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와 조경 사이를 오가며 사유하는 사람들

젊은 조경연구가 모임 ULC Press, ‘조경 × 문학’ 세미나 개최
라펜트l김수현 기자l기사입력2021-08-06
ULC Press은 조경과 예술의 관계를 조망하고자 마련된 연속 세미나인 ‘OPEN SPACE, OPEN ARTWORK’의 첫 번째 순서를 ‘조경 × 문학’를 지난달 14일 개최했다.

이번 세미나에서는 임한솔 ULC Press 에디터가 ‘경관쓰기의 시학’이라는 주제로 발제를 맡았다. 임 에디터는 옴스테드와 휘트먼을 대표적 조경가와 시인으로 선정하고 그들에게 나타난 조경과 시의 틈새를 살펴봤다. 그리고 시와 조경의 기원과 역사적 사례 등을 통해서 둘 사이에 다리를 내리기 위한 관점과 전략을 전달했다.

발제 이후 진행된 토론에서는 이수학 아뜰리에나무 소장과 박세미 월간 Space(공간) 기자가 참석해 조경과 시에 대한 견해를 교환했다. 

이수학 소장은 근대라는 시대에서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는 시의 위상과 조경을 비교하며, 보편적 아름다움을 강조했다. 박세미 기자는 등단한 시인의 과점에서 플라톤과 아도르노의 예술론을 통해서 조경의 특징을 살펴보고, 조경을 감각을 체험하는 공간으로 해석했다.


이수학 아뜰리에나무 소장, 박세미 ‘월간 Space(공간)’ 기자, 임한솔 ULC Press 에디터가  ‘OPEN SPACE, OPEN ARTWORK’의 첫 번째 세미나인 ‘조경 × 문학’을 지난달 14일 진행했다.

시와 조경 사이의 골짜기를 메우기 위해서

임한솔 에디터는 ‘경관쓰의 시학’이라는 발제문에서 시와 조경의 닮은점과 차이점을 논하면서 둘 사이에 존재하는 틈과 이 틈을 메우기 위한 하나의 관점을 소개했다. 

그는 근대 조경의 창시자인 프레드릭 로우 옴스테드와 동시대에 활동한 시인인 월트 휘트먼을 소개했다. 산업화와 도시화가 진행되던 1850년대 뉴욕에서 이 둘은 한 시대를 대표하는 시인과 조경가로 활동했다. 당시 옴스테드는 센트럴파크를 조성하고 있었고, 휘트먼은 대표작인 『풀잎』을 완성해 나가고 있엇다.

휘트먼은 『풀잎』을 출판하기 전 신문편집자로 활동하면서, 뉴욕에 공원 조성을 찬성하는 여러 편의 글을 쓰기도 했다. 하지만 휘트먼은 완성된 센트럴파크를 보고 큰 실망을 표했다. 

임한솔 에디터는 휘트먼이 실망한 이유를 “공원을 통해 도시의 문제를 계획가의 입장으로 해결하고 그 방책으로 픽처레스크 미학의 재현을 택했던 옴스테드와, 분주한 도시인의 일상을 느린 시선으로 포착하고 시로 옮기며 미국의 정체성과 민주주의를 사유했던 휘트먼의 입장은 여러모로 다르다. 시인의 관점으로 세계를 보기 시작한 휘트먼에게는 정확한 목적을 반영하는 설계를 기본으로 조성된 공원은 자신의 이상과 맞지 않았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더 나아가 임 에디터는 “설계와 시 쓰기는 결정적으로 각각 언어와 경관을 매체로 삼는다는 점에서 다르다. 설계에서 글이, 시 쓰기에서 경관이 차지하는 위상도 만만치 않지만 최종 결과물이 드러나는 방식 차이는 두 분야의 거리를 한층 멀게 벌려놓는 듯 하다”며 시와 조경 사이의 간극을 지적했다.

하지만 그는 조경과 시 사이의 틈새를 인정하면서도 “생태와 예술의 이원 구도가 현대 조경 담론의 전통적 화제가 되어버린 현재, 언어 예술인 (시)문학과 경관 실천인 (조경)설계 사이의 간극을 좁힐 생각의 고리가 없을까”라고 고민하면서, 조경과 문학 사이의 긴장을 조정하기 위한 방법을 제시했다.

우선 임 에디터는 발생론적 차원에서 “경관이 언어의 원천”이고, “그림, 조각, 음악, 연극을 비롯한 각종 예술과 밀접한 관련을 맺어왔고 문학 또한 예외가 아니다”라 하며, 조경과 문학의 친밀성을 강조했다.

그는 경관에서 영감을 얻은 대표적인 문학가로 알렉산더 포프, 윌리엄 쉔스톤, 괴테 등을 꼽고, 문학에서 영감을 받은 정원으로 이탈리아의 빌라 란테와 영국의 스타우어헤드 정원을 예시로 들었다.

문학과 조경 간의 교류는 서구뿐 아니라 조선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흔히 발견할 수 있는 사각형 연못은 유학자인 주렴계와 주희가 읊은 시를 모티프로 한 것이다. 임 에디터는 “문자를 다른 매체보다 우위에 뒀던 동아시아의 전통에서 조경 행위는 늘 문학, 특히 시와 긴밀한 관계를 맺었다”며 시와 경관이 문화권과 관계없이 긴 세월 동안의 깊은 연관을 보였다고 전했다. 

이어서 임 에디터는 시와 조경의 관계를 과거와 같이 복원하고자 매튜 포타이거(Matthew Potteiger)와 제이미 퓨링턴(Jamie Purinton)의 이론에서 제시된 5가지 전략을 소개했다.

▲이름짓기는 사물에 과거의 기억과 기념, 미래의 지향으로 이어지는 정체성과 서사를 부여하는 것 ▲배열하기는 요소들의 배치나 시각장의 조절을 통해 변화를 느끼게 하고 이야기의 흐름과 강약을 구현하는 것 ▲드러내고 감추기는 땅에 깃든 역사를 발굴하거나 노출 여부를 통제함으로써 대상지에 대한 해석을 경관으로 나타내는 것 ▲머금기는 세계관이나 신화와 같은 서사를 알레고리나 환상, 기념, 수집 등을 통해 공간화하는 것 ▲열기는 이미 결정되어 닫혀 있는 서사를 지양하고 동시대의 복합적이고 다양한 목소리들을 살아있는 서사로 끌어들이는 것이다.

특히, 임한솔 에디터는 “이름짓기부터 머금기까지의 네 가지 전략은 조경과 공원이 탄생하기 전부터 으레 쓰이던 기술이다. 물질문화/정신문화의 구분에서 전자의 비중이 높을수록 정원 양식이나 형태 요소가 발달하고 후자의 비중이 높을수록 조형보다 해석에 집중한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쓰기’와 관련하여 현대 조경 실천에서 주목할 부분은 ‘열기’”라며 ‘열기’라는 전략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대상을 억압하지 ‘열기’를 통해서 대상지의 숨은 맥락을 찾아 기억과 일상을 경관화해야 한다고 했다. 임 에디터는 “주민과 함께 하는 커뮤니티 설계에서 설계안에 대한 의견 나눔 못지않게 기록되지 않은 과거의 이야기를 꺼내어 나누는 과정이 점차 많아지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며, 현대 조경에서 강요 없는 ‘열기’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고 했다.


조경과 시의 불가능성, 경관에서의 체험

이수학 소장은 시와 조경을 근대적 배경에서 비슷한 운명을 만난 존재들로 이해했다. 그는 시와 조경의 유사성에 주목하면서 “애초부터 경관과 시는 하나였고 조경가와 시인은 하나였던 시절이 있었다”며 정조의 10경을 소개하기도 했다.

이후 산업화 시대가 도래하고 조경이 원형으로 삼던 자연이 사라지면서 ‘그런 시절’은 끝나버렸다. 이 소장은 이런 종말을 시와 시작(詩作)에서도 발견했다. 그는 루카치의 소설이론의 첫 문장을 인용하면서, 원형으로 삼을 만한 자연이 사라진 시대의 조경이 처한 어려움과 불가능성을 신이 사라진 시대에서의 시작(詩作)의 불가능성과 비유했다. 근대적 합리화와 산업화가 시와 조경의 예술적 가능성을 잠식했다는 것이다.

이 소장은 이에 대한 해결로 “조경을 조경하듯이 하지 말고 시 쓰듯이 한다는 측면에서 시가 이야기하는 풍경을 그려내도록 하면 어떨까 하고 ‘시적 조경’이란 것을 생각해본 적이 있다. 조경을 하는 자세에 대한 이야기다. 설계를 하다 보면 말이 많아지기도 하고, 자주 구차해지기도 하는데 그런 것들을 다 비워냈을 때는 조경이 어떤 풍경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에 대한 생각이었다. 시의 보편성은 조경에도 중요하다. 사람들이 정말 좋은 것을 감각하게 해 주는 조경이 필요할 것”이라고 하면서 무위의 조경과 보편적 아름다움에 대한 감각을 일깨워 주는 조경이 조경의 새로운 지평을 여는 가능성을 가졌다고 말했다.

박세미 기자는 플라톤과 아도르노 사이를 오가며 시와 조경이 지닌 관계성을 분석했다. 

플라톤은 시의 기능성과 목적성, 사회성에 주목하고 미적 관심이 최종적으로는 좋은 국가를 형성하는 정치적 관심을 지향해야 한다고 말했다. 반대로 아도르노에 의하면 시는 무기능성과 무목적성이 사회에서 특정한 기능을 수행한다.

박 기자는 시인으로서 이 두 가지 관점을 모두 수용하며, 시와 시작(作)을 사회적 맥락과 자신을 분리하고 탈규범적 맥락을 획득하는 자기 표현적 행위로 이해했다. 이와 동시에 독자와의 의사소통의 매개로 활용되는 시의 ‘공공성’ 또한 중요하게 여기는 자신의 시론을 전했다.

이어서 시와 조경과의 관계를 이야기하면서 시가 건축보다는 조경을 닮았다고 했다. 건축에 비해서 조경은 시간성과 통제할 수 없는 요소인 자연을 수용하기 때문이다.

박 기자는 시가 지니는 육체적, 감각적, 무목적성 성격을 조경에서 체험할 수 있다고 봤다. 그는 “일상을 살아가는 일반인으로서 시와 조경 사이의 무언가를 찾는다고 했을 때 산책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경관 안으로 직접 들어가는 어떤 행위를 산책이라고 본다면, 산책이 갖는 특성 중 하나는 무목적성, 어딘가 목적지 없이 걷는 것 자체에 기반한 개념이고, 이 부분이 시와 닮았기 때문에 산책이 시와 조경의 사이를 잘 연결해줄 수 있는 개념 같다”며 조경과 시와의 유사성을 감각과 체험이라는 개념으로 꼽았다.
_ 김수현 기자  ·  라펜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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