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덕궁 전통식생과 경관 답사

한봉호 서울시립대 조경학과 교수 해설
라펜트l신혜정 기자l기사입력2016-07-17


지난 4일(토) 궁궐 속에 숨겨진 전통조경의 의미를 답사를 통해 찾아보는 ‘세계유산 창덕궁 답사’가 진행됐다.

이번 답사에는 관련 전공 대학생, 시민정원사, 일반인 등 총 50여명이 참석했으며, 한봉호 서울시립대 조경학과 교수가 ‘창덕궁 전통식생과 경관’에 관한 해설을 진행했다.

창덕궁은 아름답고 넓은 후원 때문에 다른 궁궐보다 왕들의 사랑을 많이 받았다. 자연 지형을 그대로 살리면서 골짜기마다 정원을 만들었는데, 부용지, 애련지, 관람지, 존덕지 같은 연못을 만들고 옥류천 주변에는 소요정, 청의정, 태극정 등 아담한 규모의 정자들을 세워 자연을 더 아름답게 완성했다.

후원은 왕과 왕실 가족의 휴식을 위한 공간이었지만, 왕이 주관하는 여러 가지 야외 행사가 열리는 장소이기도 했다. 조선 초기에는 왕이 참석하는 군사 훈련이 자주 실시되었고, 활쏘기 행사도 열렸으며, 대비를 모시는 잔치나 종친 또는 신하를 위로하는 잔치도 베풀어졌다.

또한, 왕은 후원에 곡식을 심고 길러 농사의 어려움을 체험하였고, 왕비는 친히 누에를 쳐서 양잠을 장려하기도 하였다.

후원은 창덕궁 전체의 60%를 차지할 정도로 넓고, 가끔 호랑이가 나타나기도 했을 정도로 깊다. 게다가 절경들은 골짜기마다 숨어 한꺼번에 드러나지 않으므로, 직접 걸어서 골짜기의 연못과 정자들을 찾아 다녀야만 후원의 진정한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

행사 관계자는 “우리나라 전통식생에 대해 일반인들도 많은 관심들을 갖고 있다. 이번과 같은 답사 기회를 지속적으로 늘려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돈화문 일원



돈화문에 들어서자마자 커다란 회화나무가 보인다. 이 회화나무는 동궐도에도 나와 있는 오래된 나무이지만, 현재는 점차적으로 죽어가고 있다. 

콩과식물인 회화나무는 대기 중에 질소를 흡수해서 뿌리박테리아를 통해 토양에 질소 고정을 하는 역할을 한다. 그러나 이런 질소 고정을 하는 콩과식물은 대부분 수명이 짧은 편이다.

이 나무 역시 수명이 다 되었거나 혹은 개발로 인한 지하 배수 문제가 발생했을 수도 있다는 게 전문가들 입장이다.

진선문에 들어가기 전, 500년 정도 살아온 오래된 느티나무가 한 그루 서있다. 느티나무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 사는 수목 중 하나이다. 학명은 ‘Sawleaf Zelkova’이며, 속명인 ‘Sawleaf’는 입이 작은 나무, 종명인 ‘Zelkova’는 목질부가 단단해서 목재로 쓸 수 있다는 뜻을 갖고 있다. 즉 목질부가 단단하기 때문에 천 년까지 살 수 있을 정도로 수명이 매우 긴 편이다.

반대로 목질부가 약한 참나무류는 수명은 150-200년 정도로 매우 짧다. 특히 아카시나무는 콩과식물로 수명이 70여 년 정도인 것으로 조사된다. 

느티나무는 수관폭이 넓어 흔히 정자목으로 쓰인다. 주로 마을 입구 어귀에 식재되며, 마을 사람들이 모여앉아 커뮤니티 장으로 사용되어 온 우리 민족에게는 상당히 중요한 나무이다. 

그러나 이 나무 역시 최근 4-5년 사이에 죽어가고 있다. 느티나무 옆 수로를 복원하는 과정에서 뿌리가 썩었고, 그로인해 나무가 죽어가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인정전 일원



인정전의 배경이 되는 식생은 주로 70년생 상수리나무가 식생하고 있다. 기록을 보면 원래 이 곳은 소나무가 주를 이루고 있었다. 계급사회였던 조선시대 때, 소나무는 권위, 장수, 지조의 상징이자 지역을 대표하는 나무로 많이 심겨지기도 했다.

일제 감정기 시대를 겪으면서 창덕궁 내 소나무들이 거의 다 베어나갔고, 창덕궁이 공원으로 개방되어야만 했던 아픈 역사를 겪어야 했다. 이런 과정을 걸치면서 자연스럽게 참나무류가 발화해 지금의 식생을 이루게 됐다.

동궐도에는 창덕궁 내 소나무가 듬섬듬섬 심겨진 것으로 묘사된다. 이를 토대로 자연 상태의 소나무가 아니라 지속적으로 소나무를 심어왔다고 추정하고 있다.

기록을 보면 서울 남산에 있는 소나무도 전부 인공적으로 심은 것으로 확인된다. 6년 전에 한봉호 교수는 100년 넘은 소나무의 종자를 받기 위해 유전자 조사를 실시했다. 유전자 분석 결과 한국소나무의 지역형 중 어떤 것 일치하는 것이 없었다. 한국소나무는 지역형으로 중남부고지형, 동북형, 금강형, 중남부평지형, 위봉형, 안강형 등 총 6종으로 분리된다. 추적하다 보니 조선시대 때 전국에서 소나무 종자를 받아다 식재했기 때문에 유전자 교잡이 일어났다. 창덕궁 역시 이를 근거로 전국에서 종자를 받아 소나무를 심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반면 창덕궁의 주 식생인 참나무는 전통적으로 주로 연료인 땔깜으로 사용되었고, 먹을거리와 그늘 등 많은 용도에 사용되어 왔던 나무이기 때문에 우리 민족에게 상당히 실용적인 나무로 인식되어 온다.


대조전 일원 화계




대조전 일원은 가족들과 함께 사적으로 휴양을 하는 곳이다. 화계 담장에는 십장생 문양이 들어가 있고, 굴뚝에는 포도와 학이 그러져 있다. 십장생은 오래 살기를 기원하는 불로장생의 의미를 갖고 있으며, 포도와 학은 각각 다산과 장수의 의미를 갖고 있다. 


후원



전부 소나무림이였던 후원에는 현재 자연발화한 참나무류와 음나무류가 많이 자라나고 있다. 동궐도를 보면 후원에는 음나무, 느티나무, 주목, 뽕나무 등이 묘사되고 있다. 

한봉호 교수는 “담장에서 반경 20m 까지만 소나무로 바꿔도 궁궐의 배경이 훨씬 더 자연스러워 보일 것”이라고 주장했다.

후원에 식재된 참나무 역시 3년 전부터 서울시를 중심으로 유행처럼 번진 참나무시들음병을 피해갈 수 없었다. 참나무시들음병이란, 건강한 참나무류에 광릉긴나무좀이 뚫고 들어와 알을 낳고, 줄기의 수분 통로를 막혀 서서히 말라죽는 병이다. 

창덕궁 후원에는 현재 참나무시들음병에 걸린 수목마다 갈색 비닐을 씌어 놓은 상태이며, 병든 나무 주변에 수목을 베어내어 충분한 햇빛과 바람을 통해 자가치료하는 방법으로 방제하고 있다.  


부용지와 주합루



부용지 주변의 높은 지형차로 인해 화계가 만들어졌고, 관목이 식재되어 있다. 우측에 있는 영화당은 부용지를 바라보기 좋은 장소이며, 앞 공터는 옛날엔 창덕궁과 연결되어 있던 곳으로 과거시험을 보던 장소로 사용됐다. 


애련지와 의두합



애련지란 이름은 송나라 유학자 주돈이의 ‘애련설’에서 유래됐다. 약간 혼탁한 연못이 거울처럼 주변 경관을 아름답게 빚추고 있다. 연못의 식생은 수면에 붙어사는 수련과 물 위로 서 있는 연꽃이 있다. 


존덕정 일원



참나무 시드름 병으로 죽은 나무가 보존되어 있다. 죽은 큰 나무는 딱따구리가 둥지를 틀기도 하고 곤충들이 찾아와 하나의 생태계를 이룬다. 독일에서는 죽은 나무가 종 다양성이 높아 천연기념물로 지정하여 관리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자연을 존중하고 자연을 즐기기 위해 경관이 좋은 곳에 정원을 들어가도록 조성했다. 우리는 자연을 존중하고 같이 살아야 할 존재로 생각했던 것이다. 

한봉호 교수는 “온고지신(溫故知新)으로 과거를 통해 우리의 미래를 창출해야 한다. 우리 것을 생각하고 우리 것이 아름답다고 느끼고 우리 것을 발전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일본 도코에서 모든 녹지와 공원을 만들 때 숲을 모델로 만든다고 한다. 즉 녹지와 공원을 하나의 숲으로 만드는 것이다. 우리도 남산과 창덕궁에서 그런 모습을 찾으려고 노력하지만, 데이터 수집과 시간적 한계가 있어 완전한 모습의 대안이 없는 상황이다. 

끝으로 한봉호 교수는 “조선시대의 모습을 만들기 위해 지금의 식생을 바꿔야 하는지, 70년의 세월을 인정하고 유지해야 하는지 고민해야 한다. 지금의 우리 사회에서 역사를 바라볼 때 어떤 눈을 가지고 바라봐야 하는지 생각해야 한다"며, 우리의 유산을 어떻게 보존하고 관리해야 하는지 ‘나무가 아닌 숲을 볼 수 있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_ 신혜정 기자  ·  라펜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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