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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누구나 놀이터가 필요하다 6

월간 환경과조경20089245l환경과조경
우리는 누구나 놀이터가 필요하다 6청소년들의 프리즘 놀이터 일상의 무늬 : ‘적대적’과 ‘함께 하기’의 사이 장면 1 _ 그들을 보지는 못했다. 그들에 대한 무성한 소문만 들었을 뿐이고 흔적만 보았을 뿐이다. 밤이면 공원의 한 구석에 모여 술을 먹고 담배를 핀다는 소문과, 발로 차서 부쉈다는 휴지통과 병조각 같은 흔적은 그들의 존재를 암시할 뿐이다. 웬만한 어린이공원은 이러한 소문과 흔적을 갖고 있지만, 정작 당사자들인 ‘불량’ 청소년들을 공원에서는 아직 보지 못했다. 보이지 않는 그들이건만 그들을 몰아내기 위한 노력들은 끊임없이 경주된다. 장면 2 _ 1996년 대규모 테러로 망가진 도심을 재건하기 위해 EDAW가 기본계획을 수립했다는 맨체스터의 도심에는 조경가들이 찾을 만한 곳이 많다. 이도우가 설계했다는 캐씨드럴 가든에서는, 한국에서는 소문과 흔적으로만 확인하던 ‘그들’을 눈으로 볼 수 있었다. 한쪽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기도 했고, 끼리끼리 모여 사소한 장난을 하기도 했다. 그곳에서 찍은 사진은 아니지만 아래의 사진은 그곳 청소년들의 모습이기도 하다. 저렇게 검은 옷을 즐겨있고 뽀족머리를 한 그들은 ‘고스(Goth)족’이라고 불린다. 장면 3 _ 영등포에 있는 ‘하자센터’는 색다른 풍경을 지닌 곳이었다. 굴곡 있는 잔디밭과 쇄석으로 거칠게 정리된 마당을 지나 건물로 들어가니, 커피를 앞에 두고 토론하는 광경, 벽에 걸린 그림과 브레인스토밍과 토론의 결과로 보이는 전시물이 이곳의 분위기를 전해주었다. 물리적 환경뿐만 아니라 그들의 관계 또한 색달랐다. ‘청소년’과 ‘어른’은 닉네임으로 서로를 불렀고, 무언가 복작복작 거렸다. 첫 장면에서 그들은 어른들의 눈 밖에 있었고, 두 번째 장면에서는 함께 있었으나 서로 무심했으며 세 번째 장면에서는 같이 무언가를 하고 있었다. 이들은 : (어른들의) ‘눈’ 밖에서 놀고 싶어 한다 ‘하자센터’에서 피터팬으로 불리는 분의 표현처럼, 가능한 한 어른들의 눈 밖에서 놀고 싶어 하는 그들이기에, 세 번째 장면은 흔하지 않다. 어른들 입장에서는 무서운 요즘 애들과, 청소년 입장에서는 꼰대인 어른들의 사이는 넓다. 어른들은 청소년들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아니 그렇다고 믿기 때문에 청소년들은 어른들의 눈을 피해 어두워진 어린이공원의 한 구석, 피시방, 자신의 방에 박혀 논다. 그리고 전화와 컴퓨터 안의 ‘가상세계’에서 또래들과 소통한다. 몇 년 전 어떤 예술가는 자신의 홈페이지에서 청소년들을 향해서 ‘무기력’하다고 호통 쳤다. 골방에서 핸드폰과 컴퓨터에만 매달려있지 말고, 징징거리지만 말고 열심히 일하고 공부하면서 자신의 삶을 개척하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88만원 세대’라는 책을 쓴 우석훈 박사나 ‘하자센터’의 센터장인 조한혜정 교수는, 청소년의 무기력은 그들만의 잘못은 아니며 호통 쳐서 되는 일도 아니란다. ‘이들의 부모세대는 크고 작은 어려움을 통해 자신감을 길렀고 삶에 대한 애착도 키웠지만, 부모의 계획아래에서 자란 세대들은 어느 순간 어느 것 하나 자기 마음대로 해낼 수 없는 상황에서 살아왔음을 알게 된다’(조한혜정, 2008, 『다시 마을이다』)는 것이다. 부모들은 공부만 열심히 하면 모든 게 해결된다고 하지만, 대학을 나와도 취직이 안 되는 언니, 오빠들을 보면서 무력감을 키울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또 청소년을 노리는 1318 마케팅 세력은 어찌나 막강한지 그들로 하여금 소비하지 않을 수 없게 한다. 그래서 대안은 무엇일까? ‘호통’이 아니라면? 하자센터가 제시하는 대안을 좀 훔쳐볼 수 있겠다. 1. 하고 싶은 일 하면서 해야 하는 일도 할 거다.2. 나이 차별, 성 차별, 학력 차별, 지역 차별 안 한다.3. 어떤 종류의 폭력도 행사하지 않을 거다.4. 내 뒤치다꺼리는 내가 할 거다.5. 정보 때문에 치사해지지 않을 거다.6. 입장 바꿔 생각할 거다.7. 약속은 지킬 거다. 못 지킬 약속은 안 할 거다. 이 일곱 가지 약속을 지키면서 말이다. 이 일곱 가지 약속은 하자센터의 화장실, 건물의 외벽 등 곳곳에 쓰여 있다. 청소년들의 프리즘 놀이터 손에 잡히지 않는, 눈에 보이지 않는 빛을 넓은 스펙트럼으로 보여주는 것이 프리즘이라면, 소문과 흔적으로만 존재하는 그들이 자신이 갖고 있는 것을 파노라믹하게 펼치고 여러 가능성을 탐색해볼 수 있는 프리즘 놀이터를 상상한다. 그들이 구석에서 나와, 어른들의 눈 밖에서 나와 놀았으면 한다. 어두운 골방에 박혀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미래에 대해 앉아서 골몰해보았자 별 소득은 없다. 더욱더 깊어지는 생각의 늪. 철학자 김영민은 그래서 ‘생각은 공부가 아니다’라고 하지 않던가. 다양한 문화프로그램을 위한 일곱 빛깔 놀이마당은 있되, 감시와 의심의 눈길은 없어 일탈의 본능이 무력해지는 곳이었으면 한다. 공공미술프리즘이 ‘프리즘’ 이라는 단어에 투사하고 있는 의미를 빌려와도 좋겠다. prism : 매개체를 통해 펼쳐지는 다양성 free-zoom : 자유롭게 줌 인, 아웃free-zone : 그들을 자유롭게 할 공간 그런데 가만 생각해보면, 보이지 않는 빛과 소리와 바람을 가시화하는 것은 또 있다. 꽃과 나무와 나비와, 다양한 동물과 식물. 바람은 나뭇잎에 잡혀서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고, 계절은 꽃과 나무를 통해서 제 모습을 드러낸다. 새는 땅 위의 그림자로 자신을 알린다. 그러니 프리즘 놀이터는 정원이거나 숲이어도 좋겠다. 자연의 온갖 것이 자신을 드러내는 곳에서, 청소년들이 자연의 온갖 것에 자신을 빼앗겼으면 좋겠다. 이곳에서 친구들과 쿵작쿵작 어울려 주도적으로 놀이판을 만들고 자연의 감수성을 한껏 충전시키면서 자신의 자아 이미지를 조금씩 만들어나갔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들의 놀이에 ‘낄’수 있고 다양한 경험치를 제공해줄 어른도 함께했으면 좋겠다. 글 _ 김연금·커뮤니티 디자인센터, 유다희·공공미술프리즘(본 원고는 요약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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