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도시의 통합설계 철학 필요성
[기고]안명준 조경비평가우리는 다방면에서 경계가 흐려지고 있음을 목도한다. 그것은 물리적이기도, 비물리적이기도 하다. 경계가 흐려진다는 것은 한계(limits)를 벗어난다는 의미가 아니라 그 물리적 또는 비물리적 영역성(liminality)을 벗어나 새로운 영역과의 교호 또는 확장, 구영역과 신영역 사이의 혼성(hybrid)이 이루어짐을 의미한다. 이러한 혼성은 다시 과거의 것과 현재의 것 그리고 미래의 것 사이에서 뒤섞이며 뜻하지 않은 종합(synthesis)을 이루며 창발적인 새로움(또는 새길)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우리 도시에서도 녹색실천, 도시농사, 정원박람회, 녹색인프라 등이 유행인데, 기존 전문분야 외연에서 먼저 부각하고 있어 전통적인 분야 구분으로는 이해하기 어렵고 혼란스러운 경우가 많다. 이러한 경향은 어바니즘과 엔지니어링, 조경과 건축, 건축과 도시, 정원과 공원, 원예와 정원일 등 전문분야 사이의 경계에서는 이미 흔하다. 그것은 공간과 행위에 대한 전통적 구분과 접근이 이제 그다지 효과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이러한 변화에 융(복)합, 통합 등 종합을 지향하는 지적과 용어가 많이 쓰인다. 도시와 관련되는 통합(통합성, integrity) 담론은 소위 포스트모더니즘 이후 본격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하는데, 분석 사고에서 종합 사고로 전환되고 이와 관련한 몇 가지 파생 개념들이 실천 분야를 중심으로 다양하게 전개되면서였다.
이러한 태도는 전체를 향한 종합적 판단과 혼합(mix) 요청에 그 근원을 두고 있으며, ‘조합-통합-융합-통섭’의 네 단계로 그 양상이 범주화됨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여기서 다분야 언어(매체)로서 도시경관과 관련해 우리가 지금 추구할 바는 전통적 종합인 조합(assemblage), 화학적 혼합인 융합(convergence), 그리고 지식의 혼합인 통섭(consilience), 이 세 가지에 있지 않다. 각자(개체)를 인정하며 새로운 완전함을 추구한다는 의미에서 통합(integration)이 우리 도시가 추구할 방향이라고 강조하고 싶다.
통합(성)의 개념은 각자를 인정하며 또다른 완전한 것을 지향한다는데 의미가 있다. 즉, 개체가 모여 전체를 이루고, 각 개체는 전체에 일정하게 기여하고 작용하면서 완전하고 새로운 차원의 또다른 전체(일상도시)를 이루어내는 것이다. 따라서 통합은 ‘각자의 전문성, 공통의 지향성, 수평적 소통성, 내적 진화, 나아가 서로 함께하는 공진화’ 같은 공통된 지향을 함께 가진다. 그리고 이를 실현하는 과정은 통합설계(integrated design)가 먼저 담당하게 된다.
중요한 점은 우리 시대에는 융합 실천에 앞서 통합적 사고와 실천이 먼저 필요하다는 것이다. 통합설계는 건설 관련 분야에 융복합보다 먼저 고민돼야 할 주제이다. 그것은 제품화가 어렵고 각각의 상황에 맞게 각자의 전문분야가 전체를 위해 기여할 부분이 분명하며, 도시민의 광의의 요청과 합의에 대응할 방법론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융합을 먼저 내세우거나 융복합적 실천을 강조하는 논의들에 신중해야 하며, 융합이 가진 전체주의적 속성에 대응할 수 있어야 한다. 지금 시점에서 통합과 통합설계는 그것에 대응할 수 있는 우리시대의 철학이자 실천 대안인 셈이다.
그렇다면 통합설계의 지향은 어떠해야 할까? 그간의 경험은 우선 우리 도시가 커뮤니티 중심 통합설계의 설정과 실천이 필요함을 지적해 주었다. 물리적 인프라 중심 도시에서 감성 중심의 도시 재생이 시대적 요청이고, 거기엔 사람과 생태, 커뮤니티가 담겨있다. 여기서 각각의 전문분야가 가지고 있던 고유의 기능과 역할이 어떻게 공적 공간(공공재)에서 구현되며 발전하는지 살펴야 한다. 각각의 전통적 기능을 완전히 소거하거나 흡수하지 않고 각 영역과 개념을 유지하면서 창조적 공진화(융합이 아닌 통합의 태도)가 가능하도록 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통합설계는 인문학자들이 지적하듯 ‘통섭’ 같이 도시와 유리된 담론이 아니라, 의사결정 과정과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시대적 요청을 담는다고 하겠다. BIM, IPD, 지속가능한 건축 등 통합설계를 지향하는 기법들이 이제는 통합의 진정한 의미와 가능성에 보다 솔직할 필요가 있다. 모두가 함께 진화한다는 입장에서 우리 도시 전체에 대한 통찰을 바탕으로 일상도시의 공공정원화를 고민하고, 공유재로서 도시경관의 매체화를 지원하는 통합설계론이 절실하다. 그러할 때 혼란속의 새길은 분명해질 것이다.
- 글 _ 안명준 조경비평가 · 서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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