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한 공간, 자유로운 조경설계를 만드는 방법은 무엇인가?
조경학회 '조경설계 안녕하십니까?' 웨비나 개최라펜트l김수현 기자l기사입력2021-03-21
조경에 대한 기능과 역할을 제대로 생각하지 않는 사회적 몰이해와 편견이 존재한다. 이런 오해는 단순한 오해에서 그치지 않고 개인과 기업에 실질적 피해를 입히기도 한다.
오늘도 많은 조경인들이 조경의 기준에 맞지 않는 제도와 법규들 때문에 공모, 계약, 자격, 크레딧, 발주 방식 등에서 불합리한 대우를 받고 있다.
(사)한국조경학회에서는 조경설계를 추진하면서 경험하는 문제를 나누고, 보다 공정하고 합리적인 대안 마련을 위해 21일 ‘조경설계 안녕하십니까?’를 주제로 웨비나를 개최했다.
질의응답 및 토론 중인 김아연 서울시립대 교수, 정욱주 서울대학교 교수, 박승진 디자인 스튜디오 loci 소장, 서영애 기술사무소 이수 소장
제도(製圖)와 제도(制度)
최정민 순천대학교 교수는 최근 조경이 임업과 건축 사이에서 독자적인 영역을 침해받고 있는 현상을 지적했다. 좁아지는 조경의 입지를 ‘조경, 제도(製圖)의 문제인가? 제도(制度)의 문제인가?’라는 제목의 개회사에서 논했다.
조경인들이 생각하는 조경과 일반인들이 생각하는 조경에는 상당한 거리가 있다. 상대적으로 가까운 관계에 있는 건축가들은 조경을 ‘랜드스케이프 건축’, ‘경관건축’, ‘조경건축’이라고 하며 조경을 건축의 한 종류로 인식하기도 한다. 비평의 영역에서는 조경이 “그 밥에 그 나물인 공원”이라는 자조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
최 교수는 “조경에 대한 몰이해가 조경가의 능력과 상상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생긴 것은 아니”라며 조경이 처한 사회적 조건들에서 문제의 원인을 찾았다.
조경설계의 공공과 민간의 비율은 7:3 혹은 6:4 정도로 민간보다 공공의 영역이 더 크다. 공공에서 조경을 채택하는 주요 방식은 ▲가격경쟁 ▲자격경쟁 ▲제안서경쟁 ▲턴키 ▲설계공모 등으로 이루어지고 있으며, 이런 방식 안에서 설계사무소는 저렴한 설계비에 시달리며 ‘박리다매’ 구조로 운영되고 있다. 박리다매 구조에서는 더 나은 조경을 위한 담론 생산과 시간을 투자할 여력이 없다.
‘조경가가 없는 조경’과 ‘조경가 있는 조경’의 차이를 만들기 위해서는 설계자의 권리와 정당한 설계비가 지급되는 등의 환경이 필요하다.
최 교수는 “어떤 법들은 조경의 창조성과 유연성을 방해하기도 하고, 산림청뿐, 국토교통부, 환경부 등의 정부부처들 중 조경의 활동을 방해할 때도 있다. 이런 요소들이 조경가와 업계를 힘들게 한다. 그러나 법이 반드시 부정적인 역할만 하는 것은 아니다. ‘조경을 먹여 살린 제도’들 또한 존재한다. 이런 양 측의 부분을 충분히 인지하고, 조경을 보호하고 발전시킬 수 있는 제도를 디자인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서 ▲조경이 조경을 주체적으로 할 수 있는 제도(정당한 설계비, 설계자로서의 크레딧) ▲조경 설계공모의 제도화 ▲「건축기술관리법」 시행령에서 용역업자의 선정기준 및 절차에 관한 내용 개정 ▲「건설기술관리법」 개정 ▲「도시공원 및 녹지 등에 관한 법률 시행령」 개정 ▲「조경서비스산업진흥법」 제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더 유능한 조경을 위해서
조용준 CA조경기술사무소 소장은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설계절차-계약과 업무분장 그리고 심의’라는 주제로 프로젝트 과정에서 발생하는 문제들과 그 해결책을 제시했다.
조 소장은 우선 어떤 프로젝트에서 조경이 맡은 역할을 ▲협력 업체로서의 조경 ▲총괄로서의 조경이라는 두 범주로 나눴다.
협력사로 조경설계를 진행하면 적정비율의 설계비를 지급받기 어렵다. 왜냐하면 전체적인 프로젝트 업무분장과 절차에서 나오게 되는 비용이 제대로 책정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 비용을 충당하기 위해 총괄을 맡는 ‘건축’은 협력업체의 설계비를 제대로 책정하지 않는 방식으로 비용을 충당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조경이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전기, 통신, 소방, 환경 등과 같이 분리발주에 관한 법이 필요하다. 또한, 외부공간이 중요한 공공건축물 공모시 조경업체가 공동 수급될 수 있는 지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조경이 프로젝트의 총괄 역할을 할 때는 계약부분이 ▲공동이행방식 ▲분담이행방식으로 나눠진다. 공동이행방식으로 진행될 경우, 타 분야 예를 들어서 엔지니어링 파트에서 과실이 생겨 발생하는 손해를 조경이 떠맡는 경우도 있다. 명확한 업무 분장의 필요성이 크다는 것이다.
총괄로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경우 타 분야의 업무까지 다루기 위해 업체의 개인은 물론 기업의 역량과 경험이 중요하다. 하지만 개인과 각 사무소의 역량 편차가 매우 크다.
조 소장은 “총괄로서 공공 프로젝트를 이끌 수 있는 다양한 경험, 진행 절차, 법에 대한 지식 등 전문성 함양과 타 분야와의 협업을 위한 충분한 지식과 경험을 쌓아야 한다”며 학계와 업계 차원에서 타 분야에 대한 지식 습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건축사업 활성화 규제개선 방안이 발표됐다. 많은 부분이 개선됐지만 여전히 합리적인 설계 프로세스를 위해서는 심의와 인증 절차의 간소화나 통합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불필요한 심의와 절차 때문에 작품의 설계를 수정하는 것과 같은 비효율적인 일을 최소화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제도와 절차가 상충되는 부분을 줄여 효율적인 조경이 이뤄질 필요도 있다.
공공건축 설계의도 구현 업무수행지침이 지난해 제정됐다. 하지만 이 지침에는 조경은 포함되지 않아서 현장에 설계의도를 설명하고 지시하는데 어려움이 많다. 이 부분을 해결하기 위해 의견을 모아야 한다.
계약,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
이해인 HID 소장은 미국에서 조경을 시작했기에 한국의 법과 제도, 계약에 대해 잘 알지 못해 낭패를 겪은 적이 많았다고 전했다. 그에 따르면 큰 흐름에서 계약 사항이 나아지고 있지만, 여전히 ‘이상하고’, ‘나쁜’ 계약서와 조건들이 존재한다.
어떤 계약서는 계약 기간이 명확하게 정하지 않고, 일을 끝낸 후에도 여러 가지 명목으로 금액의 20~30%가 정확한 이유 없이 미뤄질 수도 있다. 업무에 관한 책임 범위가 애매한 용어들로 설정돼서 하자의 책임을 조경 업체에게 넘기는 계약서가 있다.
공공에서 더 이상 사용하지 않는 내용과 조항들을 넣는 민간 계약도 있다. 계약상의 문제나 업무상 갈등이 발생할 경우 발주처의 해석과 결정에 따라 해결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미국조경협회(ASLA)는 조경업체들이 공정한 계약을 맺을 수 있도록 매년 계약에 대한 일종의 가이드라인을 출간하고 있다. 이 가이드라인에 따르는 계약서에는 프로젝트에 대한 상세한 내용과 업무의 범주와 추가용역에 대한 조항도 자세하게 기록된다.
이 소장은 ASLA의 가이드라인을 참고해 자세한 업무 내용과 책임 소재가 적시된 계약서를 작성해 사용했다. 이를 통해서 상대적으로 공정한 계약을 할 수 있었다고 전했다.
그는 “공공발주의 경우, 악마는 디테일에 있기 때문에 과업지시서와 내역서를 꼼꼼하게 살펴봐야 한다”라고 주의했다. 또한 “비용이 크게 드는 조사, 심의 등 각종 행정 절차를 미리 확인하고, ‘기간’에 주의하며 명백한 감리 업무인 경우에는 실시설계 업무에 포함하지 말라”고 하며 부당한 계약 조항들을 경계해야 한다고 전했다.
공정한 공모 자격 조건이 필요한 때
이남진 조경기술사무소 ㈜바이런 소장은 여러 공원설계공모 사례를 들어 ‘못된 공모’와 ‘착한 공모’를 구분하고, 바람직한 공모의 방향성에 대해서 자신의 생각을 전했다.
공원설계 공모에 건축가만 참여 가능하고 공동 응모로도 참여할 수 없는 경우가 존재한다. 반대로 조경가만 참가 가능한 공모도 있다. 그는 건축가와 조경가가 함께 공정한 경쟁을 하는 공모를 ‘착한 공모’라고 규정했다. 참여 조건에 부당한 제한을 두고 공정한 경쟁을 막는다면 그 공모는 ‘못된 공모’다.
예를 들어 서울시의 ‘아시아공원 일대 정비 기본계획 수립 용역’의 경우 대표사를 도시계획 자격이 있는 업체로 참가자격을 한정했다. 공원 정비 사업임에도 불구하고 조경은 전체 용역비의 20%만 받을 수 있었다. 그 결과 이 공모는 두 차례 유찰이 됐다. 이에 이 소장은 대표사 제한이 없는 방식을 서울시에 제안했고, 프로젝트를 순조롭게 진행될 수 있었다.
공정한 경쟁을 할 수 있는 공모를 착한 공모는 많은 업체가 참가해 공모 자체도 흥행을 한다. 공모에 당선되지 않더라도 준비하는 과정에서 생산적인 결과를 얻을 수 있다. 입상작품들을 보는 것만으로 재밌는 프로젝트가 되는 것이다.
또한, 공모에는 필수적인 자격 조건만 포함하고, 토목, 지질, 환경 등 부대공종은 당선 후 참여 조건을 부여하면 충분하다. 대표사에 대한 자격은 선택 가능하도록 해 동등한 기회를 부여하는 공모가 ‘착한 공모’를 늘려 공정성과 투명성을 높여야 한다고 말했다.
참여 자격, 좀 더 문을 열어야 한다
최영준 labD+H 소장은 자신이 약 15년의 경력을 가지고 있지만 제도의 문제로 인해서 ‘초급기술자’로 남고 있는 자신의 사례를 소개하면서 현행 제도의 발전방향을 제시했다.
현행 건설기술사의 등급은 조경기사 자격증을 기준으로 나눠졌다. 반면에 이전 제도에서는 학력과 경력을 통해서 자격이 등급이 구분됐다. 현재 조경관련 자격은 학력과 경력이 아닌 시험이라는 제도에 편중되어있다. 자격시험 자체도 과목과 내용 등이 현실과 동떨어져 있고 합격률 또한 매우 낮다.
건축사의 경우 지난해 예비시험제도가 폐지됐고, 5년제 건축학과나 건축대학원을 이수하고 3년 이상 실무 수련을 거친 자는 건축사자격시험에 응시할 수 있게 됐다. 미국에서 가장 까다로운 기준을 가진 캘리포니아에서는 학력 조건과 2년의 실무경험을 쌓으면 건축사자격시험에 응시할 수 있는 조건이 충족된다.
현행 법률에 따르면 특정 규모 이상의 공모나 공사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엔지니어링활동주체’가 되거나 ‘기술사사무소’를 개설해야한다. 기술사 사무소를 만들기 위해서는 특급기술사가 필요하다. 높은 기준 때문에 현장 근무, 해외 위주 경력을 가지고 있는 업체는 프로젝트의 주요 역할을 맡지 못하고 하청업체로 남아야 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최 소장은 “발주처의 상황과 제도의 의의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필요 이상의 높은 기준이 작은 업체들의 참여와 성장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한, “제도적 자격이 좋은 조경을 만드는 역량을 증명하지 않는다. 보다 열린 자격 조건을 도입한다면 업계의 다양성을 풍부하게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름’있는 공원을 생각한다
최혜영 성균대학교 조교수에 따르면 조경에 관한 ‘크레딧’을 인정받으려는 시도는 예전부터 있어왔다. 조경가들은 이런 문제를 인식하고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 참여한 사람들의 이름과 역할을 기록하면서 ‘크레딧’을 인정해왔다. 하지만 공공발주 등에서는 ‘크레딧’의 중요성과 역할을 잘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
예를 들어 ‘서울의 공원’ 홈페이지를 보면 이 공원을 누가 만들었고, 어떤 식으로 참여했는지에 대한 내용을 찾아 볼 수 없다. 이에 반해 뉴욕 센트럴파크의 홈페이지에는 공원의 역사와 누구에 의해서 설계됐는지 잘 기록돼 있다.
공모의 참가자 자격에서도 ‘단, 공동응모시 2개사를 초과할 수 없으며’같은 문구가 들어가면서, 프로젝트에 참여한 협력사의 활동이 기록되지 않는 경우도 있다. 다행히 최근에는 프로젝에 참여한 분야별 ‘크레딧’이 들어갈 수 있는 공모도 늘고 있다.
미국의 경우 프로젝트에 참여한 모든 사람을 기록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크레딧을 통해서 조경가의 사회적인 인식과 조경의 역할을 대중에게 알릴 수 있다.
최 조교수는 “조경가의 역할을 대중에게 잘 전달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결국은 콘텐츠이다. 지금은 콘텐츠로 승부 해야 하는 시대다. 조경 분야의 인식을 높이는 방법으로 다양한 콘텐츠를 개발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 뿐만 아니라 “저작권에 대한 부분도 소홀하게 다루지 않아야 한다. 건축은 이미 건축서비스산업 진흥법, 건축법, 건설산업기본법을 통해서 저작권을 법적으로 인정받고 있다”며 조경계의 인식 전환과 공통된 규정을 마련하고, 인접분야 협력시 공식 크레딧을 확보해야 한다고 피력했다.
마지막으로 “창작의 가치를 인정받기 위한 저작권 및 관련 제도 검토 및 이해가 필요하다. 조경가와 조경의 사회적 인식 제고하기 위해서 대중 소통 콘텐츠 확장할 필요가 있다”고 전했다.
- 글 _ 김수현 기자 · 라펜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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