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사기] 마포문화비축기지, 건축인가 공원인가?

글_건국대학교 산림조경학과 서예람
라펜트l서예람l기사입력2023-07-04
[2023 라펜트 대학생 조경답사기 공모전 대상작]

마포문화비축기지, 건축인가 공원인가?



_건국대학교 산림조경학과 서예람


답사를 시작하기 전

당시 밤새 준비한 3학년 1학기 설계 프로젝트 발표가 끝나자마자 설레는 마음으로 2호선 지하철에 몸을 실었다. ‘많이 보고 직접 느껴야 좋은 설계를 한다.’라는 말은 설계 수업 때마다 듣는다. 이런 이유도 좋다. 그러나 나에게 답사를 다녀오는 일은 다른 세계로의 탈출이다. 새로운 공간을 방문하는 것은 무료한 일상을 벗어나게 하는 좋은 취미가 되어준다.

마포문화비축기지는 인스타그램 사진 한 장으로 내 눈을 단박에 사로잡았다. 사진 속 마포문화비축기지 탱크의 외벽과 암사면 절개지는 정반대의 개념이 묘하게 섞여 있는 매력적인 장소였다. 따스함과 을씨년스러움이 함께 들어있는 질감. 겨울과 여름의 두 얼굴이 궁금해서 두 번의 답사를 다녀왔다. 이번 답사기로 이 공간에 대한 아쉬움을 답사기 마지막 부분에 전해보려 한다.

문화비축기지는 문화를 어떤 방식으로 비축하고 있는가?
건축이 공원의 한 요소로 자리 잡았는가?


마포문화비축기지의 과거

마포문화비축기지는 산업시설을 공원으로 탈바꿈한 사례 중 하나이다. 버려진 공간을 재탄생 시키는 건축을 업사이클링 건축이라 부른다. 폐허와 같은 외관으로 개인적 경험을 불러일으킨다. 따스함과 을씨년스러움이 공존하는 이유이다. 마포문화비축기지의 정체성이 뚜렷하다. 탱크라는 요소 덕이다.

마포문화비축기지는 본래 석유비축기지였다. 1973년에 중동전쟁으로 인한 1차 오일쇼크의 타격으로 원유값이 4배 가까이 급등했고, 이에 대비하고자 세워진 시설이다. 일반인의 출입을 금한 1급 보안시설에는 40만배럴의 유류가 비축되었다. 이곳에 무엇이 있었는지 일반인들은 존재조차 몰랐다. 이후에 2002년에는 한일월드컵 상암 경기장이 기지의 맞은편에 세워지게 되고, 석유비축기지는 위험시설로 분류되어 2014년까지 폐쇄된다. 이후 2014년에 비축기지의 재생, 공원화 사업을 위한 국제설계경기가 이루어진다. 공모 당선작은 RoA 건축사사무소의 ‘PETRO : Reading the Story of the site.’로 탱크와 풍경이 하나로 어우러진 유일한 작품이라는 평가를 받은 작품이다. 문화비축기지라는 명칭은 이때부터 설계 공모 주제였던 ‘문화비축기지 만들기’에서 나온 이름이 쓰이게 된다.


위성 사진 출처 : RoA 건축사


위성 사진 출처 : RoA 건축사


겨울과 여름 두 번의 답사

중산로 측 입구에서 바라본 첫인상은 생경함이다. 매봉산 자락에 자리잡은 녹슨 탱크 5개. 그 앞에는 황량한 콘크리트 마당이 펼쳐졌다. 여타 공원과는 다른 규모의 큰 여백이다. 너른 모래밭 위의 개미가 된 기분이다. 제법 넓은 진입로 끝에는 광활한 광장이 있다. 무엇을 보여주고자 한 것일까. 정리가 덜 된 공사장 같다는 첫인상에 광장을 가로지를 생각을 접고, 표지판을 통해 탱크로 향하는 우측 언덕길을 올랐다. 제법 경사가 높았다. 언덕 사면의 듬성듬성한 은사초 군락을 구경하다 보니 정글에 자리 잡은 초소가 보인다. T4 건물이다.


T4 건물


T3 건물

이야기관은 점검으로 인해 휴관 중이었기에 바로 옆 건물 T4로 향했다. 마침 진행되던 전시는 나현 작가의 <빅풋을 찾아서>. 같은 시각, 다른 공간에서 발생한 두 사건과 그로부터 파생된 존재들의 실종에 대한 전시다. 캄캄한 탱크 내부 벽체 한 면을 다 메워 영상을 쏘고 있다. 한가운데는 커다란 빅풋 조형물이 자리 잡고 있다. 모든 탱크는 탱크 자체를 보강하거나 구조물로 사용되지 않는다. 전등과 같은 설비들도 탱크자체에 부착되지 않았는데, 이는 탱크 원형에 대한 존중이다. 탱크의 외피와 내피 사이로 회유하며 절개면을 볼 수 있다.

전시관 T4를 나와 조금 걷다 계단을 오르면 탱크 원형을 보존해 놓은 T3가 보인다. 녹슨 탱크의 외피, 본래 자리 잡았던 콘크리트 옹벽이 매봉산의 칡덩굴과 강렬한 대비를 이룬다. 이 탱크 원형은 섬처럼 떨어져 있다. 안내판이 시야에 잡히지 않아 들어가도 괜찮은가 생각이 들 만큼 가까이 다가가 보면, 탱크에 묻은 시간을 슬쩍 엿볼 수 있다. 땅속에서 꺼내진 탱크이지만 우리가 직접 땅속에 묻혀 있는 탱크를 보러 땅속으로 직접 내려온 듯하다.


문화 비축기지 공연장, 겨울의 질감


문화 비축기지 공연장, 여름의 질감

문화비축기지 공연장은 하늘 위에 떠 있는 배와 같았다. 무대 뒤로는 파란 하늘만이 있고, 객석 뒤는 매봉산 절개면이 쏟아질 듯 와이어 안에서 버티고 있다. 이곳은 계절 중 겨울의 창백한 날카로움을 꾸밈없이 담아냈다. 너무 날 것이지도, 인위적이지도 않다. 호기심 어린 발걸음으로 이곳저곳 숨바꼭질 하듯 찾아낸 출입구와 흩뿌려진 좌석들은 아이의 장난 같은 순수함이 비친다. 여담으로 본래 이곳에 자리하던 탱크는 커뮤니티 센터인 T6 탱크의 외형으로 쓰인다.

문화비축기지 파빌리온으로 향한다. 이곳은 6번 탱크가 있던 자리를 유리 파빌리온이 대신한다. (기존 탱크는 커뮤니티 센터 T6의 내부 탱크로 쓰인다) 이 파빌리온은 켄틸레버 철골구조 위에 유리를 얹은 공간이다. 빛의 사용을 절제한 통로를 지나 오른쪽으로 꺾어 들어가면 유리 바깥으로 거친 절개지형이 덩굴 식물과 함께 보인다. 비밀스럽게 자리한 창백한 온실은 작가라면 이곳에 무엇이라도 담아보고 싶다는 욕망이 생기는 곳이었다. 파빌리온의 무게감은 엄숙한 클래식과 잘 어울렸다.

마지막으로 가장 큰 탱크인 커뮤니티 센터 내부로 들어간다. 탱크 내부에 들어왔다는 느낌이 가장 강하다. 폐쇄적인 검은 광택의 통로가 긴장감을 유지하며 나선형으로 이어진다. 외부 옹벽, 외틀 옹벽, 내부틀 옹벽이 세 개의 원을 이루어 결합한다. 통로의 끝자락에는 도서관이 위치해 있다. ‘책을 읽다 보면 눈이 쉬려 바깥도 보고 싶을 텐데’ 하고 책을 읽지는 않았다. 폐쇄감이 나를 내쫓는 듯해 바깥으로 나왔다.


절개지


파빌리온


문화비축기지를 향한 비판

마포문화비축기지는 장소의 기억을 가장 단순한 방법으로 담아낸 건축적 공간이다. 그리고 탱크가 전시를 위한 정적인 공간이 주를 이룬다. 건물 내부와 외부 모두 시설이 가진 압도적인 무게감으로 전시에 제격이다. 그러나 가장 큰 아쉬움은 외부 공간의 존재의 이유이다. 넓은 오픈 스페이스에 존재 이유가 불분명하다. 7,000㎡ 규모의 문화마당은 특별한 이벤트가 없는 날 에는 콘크리트 여백으로 남겨진다. 공원 사이트의 소개와 달리 휴먼 스케일을 멀찍이 벗어난 이 의문투성이 문화광장의 존재감은 건물보다 압도적이다. 광장 북동측에 우물 관련 유물과 함께 휴식공간이 마련되어 있기는 하나, 광장 규모에 가려 나갈 때까지 그곳의 존재를 몰랐다. 이 너른 콘크리트 광장은 방문객들이 매력으로 꼽는 매력인 신비로움에 긴장감을 보탠다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특성 때문에 큰 공간이 방치되고 있고, 낮은 이용도로 누군가는 문화비축기지가 실패작이라고도 말한다. 이곳에 음악당을 짓자, 공공의료 건물 부지로 사용하자는 등 여러 의견이 있으나, 다른 용도를 들여오기 이전에 이곳은 서울의 공원이다. 과거 1급 기밀시설이 진정으로 서울시민의 품으로 돌아오기 위해서는 ‘공원’의 성격이 더 짙어야 한다.


문화비축기지의 주인이 누구인가?

이곳의 주인공은 탱크인가? 현재로서는 그렇다. 부지의 역사성을 발굴하는 것이 설계 의도였고 성공적이었다. 모종의 이유로 설계와 시공 기간이 각각 9개월, 1년이라는 말도 안 되게 짧은 시간 안에 완공되었다. RoA 건축사무소 대표는 시간적 제한과 의견 난립으로 이곳의 조경은 한 맥락으로 시작하고 끝맺을 수 없었다고 전한다. 그렇게 공원 부지의 외부공간은 공원 내에서 전시 공간 외의 곳, 진입로로만 이용되는 처지로 전락한 것이다. 사실 당선안을 보면 조경의 개입은 없었다는 것이 자명하다. 곳곳에 보행폭과 동선 연결, 세세한 마감과 언덕의 경사로는 오픈 스페이스로서 비축기지에 의아함을 더했다. 부지 내의 동선은 보행 친화적이지 않다. 경사나 도보 폭이 의도된 것일 수도 있다. 답사 내내 이로 야기된 긴장감이 함께 했으니 말이다. 그러나 문화광장은 흡사 컨벤션 센터의 홀과 유사해 보인다. 이곳으로 답사를 다녀온 동기들도 같은 감상을 내놓았다. 이용을 위한 공원이 아닌 전시를 위한 공원이라는 감상. ‘석유비축기지에서 문화비축기지로’ 설계 공모는 건축 분야로서 진행 되었다. 공원이 되기 위해서는 건축과 조경이 동시에 한 맥락으로 다루어져야 한다.





T4의 사진

문화비축기지가 담으려는 문화는 무엇인가? 문화는 자연 상태에서 벗어나 일정한 목적, 생활 이상을 실현하고자 사회 구성원에 의하여 습득, 공유되는 행동, 생활 양식의 과정과 결과이다. 마포문화비축기지는 스스로를 문화공원으로 정의한다. 문화 공원은 도시의 문화적 특징을 활용해 도시민의 휴식과 교육을 맡을 수 있어야 한다. 문화비축기지가 쓰는 도시 문화는 현 시점에서 ‘전시’와 ‘탱크의 역사성’이다. 이용도의 저하는 콘텐츠의 부족이 하나의 큰 원인이다. 이 넓은 광장을 채우는 것은 콘크리트 포장이다. 탱크가 문화를 비축만 하고 있는 셈이다. 비축된 과거의 문화는 이용자들에게 조영되기만 한다. 인근 주민들이나 멀리서 온 방문객들도 올 때마다 탱크만 보고 갈 수는 없는 노릇이다. 사람으로 문화를 만들어가겠다는 비축기지의 비전은 실행 전이다. 문화비축기지는 문화를 담기 위해 사람을 담을 새로운 준비를 해야 한다. 사람을 담으려면 유보된 비축기지의 조경을 건축과 같은 맥락, 위계로 한 도화지로 그려야 한다. 현재 건축이 담을 수 있는 문화적 활동은 한정적이다. 문화광장을 또다른 건축물로 채우려 하지 말고 조경 설계가 들어와야 한다. 다양한 행태를 담을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 조경이기 때문이다. 또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설계와 시공 과정에서 충분한 기간이 주어져야 할 것이다. 내실이 좋은 공간에는 시간이 필연적으로 들어간다.


문화비축기지의 숨

박물관에 전시된 유물은 사람들의 관람이 뜸해지면 다시 숨을 잃기 마련이다. 마포문화비축기지는 아직 완전한 공원의 모습을 갖추기 이전이다. 공원이 사람들로 인한 활기로 가득 차기를 바란다. 문화광장은 문화비축기지가 마포 문화의 허브로 발돋움하기 위해 남겨둔 조경의 유보지라 생각된다. 문화비축기지를 과거의 현미경으로 남겨두지 않고, 사람으로 문화를 담는 비축기지의 미래를 그릴 수 있게 되기를 고대해본다.


절개지에 자라난 오동나무


T3
글·사진 _ 서예람  ·  건국대학교 산림조경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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