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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농업: 영국 얼롯먼트를 통하여 본 도시농업과 정원문화

월간 환경과조경20117279l환경과조경

언제인가부터 도시농업이 우리 주변으로 가까이 다가왔다. 하지만 아직 그 실체가 체감되고 있지는 않다. 현실적이기 보다는 의미적으로 보다 다가왔다는 말이다. 이것은 아마도 환경에 대한 자각과 함께 웰빙을 주제로 건강과 먹을거리에 대한 것이 동시에 고려된 키워드라고 보인다. 

 

유엔개발계획에 따르면, 도시농업이란 “도시 또는 도시 인근의 토양과 수상에서 다양한 작물이나 가축을 생산하기 위해서 자연 자원이나 도심의 폐자원을 활용하여 집약적인 생산, 가공, 유통을 하는 행위”라고 정의하고 있지만, 실상은 보다 다의적으로 쓰이고 있다. 개발도상국에서는 주로 식량 시스템의 보완, 빈곤의 완화, 유기질 폐기물의 재활용이라는 관점에서 영양 부족과 배고픔 해결을 위한 식량 생산을 주목적으로 한다. 반면 선진국에서는 보다 많은 목적을 담고 있다. 첫째 생산, 여가, 취미, 보건, 생태의 측면에서 다양하게 활용하고, 도시 녹지를 보전하는 하나의 축으로서의 활용; 둘째 일부 자급을 통해 수송 거리 단축에 따른 에너지 절감과 이산화탄소 배출량 감소와 생활 쓰레기를 퇴비화해서 재사용하는 과정에서 자원 순환; 셋째 경작을 통해 표토 유실의 감소와 대기 중의 수분 조절과 같은 미세기후 조절; 넷째 현대 사회에서 쟁점이 되고 있는 패스트 푸드(fast food), 정크 푸드(junk food), 유전자 변형(Genetically Modified Organism, GMO) 작물, 환경 호르몬 등으로 인해 먹을거리에 대한 불안감 해소를 위해 직접 재배한 안전한 먹을거리; 마지막으로, 가족, 나아가 이웃 주민과의 교류를 통한 공동체 의식 향상 등을 목적으로 한다. 

 

우리의 경우도 이러한 목적과 의미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도시농업이 자리를 잡고 발전해오고 있는 선진 사례는 그 기반에 있어 우리와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도시농업의 대표적 아이콘으로 여기는 독일의 클라인가르텐(Kleingarten)이나 영국의 얼롯먼트(Allotment)는 정원 문화를 기본으로 형성 혹은 발전되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주거 형태의 급격한 변화로 인하여 현대의 정문 문화가 성립되지 못한 큰 차이점을 가지고 있다. 도시에 살고 있는 인구의 비율은 2009년 90%가 넘었고 1980년만 해도 단독주택이 87%를 차지하였지만 아파트를 비롯한 공동주거가 2000년대 중반을 지나면서 80%가 넘어섰다. 우리의 경제 발전과 함께 일어난 주거 형태의 변화는 인간과 외부 공간, 녹지와의 관계 변화를 가져왔다. 이는 마을공동체 구성원 간의 소통 공간 부재로 인한 이웃과의 단절, 삭막한 외부 환경을 통해 도심에서의 녹지 부족으로 인한 자연과의 단절을 가져왔다. 물론 많이 늘어난 도시 내의 공원과 아파트의 공개공지들을 이야기할 수 있다. 하지만 정원은 사람이 자연을 주체적으로 일상에서 느끼게 해주는 공간이라는 점에서 공공의 공간과는 큰 차이가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실천적으로 도시농업이 우리에게 가까이 다가오는 단어라고 보기에는 아직 어렵다. 그동안 도시농업이 주는 좋은 영향, 필요한 이유는 많이 제기되어 왔다. 하지만 현대에 들어와 정원 문화를 잃어버린 현실에서 이것을 어떻게 실천할 것이며, 어떠한 체계로 확립할 것인지에 대한 구체적인 논의가 부족한 것이 현실이다. 이에 주로 도시농업의 형태를 얼롯먼트 가드닝Allotment gardening이라고 하여 정원 문화의 하나로 인식되고 있는 영국에서 그동안 변화·발전되어온 사례를 통하여 우리가 도시농업의 방향성을 어떻게 설정하고 무엇을 중심으로 실천해야 하는지를 엿보는 기회를 가지고자 한다.

 


영국의 얼롯먼트란
영국에서 도시농업이라고 하면 산업농업과 반대되는 개념으로 각광을 받고 있다. 즉 전부는 될 수 없지만 산업농업에 대한 부분적 대안으로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도시농업이 산업농업에 비하여 규모의 경제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보다 작은 규모, 보다 지역적이고, 환경적 훼손이 덜하고, 보다 생산적이고, 보다 저렴하다는 인식은 도시농업에 대한 관심을 증대시켰다. 따라서 도시농업은 보다 효율적이며 도시 내 작은 공간에서도 가능하다는 것이 중요한 고려 사항이다. 또한 증가하는 도시 인구에 맞추어 식량의 자급자족을 높이는 방식으로도 인식되고 있다. 여기에 산업농업 생산물에 대한 우려감도 한몫하고 있다. 런던에서만 보더라도 얼롯먼트, 공동정원 그리고 도시 경계부의 자투리 땅 등에서 스스로 먹을거리를 키우는 경우가 증가하고 있다. 이것은 대안적 식량 생산의 증가와 농산물 직판장을 통한 판매와 함께 관련 산업이 형성되는 것을 가능하게 하였다.

 

이러한 도시농업의 형태로서 중심적인 역할을 하는 것이 얼롯먼트이다. 얼롯먼트를 국내에서는 단어의 의미로 할당원이라고 해석되어 통용되고 있으나 영국에서는 일반적으로 식용작물 재배하기위해 임대한 땅을 이야기하며 밭의 크기가 정확하게 규격화 되지는 않았지만 평균적으로 250㎡ 정도가 된다. 땅은 주로 지방정부가 소유하고 관리하고 있으며 연합체의 성격으로 스스로 관리하는 곳과 특정 단체에서 공급하는 곳도 있다. 얼롯먼트의 중요한 개념은 바로 개인에 의해서 경작, 관리된다는 점이다. 형태적으로는 다르지 않지만 경작, 관리 주체가 특정 단체 혹시 모임이면 이를 커뮤니티 가든Community Garden이라고 부른다.

 

현재는 얼롯먼트가 지역적 특성과 함께 기능, 의미, 미가 결합한 하나의 문화 경관의 중요한 요소로 인식되고 있다.

 


얼롯먼트의 역사
얼롯먼트의 역사는 색슨족이 산림지대를 개간하여 들판을 만들면서 공유지의 개념에서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이후에 귀족과 성직자로 하여금 토지의 몰수 및 사유화가 가속화되었다. 16세기 엘리자베스 1세는 빈민들이 식량을 재배하고 동물을 기르던 땅을 몰수하였고 그 보상으로 소작인의 거처 옆에 붙은 땅을 할당하여 주었다. 이것이 역사에서 처음으로 등장하는 얼롯먼트allotment의 개념이다. 17세기와 18세기에도 공유지는 계속적으로 사유화되었다. 이로 인하여 밀려난 사람들은 도시로 유입되어 도시의 인구가 증가하는 원인중의 하나가 되었다. 이는 생존 경제로부터 보다 현대적인 산업 체계의 이행으로 인하여 사회보장연금 제도의 혜택을 받지 못하여 식량 부족을 겪는, 또는 식물을 재배할 땅이 없어 굶주리게 되는 많은 빈민을 양산하였다.
19세기에 들어서는 이러한 현상이 더욱 악화되었다. 1838년과 1840년 공유지의 사유화법령General Enclosure Act으로 인하여 토지 대지주들은 국회의 동의 없이도 공유지를 사유화할 수 있었다. 1945년 법 개정을 통하여 소지주와 공공을 위한 보다 나은 장치가 마련되었다. 시민의 불만과 저항에 대한 우려로 사유하는 토지의 25%를 토지를 소유하지 못한 시민들을 위해 마련하도록 한 것이다. 필드 가든field gardens으로 불린 이러한 조치는 현대 개념의 영국 얼롯먼트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현실은 이를 반영하지 못하였다. 이 법으로 인하여 총 2,440,750,000㎡의 공유지가 사유화되었으나 약 0.35%인 약 8,910,000㎡의 얼롯먼트만이 만들어졌다. 결과적으로 대지주들이 공유지를 사유화하는 것을 법적으로 수월하게 만들어 주었을 뿐이었다. 18세기 후반에 버밍햄 외곽 지역의 공유지가 도시를 위한 얼롯먼트로 개발된 경우도 있었으나 도시의 확장으로 사유화되거나 건물을 지으면서 점차 사라지게 되었다.

 

1887년에 들어서야 변화의 바람이 불기 시작하였다. 농작물을 위한 얼롯먼트와 코티지 가든 보상법Allotments and Cottage Gardens Compensation for Crops Act이 제정되면서 지방정부가 얼롯먼트를 공급해야 하는 의무 조항이 생겼기 때문이다. 지방정부는 이법에 대하여 강하게 반대하였으나 이후 법은 개정을 통하여 더욱 강화되었다. 1907년 소규모 농지와 얼롯먼트 법Small Holdings and Allotments Act에서는 행정교구나 자치정부가 얼롯먼트를 공급해야 하는 책임을 명시하였다. 1908년에는 이전의 모든 관련 법이 통합되었고 상이한 문제들을 해결되면서 얼롯먼트가 국가의 제도 아래에서 조성되고 관리되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제도의 뒷받침 속에서 얼롯먼트는 정원 문화의 하나로 자리 잡기 시작하였다. 빅토리아 시대에 얼롯먼트는 정원을 가지지 못한 노동자들에게 건강에 좋은 먹을거리 공급과 잉여 시간의 생산적인 사용을 위해 조성되었다. 제1차 세계대전 증에는 독일의 봉쇄정책으로 인한 식량 부족을 해결하기 위하여 얼롯먼트의 사회적 요구가 팽창하였다. 1918년 그 수가 무려 150만 개소에 다다랐다. 특히 철도 회사가 소유한 철도변의 땅은 얼롯먼트로 개발이 되었고 현재까지 상대적으로 많은 수의 얼롯먼트가 철도변에 남아 있다. 전후에는 집의 수요가 늘어나면서 많은 얼롯먼트가 주거지로 개발되어 그 수가 점차 줄어들기 시작하였다.

 

제2차 세계대전 동안은 영국 내에서 다시 한 번 그리고 역사상 최고로 얼롯먼트에 대한 수요와 공급이 팽창하였던 시기였다. ’승리를 위해 일구자Dig for Victory’라는 구호 아래에서 공공공원 조차도 부족한 식량을 해결하기 위한 얼롯먼트로 바뀌었다. 1942년에는 1,50만 개소가 넘었고, 1943년에는 175만 개소가 조성되어 130만 톤의 식량을 공급하였다. 1950년 얼롯먼트 법이 개정되면서 인구 1천 명 당 16,200㎡의 얼롯먼트를 조성하도록 하였으나 전후부터 가파르게 그 수가 줄어 1970년에는 약 53만 개소에 이르렀다. 이것은 도시 개발을 비롯한 여러 가지 이유에 기인하였다. 그 중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화학 공업의 발전으로 인해 살충제 및 비료의 질이 향상되었고 생산성 및 편리성이 증대되어 산업농업이 발전하여 얼롯먼트의 필요성이 쇠퇴하였기 때문이기도 하다. 1970년대에 들어서 그 감소율은 줄어들었으나 1980년대와 1990년대를 거치면서 지대와 집값이 상승하며 지방정부가 높은 가격에 주택 개발업자에게 얼롯먼트 부지를 매각하면서 다시 감소하게 되어 1999년에는 약 25만 개소에 이르게 된다.

 

윤상준  ·  (재)아름지기 선임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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