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정수의 자연예찬] 자연이 주는 생명의 위대함

글_정정수 오피니언리더(JJPLAN 대표)
라펜트l정정수 대표l기사입력2023-01-25
정정수의 자연예찬
자연이 주는 생명의 위대함



_정정수 JJPLAN 대표,
ANC 예술컨텐츠연구원 원장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생물은 스스로 또는 상호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생명의 힘을 아무렇지도 않은듯 자연스럽게 보여준다. 위대한 생명에 대해 ‘어떻게?’ 또는 ‘왜?’라는 질문이 붙는다면 그 대답은 한결같이 ‘자연의 원칙’으로 귀결된다.

이러한 사실에 견주어 생각해보면 인류의 삶 또한 자연적인 현상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다. 나는 인간이지만 내 육체는 자연 속에 있는 하나의 생명체일 뿐이다.

자연은 과학의 잣대로 재기에는 불가능한 생명현상의 모습이 너무도 많다. 세상의 모든 책을 다 모아 놓아도 그 내용은 자연의 작은 일부에 불과할 정도로 자연 속에는 많은 답이 있다.

자연이라는 대안이 있음에도 이를 찾을 수 없다면 할 수 없지만, 교육을 통해 훌륭해지려는 사람보다 더 훌륭한 자녀를 원하는 부모가 있다면 자연과 친해질 수 있는 기회를 많이 만들어주어야 한다.

언젠가 길을 가다 화분 채 버려진 못난이 석죽을 발견했다. 그것이 갖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버려졌다는 안타까운 사실에 마음이 움직여 집으로 가지고 왔다. 그러나 내 정원은 이미 식물들로 가득 차 있어서 좋은 자리는 심을 만한 곳이 없었다. 그래도 여유 있는 장소가 그늘진 곳이었기에 그곳에 심어두고 잊고 있었는데, 얼마 후 이것이 넘어져 있는 것을 발견하고 내심 포기하고 있었다. 

그런데 얼마 후에 다시 보니 똑바로 서 있는 것이 아닌가? 그렇다, 그늘에 적응하기 어려웠던 석죽이 빛과 가까운 쪽으로 넘어져 흙에 닿아 있던 마디에서 뿌리가 나오고, 그 뿌리가 제 몸을 지탱할 만했던지 그곳에 자리를 잡고 몸을 세운 것이다. 신비함, 미안함, 반성과 또 다른 느낌을 한꺼번에 갖는 순간이었다. 동물처럼 발이 없는 식물이 그 다음 해까지 1m 이상을 이동해 자신의 터전을 확보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끈끈이주걱은 0.0000008그램의 무게를 감지한다고  한다. 이처럼 작은 식물들에서조차도 생명의 신비로움은 끝이 없다.


생명은 꾸준함으로 만들어졌다

동물보다 훨씬 더 빠른 식물들의 복원능력은 사람이 숲속에서 호흡하며 사유하는 것만으로도 대부분의 질병을 치유하는 능력을 발휘한다.

실제로 필자는 2009년 11월 담도암 판정을 받고 수술이 결정되었지만, 심사숙고 끝에 “내 몸속의 암은 내가 만든 것이기에 내가 책임지고 해결하겠다”고 병원을 나와 식생활을 바꾸고 자연과 더 가까이하는 식생활을 하였다. 그 결과로 지금은 99% 정상에 가깝게 치유되었다.

필자는 종교를 갖고 있지는 않다. 그래도 묻는다면 그것은 ‘자연’이라고, 나는 ‘자연’을 믿는다고 말할 수 있다. 내게 자연은  종교이자 신앙이다. 

14년이 지난 지금은 완치가 되었음은 물론 전보다 더 건강해졌다고 생각한다. 

어떤 이는 “의사의 오진이었을 것이다”라고 하지만, 내가 그 오진을 믿고 수술을 했다면 나는 지금 이 세상 사람이 아닐 확률이 99.99%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참고가 될 수도 있는 내용을 유튜브 영상으로 대신한다.


건강상태를 객관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증거로, 현재 운행하고 있는 차량의 주행거리를 보면 된다. 구입한 지 12년 3개월 된 차의 주행거리가 922,398㎞이다. 암을 극복한 내가 건강한 지를 확인할 수 있는 수치이다. 이것은 9만 2천을 잘못 표기한 것이 아닌 92만을 표기한 것이다. 92만㎞라는 거리를 쉽게 이해하려면 지구 둘레가 약 4만㎞라고 볼 때,  지구 둘레를 23바퀴 돈 거리이다.

이만큼의 주행거리는 한 사람의 전문적인 드라이버가 직업으로 주행하고도 남을만한 일의 양이다. 나는 드라이브 이외의 일도 하고 있으므로 두 몫의 역할을 했다해도 과언이 아닐뿐더러 건강하다는 증명이겠다.

주행거리 92만㎞는 지구를 23바퀴 돈 거리다.

사람들은 지식으로 포장된 문명이라는 이름으로 스스로도 모르는 사이에 자연과 단절시키려는 삶을 살곤 한다. 자신은 물론 자녀들에게도 자연의 일부이기를 망각하고, 심지어는 자신에게 내재된 주어진 능력조차 쓰레기처럼 버리는 우를 범하고 있다.

내면에 잠재된 눈을 뜨기 위해서는 그것이 원하는 방향으로 마음을 움직여야 한다. 이를 경험한다면 지식을 넘어서는 깨달음의 길에 한 발 들어설 수 있게 된다.

경쟁하고 양보를 거듭하며 생명을 유지하는 식물들이 봄을 맞기 위해서 반드시 치러야하는 것이 꽃샘추위다. ‘꽃샘추위’는 겨울이 끝나고 봄을 맞은 듯이 따듯하지만, 반드시 강한 추위를 동반하며 계절의 간극을 조화롭게 정리하는 메커니즘이다.

이른 봄에 부정출발한듯 철없이 꽃을 피운 생명들을 꽃샘추위로 정리한 다음 출발선에서 공정하게 출발시키는 환경을 제공해주는 것이 ‘꽃샘추위’의 역할이다. 자연이 만들어주는 생명의 현상들은 참으로 멋지다.


공정하지 않은 공정출발은 지구상의 모든 사회에서 아직도 만연하고 있다.


치유에 대한 작은생각 
 
손가락선인장 한 마디를 따서 모래에 묻으면 뿌리를 내려 하나의 선인장으로 살아갈 수 있게 된다.
 
사람들은 선인장을 믿지 못하고 뿌리가 내렸는지 확인하려고 선인장을 뽑아 확인해 보기도 한다. 오늘도, 내일도 뽑아서 눈으로 확인한 행동은 선인장을 살지 못하게 만든다. 

이것은 일례로 사람이 자연을 믿지 못하고 개입함으로써 모든 생물체가 갖는 스스로 치유 할 수 있는 기회를 박탈하면 생기는 결과이다. 

사람이 사막의 한 귀퉁이에 떨어진 선인장처럼 뿌리내리지 못하는 것은 무언가에 대한 지식이 있기 때문이다. 넓고 다양한 지식이 아닌 편향된 지식을 가진 사람일 수록 얕은 지식을 신봉하는 것으로 보인다.
 
상식보다는 지식이
지식보다는 지혜가
지혜보다는 깨달음이
상위 차원이다.

때로는 무식, 무지가 지식 그 위에 있을 때도 있지만 깨달음에 가까이 접근한 사람은 모르는 것도 안다. 이것을 이해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자연의 순리를 시간을 가지고 몸으로 알게 된 사람이다.

아무것도 모르는 선인장이 사막에서 제 몸의 물을 이용해 스스로 뿌리를 내리는 것처럼 사람들의 생명 또한 어느 면에서는 스스로 치유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이 중요하다. 치료에 비해 치유는 스스로 그러하게 기회를 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원예전문가들은 민들레 뿌리를 채 썰어서 뿌려만 놓아도 민들레꽃을 피우는 개체로 생명을 복원시킨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바다생물 해삼도 토막 내어 두면 각각 하나의 개체가 된다고 한다.) 조경인들이 다루고 있는 식물 또한 자연 그 자체이므로 조경용 자재들을 대하는 마음에서 이들로부터의 배움이 더 커야 한다고 생각한다.

꽃은 피고 지고 또다시 피어나고 있는 것은 내가 숨 쉬고 있는 것 또한 지구가 살아있기 때문이다. 인간은 스스로 죽음을 선택할 수 없다. 자연이 스스로 그러하듯 생명순환의 길을 걷는 것이다.
_ 정정수 대표  ·  JJPL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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