마 계기가 되어주지 않았나 싶다. 식물에 대해 어떤 ‘멋진’이야기를 펼쳐놓아야 관심들을 가져줄까. 모든 사물이 그렇지만 식물 역시 바라보는 사람의 관점에 따라, 혹은 용도 에 따라 별도로 조명되어져야 하는 소재이다. 조경에서 다루는 식물은 자연속에 존재하는 식물과 같은 것이지만 같지가 않다. 금낭화나 삼지구엽초 등의 아름다운 식물들이 도시 공간에서 자리 잡기 힘겨워하는 것이라든가, 고층 건물을 등지고 서있는 소나무가 강원도 숲 속의 소나무와 똑같은 광채를 내뿜지 못한다는 것들 때문에 식물을 하나씩 살펴보고 도감식으로 정리하는 것은 우리에게 큰 도움이 되지 못한다.

 

금낭화에 실패한 사연
금낭화 얘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처음 한택식물원을 방문했을 때가 금낭화가 만발한 계절이었다. 금낭화를 처음 보는 것은 아니지만 부슬비가 오는 날 이어서인지 촉촉이 젖은 계곡을 가득 매웠던 금낭화 군락들의 모습은 형용할 말이 모자라게 황홀하였었다. 지금도 눈에 선한데 그 후 한 번 정원에 심었다가 실패한 적이 있다. 금낭화는 Dicentra spectabilis 혹은 Bleeding Heart라는 비장한 이름하에 유럽에서도 많이 심는 식물로서 한국과 만주가 원산지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때문에 한국에서라면 어디나 꽂아놓아도 잘살 것이며 한택식물원에서 본 것과 같은 명장면을‘연기’해줄 것을 기대했었으나 그들은 별로 빛을 발하지 못했고 성장상태도 신통치 않았다. 그들의 연기력이 좋지 않아서가 아니라 내 연출력이 부족했기 때문이고 금낭화에 대해 좀 더 깊이 생각해 보지 못했던 결과였다. 부슬비 오는 날 보았던 금낭화 군락의 선명한 아름다움에 대해 좀 더 깊이 사고해 볼 필요가 있었던 거였다. 금낭화의 아름다움을 정원에 이식하고 싶은 마음이 급한 나머지 그들이 원하는 환경을 제대로 만들어 주지 않았고 그들은 성장 거부라는 반응으로 대답해 왔다. 금낭화는 습하고 그늘진 계곡에 무리지어 자생하는 다년생 초본으로서 키는 대개 70센티미터 정도이고 가장 큰 특징은 가지가 휘어지게 붙어있는 주머니 모양의 꽃들이다. 대체로 진분홍에 가깝지만 흰 것도 있다. 꽃이 물론 압권이어서 유명해졌지만 잎의 모양새도 좋은 편이며 볼륨감이 있다. 물론 심고 난 다음 바로 효과가 나는 것은 아니고 3~4년 지나서 제 골격을 갖추게 되면 거의 관목과 같아서 자리를 제법 차지하는 식물이다. 꽃이 지고 나도 잎이 싱그러움을 보태주는 까닭에 여러모로 고마운 식물인데 이렇게 제대로 모습을 갖추고 자라게 하려면 말할 것도 없이 여러 가지 조건을 만족시켜 주어야 한다. 습한 계곡이라는 그들의 성장배경을 도시 속에 고스란히 재현해 주는 것은 쉽지 않다. 계곡까지는 어찌어찌 흉내 낼 수 있다고 하더라도 계곡에 드리우는 아름드리 수목의 그늘이며 이끼며 습한 기운 등 시간의 흔적은 단시간에 재현해 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같은 계곡 출신이라도 어디서나 그런대로 잘 자라는 노루오줌 혹은 관중 등에 비해 금낭화는 까다로운 편이다. 그 때 실패한 이후 금낭화에 다시 접근하지 못하고 있다. 식물원의 전문가에게 자문을 구해보니 뒤편의 서늘한 담장 그늘 정도에 심어보면 어떨까 라는 의견을 제시해 주었다. 어느 정도 보호된 서식 환경이 필요하다는 조언이었다. 다음 기회에 꼭 시도해 보려고 한다. 물론 금낭화를 어디서 구해다 심었는가 하는 점도 상당히 큰 역할을 차지한다. 같은 식물이라도 재배되는 과정이 상당히 중요한 작용을 한다는 것이다. 프로페셔널한 관리를 받고 포트에서‘뿌리가 완전히 돌아서 나온’식물은 식재 후 활착이나 성장 행태가 확연히 다르다. 조경공간에 식재되는 식물은 그 환경이 자연과 완연히 다르기 때문에 어린 시절 재배원에서 제대로 ‘준비’되어야 한다. 그래야만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여 자라갈 수 있다. 식물 재배원을 서구에서‘Nursery’라고 부르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이렇듯 조경 식물에서 성과를 얻기 위해서는 식물 하나하나의 성격과 서식환경 등을 파악하는 외에도 생산 및 유통과정을 이해해야 하며 어떤 현장에 어떤 방식으로 심어져야 원하는 장면이 연출될 것인가에 대한 시나리오가 만들어져야 한다. 필자의 경우는 즉흥적 연출에 크게 의존하는 편이므로 사전에 배식도면을 꼼꼼히 챙겼더라도 현장의 분위기에 따라 장면을 크게 바꾸는 경우가 많다. 현장소장들이 좋아할 리가 없다. 그래도 할 수 없는 것이 종이 위에서 연상하던 것과 현장의 상황이 늘 일치하지 않기 때문이고 물론 아직도 배워야 할 부분이 많기 때문일 것이다.

 

식물‘적용’기법
이런 식으로 조경공간에 어떤 식물을 어떤 방식으로 심어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들을 엮어서 하나의 학문으로 체계를 잡은 것을‘식물적용학’이라고 한다. 여기서 다루는 것은 식물 개체들에 대한 성격묘사라기 보다는 이들을 언제 어디에 어떻게 심는가에 대한 원칙과 기법들을 공부하는 것이다. 말하자면 원예학이 주인공들에 대한 성격묘사에 준한다고 한다면 식물적용학은 스토리텔링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겠다. 어떤 나무가 어떻게 생기고 어떤 꽃이 어떻게 생겼는가에 대한 피상적인 지식만을 가지고 배식했을 때나, 식물을 꽃이나 잎, 줄기의 색이나 형태, 질감 등을 보고‘감각적’디자인을 했을 때 오는 실패의 요인들을 줄이는 방법이라고나 할까. 식물은 유감스럽게도 볼 때 마다 그 모습을 바꾼다.

꽃을 보는 식물이라고 꽃에만 치중하여 배식하는 경우, 꽃은 일 년에 2~3주, 길어야 4주 정도 피어있는 반면에 잎이나 줄기는 봄부터 가을까지 내내 바라봐야 한다는 사실을 대개는 간과하기 마련이다. 그런가 하면 잎이나 줄기 등 부분적인 매력에 치중했을 때 그 식물이 가지는 부피식물이름 외우기 누군가 내게 그 많은 식물이름을 어떻게 다 외우냐고 물어 본 적이 있다. 식물공부를 하고 싶어도 대부분은 여기서 주눅이 들어 포기하고 마는 것을 안다. 식물이름을 외우는 것이 아니라 식물을‘아는 것’이라고 대답해 주었다. 식물을 알게 되면 이름도 알게 된다는 간단한 이치인 것이다. 한 번 각자 알고 있는 친구와 지인, 친척, 탤런트, 스타들의 이름이 몇 개나 되는지 세어보면 어떨까. 그들의 이름을 영어단어 외우듯이 밤새 외운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자연스럽게 알게 되는 것 아닌가. 사람을 알게 되면 그의 이름도 알게 되고 그의 이름뿐만 아니라 그의 성격, 습관, 특징 등도 자연스럽게 같이‘알게’ 된다. 같은 원리가 식물에도 성립된다. 필자 역시 식물 이름을 일부러 외운 것은 단 한 개도 없다.

 

고정희  ·  도시환경연구소Third space, 공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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