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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한 풍경은 없다(6): 원서동의 작은 화분, 여름 이야기를 시작하다

월간 환경과조경20097255l환경과조경

저곳에 누가? 왜? 저 나무를? 심었을까?
일단 옹색하게 심겨진 나무들을 보자.
이제, ‘저곳에 누가? 왜? 저 나무를? 심었을까?’에 대해 생각해보자.

 

정원이 있는 이는 있는 대로, 없는 이는 없는 대로 열심히 꽃과 나무를 심는다. 작은 화단에, 빨간 물통에, 화분에. 그런데 우리만의 이야기만은 아닌듯하다. 방콕이라는 도시의 한 장면을 보자. 도시의 물길을 따라 펼친 저들의 생활 풍경만큼, 나무도 치열하게 심겨져 있다. 누가? 어떻게? 저기에? 나무를 심을 생각을 했을까?

 

저렇게 누추한 곳에 나무를 심는 이유는 짐작하기 쉽지 않다. 주인장의 소일거리로? 꽃이 피어서? 자신의 상가 앞에 주차하지 말라고? 공기 정화 차원에서? 무수한 이유를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이야기’는 어떨까? 무수한 짐작 중의 하나로서.

 

나무 이야기
원서동의 어느 오후, 길가에서 만난 할아버지는 가벼운 옷차림으로 고추 모종을 화분에 나란히 심은 후, 얼마간 이 작은 식물의 자립을 도와줄 기둥을 세워 모종과 함께 실로 묶고 계셨다. 저 작업이 끝나면 아마 물을 주실 것이다. 어린 식물은 애잔하고, 심겨진 모습은 가지런하다. 사진을 찍을 테니, 포즈를 취해달라는 주문에, 어색하게 ‘자연스러운’ 포즈를 취해주신다. 그러면서 하시는 말씀. “여름엔 저기서 고추가 꽤 열릴 거야.” 그 한마디에 여러 장면이 머리를 스친다. 잎이 마르지는 않았나 유심히 살피시는 모습, 열매에 기뻐하실 모습, 주변에 자랑하실 모습, 한 여름 끼니때, 저런 옷차림새로 갓 따낸 싱싱한 고추를 된장에 쿡 찍어서 드실 모습. 그가 물질적으로 손에 쥐게 될 것은‘고추 몇 개’이겠지만, 그는 앞으로 몇 개월을 저 고추와 함께 하면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남길 것이다. 원서동 작은 화분의 올여름 이야기 시작.

 

신이 사라진 시대의 집, 마을, 도시의 이야기를 위하여
다시 앞에서 말했던 ‘짐작’으로 돌아와서. 당신은 위의 이야기들에서 ‘그 나무’를 심는 이유로 왜 ‘이야기’를 제시했는지 짐작했을 것이다. 그 나무들은 우주의 흐름에 응대해 자라면서, 우리의 일상에 섞여 감성과 시간을 함께하고 우리와 소통하며 이야기를 만든다.

 

그런데 오래된 집과 마을, 절을 돌아다니다 보면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존재는 나무뿐만이 아니다. 절로 향하는 길가에는 어김없이 일주문이 있는데, 절에 들어가기 전에 마음을 하나로 모으도록 하기 위해서란다. 또 대웅전에 도달하기 전에 나타나는 종루는 불법을 중생에게 알리기 위해서란다. 어느 오래된 집 담벼락에 그려진 포도나무는 ‘다산’을 상징한다고 하고, 어떤 마을에서는 풍수지리 때문에 우물을 팠다고 한다. 공간 여기저기에서 자꾸 말을 건다. “나는 그냥 여기에 있는 것이 아니야! 내가 품은 뜻은 말이야…”하면서. 지금은 ‘신기한데’ 정도로 그들의 말 걸기에 응대하지만, 예전에는 어떠했을까? 진지하게, 진심으로 말 걸기에 대꾸하지 않았을까? 물리적이고 기능적인 계단, 담, 우물을 넘어, 그 숨겨진 상징과 의미는 생활 속에서 유기적 관계를 가지면서, 혹은 어떤 주제를 향해 재배치되면서 의미의 연결을, 즉 이야기를 만들어냈을 것이다.

 

우리의 도시공간에서도 다시 이야기가 있었으면 한다. 공간과 우리가 함께 이야기를 만들기 어려운 지금, 우리와 말이 통하는 것은, 서로의 말 걸기를 알아듣고 응대할 수 있는 건, 그나마‘나무’이다. ‘생명’에, ‘우주’에 기초한 언어는 범용적이기에. 그런데 나무 외에도, 우리 집의, 마을의, 도시의 다른 것들과도 재미난 이야기를 만들 수는 없을까? 그리고 또 우리는 어떤 이야기를 만들어 나가야 할까? 그게 다신이건 기독교의 신이건, 불교의 신이건, 신이 사라진 시대에 우리가 도시에 숨겨야 할 상징과 도시와 함께 꾸려나갈 이야기는 어떠한 것이어야 할까? ‘일상’의 소소한 이야기가 아닐까하는 또 다른 짐작을 해본다. 신의 이야기가 아닌 우리 일상의 이야기. 우리가 살아가는 ‘여기 지금’의 이야기. 나무와 우리가 나누는 이야기처럼 어떤 진심어린 이야기. 방법은? 글쎄. 나무에게서 배워야 하나. 우리의 일상과 감성에 참여하는 방식을, 소통하는 방식을 말이다.

 

김연금, 유다희  ·  조경작업소 울, 공공미술 프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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