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호 걷고싶은 길, 덕수궁길의 굴욕

보행자보다 차량편의 우선, 의미퇴색
라펜트l나창호 기자l기사입력2013-11-28

국내 1호 걷고싶은 길, 덕수궁길이 줄었다는 기사가 최근 조선일보, 중앙일보 등 주요일간지를 통해 보도됐다.

 

신문에서는 덕수궁길이 보차도 경계부의 사괴석을 제거하고 그 자리를 아스팔트와 경계석으로 덮었다고 전했다. ‘외국인 관광객을 위한 대형버스 출입, 보도(사괴석) 파손 민원제기, 사괴석 단가 등이 공사원인이었다고 하였다.

 

신문보도 이후 대형버스의 편의를 위해 보행자 도로를 줄인다는 것, 그것도 상징적인 덕수궁길을 줄인다는 사실’때문에 많은 조경인이 SNS으로 주객이 전도됐다는 반응을 보였고, 시대를 역행하는 서울시 행정을 질타했다.

 

실제 현장확인 결과, 줄어든 것은 보행자도로가 아니라 인도와 차도 사이의 경계부였다. 가로, 세로 5cm 크기의 사괴석 3줄을 드러내고 아스팔트를 입힌 것. 보행로는 그대로였지만, 대신 경계부 일부와 요철이 사라지고, 그 자리는 아스팔트와 경계석이 대신 차지했다.

 

 

기존 구간과 공사 구간의 교차점. 사괴적 자리에 아스팔트와 경계석이 들어섰다. 제1호 걷고싶은 길이라는 말이 무색할 만큼, 보도시공 마감이 정교하지 못하다.(11월 27일 모습)  

 

서울시의 형태경 보도환경개선과장은 차도를 넓히고, 보도를 좁히고그것을 위해 했던 공사가 아니라, 시공된지 15년 이상된 사괴석을 바꾸기 위한 것에 초점을 맞춘 것이라고 해명했다. 관리주체인 중구청에 접수된 민원도 수백건에 달했고, 중간중간 보수공사도 여러 차례에 걸쳐 실시됐다.

 

하지만 차도와 보도의 실제 너비가 기존과 차이가 없더라도 운전자는 넓어진 도로에서 주행을 하기 때문에 제한속도 30km는 쉽게 넘길 수 있다는게 전문가 지적이다. 보행자에게 위압감을 주고 교통사고 발생률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래서 이러한 걷고싶은 길을 조성하기 위해서는 사람의 심리요소를 크게 적용해야 한다는게 중론이다. 실제 덕수궁길의 설계도 ‘S형 가로구조, 볼라드, 사괴석, 험프, 바닥패턴 등을 통해 차량이 속도를 늦추게 하는 기법들을 사용하였다. 이번 서울시 보도공사의 문제는 그러한 보행자 중심의 설계개념을 이해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출발한다.

 

무엇보다 1998년 조성된 덕수궁길은 국내에서 처음 시도된 보행자중심의 거리라는 점에서 특별한 존재이다. 서울시 공원녹지사업소(현 푸른도시국)가 우리나라 최초로 추진했던 이 사업은 자동차가 아닌 보행자의 권리에 처음 눈을 돌린 국내사례라는 점에서 의미를 곱씹을 수 있다.

 

최근 정부와 지자체가 적극 추진하는 걷고싶은 거리 사업 등에 내재된 보행자중심 사고에 불을 지핀 것이 바로 덕수궁길 프로젝트다청주시에서는 자동차의 속도를 낮추면서 사람과 자전거가 안전하게 통행할 수 있는 완전도로까지 대두되고 있는 실정이다.

 

 


 

덕수궁길은 국내외 많은 관광객이 찾는 대표 거리였음에도 단순히 예산절감과 효율성만을 앞세운 땜질식 보수공사였다장소성과 주변경관, 거기에 보행자 눈높이까지 고려하는 세심함이 적용돼야 했었다.”는 전문가들의 지적도 있었다.

 

덕수궁길을 설계한 김성균 교수(서울대 조경·지역시스템공학부)는 이 사건의 핵심을 보행자 도로의 축소냐, 도로부의 확장이냐에 머무르게 하지 말고, ‘걷고싶은 거리 사업의 상징성까지 두어야 한다고 밝혔다.

 

덕수궁길의 이번 사례가 자칫 전체 걷고싶은 거리 사업의 후퇴를 가져올 수 있다는 설명이다

 

마지막으로 김 교수는 "덕수궁길은 한국 근대조경역사상 조경분야에서 이루어놓은 쾌거이며, 국토교통부가 주최한 공모에서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길로 선정된 현대조경의 문화유산"이라며, 조경분야가 중심이 되어 찾아준 시민들의 첫 보행권’인 만큼 조경분야의 관심이 절실하다고 호소했다.

 

글·사진 _ 나창호 기자  ·  라펜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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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_1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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