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관평론] 황지해의 세밀풍경화식 정원_자연의 생명력이 살아 숨쉬는 풍경

황지해 작가의 첼시 쇼 앤 아트(Show and Art) 가든 평론 - 4
라펜트l조세환 명예교수l기사입력2024-05-07
조세환 한양대 명예교수의 경관평론 - 8


황지해 작가의 첼시 쇼 앤 아트(Show and Art) 가든  평론
 : 윌리엄 켄트를 소환해 낸 세밀풍경화식 정원의 창시 - 4


황지해의 세밀풍경화식 정원_

자연의 생명력이 살아 숨쉬는 풍경





_조세환 경관평론가

한양대학교 명예교수





IV. 황지해의 세밀풍경화식 정원_자연의 생명력이 살아 숨쉬는 풍경


황지해가 켄트와 보이고 있는 진정한 차별성은 어쩌면 풍경이라는, 시각 기반의 외형적 표피성이 아니라 표피를 지탱하고 지지하는 내면의 속살에서 읽어 낼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 풍경화식 정원은 문자 그대로 자연의 풍경을 그림 그리듯 묘사해 해는 정원이다. 그 정원은 가장 자연다운 자연, 이상적인 자연, 결과적으로 인간이 그려낼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자연의 모습이다.

인간의 눈에 비친, 인간이 그려내는 아름다운 풍경의 전후 맥락에는 ‘주체’(Subject)와 ‘객체’(Object)하는 관계의 의식과 구조 즉, 도식이 그려져 있다. 즉, 보는 이라는 주체와 보이는 대상으로서의 객체라는 이분법적 구도가 분명히 숨 쉬고 있다는 얘기다. 켄트가 그려내는 풍경식 정원은 처음부터 끝까지 나(I)와 당신(Thou)이라는 구도 속에서 충실했다. 풍경이든, 스타파주(Staffage) 또는 르푸소아르(repoussoir)든 모두 이 구도를 이루기 위한 전략적 선택이자, 풍경화 기법의 차용이었다.

하지만 황지해의 세밀풍경화식 정원은 이 프레임을 깨고, 또 넘어 선다. 자, 그러면 이 대목에서 황지해의 첼시 플라워쇼 수상 작품을 다시 살펴 보도록 하자. 2012년의 대상 작품인 ‘해우소 가는 길’을 사례로 살펴보자. 이 작품 속 주인공은 한국의 재래식 화장실의 대명사, 해우소다. 어쩌면 세월의 흐름 속에 현대인들에게 이름조차 까마득하게 잊혀진 듯한 한국의 토속 풍경 해우소. 아무른 미련도, 희망도, 집착도 없이 무심한 세월이 유감 없이 빚어내는 이지러지는 아름다움을 품고 있는 해우소가 황지해 작가의 손을 매개로 하여 이국 땅, 영국에 출현한다.

그리고 그 주인공 해우소는 풀과 나무, 돌담, 바위 등으로 구성되는 자연 그대로의 완벽한 세밀풍경(Miniature Pictureque)과 벗하고 있다. 이 두가지 장면은 우선, 풍경과 스타파주의 관계를 넘어선다. 인공과 자연의 대비(Contrast) 즉 주체와 객체의 관계라기보다는 시간(Time)을 매개로 자연이란 맥락 속에서 일체화된, 하나의 완벽한 풍경으로서의 조화(Harmony)를 보여주고 있다. 무엇보다 황지해가 마치 신의 손(God’s Hands)처럼 그려내는 자연의 풍경은 단순한 객체로서의 풍경에 머물지 아니하고 그 속에 살아 숨쉬는 주체로서의 자연의 생명력을 적나라하게 심어내고 있다.


황지해 작가의 자연의 생명이 숨쉬는 정원_‘해우소 : 근심을 털어버리는 곳’ 중  바위에 솟아나는 생명

그 마법의 비밀은 세밀하게 그려내는 자연의 풍경 묘사 기법, 그 자체에 있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한올, 한올이 모여 직조를 이루듯이 위로 뻗은 듯 하되 휘어지고, 휜 듯 하되 다시 솟구치는 듯하게 한 그루, 한 구루의 풀과 나무를 얽키고 설키게 하여 자연의 작동적 생명력을 시각적 은유로 살려내고 찬미한다. 아니 보는 이들에게 그렇게 느낌과 울림을 주도록 자연을 디자인 했다.

이 느낌과 울림이 바로 보는 이와 보이는 풍경의 관계를 주체와 객체라는 이분법적 해석의 울타리를 넘어서게 하는 마법을 부린다. 보는 이가 해우소 정원의 풍경 속으로 몰입되어 진짜 해우소 가는 양, 자연과 해우소, 다시 해우소와 내가 하나가 되는, 모든 것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즉, 물아일체(物我一體)의 풍경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황지해는 이 작품에서 ‘해우소의 인분은 다시 자연 속으로 돌아가 자연에 생명의 영양제를 공급한다’는 것, ‘그 자연에서 사람이 살아간다’는 자연순환의 연결고리를 역설하고 있다. 한 마디로 보는 대상의 정원이 아니라 생명력이 숨쉬는 자연의 속살, 생명의 의미를 담고, 또 느끼게 한다.  황지해가 그리는 세밀풍경화식 정원은 이처럼 하나의 풍경, 그림에 머물지 아니하고 풍경 속에 은밀하게 살아 숨쉬는 생명력을 들춰내 보임으로써 보는 이들에게 생명과 자연의 영감을 주고, 그를 통해 자연과 사람이 한 몸이고 하나의 세계임을 공감하게 한다.


황지해 작가의 자연의 생명이 숨쉬는 정원 ‘고요한 시간: DMZ 금지된정원 중 생명을 상징하는 새집(Bird’s House)의 디자인

그럼으로써 그녀가 그려내는 작은 정원, 세밀풍경화식 정원은 자연이 지닌 생명의 찬가를 불러주는 웅대한 오케스트라, 그 자체이고, 종국엔 보는 나와 보이는 풍경을 주체와 객체의 관계를 넘어 인간과 자연의 본초적 관계, ‘나’(I)와 ‘또 다른 나’(Alter Ego)의 관계, 즉 자연과 사람이 일체가 되는 ‘I-Alter의 관계’로 승화시킨다. 황지해는 이처럼 윌리암 켄트의 정원 그림이 보여주지 못한 자연의 생명력을 적나라하게 연출시키고 있다는 맥락에서 켄트의 풍경화식 정원의 큰 그림자를 벗어나 하나의 진화된, 동시대 새로운 세밀풍경화식 정원 양식으로 우뚝 넘어서고 있다.

이것은 마치 우리가 흔히 자연에서 보고, 익히 알고 있는 풍경의 ‘자연’을 그리되 그녀만의 삶에 베어 있는 원초적 본능과 재능, 자연친화적 삶의 경험15)에서 얻은 디자인 철학으로 켄트의 풍경의 그림을 넘어 실존의 생명력이라는, 새로운 ‘낯섦의 자연’을 만들어 낸다. 이 과정은 세밀하고 섬세하며 밀도 높은 그녀만의 독창적 디자인 기법으로 탄생되는데, 이 독창적 디자인 기법을 통해 그녀의 정원은 종국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자연의 생명력으로 충만된 아름다운 정원을 창조해 내게 된다.

그녀의 정원은 이처럼 자연 풍경을 곧 살아있는 자연, 마치 작동하고 있는 그대로의 자연으로 세밀하게 엮어 냄으로써 신이 만든 ‘진짜 자연’(Real Nature)인지, 아니면 사람의 손으로 만든 ‘의사자연’(Pesudo Nature)‘인지… 도대체 알 수 없을 수준의 경지로 끌어올림으로써 ‘에덴(Eden)에 울타리로 두른다(Gan)’는 의미가 합성되어 만들어진 정원(Garden)의 근본적 의미, 그 자체, 인간 생명의 근원적 안식처를 만들어 낸다.

이처럼 황지해의 첼시플라워쇼에서 보여 준 쇼유 앤 아트(Show and Art) 정원은 윌리엄 켄트가 창시한 풍경화식 정원을 넘어 자연의 생명력과 그 가치를 섬세하게 담아내는 세밀풍경화식 정원으로의 진화를 이끌어 냈다. 이것이 곧, 그녀의 세밀풍경화식 정원 창시의 비밀, 그 자체다.  이 비밀은 정원을 통해 동시대 인류문명의 시대정신을 함의하고 표출하는 그녀만의 상징적 작품 단면이기도 하지만, 결코 특정 플라워쇼의 쇼와 아트 컴피티션 작품으로만 머물 수 없고, 머물러서는 안 될, 오늘날 우리 지구사회가 당면하고 있는 동시대 현실의 문제와도 직결된다.

그렇다면 또 궁금해진다. 황지해 작가의 작품이 머무는 곳은 쇼와 아트와 컴피티션·· 과연 여기까지인가? 아니면 그 넘어일까? 어쩌면 그녀의 ‘환경미술’ 또는 ‘조경관’은 이 물음에 대한 은유적 답변이기도 한 한편, 결코 이 쇼와 아트의 경계 내에 머물 수 없음을 예견케 하는 현재미래형 앞유리창(Front-Window) 이상에 다름아닐 수 있다. 이제 이어지는 제V장에서 마지막으로 황지해 작가의 앞유리창을 살피며 이 평론의 드라이브를 마치고자 한다.


 

15) 황지해 작가는 그녀가 태어나 어릴 때부터 지리산 언저리에서 근엄하고 위대한 자연의 생명력을 의식적, 무의식적으로 느끼며 성장했음을 얘기한다. 2023년 그녀의 세 번째 첼시 플라워쇼에서 대상을 받은 작품, ‘백만 년 전으로부터 온 편지’는 이 지리산 계곡의 약초의 생태환경을 통해 인간과 자연이 분리되어질 수 없는 존재라는 것, 공생과 공존을 하나의 테제로 삼고 있다는 점에서도 그러함을 잘 보여주고 있다.




<황지해 작품 주요 약력>
2011년 영국 첼시플라워쇼 아티즌 가든 부분 최고상 및 금메달 동시수상
- 해우소 : 근심을 털어버리는 곳(Hae Woo So : Emptying your Mind : Traditional  Korean Toilet)
2011년 영국 글라스톤버리(Glastonbury) 해우소 재현
2011년 해우소 그린피스 기증
2012년 영국 첼시플라워쇼 RHS 회장상(전체 최고상) 초대 수상 및 쇼가든 부문 금메달 수상
- 고요한 시간 :DMZ 금지된 정원(Quiet Time : DMZ Forbidden Garden)
2012년 네덜란드 벤로 플로리아드 2012 한국관 정원 조성
- 뻘 : 어머니의 손바느질(Mudflat :Sewn by Mother’s hand_Suncheon Bay)
2012년 일본 가드닝월드컴 한국 대표(세계 10대작가 초대전 in Nagasaki, Japan)
2012년 광주비엔날레 초정 작가 조형부문 2개소
2012년 올해의 조경인상 수상
2012·2014·2016년 영국 런던플레저가든공원 ‘Quiet Time : DMZ Forbidden Garden 전시
2013년 프랑스 롱스 한국정원 조성 : 플로리아드 전시작 뻘: 어머니의 손바느질 프랑스에 영구 보존
2013년 프랑스 MUNICIPAL, restaurant, mural art.
2013년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 갯지렁이 다니는 길뻘 공연장 조성
2013년 ’제4회 KBEE 런던‘ 초청작가 0.001_물은 낮은 곳으로 흐른다’ Old Billingsgate
2014년 첼시플라워쇼 작품 재현 - 광주생태호수원
2014년 3월 5~9일 런던 미니어처 가든쇼 독도(트라팔가광장 스트랜드 갤러리)
2014년 9월 2013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개최 유공 - 국무총리 표창
2015년 서울정원박람회_평화의 공원
소녀들을 기억하는 숲_모퉁이에 비친인 태양(위안부정원 국민성금 조성)
2016년 MMCA 국립 현대미술관서울관 도롱이벌레” installation
2018년 서울식물원 작가정원 seeds_움직이는 씨앗
2019년 국립 현대미술관 과천관 옥상정원 Vessel
2021년 국립 현대미술관 과천관  원형정원 프로젝트 ’달뿌리-느리고 빠른 대화
2022년 IFLA 세계조경가대회 installation ‘태양의 뜨개: 골바람의 딸
2023년 중국 GBA 그레이터베이센젠플라워쇼 금메달 수상 ‘Butterfly Dance’
2023년 영국 첼시플라워쇼 쇼가든 부문 금메달 수상 
2023년 첼시플라워쇼 출품작 ‘지리산 약초타워’ 찰스 국왕의 개인별장 샌드링엄 캐슬에 영구 보존
        

<필자: 조세환 약력>
대통령 소속 국가건축정책위원회 국토환경디자인분과 위원장
(사)한국조경학회 고문
(재)환경조경발전재단 고문
(사)한국전통조경학회 고문
(사)한국정원디자인학회 고문
(사)한국바이오텍경관도시학회 고문
(사)한국조경협회 고문




<편집자주>

조경분야에서 공원, 생태, 정원 등 환경관련 작품들이 끊임없이 나오고 있지만, 조경의 문화화 및 확산 맥락에서 관련 작품들에 대한 평론은 비교적 활성화되지 않고 있습니다. 

라펜트 <경관평론>의 첫 번째 코너에는 건축가 손명문이 한옥을 설계하고, 작가 황지해가 정원설계한 “한옥건축, 헤리티지 유와”에 대한 조세환 한양대 명예교수의 경관평론이 게재됩니다.  평론은 모두 2편으로 구성되는 데, <제1편>은 건축가 손명문의 한옥건축 평론 관점(링크)에서, <제2편>은 작가 황지해 작가의 정원 작품에 대한 평론이 개제됩니다. 특히, 제1편은 경주문화원에서 2023년 12월 31일에 발간하는 「경주문화」 제29호에 동시에 게제됐음을 알려 드립니다.


<경관평론> 코너는 구독자 여러분들의 많은 관심과 참여를 기대합니다. 해당 코너에 경관평론을 기고하실 분들은 lafent@naver. com으로 연락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글·사진 _ 조세환 명예교수  ·  한양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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