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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림다방

월간 환경과조경20132298l환경과조경

Hakrim Teahouse

 

누군가를 그리워하면 추억의 장소에 간다. 반면 뜻하지 않는 곳에서 그리운 장소를 만날 수도 있다. 학림다방, 대학로에 있는 그곳이다. 꼬불꼬불한 계단을 아스라이 넘어가면 과거로의 시간여행이 시작된다. 도심 속의 멈춤이라 할까. 창덕궁 답사를 마치고 홀로 이곳저곳 발길이 이끄는 곳으로 갈 찰나, 윤보람 학생성균관대학교이 시골 촌놈에게 학림다방을 소개해 주었다. 1956년 문을 연 학림다방은 그 유래가 남다르다. 서울 문리대의 옛 축제명 ‘학림제’에서 이름을 따왔다는 학림다방은 철학, 문학, 예술을 논하던 젊은이들을 위한 공간이 되어 문리대의 제25 강의실이라는 별명도 있었다. 

 

입구에 들어서면 ‘황동일’의 문구가 쓰여 있다. “…학림은 현재 매끄럽고 반들반들한 현대의 시간 위에 과거를 끊임없이 되살려 붙잡아 매두려는 위태로운 게임을 하고 있다. 이 게임은 아주 집요하고 완강해서 학림 안쪽의 공간을 대학로라는 첨단 소비문화의 바다 위에 떠 있는 고립된 섬처럼 느끼게 할 정도이다.…”
마치 선언문과 같은 그의 문구를 읽고 삐꺽거리는 계단을 올라가면서 학림다방의 돛대에 몸을 맡겼다. 가장 나의 시선을 잡은 것은 2층으로 된 구조이다. 천장이 낮은 2층에 올라가면 사랑을 속삭이거나 조용히 책을 읽기에 안성맞춤이다. 갈색 기둥과 난간 그리고 벽면에는 베토벤 석고 두상과 유명 지휘자들의 사진, 클래식 LP판들이 걸려있고, 관록이 붙은 테이블과 빛바랜 의자는 오래된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었다.
막상 다방에 올라가보니 낯설지 않은 기억들이 중첩되었다. 생각해 보니 1990년 서울대 의대를 다니고 있던 친구를 기다리기 위해 들렀던 다방이었다. ‘학림’이라는 액자가 걸려 있는 테이블은 시트콤 ‘지붕뚫고 하이킥’의 지훈최다니엘 분과 세경신세경 분의 추억의 장소로 촬영되었던 곳이었다. ‘지훈이 다녀가다’라는 낙서 밑에 ‘세경이도 다녀가요’라는 낙서 장면은 시청자들의 가슴을 뭉클하게 했던 장면이다.

 

처음에는 ‘다방’이라는 단어 때문에 젊은 사람들은 없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나의 예상은 빗나갔다. 그 곳에는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2030세대에서 노신사들까지 함께 공간을 향유하고 있었다. 나중에 친구에게 들은 이야기인데, 강의가 없을 때면 혼자서 자주 들렀던 곳이라고 했다. 혼자 있기에도 어색하지 않은 무언가의 매력이 있기 때문이라 덧붙였다.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나이가 지긋하신 노신사들. 문득 그분들이 당시 서울 문리대를 다녔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조심스레 그 분들과 인터뷰를 시도했다. 한 분은 파리에서 몇 일전에 도착했고, 옛 친구들을 만나기 위해 이곳을 들렀다고 했다. 그분은 물끄러미 창밖을 바라보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저 아래에 센강이 흘렀지. 그 센강 위에는 조그마한 다리가 있었는데, 우리는 그 다리를 ‘미라보센강 위의 다리’라 불렀어.” 정도상의 소설 ‘누망’에도 당시 대학천의 모습을 묘사하고 있는데, 그리 유쾌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노신사들의 기억에는 낭만적인 파리의 센강과 미라보 다리로 기억되었다. 그렇다면 1960년대 이곳에서 젊음을 보낸 이들은 왜 파리로 기억하고 있을까. 시대적으로 암울했던 상황을 현실로 받아들이기에는 아직 젊음의 꿈과 희망이 있었던 것이 아닐까 조심스레 생각해 본다.

 

김현욱  ·  조경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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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khw@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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