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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그림, 물을 철학하다

월간 환경과조경20134300l환경과조경

Water is expressed philosophically as old paintings

 

신화시대의 물3
눈물이 흘러 강물이 되고 - 역사책이 감춘 역사

 

세상에는 사실을 사실로 말할 수 없는 진실이 있다. 말할 수는 없지만 말해야만 할 때 사람들은 진실의 외피에 살짝 엷은 색을 입혀 본질을 감춘다. 때로는 전혀 다른 색을 칠해 상대방의 눈을 속이기까지 한다. 진실이 드러날 경우 치명상을 입거나 생명이 다칠 위험이 있을 때 쓰는 안전장치다. 신화와 전설은 사실이 아니다. 사실이 아닌 만큼 그 내용의 진실 여부를 확인하기는 불가능하다. 확인할 수 없는 만큼 과장이 심하고 현실성도 떨어진다. 정확하게 입증할 수 있는 근거도 미약하다. 그러나 신화와 전설을 조금만 깊이 들여다보면 그 안에서 생생한 진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신화를 만든 이야기꾼(話者)은 자신이 전하고자 하는 내용이 눈 밝은 사람에게 안전하게 전달될 수 있도록 진실의 겉에 껍질을 입혔다. 껍질은 마치 환자가 쓴 약을 삼킬 수 있도록 내용물에 캡슐을 씌우는 것과 같다. 캡슐을 벗기고 나면 수 천 년의 세월을 견뎌서라도 꼭 밝히고 싶은 진실이 담겨 있다. 이것이 우리가 역사책이 아닌 신화와 전설에 열광하는 이유다.

 

소상팔경도의 실제 장소인 소수와 상수
소상팔경도(瀟湘八景圖)는 중국과 조선, 일본에서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은 산수화다. 소상(瀟湘)의 아름다운 풍경을 여덟 장면으로 그린 그림인데, 소상(瀟湘)은 소수(瀟水)와 상수(湘水)를 합한 말로 중국 호남성(湖南省) 남안(南岸)에 있는 지역을 지칭한다. 소상팔경도는 소수와 상수를 포함해 두 물줄기가 흘러드는 동정호(洞庭湖)일대를 배경으로 그렸다.
동정호는 중국 최대의 호수로 주변의 산과 강이 아름답기로 유명한 장소다. 예로부터 많은 시인과 화가들은 소상의 아름다운 경치를 시로 읊고 그림으로 남겼다. 전국시대(戰國時代) 초(楚)나라의 시인 굴원(屈原, B.C.343?~B.B.277?)이 『이소(離騷)』에서 소상(瀟湘)을 처음 언급한 이래 두보(杜甫, 712~770)의 「등악양루(登岳陽樓)」, 범중엄(范仲淹, 989~1052)의 「악양루기(岳陽樓記)」 등 많은 시가 쏟아져 나왔다.
북송(北宋)의 송적(宋迪, 약 1015~약 1080)은 처음으로 소상팔경도를 그렸는데, 우리나라에는 고려시대에 전래되어 조선 후기까지 지속적으로 그려졌다. 소상팔경도는 평사낙안(平沙落雁, 물가에 내려앉은 기러기), 원포귀범(遠浦歸帆, 멀리서 돌아오는 배), 산시청람(山市晴嵐, 맑게 갠 산속의 도시), 강천모설(江天暮雪, 강과 하늘에 내리는 저녁 눈), 동정추월(洞庭秋月, 동정호에 뜨는 가을밤의 달), 소상야우(瀟湘夜雨, 소상에 내리는 저녁 비), 연사모종(煙寺暮鐘, 구름과 안개 속에 들려오는 저녁 종소리), 어촌낙조(漁村落照, 어촌에 비치는 저녁 노을)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소상팔경도는 실제 있는 장소를 그린 그림인 만큼 실경산수화(實景山水畵)라 불러야 마땅하다. 그러나 시대가 흐르면서 소상팔경도는 실경이라는 의미 대신 아름다운 경치를 그린 산수화의 대명사가 되었다. 또한 멋진 장소라는 의미를 넘어 누구나 가보고 싶은 곳, 살고 싶은 이상향으로 탈바꿈되었다. 그러다보니 그림도 관념적이고 형식화되었으며 비슷비슷한 틀이 형성되었다.
국립진주박물관에 소장된 《소상팔경도》 중의 <소상야우>와 <동정추월>을 살펴보겠다. <소상야우>는 비가 내리는 저녁 풍경을 그린 작품이다. 나뭇잎이 무성한 것으로 봐서 한여름이나 초가을일 것 같다. 비바람이 심하게 몰아치는 듯 나뭇가지가 꺾일 정도로 위태롭다. 붓질에 따라 사선으로 그어진 먹빛이 휘몰아치는 빗줄기를 실감나게 보여준다.
강가에는 버섯처럼 웅크린 집이 몇 채 서 있을 뿐 나루터에도 돌다리 위에도 사람 모습은 흔적조차 찾을 수 없다. 오직 어둑해진 밤에 내리는 비만 천지의 주인이다. 만약 지나가던 나그네가 비를 만나 발길이 묶였다면 객지에서 느끼는 여수(旅愁)가 만만치 않으리라.
<소상야우>가 격렬한 고독을 그렸다면 <동정추월>은 단정한 명상을 그렸다. 동정호에 달이 떴다. 강에는 달구경 나온 사람이 탄 배가 한 척 떠 있다. 전경에 대각선으로 솟아오른 언덕에는 소나무 두 그루가 서 있고 빈 정자가 세워져 있다. 이런 구도는 조선 초기에 활동했던 안견(安堅)의 《소상팔경도》에서 발견할 수 있다. 또한 경물이 한쪽으로 치우친 편파구도는 안견과 그의 화풍을 추종한 안견파(安堅派) 화가들의 공통된 특징이다. 《소상팔경도》는 특히 조선 초기에 크게 유행했다. 안견 진작眞作으로 전해지는 작품이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고 안견풍으로 그린 여러 점의 작품도 전해진다. 안평대군(安平大君, 1418~1453)은 당대를 대표하는 19명의 시를 결합한 《소상팔경시첩》을 남겼다. 《소상팔경도》는 조선 말기까지 여러 화가들에 의해 지속적으로 그려졌다. 문청, 이흥효, 함윤덕, 이징을 비롯하여 전충효, 김명국, 최북, 심사정, 정선, 김득신 등의 유명 작가들이 소상팔경도를 그렸으며 민화의 소재로도 등장하게 된다.

 

조정육  ·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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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xgardn@hanmail.net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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