끊어지지 않고 이어지는 성벽을 보고 싶다

[조경명사특강] 임승빈 교수의 도시사용설명서_15회
라펜트l기사입력2014-03-04

 

우리나라는 전통적으로 ‘성곽의 나라’라 불릴 정도로 많은 성곽이 전국에 산재해 있다. 성곽은 우리나라의 전통적 도시특성과 삶의 방식을 알려주는 중요한 문화재임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국민적 관심에서 멀어져 있었고 도시개발로 인해 그 자취가 점점 사라지고 있었는데 최근 성곽에 대한 인식과 복원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음은 다행한 일이다.

 

성곽에는 도성, 읍성 그리고 산성이 있다. 도성과 읍성은 평상시의 보안과 방어를 위해 도시를 둘러싸도록 만든 성벽이고, 산성은 적의 침공 시 최후의 방어목적으로 도성 혹은 읍성 인근 산에 별도로 축조되었다. 왕궁이 있는 도읍지에는 도성(都城)을 쌓았는데 고구려의 장안성(평양), 백제의 사비성(부여), 고려의 개경도성(개성), 조선의 한양도성 등이 있다. 지방도시에는 읍성(邑城)을 쌓았는데 고려 말부터 축조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으며, 조선시대에는 순천의 낙안읍성, 서산의 해미읍성 등 200개 가까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적의 공격 시 최후 저항을 위해 도시 인근 산에는 산성을 쌓았는데 대부분의 읍에 2개 이상 다수의 산성을 축조하였다고 한다.

 

한양도성(인왕산)_ 한양도성은 축조 당시에는 한양의 경계선이었으나 지금은 서울이 도성 밖으로 확장되어 서울 한복판을 가로질러 남산에 이르고 있다. 시가지 구간에서는 많은 부분이 끊어져 있는데 이를 이어주는 것이 진정한 의미의 성곽보존이라 할 수 있다.

 

 

한양도성은 한양을 둘러싸는 내사산(內四山) 능선을 연결하여 축성되었는데 인왕산(서)과 남산(남), 그리고 낙산(동)과 북악산(북)을 연결하였다. 축조 당시에는 도성이 한양의 경계선이었으나 지금은 서울이 도성 밖으로 성장하여 서울 한복판을 가로지르고 있다. 도시개발로 인해 시가지의 성곽은 많은 부분이 파괴되었는데 최근 복원의 노력이 계속되고 있다.

 

숭례문 서측으로 이어지는 성곽은 서울상공회의소 부지에 일부 복원되었고, 복원이 어려운 보도 구간은 성터 바닥에 화강암을 포장하여 성터임을 표시하고 있다. 성터를 표시한 노력은 인정되나 일반 시민이 이를 성터로 인지하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인지도 높은 바닥포장 패턴과 함께 설명판이 보완된다면 성곽터를 인식하는데에 도움이 될 것이다.

 

서울시는 2008년 화재 이후에 숭례문을 복구하면서 동측 성곽 일부를 함께 복원하였다. 숭례문만 있을 때 보다 성곽이 일부라도 복원되어 숭례문 영역이 넓어져 국보 제1호의 체면을 어느 정도 살려준 셈이 됐다.

 

 


서울상공회의소 앞 보도(좌)에는 불규칙한 직사각형 화강석을 숭례문 방향으로 길게 깔은 것이 보이는데 숭례문으로 이어지는 성터를 표시한 것이다. 의도는 좋으나 화강석만 보고는 일반인이 이곳이 성터임을 인지하기는 쉽지 않다. 성터임을 알리는 안내판 등이 필요하다. 숭례문만 있을 때 보다는 최근에 일부 복원된 담장(우)과 함께 있을 때 더욱 품위 있어 보인다.

 

 

숭례문에서 남산공원까지의 구간도 멸실되었는데 완전 복원이 어렵다면 바닥에 성터표시를 하는 등 차선책이라도 도입하여 성터임을 시민들이 알 수 있도록 함으로써 도시 환경을 더욱 의미 있고 풍부하게 만드는 것이 바람직하다.

 

 

남산공원의 서울성곽 시작 부분_ 숭례문과 남산공원 사이의 성벽은 도시개발로 인해 멸실되었다. 끊어진 성벽을 이어주는 것이 진정한 문화재 보존이다. 도시개발과 문화재의 적극적인 공존을 모색하는 것이 필요하다.

 

 

남산 공원에도 성터자리에 돌로 바닥에 표식을 하였는데 포장 패턴이 좌우와 대비되어 비교적 인지도가 높아 서울상공회의소 앞보다는 성터임을 쉽게 알아볼 수 있다. 완전 복원이 어려운 경우 바닥표식은 차선책이 될 수 있다. 완전한 복원이 어려울 경우 성터임을 알 수 있도록 하는 것은 도시의 역사성을 살리는 수단이 되므로 적극적으로 도입하는 것이 필요하다.

 


남산공원의 성터 표식_ 실된 성벽 위치에 성터 표식을 하고 있다. 성곽 터임을 비교적 쉽게 알 수 있도록 황토 흙과 대비되는 거친돌로 바닥포장을 하고 있다.

 

 

성곽보존을 위하여는 성곽 자체를 복원하는 것이 우선적으로 중요하지만 이에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성곽 주변의 건축물들을 관리하는 것이다. 성곽인접 건물들이 성곽과 조화를 이루고 너무 위압적이지 않아야 성곽의 원형경관을 살릴 수 있게 된다.

 

남산공원의 숭례문 방향 입구에서 성곽 길을 따라가다 서쪽 방향을 보면 고층건물이 성벽에 인접해 있어 위압감을 느끼고 성벽이 마치 고층건물의 울타리같이 보인다. 성곽문화재가 일개 호텔 건물의 울타리 역할밖에 하지 못한다는 것은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다(사진a).

 

또한 성곽길에서 남산타워 방향을 보면 서울시교육연구정보원 건물이 남산의 상징물인양 버티고 서있다. 이 건물은 성곽의 역사경관뿐 아니라 남산공원의 자연성을 저해하는 대표적인 불량건물이라 할 수 있다. 지은지 오래된 건물이므로 건물 수명이 다하면 철거하고 다른 곳으로 이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사진b).

 

앞서의 두 건물은 남산살리기운동이 시작되기 훨씬 전에 지은 건물이라 변명의 여지가 있으나, 최근에 지어진 불량건물도 있다. 남산도서관 옆에는 안중근의사기념관이 새로 지어졌는데 역사성이 깃든 남산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기하학적 형태와 반사율 높은 외벽재료를 도입하고 있어 안중근의사의 숭고한 뜻이 왜곡될까 염려된다. 주변 환경과 대비되어 눈에 잘 띄어 기념관의 인지도가 높을지는 몰라도 성벽이 있는 남산의 역사성과 자연성을 고려한다면 잘못된 선택이라 하겠다. 한편에서는 복원한다고 많은 세금을 투입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역사성과 경관을 저해하는 건물을 세우는 우를 반복하지 말아야겠다(사진c).


사진 a_ 성벽에 인접한 힐튼호텔은 위압감을 주며 성벽을 호텔의 담장같이 보이게 하여 성곽의 의미를 훼손시킨다.

사진 b_ 서울시교육연구정보원 건물은 남산의 자연성과 역사성을 훼손하는 불량건물이다.

사진 c_ 안중근의사기념관 건물은 남산의 자연성 및 역사성과 조화되지 못하는 형태와 질감을 지녔다.

 

 

성곽 인접한 대형 건물만 문제가 아니라 성벽에 붙어있는 작은 불량건물도 해결해야할 과제이다. 성안과 성밖 50m 이내를 보호구역으로 지정하여 관리하는 것이 보통인데 성벽에 기대어 지은 건물이 곳곳에서 아직 정비되지 못하여 통행에 지장을 주고 경관을 저해하고 있다. 앞으로 성곽 전 구간을 정비하도록 노력하여야겠다.
 

 


인왕산 한양도성_ 성곽에 접한 건물은 성곽길 통행에 지장을 주고 성곽경관을 저해한다.

 

또한 성벽에는 밖을 살피기 위한 타구(垜口)와 총을 쏘기 위한 총안(銃眼) 등 개구부가 있는데 이를 통해보는 경관은 프레임효과가 있어 흥미롭게 보인다. 성벽길을 걸으며 개구부를 통한 색다른 경관경험을 할 수 있는데 성 밖 경관이 정비되어야 보다 질 높은 경관을 감상할 수 있을 것이다.

 


성벽에는 타구(垜口)와 총안(銃眼) 등 개구부가 있는데 이들은 흥미로운 경관경험을 제공해 준다. 성밖 경관의 정비를 통해 질 높은 경관경험을 제공 할 수 있다.

 
우리나라의 성곽들은 앞서 살펴본 서울성곽처럼 개발에 밀려 끊어지고 훼손된 경우가 많았으나 최근의 복원작업과 주변 정비를 통해 본래의 모습을 찾아가고 있음은 다행이다. 수원 화성이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는 등 복원 및 정비의 좋은 사례가 되고 있으며, 순천의 낙안읍성도 읍성 거의 전체를 문화재로 지정하여 원래의 모습을 거의 보존하고 있다.

 

낙안읍성에는 관아, 민가 등 건물은 물론이고 1.4 km에 이르는 성곽이 거의 완벽하게 보존되어 있으며 120가구의 주민이 전통주택에서 살고 있어, 조선시대 읍성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읍성 주변도 개발이 거의 이루어지지 않아 전통적 읍성경관을 보여주는 우리나라에서 몇 안되는 소중한 곳이다. 진정한 의미의 성곽보존 사례를 보여주는 좋은 예라 할 수 있다.


낙안 읍성_ 조선시대 축조당시의 경관이 잘 보전되고 있다. 길게 이어지는 성곽이 원경으로 보이는 산과 함께 축조 당시의 역사경관을 보여주고 있다. 성곽 주변이 잘 보존되고 있는 좋은 예이다.

 

 

유럽은 고대 그리스 로마시대부터 중세시대를 거쳐 내려오는 오랜 성곽의 역사를 지니고 있어 많은 성곽문화재가 있으며 이를 잘 보존하여 많은 세계문화유산을 보유하고 있다. 불가리아의 벨리코투르노보에 있는 옛 불가리아왕국의 성은 성 아래 마을 건물들이 낮게 그리고 성채와 조화되도록 하여 성곽의 역사경관을 보존하고 있다.
 


옛 불가리아왕국의 성벽_ 성 밖으로 보이는 인근 마을 건물들이 낮게 관리되어 성벽 주변 역사경관을 보호하고 있다.
  

동유럽 아드리아해변에 자리잡은 크로아티아의 두브로브니크는 ‘유럽의 숨은 보석 중의 보석’으로 불리우며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아름다운 성곽도시이다. 성전체가 거의 완벽하게 보존되어 있어 성벽 위를 일주하는 성곽투어를 하면서 바다와 도시를 마음껏 즐길 수 있다. 눈에 거슬리는 건물 혹은 구조물을 찾아보기 어렵고 그야말로 100% 순수한 원형경관을 볼 수 있어 방문객에게 진한 감동을 선사한다.

 

도시 전체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크로아티아 해변도시 두브로브니크의 성곽과 선착장, 케이블카에서 본 경관으로 아래쪽 성곽외부의 건물들이 성곽내부 건물과 조화를 이루고 있으며 성곽을 포함한 도시 전체가 잘 보존되어있다. 성벽이 완전하게 보존되어 성벽위로 일주하는 성벽투어가 가능하다.

 


해변도시 두브로브니크의 성채 입구(좌)와 바다에서 바라본 성벽(우). 발칸반도 아드리아 해변의 바위 많은 아름다운 경관 특성을 잘 보여주고 있다.

 

 

우리나라는 반만년 역사를 지나오면서 축성된 수많은 성곽문화재를 보유하고 있다. 성곽문화재는 당시의 축조기술을 보여주는 것을 넘어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정치 경제 사회의 단면을 보여주는 귀중한 자료이다. 이러한 귀중한 문화재를 가능하면 원형에 가깝게 보존하면서 도시개발과의 공존을 모색하여야 한다. 무엇보다 끊어진 성곽을 이어서 성곽의 존재와 위치를 시민들이 인식하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며, 더불어서 성곽 주변의 환경을 정비하는 것이 필요하다.

 

최근까지도 우리나라의 도시개발은 문화재 중심이 아닌 경제논리에 의한 개발이 주를 이루었다. 해외의 문화유산 중심의 도시계획과 이를 관광사업 등과 적극 연계하여 개발과 공존을 이루고 있는 모습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우리나라에는 서울, 수원을 비롯한 수 천년 내지 수 백년 역사를 지닌 많은 성곽도시들이 있다. 이들 성곽도시들은 더 이상 개발이 아닌 재정비에 초점을 맞추어야 하며, 앞으로는 문화재에 대한 인식을 더욱 키우고 문화유산 중심의 정비를 통해 도시경쟁력 향상을 도모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축조 당시 성곽의 역사경관을 보고 싶다.
끊어진 성벽을 연결하여 잊혀진 도시역사를 시민들에게 되돌려주자!

연재필자_임승빈 명예교수 · 서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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