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MZ 전시: 체크포인트’ DMZ를 바라보는 현대미술가 27명의 시선 - 2

동시대 예술의 관점에서 DMZ의 의미, 생태, 화해와 연대의 의미 환기
라펜트l전지은 기자l기사입력2023-10-06
경기도와 경기관광공사는 경기도 DMZ 일대에서 8월 31일부터 11월 5일까지 현대 미술 전시 ‘DMZ 전시: 체크포인트’를 개최했다.

이번 전시는 2023년 DMZ 오픈 페스티벌의 영역 중 하나로 1부와 2부로 나누어 8월 31일부터 9월 23일까지 파주에서 열렸으며, 10월 6일부터 11월 5일까지는 연천에서 진행한다.

‘DMZ 전시: 체크포인트’ 27명의 국내 외·현대미술 작가들이 참여한 전시회로 한국의 분단 상황과 디엠지 접경지역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지를 예술작품으로 표현했다.


이재석

이재석, 쉘터_2, 2022, 캔버스에 아크릴, 227.3×162.1
/ 작가 및 갤러리 바톤 제공


이재석, 오성텐트, 2020, 캔버스에 아크릴, 겔 미디엄, 161.7×240.9
/ 작가 및 갤러리 바톤 제공


전시 전경 / 경기관광공사 제공

이재석은 군대에서의 자전적 경험을 사실적으로 묘사하는 것에서 출발하여 수년간 신체와 물체의 구성 요소가 지닌 유사성을 발견하는 것을 주제로 작업을 하고 있다. 작가는 코로나19로 인해 실내외의 경계가 명확해진 시대적 변화와 군중을 피해 자연으로 떠나기 시작한 사람들의 모습을 ‘안’과 ‘밖’이라는 양가적 속성을 지닌 ‘텐트’라는 소재로 표현한다. D형 군용 텐트에 권력과 허상을 상징하는 별이 표현된 ‘오성 텐트’ 그리고 폐쇄된 벙커처럼 보이는 ‘쉘터_2’를 통해 작가는 안과 밖의 경계를 구분 짓는 것은 무엇인지 분단된 국토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 그 의미를 묻고 있다.


함경아

함경아, 리프린트된 시차 17시와 17시 30분 사이, 예시 1-1, 2023, 아키발 피그먼트 프린트, 리본 테이프, 천, 320×320×160
/ 사진 아인아


함경아, 리프린트된 시차 17시와 17시 30분 사이, 예시 2-1, 2023, 아키발 피그먼트 프린트, 리본 테이프, 천, 320×320×160
/ 사진 아인아

개성공단은 남한 정부와 현대 아산의 주도하에 북한 개성에 만들어진 산업단지이다. 2016년 남한 정부는 북한의 장거리 미사일 발사에 대한 압박의 일환으로 개성공단 폐쇄를 선언했다. 이에 대항하여 북한은 다음 날, 개성 공단에 자리 잡은 남한의 모든 인원에게 북한시간 17시, 남한시간 17:30분까지 전원을 추방하고 자산을 동결한다는 당혹스럽고 갑작스런 결정을 내린다. 북한의 선포 후 4시간 동안 남한의 기업들은 그들의 피땀으로 이뤄낸 사업장을 아무런 기약 없이 탈출해야 하는 영화와 같은 엑소더스가 진행되었다. 남한의 기업인들은 갑작스러운 상황에서 어떤 체계적인 준비도 갖추지 못한 채, 그들이 타고 왔던 차 안에, 위에, 앞에, 뒤에, 가능한 많은 물량의 생산품을 싣고 남한으로 향한다. 두 사진은 개성을 탈출하는 행렬 중 포착한 작은  저널리즘 사진을 재해석하고 가공한 사진이다. 해체하고 다시 형태를 만드는 콜라주 방식을 사용하여 마치 분해나 분열, 그리고 뒤틀어진 신체와 상황을 은유한다. 이 차량들은 더이상 이동 수단이 아닌 신체와 상실을 부재를 의미하게 된다. 새로운 지도를 갖고 항해를 해나가던 최초의 이주민 기(업)으로서의 삶이 그들의 역사가 시대에 맞지도 않는 옷을 입은 채 완장을 찬 최고 권력인 두 국가(또는 분단된 한 국가 지도는 국가가 만들었다)에 의해 분해되고 해체되었다.


전시 전경 / 경기관광공사 제공


임민욱

임민욱, 커레히 – 홀로서서, 2023, 36장 군용모포 아크릴 물감, 페인트 스프레이, 가변설치 /  사진 아인아

‘커레히’는 체로키어로 ‘홀로 서다’, ‘홀로 버틴다’라는 뜻이자 캠프그리브스에 주둔했던 미 사단 2506연대의 모토이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육군의 낙하산 보병을 훈련하던 506연대는 조지아주 커레히 산 근방에 위치해 있었다. 국내 주둔한 가장 오래된 미군기지 가운데 하나였던 캠프그리브스의 체육관 시설에는 총 33장의 군용모포가 높은 천장으로부터 낙하산처럼 걸려 있다. 군용 모포는 혹독한 훈련과 참혹한 전장 속에서도 잠시나마 의지할 수 있는 안전과 평화의 영역이어야 한다. 작품에 사용된 군용모포의 앞면에는 간혹 국군 이름과 물감이 배어 나온 흔적들이 있고, 이면에는 의미를 알 수 없는 형상들이 떠 있다. 허공에 떠 있는 모포들은 꿈처럼 해석이 불가능하고 피아 구분이 불가능한 경계를 보인다. 군대는 몸과 생각 등이 훈육되는 장소이지만, 잠은 연대 없이, 이념 없이, 목적 없이 다가온다. ‘커레히-홀로 서서’는 통제된 DMZ를, 통제를 벗어난 영토로 그리고 있다. 잠은 정복될 수 없기 때문이다.


장수미

장수미, 오블리끄 센세이션, 2023, 장수미 임은정 퍼포먼스, 약 20분 / 사진 아인아

‘오블리끄 센세이션’은 이질적 공간이 갖고 있는 표면의 기억과 신체의 무-의식적 영역에 존재하는 움직임들이 교차하는 현상을 다룬다. 두 신체는 서로를 탐색하며 횡단하는데 손가락 끝의 떨림은 타자의 살갗에 잠시 머물렀다가 미끄러지면서 내부로 파고들어가 극도의 포화 상태가 된다. 그 신체는 포자가 되어 캠프그리브스의 이 장소에서 저 장소로 이주한다. 퍼포먼스가 진행되는 시공간에 있는 우리는 돌봄, 폭력성, 경계 없음, 무관심, 욕망과 함께 고르지 않은 길에서 흔들리고 있다. 전쟁이 기록하는 공식적인 사건과는 달리 신체의 미시적인 감수성에 기생하는 움직임들은 서로를 수용하며 동시에 변환하게 하는 정동의 지점을 모색한다.


서용선

서용선, 시선, 2005, 리넨에 아크릴, 500×480
/ 서용선 아카이브 제공


서용선, 뉴스와 사건, 1997, 1998, 캔버스에 아크릴, 250×600
/ 서용선 아카이브 제공


전시 전경 / 경기관광공사 제공

꾸준히 사회와 정치적인 문제들에 관심을 가지고 동시대의 사건들을 그림으로 표현하는 서용선은 이번 전시에 남과 북 사이의 갈등을 소재로 하는 두 점을 선보인다. ‘시선’은 남과 북을 가로지르는 휴전선을 배경으로 한다. 당시 작가는 그 현장을 방문하여 남과 북이 서로 마주하는 장면을 보면서 분단된 국토에 대한 다층적인 기억을 교차하였다. 작가는 서로가 서로를 감시하는 상황 앞에서 느낀 공포와 긴장 그리고 증오와 열망 같은 감각적인 자극을 경험하였고, 그 감정들을 화폭에 표현하였다. ‘뉴스와 사건’은 1990년대 후반. 당시 북한에서 벌어진 식량파동과 미사일 발사 및 핵 개발로 남북한의 긴장 관계가 최고조에 달했을 무렵 그린 작품이다. 남북의 관계는 악화하여 연일 위협적인 사회적인 분위기가 조성되었으며, 작가는 긴장감을 유발하던 당시 사건들을 파노라마 형식으로 풀어내며 그렸다. 그러나 이후 2000년대에 남북한 교류가 시작되며 평화의 분위기로 전환이 되었다. 서용선은 역사가 되는 현장들을 경험하며 그 일련의 사건들이 맥락 속에서 이해되고 기억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묵묵히 작품을 그린다.


성시경

성시경, 오델로, 2022-2023, 캔버스에 유채, 116.1×91.9
/ 작가 제공


성시경, 오델로, 2022-2023, 캔버스에 유채, 116.1×91.9
/ 작가 제공


성시경, 여러 입구들, 2022-2023, 캔버스에 유채, 200×230 / 작가 제공

성시경의 작품은 오래전 중단한 그림을 바탕으로 한다. 언제 그렸는지, 어떤 생각과 감정에서 멈췄는지 기억이 잊힐 정도로 시간이 지난 캔버스를 다시 마주했을 때 떠오르는 상상에서 다시 시작한다. 성시경은 그림이 중단되었던 시간을 단절된 시간이 아닌 연속적인, 숙성의 시간으로 받아들인다. 작가는 캔버스에 구체적으로 물감이 올라가는 방식 순서에 따라 선과 면의 경계가 계속해서 뒤바뀌는 화법을 구성한다. ‘오델로’라는 보드게임은 그의 기법과 유사하다. 녹색의 격자무늬 판 위에 흑색 돌이 앞과 뒤로 놓이면 가운데 백색 돌이 전부 흑색 돌로 변화하는 법칙에 비유한 그의 화법은 점, 선과 면이 상대적으로 구성되고 변화하며 채워진다. 성시경의 그림에서 나타나는 이러한 유동성은, 오늘날 DMZ의 정지된 듯한 풍경 이면에 다양한 사건과 세계정세에 맞추어 시시각각 변화하는 분위기, 모습과 비견된다.


박노완

박노완, 석상과 거북이 장난감, 2023 캔버스에 수채, 163×130
/ 작가 제공


박노완, 동상들, 2023, 캔버스에 수채, 200x200
/ 작가 제공

무언가가 오랜 기간 기억하길 바라며 제작되곤 하는 석상은 시간이 지나 환경과 상황이 변화하면서 본래의 의미와는 동떨어져 다르게 보이고는 한다. 박노완은 다양한 돌조각상들을 통해 시간이 흘러 본래의 의미와 다르게 보이고 읽히는 풍경을 마주하였다. 작가는 시간과 흐름과 상황의 변화에 따라 본질이 왜곡되는 대상의 형상을 수채물감으로 그리고 다시 닦아내는 기법을 통해 지저분해 보이는 얼룩들로 치환하고 이 표현을 낯설지 않은, 익숙한 풍경으로 연출하였다.


전시 전경 / 경기관광공사 제공


마키코 쿠도

마키코 쿠도, 같은 추억, 2023, 캔버스에 유채, 162×260
/ 작가 및 토미오 코야마 갤러리 제공

마키코 쿠도는 DMZ에 방문하여 본인이 경험하고 느낀 것을 바탕으로 ‘같은 추억’을 그렸다. 작가가 두 눈으로 직접 마주한 DMZ는 날씨의 영향으로 안개가 자욱했다. 안개로 인해 흐렸던 그날의 풍경은 작가가  DMZ에 오기 전 그 장소와 그 나라의 정세에 대해서 고찰하며 느꼈던 것과 닮아 있었다. 낯선 그곳에서 야생 산딸기와 오디를 먹어보고 처음 보는 새가 철조망 위에 앉아 쉬어가는 모습을 바라보며 어릴 적 친구들과 같이 놀았던 기억을 회상하였다. 그 어느 날 한국과 북한의 아이들도 그렇게 시간을 보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과 함께 직접 눈에 담은 DMZ의 풍경과 작가의 기억을 겹쳐 하나의 이미지로 표현하였다.


권혜성

권혜성, 우리는 풀이 되어, 2023, 장지에 먹, 아크릴, 분채, 203×284
/ 작가 제공


전시 전경 / 경기관광공사 제공

여행 중에 발견한 아름다운 수풀은 자세히 보니 가족묘였다. 치열한 고지전이 벌어졌다는 연천의 아름다운 봉우리들이 생각난다. 실향민들의 묘지(이북 5도민들을 위한) 동화 경모공원을방문하였고 수많은 무덤 중 유난히 풀이 무성한 곳이 눈에 띄었다. 무덤을 자양분으로 삼아 살려는 것과 죽어가는 것이 뒤엉킨 풀들을 덤덤하게 그려 본다.


박형진

박형진, 나무 한그루를 심고 기다리는 이, 2023, 캔버스에 아크릴, 162×130
/ 작가 제공


박형진, 나무 한그루를 심고 기다리는 이 01, 2023, 종이에 사진 콜라주, 29.7×21
/ 작가 제공

박형진, 한 그루 나무를 마음에 옮겨 놓고 기다리는 이, 02, 03, 2023, 종이에 아크릴, 각 29.7×21 / 사진 아인아

박형진은 초록이 우거진 DMZ의 푸른 땅을 보며 수많은 감정이 녹아 시간이 멈춰버린 땅, 미움을 꾹꾹 눌러 담고 있는 땅,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곳에서 자라나는 어떠한 마음들을 느꼈다. 이러한 감정을 담아 DMZ에서 언제 찍었는지 알 수 없는 인터넷을 검색해 수집한 사진들, 2017년 안보 관광버스를 타고 방문하여 관광객의 시선으로 바라본 땅의 모습을 담은 사진들, 그리고 2023년에 촬영한 선명한 피사체를 가지고 있는, 세 시점의 푸른 모습을 촬영한 사진들을 모았다. 그리고 그 사진들을 출력해 같은 크기로 잘라 종이 위에 쌓았으며 그 모습을 작가의 붓질로 다시 반복해서 그려냈다.


써니킴

써니킴, 벼랑, 2021, 캔버스에 아크릴, 51×64 / 작가 제공


써니킴, 선, 2013, 리넨에 아크릴, 111×134
/ 작가 제공


써니킴, 이곳에서, 2016, 캔버스에 아크릴, 100×125
/ 작가 제공


전시 전경 / 경기관광공사 제공

써니킴의 회화는 기억이 불러일으키는 이미지들을 한 화면에 구성하여 그림 너머 상상의 세계를 구현한다. 그의 회화가 지닌 불 분명한 경계와 익숙하지만 낯선 이미지들은 작가가 만들어 내는 완벽한 이미지임과 동시에 다양한 내러티브를 제공하고 있다. ‘이곳에서’에 등장하는 풍경은 어딘가 본 듯한 익숙하지만 정확하게 어디라고 부를 수 없는 곳이다. 어디부터 어디로 흐르는지 알 수 없는 강물과 어디에서 보았을 법한 산은 사실 명확하게 실재하지 않는 구역인 DMZ의 어느 지점과 같다. ‘벼랑’에서는 옛날 교복을 입은 소녀는 아무도 없는 생경한 풍경의 어딘가를 바라보고 있다. 이 소녀를 통하여 우리는 DMZ의 흘러가 버린 과거와 현재를 그리고 또 불확실한 미래 시간들을 예측할 수 있다. 그리고 ‘선’에서는 보다 불분명한 경계로 속도감이 느껴지는 불안한 풍경을 표현하였다. 이곳은 작가가 중국도, 북한도 아닌 두만강의 어느 지점을 바라보고 그렸다. 작가가 더이상 나아갈 수 없는 곳에서 느낀 수많은 감정을 표현한 이 그림은 실재하는 풍경이자 작가가 느낀 감각의 풍경이다.


미카엘 레빈

미카엘 레빈, 지뢰 숭고, 2015, 젤라틴 실버 프린트, 각46×61
/ Gilles Peyroulet & Cie 제공


전시 전경 / 경기관광공사 제공

철원 근처, 비무장지대의 남한과 북한을 구분하는 지역은 널찍이 정돈되어 경작된 논 사이에 설치된 촘촘한 군 요새 네트워크로 구성되어 있다. 그곳은 지뢰밭이 곳곳에 산재해 있기도 하다. 철조망으로 구획이 이루어진 이 땅들은 60여 년 전 이 시골을 파괴한 전쟁 이후 훼손되지 않은 채 빽빽한 초목이 무성하게 우거져 있다. 낭만적인 풍경은 공포스럽기도 한 아름다움을 유발하는 자연 그대로의 모습과 밀접하게 있어 숭고함을 느껴진다. 현대적이며 길들여지고 조각된 풍경은 지뢰밭으로 대표되는 것을 제외하고는 공포가 거의 남아 있지 않다. 이 전쟁의 흔적은 방해받지 않고 순수한 새로운 형식으로 복원이 가능한 그대로의 자연으로 회복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_ 전지은 기자  ·  라펜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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