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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적 시선

월간 환경과조경20143311l환경과조경

어느 초등학생이 그린 지도가 온라인에서 화제가 된 적이 있다. 그 아이는 서울을 동그랗게 그려서 색칠하고, 한반도의 나머지 지역을 ‘시골’이라고 표기했다. 사람들은 이 지도에 대해서 자신의 거주지나 태생지 혹은 귀속성에의 인식에 따라 각기 다른 반응을 보일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쓴웃음을 자아내는 에피소드가 시사하는 바가 있으니 바로 우리가 세상과 광역 그리고 도시를 인지하는 중심성이라는 문제를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느 외국인에게 우리나라에 대해서 아는 것을 말해 보라고 물었다고 가정해보자. 만약에 그가 ‘김치와 서울’이라고 대답했다면 한편으로는 서운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무식하다고 비웃었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박지성, 싸이, 김치, 비빔밥, 남산타워나 독도를 이야기 해 주면 다행이라고 생각했을까? 그렇다면 비슷한 질문을 우리 스스로에게 던져 보자. 캄보디아나 라오스에 대해서 무엇을 아냐고 물었을 때 우리는 어떻게 대답할 것인가. 당혹스러움을 회피하기 위해 그냥 우리보다 못사는 나라라고 말하고 싶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러한 말은 상대에 대한 무지와 정신적인 빈곤을 감추기에는 역부족이다. 이 대목에서 왜 그 모든 것을 굳이 알아야 하냐고 반론을 제기할지도 모른다. 이에 대한 답변은 사실 매우 단순하다. 우리가 한국인이자 현재라는 시간을 사는 개인으로 세상의 중심일 권리가 있다면, 그것은 타인에게도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또 우리가 지정학적으로 아시아에 속하기 때문이다.

피할 수 없는 일련의 질문들이 던져진다. 나는 아시아인인가? 아시아는 무엇인가? 아시아는 내게 어떤 의미가 있는가? 아시아적 조경의 전통과 문화 그리고 현대적 전형은 존재하는가? 돌아보면 우리는 집착이라 할 만큼 한국성과 전통을 고민해왔고 최근에는 역사적으로 피곤한 이웃들을 고려하여 동아시아까지 생각의 지평을 넓히기는 했지만, 아시아를 품에 포용한 적은 거의 없는 듯하다.

우리는 역사를 아시아라는 영역에서 집요하게 생각해 본 적이 별로 없다. 세계사에 대한 대부분의 지식도 서구 중심적으로 기술된 내용을 통해 습득해 왔다. 대학 교육의 방법론과 사례도 외국에서 유입된 것들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아시아적 역사를 사유의 범주로 생각할 수 없는 이유가 입시 위주의 교육에 있기도 하지만, 지정학적인 이유에도 있다. 그동안 역사를 표백한 양식사를 아시아의 현실에 적용하면서 그 내재적인 특수성을 예외적이거나 이국적이라는 식으로 단정하기도 했다. 하지만 흑백, 선악, 동서 등의 이분법은 유년기에서사춘기로 이행되는 과정에서만 유효한 이정표와 같다. 잡힐듯하면서도 안개처럼 느껴지는 아시아의 역사적 공간은 거듭 익숙한 방법론을 내려놓고 현실에 눈을 돌리기를 촉구한다.

김일현  ·  경희대학교 건축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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