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은 어느 나라에 있는 도시일까?

글_주신하 서울여대 원예생명조경학과 교수
라펜트l주신하 교수l기사입력2014-12-11
너무 쉬운가요? 물론 독일이지요.

서울이 대한민국의 수도인 것처럼 베를린은 독일의 수도가 맞습니다. 그런데, 베를린이 독일에만 있는 것이 아니더군요. 미국에도 베를린이 있습니다. 그것도 한 두 곳이 아니라 수많은 베를린이 있습니다. 제가 연구년으로 와 있는 오하이오 주에만 하더라도 델라웨어 카운티, 이리 카운티, 홈즈 카운티, 녹스 카운티, 마호닝 카운티 등에 베를린이란 마을이 있습니다. 사실 오하이오 주는 미국에서 가장 많은 베를린이 있는 주라고 하네요.



가장 유명한 베를린마을은 아미쉬(Amish) 공동체로 유명한 홈즈 카운티의 마을입니다. 아미쉬공동체는 재세례파 신앙을 유지하며 전통적인 생활방식을 고수하며 생활하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미국 지명에서 유럽의 흔적을 찾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내친 김에 오하이오 주에 다른 유럽지명들이 있나하고 찾아봤습니다. 런던, 더블린, 리버풀, 세필드, 파리, 리옹, 암스테르담, 로마, 밀라노, 베니스, 리스본, 아테네 등 웬만한 도시 이름은 다 있는 것 같더군요.

물론 유럽의 지명하고는 발음과 철자가 조금씩 다르긴 합니다. ‘뉴’가 붙은 지명까지 하면 훨씬 더 많은 유럽식 지명들을 찾을 수 있을 겁니다. 이런 유럽식 지명은 오하이오에만 해당하는 것은 아닙니다.

미국은 유럽으로부터 건너온 이민자들이 일군 나라입니다. 영국과 프랑스, 네덜란드, 독일 등 다양한 나라에서 이민 온 사람들이 뿌리를 내리고 살고 있지요. 처음 미국으로 건너온 사람들은 같은 나라, 같은 지역 출신들끼리 모국의 문화를 고수하며 살았습니다. 이런 공동체는 시간이 흐르면서 좀 희미해지긴 했지만 현재까지도 미국의 베를린 마을에는 약 15%이상의 독일계 주민들이 살고 있다고 합니다. 일부 베를린 마을에서는 일상적인 인사말로 영어보다 독일어가 더 많이 사용되기도 한다고 하네요.


워싱턴 DC의 가로 표지판의 모습. 주요 가로명이 숫자와 알파벳으로 구성되어 쉽게 위치를 파악할 수 있지만, 그 지역과 관련된 이야기는 지명에서 읽을 수가 없습니다.

하여간 이렇게 공동체를 이루고 지내던 이민자들에게도 뭔가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달래는 방법이 필요했을 것입니다. 아마도 친근한 고향이름을 자신들이 일군 마을의 이름으로 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었겠지요. 마치 서울에서 ‘전주식당’이라고 이름 붙이는 것과 비슷한 심리였을까요? 이렇게 고향에 대한 그리움으로 붙여진 유럽식 지명의 마을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현재와 같이 미국에 유럽식 이름으로 자리 잡게 된 것이지요.

유럽식 지명들에서도 미국의 이민의 역사를 살펴볼 수 있는 것처럼, 인디언식 지명에서는 아메리칸 인디언 문화의 흔적을 읽을 수 있습니다. 얼핏 일본식 인사말처럼 들리는 오하이오 주의 이름은 사실 이로키 인디언 말로 ‘크고 넓은 강’이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인디언들이 부르는 강의 이름이 주의 이름이 된 것이지요. 미시시피도 역시 치피와 인디언 말로 ‘긴 강’이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지형적 특징에 민감했던 인디언 문화가 지명에 반영된 결과인 셈입니다.

이처럼 지명은 그 지역의 이야기를 반영합니다. 그런데 작은 동네 단위로 내려오면 미국의 지명들은 좀 많이 혼동됩니다. 같은 이름을 너무 많이 돌려쓰거든요.

다른 주의 이름을 도시 이름으로 쓰기도 하고, 다른 도시의 이름을 길 이름으로 쓰기도 하는 식이지요. 콜롬버스에만 하더라도 미시건 애버뉴, 인디아나 애버뉴, 필라델피아 애버뉴 등이 있습니다. 또 같은 이름이 너무 많다 보니 미국에서는 도시이름을 말할 때 꼭 주 이름을 같이 붙여서 부릅니다. ‘콜럼버스, 오하이오’라고 하는 식이지요. 실제로 이웃하는 인디아나 주에도 콜롬버스가 또 있습니다. 이름 붙이기 귀찮은(?) 경우에는 길 이름으로 그냥 숫자나 알파벳으로 붙여 놓은 경우도 있습니다. ‘34th street’나 ‘N street’라고 하는 식이지요. 도로명이 좌표값을 의미하게 되어서 위치 파악에는 도움이 될 수 있겠지만, 그 지역에 대한 이야기는 지명에서는 읽을 수가 없습니다.

이렇게 반복되는 지명이나 무의미한 숫자나 알파벳이 길 이름이 된 데에는 아마도 미국의 짧은 역사와 너무 넓은 국토가 그 이유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보게 됩니다. 그 지역과 관련한 이야기가 부족하다는 것이지요.

반면에, 우리나라에는 각 마을마다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거리가 아주 풍부하지요. 전설도 있고, 지형적인 특징도 이야기 거리가 됩니다. 그 지역 출신 위인도 마찬가지이고요. 지명을 만들 만한 이야기 거리가 아주 풍부한 편입니다. 실제로 우리나라의 많은 지명들은 이런 지역의 이야기와 관련되어 있지요. 그래서 지명은 그 지역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매우 훌륭한 자원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최근 우리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도로명 주소’에서 이런 지역 이야기가 잘 반영되지 않는 것 같아 매우 안타깝습니다. 풍부한 이야기 거리를 다 버리고 미국식 작명방식을 취할 필요는 없는데 말이지요. 자칫 잘못하면 수 천년동안 전해 내려오던 지역 이야기가 없어질 수도 있습니다. 기왕에 바꿀 거라면 좀 더 신중하게 진행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끝으로 ‘오하이오’에 관한 농담으로 이야기를 마무리 할까 합니다. 일본에 다녀온 미국사람이 다른 미국인에게 합장을 하며 ‘오하이오’라고 인사를 했습니다. 인사를 받은 미국인은 잠깐 생각을 하더니 합장하는 모습을 흉내 내면서 이렇게 답을 했다는군요. ‘뉴~져지’

주신하 
서울대학교 농학사
서울대학교 조경학석사
서울대학교 공학박사
(현)서울여대 원예생명조경학과 교수

_ 주신하 교수  ·  서울여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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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fent@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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