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시선] 우리가 하는 모든 정책의 최종 목표는 사람을 위한 것

글_안영애 논설위원(안스디자인 대표)
라펜트l기사입력2019-12-26

 

우리가 하는 모든 정책의 최종 목표는 사람을 위한 것


_안영애(안스디자인 대표)



방송에 비친 도시공간과 자연

주변 사람들 중 TV를 전혀 안 보는 사람도 있지만 난 즐겨보는 편으로, 우리 국민의 대표적인 여가활동 비율을 높여주고 있다. 현재 방영되는 TV 프로그램은 비현실적인 것도 있지만 반대로 우리 사회에 잊어버린, 잃어버린 것을 찾고 싶은 것에 대한 반증도 있다. 도시에서, 인간관계에서 지친 사람들이 깊은 자연으로 돌아가 자연과 함께 숨 쉬면서 심신을 회복하는 포멧. 이 프로의 배경은 자연이다.

과거 낯선 나그네에게 하루 잠 잘 공간을 내어주고 따뜻한 밥을 나누어 주었지만 불가능한 현재에 인간관계에 대한 회복을 기대하는 프로그램. 배경은 자연이 아니고 도시 공간이다. 공간은 도시이지만 결국은 사람이 중심에 있다. 그 프로그램에 나오는 가족들 중 대가족은 거의 드문 것을 보면 사회변화를 절감할 수 있다.

어떤 프로그램은 집이라는 ‘물건’을 구하는 내용으로 종국에는 수요자가 선택하여 결정하지만, 집을 구하는 과정에서 다양한 요구조건을 들여다보면 요즘 사람들이 원하는 조건들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순수한 집으로 접근하는 프로그램이 있다.


‘집’이 아닌 ‘집에서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

그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는 건축가하고 저녁식사를 할 기회가 있었다. 그 프로그램은 기획 당시 시청률에 연연하지 않아도 되는 공용방송에서 3개월 기간으로 방송하게 되었는데 막상 방영이 되니 의외의 높은 시청률로 현재 연장가능성을 검토하고 있다고 한다. 여기에서 배경은 공동주택이 아닌 개인 주택이다.

오래전 아주 적은 돈으로 인테리어를 고쳐주는 프로그램이 있었다. 인기를 얻다 어느 순간 슬며시 사라졌는데, 사람들의 절절한 사연은 때로 시청자들의 가슴을 먹먹하게 만들었지만 현실적으로는 비현실적인 공사비와 일정으로 공감대가 적어서 공감이 떨어져 없어진 것은 아닐까 한다. 방송은 너무 현실적이면 인정하기 싫어지고 너무 비현실적이면 인정할 수 없어 지속가능하지 못한 것 같다. 지속가능하기 위해서는 이야기가 있어야 한다. 지금 방송되는 집이라는 프로그램이 얼마나 지속될지는 알 수 없지만 집을 주제로 우리 도시와 공간을 많은 사람들이 시청하고 집에 대한 시각이 좀 더 다양해지기를 기대한다.

그 프로그램에 참여한 건축가는 주변에서 많은 질문을 받는다고 한다. “어떤 집이 가장 좋은가” 매주 멋지고 아름다운 많은 집을 보았지만 방송이 끝나고 나니 집이라는 공간에 대한 생각이나 기억은 전혀 나지 않고 그곳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대한 이야기만 남았다고 한다. 그렇다면 집은 단순히 공간이 아니라 집에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아닐까? 그런 점에서 정원에 관한 프로그램이 지속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대비할 필요성이 있다. 지금 잠깐씩 만들어지는 프로그램들의 방향설정을 함께 만들어가면 보다 더 오래 지속하고 그로 인해 우리 환경이 나아질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집

고등학교 친구하나가 어떤 글 하나를 보내주었는데 누에는 10일간 살 집을 만들기 위해  창자에서 실을 뽑고, 제비는 6개월 살집을 짓기 위해 자신의 침으로 진흙을 개어 만들며, 까치는 1년을 살 집을 위해 볏짚을 물고와 혼신을 다해 짓고는 자신의 역할을 다한 후 미련 없이 버리고 떠난다고 한다. 그 이야기는 부모로서의 역할과 빈손으로 가는 인간을 비유한 내용이었지만 나에게는 집을 짓는 방식과 떠나면서 남기는 폐기물들이 떠오르는 것을 보니 영락없는 설계가인 것 같다.

1년 살 집이 아니고 아주 오랫동안 사랑하는 가족들과 가족의 이야기를 차곡차곡 쌓아야 하는 집을 만들어야 하는데 과연 지금 우리는 그런 집을 만들고 있는 것일까? 대부분 우리가 살고 있는, 즉 공급받고 있는 집은 주택도 건축도 아닌 상품으로 기획 판매되는 한 건물이라는 상품은 있지만 이야기가 없는 물건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이야기를 만들 수 있지만 어려운 것 아닐까? 급속한 도시화에 빠른 공급이 필요한 시기는 지났으니 이제는 속도전이 아닌 조금 더 천천히 생각하면서 짓는 방향이 맞지 않을까 한다.


택지개발사업

얼마 전 경실련이 발표한 우리나라 토지상승요인 중 택지개발도 하나의 원인으로 꼽혔다. 택지개발→대량 공급방식이 아직도 유효한 방식일까 하는 의구심이 든다. 물론 경실련의 그 통계를 전적으로 신뢰할 수는 없지만 그럴 가능성도 있다고 생각한다. 대규모 개발 사업으로 인한 보상에 대해 많은 가슴 아픈 이야기를 들었다. 평소에는 잘 오지 않던 자식들이 빈번하게 온다든가. 문중일 경우 보상으로 사고도 나고…. 이런 사회적 문제 외에도 보상을 받으면 보상 받은 돈으로 또 다른 토지를 구입하기에 지가는 계속 상승한다고 한다. 일부는 맞고 일부는 틀린 이야기지만 이 방식의 부작용도 이제는 꼼꼼하게 들여다보아야 할 것 같다. 우리처럼 고밀도 도시는 전 세계적으로 없는데다가 더하여 가장 빠른 시간 내에 대량공급의 속도전은 너무 많은 변화를 일으키고 있다. 가장 큰 문제는 환경문제이다. 생활권과 먼 곳에 택지개발지구를 조성하는 것이 과연 얼마나 편리할 것인가? 주거는 가장 중요한 기본권이다. 주 52시간을 하면 무엇하랴. 일찍 퇴근하였지만 먼 거리를 출퇴근하면 이전과 다를 바가 없다. 부동산 가격은 계속 상승하여 국가경쟁력을 약화시키고, 먼 거리를 대중교통으로 다니기 힘드니 결국 자동차로 이동하면서 대기오염을 확산시킨다. 수입의 많은 부분을 교통비로 지출하고, 연료수입에 많은 외화를 사용하고, 때로는 국제 정치학상 싼 가격으로 살 수 있는 원유를 구매할 수 없는 상황도 온다. 우리 사회는 혼자 해결하기에는 어려운 고차방정식 사회이다.


보호수 이식에는 더 각별한 관리가 필요하다

늘 가던 루트의 에스컬레이터 고장으로 우회 이용하라는 공지를 보고도 늘 습관적으로 그 루트로 가서는 고장났음을 알고 돌아가는 일을 반복하였다. 익숙한 것을 바꾼다는 것은 힘든 일이다. 그런데 노인을 위한 도시는 어떠한가? 인구는 점점 고령화가 되고 있다. 가장 행복한 노년은 가족과 함께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겠지만 죽음으로 가는 과정은 외롭다. 노인은 가족이 돌보기 너무 힘들어 어느 순간 전문시설로 입소한다. 노인에게 너무나도 익숙한 공간에서 전혀 다른 공간으로 가는 것이다. 더 진한 외로움이 다가온다.

보호수 이식에는 각별한 관리가 필요하다. 조경에서 아주 당연한 이야기이다. 보호수는 아주 비싸서 하자가 날 경우 경제적 손실이 크기 때문이다. 노거수를 이식하면 죽을까봐 온갖 신경을 쓰지만 사람은 그렇지 못한 경우가 많다. 노인들이 살고 있던 공간을 노인들은 물론 젊은 사람과 함께 살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어 익숙한 곳에서 일생을 마무리 할 수 있도록 정책을 유도하는 것이 정책으로 가야한다는 연구결과가 나오고 있다.


이런 도시재생을 상상을 해본다

예산을 확보한다. 노인이 살고 있는 도심의 낡은 집을 대상으로 재건축한다. 1층은 노인이 살고 나머지 층은 젊은 사람들이 저렴하게 살 수 있도록 한다. 재건축 전 가격으로 역모기지론을 적용하여 그 노인은 평생을 본인이 살던 집에서 살다 편안하게 일생을 보내게 한다. 별다른 노후대책을 수립하지 않았던 노인일지라도 노후를 안락한 집에서 살도록 하는 것이다. 더 이상 요양원 침대에서 종일 누워서 있지 않고…. 젊은 사람들은 더 이상 원거리를 출퇴근하면서 시간을 보내지 않고 퇴근 후 진정한 워라벨을 느낀다. 이런 투자가 현재의 대규모 택지개발에 비해 비효율적일까? 많은 홍보로 역모기지론을 받아들이듯이 이러한 정책집행에 대한 준비와 홍보로 기존의 살고 있는 집을 요즘 시대에 맞게 점진적으로 바꾼다면 좋지 않을까 한다. 서울시가 환경을 생각해 태양광협동조합을 만들었든 이 또한 사회적 기업을 만들어 추진해보면 어떨까 한다.


우리가 하는 모든 정책의 최종 목표는 사람을 위한 것

서울은 600년 전에 계획된 아름다운 역사도시이자 자연도시이다. 내사산과 외사산, 한강이 지나는 아름다운 도시. 강남의 고층의 스카이라인과 저층의 아름답고 살기 좋은 강북도시는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도시이다. 서울은 지금도 멋진 도시로 손꼽히지만 더욱 세계적인 도시가 될 것이라 확신한다. 그러나 우려스러운 것은 도시재생을 쉽게, 빨리 하려고 공원녹지를 훼손하는 사례들이다. 이는 황금알 낳는 거위의 뱃속을 가르는 것과 같다.

도시에서 공원은 사람이 살 수 있는 숨 쉴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다. 공원도 보존하면서 도시재생을 추진하는 혜안이 필요하다. 도시재생 역시 폐기물을 발생할 수 있으나 최소화할 수 있고, 점진적으로 배출하기에 대처가 가능하지만 대규모 택지는 그러하지 못하다. 인접한 기존 주거지는 황폐화시키고, 도심재개발은 수많은 폐기물을 양산으로 불법처리하여 2, 3차 환경파괴를 양산하고 있다. 새로운 택지는 수많은 농지를 녹지를 잠식하고 훼손한다. 우리보다 앞서 이런 일을 겪은 외국은 다시 U턴하여 콤팩트시티로 가고 있다. 관리하여야 할 도시범위가 넓어지면 넓어질수록 행정은 더 많은 비용이 들어가기 때문이다. 오늘도 도시정책을 만드는 많은 분들도 결국은 좋은 도시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지만 그 모든 순위의 우선에 환경과 사람의 귀함을 두면 더 좋지 않을까 한다.

그동안 부족한 글을 읽어준 독자 여러분 감사드립니다.
글_안영애 대표 · 안스디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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