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둥산을 푸르게, 아사카와 다쿠미를 재조명하다

국립수목원-대진대-지역사회, 미래 한일관계 모색
라펜트l나창호 기자l기사입력2014-10-07



일제강점기, 조선의 산림녹화에 헌신한 일본인이 있다. 망우리 국립묘지 그의 비석에는 ‘한국의 산과 민예를 사랑하고 한국인의 마음속에 살다간 일본인 여기 한국의 흙이 되다’란 비문이 새겨져 있다. 조선옷을 입고, 조선말을 하다 같은 일본인의 박해를 받고, 조선에 푸른산을 남기고 떠난 아사카와 다쿠미가 주인공이다.


지난 2일에는 국립수목원(광릉)이 소재한 경기도 포천시와 지역사회가 중심이 되어 아사카와 다쿠미(1891~1931)를 재조명하는 강연이 진행됐다. 대진대학교 행정학과와 (사)포천미래포럼은 아사카와 다쿠미를 통해 미래의 한일관계를 모색하는 시간을 가졌다.


아사카와 다쿠미는 1914년 조선으로 건너와 조선총독부 농공상부 산림과 임업시험장(현 국립산림과학원)에서 근무한 일본인이다. 무자비한 벌목으로 황폐해진 조선땅을 안타까워한 그는 자연 상태에서의 지력을 이용해 조선오엽송 종자를 발아시키는 이른바 '노천매장법'을 세계 최초로 개발해냈다. 이해주 과장(국립수목원)은 “아사카와 다쿠미 선생은 2년에서 1년으로 재배기간을 단축시키는 연구를 성공시켜 우리나라 산림녹화와 임업분야에 기여한 공로가 크다.”며 그의 업적을 설명하였다. 포천시에 있는 국립수목원(광릉)도 그의 손길이 남아있는 곳이다.  어떤 방식으로 조성할지 계획하고 수종까지 직접 골랐을 정도로 애정이 각별했다.


허훈 교수(대진대 행정학과, 수목원가는길 문화마당 공동대표)


이해주 과장(국립수목원 전시교육과)


백조종 부회장(아사카와 다쿠미 현창회)


허훈 교수(대진대 행정학과)는 포천군 일원이 도농복합시인 포천시로 승격한 2003년 무렵, 지역의 정체성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아사카와 다쿠미와 조우했다고 전했다. 중앙정부 뿐아니라 지방정부 간 국제교류가 본격화되던 무렵 아사카와 다쿠미의 고향 야마나시현 호쿠토시는 포천시와 자매결연을 맺었다. 포천시와 호쿠도시의 교류의 행정안내는 백조종 부회장(아카사와다쿠미 현창회)이 맡아 추진했다.
 
허 교수는 “골목, 동네, 그 속의 개인까지 지역이 살아야 국가도 발전한다. 포천시 정책에 대한 연구를 진행해오며, 아사카와 다쿠미의 존재는 비단 지역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한일 양국의 관계를 정립하는데 있어 분명한 미래를 제시해 줄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이번 세미나의 개최의미를 짚어주었다. 나아가 “그가 조선인을 사랑하고 조선문화를 이해했던 것은 동정심이 아니라 그의 본성에서 발현된 인류애와 맞닿아 있다.”며 앞으로 그에 대한 보다 활발한 재조명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2011년 아사카와 다쿠미 80주기에서 이어령 석좌교수(이화여대)도 “좋든 싫든 간에 이젠 글로벌한 세상에서 살 수 밖에 없다. 그런 이유에서 100년 전에 보여준 다쿠미의 정신은 단순히 '오래된 과거'가 아니라 현재 우리가 배워야 할 '오래된 미래'”라고 역설했다.


무엇보다 이 행사를 통해 지역적 맥락에서 아사카와 다쿠미를 중심으로 형성된 ‘국립수목원-대학-지역’의 연동을 그릴 수 있었다. 다쿠미의 고향, 호쿠도시까지도 그 끈이 닿아있는 모습이다. 이처럼 대진대학교와 (사)포천미래포럼, 아사카와 다쿠미 현창회, 그리고 국립수목원에 이르기까지 각각의 주체가 그에 대한 정보를 교류하며 지역과 새로운 한일관계의 새 모델을 그려나가고 있었다. 






아사카와 다쿠미는 조선의 땅과 문화를 아끼고 사랑했던 인물로 회자되고 있다. 그의 업적을 재조명하는 영화와 책도 빛을 보았다. 에미야 다카유키의 소설 ‘백자의 사람 - 조선의 흙이 되다’과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가 차례로 국내에 소개되기도 했다. 사진은 배수빈 주연의 영화 '백자의 사람'

글·사진 _ 나창호 기자  ·  라펜트
다른기사 보기
ch_19@hanmail.net

네티즌 공감 (0)

의견쓰기

가장많이본뉴스최근주요뉴스

  • 전체
  • 종합일반
  • 동정일정
  • 교육문화예술

인기통합정보

  • 기획연재
  • 설계공모프로젝트
  • 인터뷰취재

커뮤니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