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시선] 그곳에선 어떤 일이 있었나?

글_진승범 논설위원(이우환경디자인(주) 대표)
라펜트l기사입력2018-06-14

 

그곳에선 어떤 일이 있었나?



글_진승범 대표(이우환경디자인(주))



성대히 잔치 잘 치르고 난 마당에 이 무슨 심보 고약한 뒷담화(?)냐고 질책하실 분들도 있겠으나 뒤늦게라도 짚고 넘어가야할 사안이기에 쓴 소리 한 마디 거들어야겠다.

강원도 정선의 가리왕산을 아시는 지? 숲의 나이가 최소 500년은 넘을 것으로 추정되는 한반도 남쪽(편의상 남한이라 하자)에 존재하는 최고(最古)의 천연림이 바로 이곳이다. 그럼에도 생소하다면 아직도 기억이 새로운 2018 평창동계올림픽 기간 중 3일간 열린 알파인 스키경기장은? 

‘천연림’과 ‘스키 슬로프’.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두 단어가 같은 장소를 지칭하는 것이라면 납득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2018 평창동계올림픽 조직위원회는 올림픽을 준비하며 대외적으로 ‘지속가능한 저탄소 그린올림픽’이라는 비전을 제시했다. 대회기간 배출되는 온실가스 배출량보다 더 많은 온실가스 감축과 상쇄 활동을 통해 실질적인 배출량이 마이너스가 되도록 하겠다는 의지를 담아 ‘O2 plus winter games’라는 거창한 이름의 계획을 발표하였다. 말만 들어도 흐뭇하다 못해 든든하기까지 하다. 이것이 ‘눈속임’이 아니라면.

다시 가리왕산을 들여다보자. 가리왕산은 해발 1,561m로 남한에서 아홉 번째로 높은 산이며, 1,000m 이상 고지대 전체가 2008년 ‘산림유전자원보호구역’으로 지정된 곳이기도 하다. 이는 곧 국유림을 관할하고 있는 산림청이 가장 엄격하게 관리하여야하는 지역임을 의미한다. 그러나 강원도와 산림청은 가리왕산을 동계올림픽 알파인활강스키 경기장으로 결정하고 추진 과정에서 산림유전자원보호구역을 해제하였다. 올림픽 기간 중 알파인활강 경기는 단 3일간만 치러졌다. 더욱 기 막히는 것은 올림픽 이후에는 폐쇄될 경기장이라는 점이다. 3일간의 축제(?)를 위해 희생된 500년 숲의 면적은 자그마치 100만여㎡에 달한다. 이중 존치 시설인 호텔과 도로부지 19만여㎡를 제외한 81만여㎡가 알파인스키 슬로프로 조성되었다. 표고차 800m, 길이 3㎞, 폭 100여m에 달하는 스키경기장 조성을 위해 500년을 살아온 천연림이 사라진 것이다. 물론 대회 후 산림복원을 조건으로 구역 해제와 사업 허가가 이루어졌으나 500년 숲의 복원이 말처럼 쉬운 것이라면 얼마나 좋겠는가?

스키장 조성으로 인해 사라지거나 훼손되어 그 원형을 찾을 수 없는 소중한 산림자원을 몇 가지만 살펴보자. 가리왕산은 지금까지 알려진 세계 최대 왕사스레나무 자생 군락지이다. 왕사스레나무는 북방계 나무인 사스레나무와 거제수나무의 교잡종으로 우리나라 설악산국립공원 내 점봉산 일대와 가리왕산 일대에서만 분포하는 한국 특산종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하봉 곤돌라 설치를 위해 지금까지 확인된 국내 최대 왕사스레나무(근원직경 113㎝)까지 잘려나가고 말았다. 또한 가리왕산은 개벚지나무와 사시나무의 남한 내 최대 군락지로 추정되는 곳이었으나 이 또한 무사하지 못했다. 하봉 연습 코스 해발 1,305m 지점에서부터 1,264m까지는 100여 그루에 이르는 대규모 주목 군락이 있었던 곳이다. 특히 이곳 주목 군락은 지름 1m가 넘고 수령이 600년으로 추정되는 노거수부터 10㎝도 안 되는 어린 나무까지 다양한 세대가 한꺼번에 나타나, 후계목들이 보이지 않는 소백산, 태백산 등 다른 지역의 주목 군락지에 비해 건강한 산림 생태계가 유지됨을 보여주는 지표였다. 결정적으로 하나 더. 하봉 계곡 상단에 있던 들메나무 노거수 또한 명운을 달리 할 수밖에 없었다. 이 들메나무는 북한의 천연기념물 396호인 대동리 들메나무(평양시 상원군 소재, 흉고직경 114㎝)보다 큰 흉고직경 123㎝에 달하는 나무였다. 이 밖에도 북사면 수령 미상의 거대 철쭉 군락, 최대 흉고직경 104㎝에 달하는 신갈나무 노거수 군락, 근원직경 70㎝에 달하는 소나무 노거수 군락 등 한 순간에 신기루처럼 사라진 500년 숲의 정령(精靈)들을 이루 다 열거하기에 가슴이 아플 지경이다.

이렇듯 가리왕산 스키장의 가장 큰 문제점은 단 3일의 올림픽 알파인활강경기를 위해 남한에서 가장 중요한 산림유전자원보호구역이자 생태자연도 1등급(사업부지의 64% 이상), 녹지자연도 8등급(사업부지의 74% 이상)의 절대 보전이 필요한 산림을 훼손하였다는 것이다. 해발 1,000m 이상의 산림유전자원보호구역의 식생 복원은 사실상 불가능함에도 식생 복원을 전제로 보호구역을 해제했고 산지전용허가와 환경영향평가협의가 진행되어, 그 결과 500년 이상 지켜온 보호림이 10만 그루 이상 대규모로 벌채되고 말았다.

더욱 큰 문제는 복원 사업의 주체인 강원도의 산림복원에 대한 의지가 매우 소극적이며, 이를 독촉하고 감독해야할 산주 산림청의 의지 또한 크게 읽히지 않는다는 점이다. 국유림을 관리하는 산림청으로부터 강원도가 산지전용허가를 받은 기간은 2019년 3월까지이다. 그때까지 훼손된 식생을 복원하여 돌려주기에도 절대시간이 모자랄 진데 강원도는 한 술 더 떠 산림청을 비웃기라도 하듯 가리왕산 스키장을 활용해 2021년 동계아시안게임을 남북 공동으로 개최하려는 움직임이 있다고 하니 그야말로 아연실색하지 않을 수 없다.

진부한 이야기지만 숲을 만드는 데는 오랜 세월이 필요하지만 훼손은 짧은 시간이면 충분하다. 실제로 벌목 시작 1주일 만에 산림유전보호구역 내 슬로프 예정지의 나무들이 대부분 잘려나갔다고 한다.

최근 산림청은 지난 정부 때 부터 조경계와 첨예하게 대립하였던 ‘도시숲’의 법제화와 관련된 움직임을 다시 시작할 뜻을 내비치고 있다. 조경분야와 산림분야의 ‘밥그릇 싸움’으로만 이 문제를 바라보는 것은 본질을 파악하지 못하는 것이다. 손에 쥔 500년 천연림도 지키지 못하면서 정체성도 모호한 ‘도시숲’을 거론하는 산림청에 어떻게 국토의 숲을 믿고 맡길 수 있겠는가?

‘도시숲법’이 필요한가? 가리왕산을 되살리는 것이 몇 갑절 더 시급하다. 그리고 우리의 소중한 산림에서 두 번 다시 이와 같은 일이 되풀이 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
글_진승범 대표이사 · 이우환경디자인(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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