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경은 자연을 살리고 건축은 인간을 이롭게해야
[특별인터뷰]김영수 녹청련 회장-방광자 상명대 명예교수
▲김영수 녹청련 회장(좌), 방광자 상명대 명예교수(우)
'人法地 地法天 天法道 道法自然_인법지 지법천 천법도 도법자연'
-노자-
"사람은 땅을 본받고, 땅은 하늘을 본받고, 하늘은 도를 본받으며, 도는 결국 자연의 이치를 따른다"는 중국의 대사상가 노자의 말이다. 하늘과 땅, 인간 모두가 자연의 도리를 따라야 한다는 말로, 결국 모든 것이 자연과 하나로 살아간다는 뜻이다.
'건축은 자연과 인간, 문화가 하나되는 것'이라는 김영수 녹청련 회장(前대한건축사협회 회장)의 말에서 떠오른 문구였다.
김영수 회장은 "인간의 생활과 자연의 조화가 반영된 풍수지리에 맞추어 짓는 건축이 우선시 되어야 한다. 하지만 이를 위해서는 조경과 건축이 개별적으로 움직여서는 안된다. 조경과 건축, 이 둘은 반드시 하나가 되어야 한다."고 했다. 화합과 통섭을 역설한 그이다. 2008년 출범시킨 녹청련(녹색건축 청색도시 시민디자인연대)의 무게중심도 '인간과 자연, 그리고 문화의 조화'에 잡혀있다.
한편에서 조경의 5년후, 10년후의 미래를 걱정하는 방광자 명예교수(상명대)이다. 조경의 미래 키워드로 '유지관리'를 유독 강조하는 분이시다.
"지금 조경학과를 졸업한 학생들, 상당수가 제대로 나무 한 그루를 심을 수 있는 기술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 기본을 제대로 갖추지 못하였다는 것이다. 컴퓨터에 앉아 도면을 만들더라도 식물의 생리생육을 파악하는게 먼저다"
조경을 강화하는 방법이 기본기에 대한 충실성을 갈고 닦는 것이며, 여기서 기본은 '식물'에서 출발한다는 설명이다. 방광자 명예교수 역시, 건축과 조경의 통섭과 화합을 이미 오래 전부터 생각했다고 밝혔다. 따라서 식물에 대한 공부를 게을리 해서는 안된다는 충고를 다시한번 강조하였다.
건축과 조경분야의 리더로서 명망을 쌓아온 김영수 회장과 방광자 명예교수 부부와의 인터뷰는 특별했다. 각종 개발계획 수립에서, 조경과 건축, 두 분야의 통섭과 화합이 강조되는 현재, 부부로서 조경과 건축분야에 대한 정확한 이해와 평가를 들을 수 있는 기회였기 때문이다.
녹청련 속에 함축된 녹색건축, 청색도시의 의미는?
김영수 - 우리 말 속에 '푸르다'라는 좋은 말이 있다. 초록색, 하늘색… 이를 두고 우리는 푸르다고 말한다. 결국 녹색과 청색은 같은 이미지의 색이다. 다만 가까이 낮은 곳에 있으면 녹색, 높이 있으면 청색으로 존재하게 되는 것이다. 눈 앞에 펼쳐진 산을 보자. 녹색이다. 하지만 먼 곳에 보이는 산은 청색으로 보이지 않는가? 이를 두고 녹청의 원근법이라 부르고 있다.
'Green Architecture로 Blue City를 만들자는 것' 바로 녹청련의 키워드다. 오염없는, 그야말로 우주의 원환경으로 살아가자는 시민연대 운동이 바로 녹청련의 이상이다.
우리나라에서는 '환경'이란 단어가 잘못 해석되고 있다. 흔히 좋은 공기와 청정한 자연과 같은 것과 같은 의미로 혼용된다. 이제 주변을 둘러보자. 인간을 둘러싼 환경이 깨끗한가? 환경이라는 말은 인간을 둘러싸고 있는 것을 통칭하는 표현일 뿐이다. 방 안에 부유하는 이산화탄소마저도 환경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본인은 '친환경'이라는 말을 좋은 의미로 해석하지 않는다. 오염된 공기와 친하게 하자는 말과 다름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즐겨 사용하는 표현이 '친자연'이다. 단순히 자연을 숭배하는 차원이 아니라, 생활 속 가까이에 접하고 살자는 것이다.
인간이란 즐거움을 추구하는 존재이다. 즐거움은 많은부분을 아름다운 자연을 통해 얻는다. 건축의 기본은 인간과 자연, 그리고 문화를 하나로 담는 것이다. 하지만 문화라는 이름이 아닌 문명의 미명아래 인간은 파괴, 정복을 자행하고 있다.
인위적인 멋스러움을 연출하려는 건축 마찬가지이다. 사실 건축이라는 것은 외형성이 강조된 작품이 중요하지 않다. 생활 그 자체가 바로 좋은 집의 목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건축가가 단순히 아름답게 만들려는 분위기가 만연해 있다. 그 곳에 사는 사람들의 생활을 수용하고 살기 좋게 만드는 것이 건축설계 본연의 자세라 생각한다.
이제는 소위 전문가라는 사람이 디자인하는 전문디자인의 세상이 아니다.
우리시민, 너와 내가 살아가는 세상 속에서 모두가 직접 디자인에 참여하는 시대인 것이다. 건축과 조경의 경계도 허물어져야 하며, 이는, 녹색건축 청색도시 시민디자인연대. 바로 녹청련 속에 담겨있는 의미이자, 우리가 추구하는 지향점이라 하겠다.
조경과 건축, 경계와 역할에 대하여?
김영수 - 집은 우주이다. 한자로 집(宇)과 집(宙)이 모여 우주가 된 것이다. 우주는 자연과 함께 인간이 사는 큰집이다. 그리고 인간은 소우주이다. 사람이 거주하는 우리집은 큰집과 작은집 사이에서 기거하는 공간일 뿐이다. 주체는 항상 우리이고 인간이다. 집의 개념은 그런 것이다. 자연과 인간, 그리고 거주공간까지 모든 것이 하나가 되어야 한다.
지난 2010년 6월 한국조경사회 30주년 기념세미나에서 '건축분야에서 본 한국 조경의 과제와 미래'를 주제로 발표를 가졌었다. 여기에서 주장한 것이 '조경과 건축은 하나이지, 둘이 아니다.'였다.
▲ 한국조경사회 30주년 기념세미나에서 김영수 회장
Landscape Architecture 속 Land는 땅(터)을 뜻한다. Scape는 땅위에 펼쳐진 경치이다. 그리고 Architecture는 땅과 경치 속에 집을 짓는 것을 말한다.
자연과, 땅 그리고 경치와 더불어, 내가 즐겁게 살수 있는 집을 만드는 것이 Landscape Architecture이다. 하지만 작금의 상황에선 Architecture(건축)와 Landscape Architecture(조경)가 별도로 떨어져 있다. 각각이 또 다른 목소리를 내고 있는 것이다.
사실 집터를 잡는 것은 조경의 의미가 건축보다 앞서는 것이 맞다.
우리나라의 풍수지리가 바로 Landscape Architecture 아닌가? 자연, 문화, 인간의 생활을 총체적으로 감안하여 집터를 잡는 것이 바로 풍수지리이다. Landscape Architecture에서 그 일을 맡아서 해야 하는데, 지금은 반대로 진행되고 있다. 건축, 토목이 잡아놓은 땅에서 조경을 하는 것은 거꾸로 되었다는 생각이다.
재미있는 것은 고대문명의 발상지인 중국의 한문에서 예(藝)자가 바로 조경의 뿌리가 되었다는 사실이다. 풀<초>,잡을<집>,구름<운>의 합성어로 예술을 상징한 '藝'자를 만들었음이 이를 증명해준다. 집(執)자를 보면 더욱 재미있는 것은, 나무나 풀을 잡고 흙을 둥글게 모으는 형상을 그렸다는 점이다. 여기에 햇빛이 없고 비오기를 기다려 반드시 구름이 있을 때 심어야 한다는 예술<藝>자는 정말 놀라움을 금할 수가 없다.
조경은 예술의 기본이다. 예술이 인간생활의 기본이라고 한다면, 조경은 모든 학문에 기본이 되어야 하는 것이 맞다. 인간의 생활, 자연의 원리에서 조경을 바라보자는 생각이다.
조경과 건축, 둘 사이의 간극을 줄일 수 있는 방법으로는?
김영수 - 조경과 건축의 융합은 사회전체적인 맥락에서 긍정적인 시너지를 불러오게 될 것이다. 이를 위해 조경분야 단체들과 건축관련 단체들은 교류를 자주하고 소통의 끈을 놓지 말아야 한다.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진 않겠지만 꾸준하게 관계를 맺어나간다면, 결국 조경과 건축이 하나로 어우러질 수 있다.
조경과 건축이 지금보다 유대를 강화한다면, 사회 인프라의 질이 높아지게 된다. 녹색인프라 하나만이 아니다. 인간생활을 둘러싼 거대한 인프라 전반에 걸쳐 건축과 조경이 함께 과업에 참여해 수행할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우리의 전통사상을 재조명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사실 풍수지리는 상당히 과학적인 학문인데, 이를 적용하는 사례가 많지 않다. 조경학과와 건축학과에서는 반드시 풍수지리를 전공학문으로 체계화 시켜야 한다. 조경과 건축의 올바른 관계를 전통사상에서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건축분야와의 협업이 점증적으로 늘고 있다. 그 속에서 조경이 나아가야 할 방향은?
방광자 - 지금의 인공지반녹화는 대개 건물이 완성된 다음 덧붙이듯 이루어지고 있다. 하지만 처음 건축물을 계획하는 순간부터 옥상녹화, 벽면녹화에 대한 조경가의 참여가 이루어지는 것이 옳다고 본다.
조경가와 건축가가 같이 스터디를 진행하게 된다면, 옥상녹화시 선정된 식물들이 해당 기후에 맞아야 하고, 식물의 생육은 건축물과 필로티 등의 장치들과 조화를 이루어야 된다. 식재식물, 흙높이, 방수, 방근(뿌리유입 방지)과 같은 옥상녹화의 필요조건이 처음 건축물 계획부터 반영된다면, 오히려 비용도 적게 든다.
결국 조경과 건축의 소통창구를 넓히고 하나가 되어야 한다. 조경가, 건축가, 원예가들이 모두가 라운드 테이블에 앉아 함께 고민해야 한다.
앞서 내용과 다른 정원 이야기를 꺼내고자 한다. 최근에 제2회 경기정원문화대상의 심사위원장을 맡았던 적이 있었다. 심사를 진행해가면서 놀라웠던 것이 정원의 파급효과였다. 정원에 대한 시민들의 애정을 피부로 체감한 것이다. 특히 참가자들이 집으로 돌아가 자신이 손수 가꾼 정원을 주변 사람들에게 소개해주고, 그 기술을 전파하는 모습에서 정원문화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았다.
현재 경기도와 경기농림진흥재단은 '조경가든대학'을 운영하며, 정원조성 전반에 대한 교육을 시행하고 있다. 교육을 수료한 졸업생 하나하나가 정원문화를 확산시키는 소중한 밑거름이 되고 있다. 현재는 경기도에서만 시행되고 있는 이 체계적인 정원조성 프로그램이 다른 지역자치단체로 확산되길 바라는 마음이다.
정원과 건축물 녹화 사업이 활성화되는 가운데 조경이 주목해야 하는 것은 무엇일까? 결국 식물이다. 하지만 각 대학 조경학과에서는 교육 커리큘럼에서 이를 뒷받침하지 못하고 있다.
지금 조경학과를 졸업한 학생들 상당수가 나무 한 그루를 제대로 심을 수 있는 기술을 가지고 있지 않다. 기본을 제대로 갖추지 못하였다는 것이다. 컴퓨터에 앉아 도면을 만들더라도 식물의 생리생육을 파악하는게 먼저다.
설계회사에서는 신입사원들한테 식재설계를 맡기는 경우가 많은 줄 안다. 식재설계는 상급자들이 맡아서 해야 한다. 그 식물의 생리 생태를 잘아는 사람이 하는 것이 맞다. 결국 식물로서 대상지의 질이 판단되기 때문이다.
설계에만 치중한 조경교육도 문제이다. 5년후, 10년후의 조경시장을 내다보지 못하고 있다. 어느 시기가 지나면 새롭게 조성되는 공원과 대상지는 줄어들게 될 것이며, 한국사회의 노령화로 건설사업에 필요한 인력도 줄 게 된다. 결국 유지관리로 귀결된다.
한국에서 한 해 배출되는 졸업생이 세계 2위 수준이다. 하지만 이 많은 졸업생의 일자리는 어떻게 될 지 생각해 보자. 흙을 이해하고, 삽을 드는 것은 절대 쉽지 않은 일이다. 이제는 유지관리에 대한 중지가 모여야 될 시점이다.
이와 함께 식물에 대한 연구가 보다 활발히 이루어져야 한다. 아무리 좋은 조경디자인이라도 식물이 적응하지 못하면 쓸모가 없다. 더 많은 식물연구가 이루어져야 한다.
끝으로 하고 싶은 말은?
최근 조경기본법이 법안심사소위에 상정되었다. 개인적으로 조경기본법이 제정되는게 맞다는 생각이다. 다만 그안에 담겨있는 내용이 건축과 조경의 거리를 멀어지게 해서는 안된다. 조경과 건축이 서로 등을 지고 살수 없다는 기본 인식이 전제된 후 제정되는 것이 맞다고 본다. 한편으로 건축기본법도 조경분야에 좋은 영향을 제공하는 울타리가 되어야 한다. 단순히 직역간 이기주의로 발전되면 안된다는 말이다.
최대한 조경과 건축이 이해하고, 화합해야 한다. 반발하고, 자존심만 내세우면 아무것도 안된다. 서로가 자멸하게 된다.
결국 조경과 건축은 하나가 되어야 한다. 건축과 조경이 별개로 움직이는한 두 분야 모두, 지금 하고 있는 도시계획, 지역계획 조차도 멀어지게 되며, 일거리도 덩달아 줄 수 밖에 없다. 우리의 수많은 졸업생들이 어디로 가야 할지 생각해보자. 화합하고, 하나되면 더 큰 그림을 그릴 수 있다.
이제 학문과 예술, 그리고 기술에 이르기까지 융합의 시대를 맞고 있음이 틀림없다. 분업화 되고 세분화 된 독자영역으로는 경쟁하기 어려운 시대가 되었다. 건축과 조경이야말로 통합 내지 융합의 과정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 바로 오늘의 상황이다.
건축과 토목으로 분류되면서 도시계획은 물론 지역계획까지도 건축의 몫이 아닌 지금을 생각해 볼 때, 건축과 조경이 하나였다면 특수토목을 제외한 상당부분을 수행할 수 있었을 것으로 확신한다.
산과 강, 숲과 땅 할 것 없이 환경과 경관의 조화를 이끌어 낼 '조경'의 역할이야말로 아무리 강조해도 모자란다. 그렇다고 건축논리가 빠져버린 조경 만으로의 싸움은 다윗과 골리앗에 비유해 다를 바 없다. 자연과 인간의 논리는 조경분야가, 인간과 문화의 논리는 건축분야가, 서로 융합하고 조화해나가야 한다.
별도로 분리되어 자기 욕심만 부리기보다는 함께 도우면서, 실속을 차리는 것이 현대를 사는 융합의 조건이 된다. 관련 학회와 협회, 그리고 조경사와 건축사는 물론 관련 기술자들이 머리를 맞대야 한다.
정리·동영상·사진_나창호 기자
- 글·동영상 _ 나창호 기자 · 라펜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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