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희 집은 세입자들에게 월세방을 제공합니다. 그래서 계약이 만료가 되어 떠날 시기가 되면 아버지와 함께 월세방 전단지를 동네 이곳저곳에 붙이러 다니곤 했습니다. ‘집과 버스정류장, 지하철과의 거리가 몇 분 이내인 역세권에 위치’, ‘집의 평수’, ‘보증금/월세’와 같이 어느 전단지에서나 볼 수 있는 내용들이 들어 있었습니다. 하지만 아버지는 항상 다음과 같이 차별화된 문구를 크게 넣었습니다. “작은 정원이 있으며 뒤 밭에 채소를 기를 수 있음”이라는 문구를... - 중간 생략 -
어쩌면 우리가 하고 있는 조경이 예술, 기술, 과학의 융·복합이 아니라 이들의 이름으로 포장된 보여주기식 조경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하는 생각이 든다. “우리가 만들 장소에서 즐거워할 사람들을 먼저 생각해야 한다”는 원초적 진리를 잊고 있는 것은 아닌가하는...
1년이 지난 지금, 내 가슴속에 아직도 작은 정원의 이야기가 남아있는 것은 조경을 하는 이유(소명)를 이글이 담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조경인으로서 글로벌 인재를 꿈꾸며 한번쯤 외국에 나가 세상사는 이야기도 들어 보고, 조경기사·자연생태복원기사 자격증도 따고, 토플, 토익시험을 보며 자신을 키워 나가는 것만으로도 바쁘겠지만, 그래도 “우리가 만들 장소에서 즐거워할 사람들을 먼저 생각하는” 조경의 소명은 항상 가슴에 담고 있어야 하지 않을까 한다.
언젠가부터 내 카톡에는 “최고의 기술로 세상을 더 푸르게”란 글이 적혀있다.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나 살아가면서 그나마 세상을 위해 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보답이 아닐까 하는 생각 때문이다.
두 번째 이야기 ; 선도자(先導者)
아래 그림은 얼마 전에 내가 속해있는 모임(대학동아리) 밴드에 올린 ‘선도자’라 제목의 그림이다. 빈 몸뚱이에 금방이라도 끄질 것 같은 횃불을 들고 (백마를 타고) 앞이 보이지도 않는 강 위를 달려가야 하는 사람을 그린 그림이다. 조경을 공부하는 학생들에게 힘든 현실이 두발 앞에 놓여있어도 젊음과 배움으로 극복하고, 할 수만 있다면 뒤따라오는 후배들을 위해 작은 횃불을 켜달라는 의미였다.
“선도자가 되어 미래를 해쳐나가는 젊은 조경가” 이런 이야기를 하면, 어쩌면 “요즘 사회생활하기가 얼마나 힘든 데요! 취직하기가 얼마나 힘든 데요! 남들 정도만 하는 것도 대단한 일입니다”라고 말할지 모르겠다.
아무리 사회생활과 세상살이가 힘들고 고달파도 남들 꽁무니만 따라가기는 너무 아쉽지 않은가! 한번 사는 세상, 한자리에 머물러 점점 검은색으로 변해가는 고인 물이 아니라, 횃불을 들고 험난한 강줄기를 해쳐나가 대양에 이르는―창업가로서, 직장인으로서, 학자로, 공무원으로서―맡은 바 소임을 다하며 남들 보다 한발 앞서 달려가 세상을 밝히는 모습이 우리 젊은 조경가의 모습이 아닐까 한다. 그래야 세상이 더 푸르고 아름답게 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