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경, VR로 설계하다

서울대 환경대학원, ‘가상경관설계기법’ 리뷰
라펜트l기사입력2019-06-18

 

서울대 환경대학원 제공

“취향적 설계를 가르치는 시대는 지났다. 과학적인 정보에 근거한 제한 요건에서 얼마나 재미있는 안을 만들어내고 그것을 어떻게 검증하느냐가 중요해지고 있다”

이유미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 환경조경학과 교수와 정재헌 ㈜코흐에스엑스스투디오 소장이 이끌어간 ‘가상경관설계기법’은 환경대학원에서 이번 학기부터 첫 개설한 과목으로, VR엔진(UE4)을 설계도구로 활용해 조경공간을 설계하는 과정으로 진행됐다.

지난 14일(금) ‘가상경관설계기법’ 수업 결과물의 기말리뷰가 환경대학원 3층 전시실에서 열렸다. 이날 리뷰어로 이두열 EM디자인 대표, 김준영 전주대 건축학과 교수, 원종철 (주)3D-Focus 대표, 홍석진 그린프리즘 대표가 참여했다.

학생들은 개인 프로젝트로 20×20미터의 가상공간에 인터랙션을 활용한 가상정원(virtual garden)을 제안했으며, 팀 프로젝트로는 서울식물원을 대상으로 실제 공간에 적용할 수 있는 가상서식지(virtual habitat)를 설계했다.

이유미 교수는 “가상공간에 설계를 한다면 시뮬레이션만 하고 끝난다는 인식이 있다. 예술적 측면에서 완전한 가상공간 설계 역시 중요하며, 이를 실제 공간을 변화시킬 수 있는 설계도구로 활용하는 것, 두 가지 모두 활용방안이 무궁무진하다”며 가상공간과 실제공간 설계 두 마리 토끼를 잡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날 리뷰에서는 서울식물원을 대상으로 한 다양한 설계방안을 선보였다. 특히 혼자서만 체험할 수 있고 앞이 보이지 않는 등의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HMD(Head Mounted Display) 없이 HMD의 센서 기능, 저작도구의 인터랙션을 활용해 여러 사람이 볼 수 있는 방법으로 프레젠테이션 했다는 점도 눈여겨 볼 점이었다.

첫 번째 팀은 게임엔진을 통해 서울식물원 온실의 지형 및 동선 체계, 식재를 표현하고, 관람객의 연령대별, 시간별 이용행태를 분석해 조망 데크를 추가하는 과정을 시각화해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했다. 게임엔진을 활용한 것이기에 변수값을 적용하면 실시간으로 반응해 새로운 안의 시뮬레이션이 가능해 2D 도면이 실제 공간을 구상하는데 가진 제약을 극복할 수 있다.

또 다른 팀은 조명계획을 통해 서울식물원 내 랜드마크 스팟(동굴)의 야경을 설계, 낮의 모습만 볼 수 있었던 서울식물원의 밤을 가상경관으로 체험할 수 있도록 했다. 컨트롤러를 통해 색온도와 조도, 소재와 빛의 관계, 조명의 종류와 배치를 다양하게 선택해 공간변화의 미세한 차이를 실시간으로 비교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컨트롤러가 손전등의 역할을 하면서 동굴을 체험하는 듯한 효과도 적용했다.

서울식물원의 바오밥나무를 대상으로, 식물에 대한 지식이 부족한 대상에게 가상공간에서 바오밥나무의 강수량별, 계절별 수형변화를 연도별로 경험할 수 있는 교육프로그램을 제안한 팀도 있었다. 포인트 클라우드 데이터를 이용해 복원한 서울식물원에서 바오밥나무의 표면을 뜯어보는 모션을 통해 애리조나로 공간을 이동한 후, 다양한 모션을 통해 시간의 흐름이나 기후에 변화를 주고, 이에 따른 바오밥나무의 생장모습을 타임랩스처럼 지켜볼 수 있다. 뿐만 아니라 바오밥나무의 내부모습을 볼 수 있고, 강수량과 토양염도의 변화에 따라 바오밥나무의 생장패턴 분석도 가능하다.

리뷰어들은 VR엔진이 보다 효과적인 설계도구로서 다양하게 활용될 수 있다는 데 입을 모았다. 센서를 통해 화면을 띄움으로서 전체 설계안을 본다든가, 프로토 타입이지만 HMD 없이 센서와 TV를 통해 여러 사람이 동시에 공간투어가 가능했다는 점에서 적정 디바이스와 5G가 만난다면 건설현장에서도 상용화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번 설계방식들은 AR처럼 보이지만 3D모델과 포인트 클라우드 데이터를 적용, 전체 환경을 구현한 뒤 VR을 적용하는 것이기에 햇빛 때문에 디바이스의 화면이 보이지 않는 AR의 한계점을 극복하는 좋은 사례가 된다.

또한 조명계획은 전기분야의 영역이었지만 조명과 온도까지 컨트롤하면서 조경공간을 설계한 것은 새로운 영역이라는 의견들도 있었다. 특히 조명이 가장 중요하게 계획되는 셉테드 디자인의 문제점은 나무를 고려하지 않고 설계해 현실에 다르게 적용된다는 점인데, 식재까지 고려한 조명계획은 중간영역으로서 확장성이 있다고 진단했다. 열 쾌적성의 중요성이 대두되는 만큼 나무그늘에 따른 조명계획이 요구되고 있으며 이 같은 방식은 ‘관개’까지 확장할 수 있다고 강조됐다.

뿐만 아니라 스토리와 만나 하나의 콘텐츠로서 체험 교육 프로그램으로서의 가치도 뛰어나다는 데 동의했다. 서울식물원은 물론이고 초중고 과정에 나오는 80여 가지의 수목 중 지역에 적용이 되지 않는 수목을 콘텐츠화 한다면 인기 있을 것이라는 의견도 있었다.

리뷰어들은 “모든 분야가 4차 산업으로 가고 있다. 신기술은 기존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기 때문에 활용하는 것이다. 타 분야의 영역을 우리가 왜 하느냐가 아닌 우리가 할 수 있는 영역이라는 신념을 가지고 계속 연구해주길 바란다”, “현실을 뛰어넘는 초현실공간까지도 사고의 폭을 넓혀가야 한다”며 학생들에게 조언했다.

가상경관설계 작품들은 21일(금)까지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82)동에서 전시된다.


네트워크실을 개조한 VR전산실

한편 서울대 환경대학원에서 선도적으로 VR엔진을 통한 설계수업을 커리큘럼에 반영해 실시했으나 여러 어려움 또한 존재했기에 타 대학 적용시 필요한 사항에 대한 조언도 이어졌다.

가장 큰 어려움으로 ‘장비 확보’를 꼽았다. 다양한 장비와 함께 VR 프로그램을 실행할 수 있는 고사양의 컴퓨터가 필요하나 연구비로는 컴퓨터를 구입할 수 없기 때문이다. 장비 없이는 수업개설 자체가 어렵기에 이번 학기는 3개월간 컴퓨터를 대여하는 방법을 택했다.

교내 공간마련 또한 어려운 점이었는데, 서울대 환경대학원의 경우는 쓰지 않는 네트워크실을 개조해 VR전산실을 확보했다. 쉴 새 없이 돌아가는 기계를 위한 쿨링시스템이 필요하기에 공간을 구분하고 냉방기기를 설치하는 등 여러 노력이 필요했다. 보다 빠른 전문가 양성을 위해서는 학교측의 장비 및 공간지원이 뒷받침돼야 한다.

수업 내용측면에서는 첫 개설인 만큼 VR엔진에 대해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시작했기 때문에 VR의 가능성을 극대화한 형태인 게임을 2주간 해보며 일반적인 경관설계와 무엇이 다른지, 어떤 인터렉션을 적용할 수 있는지 등을 파악하고, 5주간의 튜토리얼로 프로그램을 하나하나 배우는 시간도 필요했다. 튜토리얼 또한 무궁무진하기에 건설분야 설계에 쓰이는 것들만 선별해서 가르칠 수 있는 교수도 필요하다. 정재헌 소장이 건축실무에서 VR설계를 살제 적용하고 있기에 가능했다.

특히 조경이나 건축에 대한 이해가 있고 3D모델을 해본 대학원생이기에 VR설계가 가능했지만 학부생이면 어려울 수 있다.

여러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이유미 교수는 수업개설을 통한 전문가 양성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 교수는 “취향적 설계를 가르치는 시대는 지났다. 과학적인 정보에 근거한 제한 요건에서 얼마나 재미있는 안을 만들어내고 그것을 어떻게 검증하느냐가 중요해지고 있다”며 “기성세대로서 새로운 기술에의 도전은 두려운 일이지만 이를 뛰어넘어 배우기 시작해야 학생들을 가르칠 수 있다. 이 두려움을 뛰어넘느냐 그렇지 않느냐가 과목개설의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아울러 “교수가 끊임없이 배워야 하는 이유는 학생들이 보지 못하는 융합의 가능성을 볼 수 있기 때문이며, 이 또한 알아야 보이는 것이기 때문이다. 기성세대가 길을 남겨주면 젊은 세대가 주도하며 이끌어나갈 것”이라고 조언했다.

또한 설계현상의 이슈들을 학교에서 의뢰하고 학교에서는 공공을 위한 연구와 시뮬레이션을 진행하고, 다시 실제 현장에 적용되는 구조가 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글·사진_전지은 기자 · 라펜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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