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시선] 학생들에게 해주고픈 두 번째 가상경관 이야기
김익환 논설위원(이스탄불 공과대학 조경학과 조교수)라펜트l김익환 교수l기사입력2022-11-01
학생들에게 해주고픈 두 번째 가상경관 이야기
지난번 글에 이어서, 오늘은 가상경관 디자이너가 되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할지 논해보도록 하자. 솔직히 여태 썼던 글 내용과 상당 부분 반복되리라 생각되지만 그래도 여전히, 일정하게 정리를 함으로써 의의가 있기를 바란다. :)
우선 첫 번째, 설계를 잘 해야 한다. 조경설계. 심지어 이론도 잘 알아야 한다. 전국에서, 그리고 다양한 국가의 학생들로부터 종종 메일을 받는다. 이들은 조경학과 학생인데 가상경관 디자이너가 되고 싶다며 어떻게 할지를 물어본다. 그리고 대부분의 학생들은 이런 말을 추가한다. 자기는 학교에서 배우는 조경이 너무 재미가 없고 지겹다고. 그에 반해서 가상경관 설계와 게임 제작은 너무 매력적이라 잘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이다. 정말 안타깝지만 그렇게 되기가 힘들다.
가상경관 설계 과정에서 가장 필요한 것이 공간에 대한 이해와 이론적 바탕이다. 물리적 공간 설계와 별반 다를 바 없다. 오히려 물리적 공간을 설계할 때는 좀 두리뭉실하게 넘길 수 있었던 정말 세세한 부분까지 모두 설계 해야 하는 가상경관의 특성상, 디자인 능력은 매우 중요하다. 참고로 우리 연구실의 학생들은 학부 졸업 학기 혹은 석박사가 아닌 이상 가상경관을 다루지 못하게 한다. 저학년일 때는 기본적인 설계와 그 이론을 익히는 데 집중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 기본기 없이 무작정 쌓아 올리는 가상경관은 지금 문제시되고 있는, 공간에 대한 이해가 없는 그래픽 디자이너들이 만드는 가상경관과 하등 차이가 없게 된다.
공간 안에서 사람들이 무엇을 인지하는지, 어떻게 행동하는지에 대한 깊은 이해가 필요하다. 물론 몇몇 사소한 차이가 분명히 존재하지만, 사람들은 물리적 공간에서 가상경관에서와 크게 다르지 않게 정보를 받아들이고 행동한다. 즉, 사람에 대한 이해와 공간과 사람 사이의 상호교환성을 조작하는 숙련도가 필요하다. 그리고 그런 숙련도는 우선 실공간 설계를 통해 길러진다. 나아가 보다 사람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기 위해서는 설계를 넘어선 추가적인 영역에 대한 공부가 필요하다. 인간-컴퓨터 상호작용(Human Computer Interaction: HCI)이라든가, 공간인지, 공간심리 등의 영역에 평소 관심 갖고 살펴봐야 한다. 다시 말하지만, 가상경관은 절대 물리적 공간 설계의 도피처가 될 수 없다. 오히려 물리적 공간 설계에 자신 있는 이들을 위한 추가적인 활동 영역이 된다.
두 번째, 이론의 영역에서 특히 조경사가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결국 우리가 디자인하는 가상경관들은 실공간의 메타포이다. 중세 성을 본 따 게임 레벨을 만들고 실제 미술관을 본 따 버추얼 갤러리를 만든다. 물론 그 형태나 구조는 다를 수 있지만, 결국 그 안 사람들의 행태는 크게 다르지 않다. 그만큼 동서양의 조경사를 폭넓게 알아야 한다. 심지어 여러분의 설계 사이트는 비단 중세나 근대에 그치지 않을 것이다. 암각화가 새겨진 혈거인들의 동굴을 설계해달라는 의뢰도 들어올 수 있으며, 고대 철기 시대 부족민들의 마을을 재건해달라는 프로젝트에 참여할 수도 있다. (실제로 참여하고 있는 프로젝트이다) 그만큼 인류사를 따라 언급되었던 다양한 공간들에 대한 폭넓은 이해가 필수적이다.
세 번째, 의외로 툴을 배우는 것은 크게 중요하지 않다. 많은 학생들과 상담을 하면서 제일 많이 듣는 질문이 ‘유니티를 배울까요, 언리얼을 배울까요?’이다. 그런 게임 엔진을 배우면 당장 가상경관 설계가가 될 수 있다고 생각을 한다. 하지만, 앞서 누차 반복하였듯이, 가상경관을 설계를 위하여 가장 필요한 것은 설계적 마인드와 다양한 사례 이해이다. 이들이 전제가 되어야 툴을 배울 여유가 생긴다. 무작정 엔진을 배워봐야 그걸로 무엇을 해야할지 막막하기만 할 것이다. 심지어 그런 엔진들은 솔직히 마음만 먹으면 금방 배운다. 약간 정교한 스케치업 정도에 불과한 난이도라서 학부생들이라면 두 달 안에 자유롭게 다루는 수준이 될 수 있다. 게다가 인터넷에 워낙 많은 교재 영상들이 있는 탓에, 혼자서도 충분히 배워나갈 수 있다. 그렇기에 당장 무언가 해야 한다는 급한 마음에, 그리고 가장 가시적인 성과를 낼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감에 덮어놓고 엔진부터 배우려 드는 실책을 하지 않기를 권한다.
네 번째, 툴에 대해서 조금만 더 깊게 들어가자면, 모델링 툴을 배울 필요는 크게 없다. 앞선 글들에서 누누이 언급하였듯이 가상경관은 모델링이 된 에셋들을 엔진으로 배치하며 공간을 만들어나간다. 그리고 간혹 그런 모델링 프로그램을 배우고 싶다는 조경학과 학생들이 있다. 물론 배우면 도움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여러분이 상상할 수 있는 거의 모든 에셋들은 엔진 내 마켓에서 저렴하게 구입 할 수 있다. 그런 에셋들을 하나하나 직접 손으로 빚겠다면 말리지야 않겠지만, 이는 극도로 비효율적인 작업이 될 것이다. 심지어 그런 모델링 툴들은 엔진이나 기타 프로그램들과는 다르게 어마어마한 숙련도를 요구로 한다. 3차원 이해와 물성에 대한 지식까지 필요하다. 게임 업계나 IT업계에서 흔히 말하는 모델러라는 타이틀을 지닌 이들을 보면 조소과나 순수미술을 전공한 인원들이 많은 것도 이 탓이다.
다섯 번째, 답사를 많이 다니자. 여기에서 답사란, 다양한 가상경관 사례를 의미하고, 아직까진 가상경관을 가장 활발하게 활용하는 시장은 게임 업계이다. 누차 말하였듯이, 우리의 최종목적은 게임이 아니다. 게임은 어디까지나 수 많은 사례들을 바탕으로 가상경관을 익히기 좋은 징검다리이다. 조만간 게임보다 성숙하게, 그리고 정교하게 가상경관을 활용하는 새로운 서비스 및 플랫폼이 대두될 것이다. 하지만 그 전까지 가상경관을 연구하고 그 안의 사람들을 이해하기에 가장 좋은 영역이 게임이다. 그런 맥락에서 다양한 게임들을 해보아야 한다. 가끔 ‘전 롤 티어 다이아인데요? 전 매일 게임만 하는데요?’라는 반응을 보이는 학생들이 있다. 하지만 하나의 게임을 오래 하라는 것이 아닌, 다양한 게임을 풍부하게 해보아야 한다는 뜻이다.
스팀(STEAM)에 들어가면 정말 무수히 많은 게임들이 다양한 공간들을 지니고 있다. 이들을 대상으로 취향과 무관하게, 최대한 다양한 경험을 쌓아야 한다. STEAM뿐만이 아닌 플레이스테이션(Playstation)이나 엑스박스(Xbox) 등의 콘솔기기도 투자라고 생각해 구입을 하고 답사라고 생각하며 플레이해보아야 한다. 그리고 그런 게임 공간들이 어떻게 플레이어의 감정과 행동을 조작하고자 하였는지, 그리고 공간과 스토리, UI 등이 어떻게 엮여있는지에 대해 살펴보고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조경학과에서 우리가 답사를 다니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스크린 캡처를 해가면서 본인만의 답사집을 만들어 보아도 역시 의미가 있을 것이다. 교수님께 연구실이나 설계실에 게임기 하나 놓아달라고 땡깡을 부리는 것도 나쁘지 않음직 하다. 암.
여섯 번째, 활발한 활동을 권한다. 가상경관 설계는 아직 낯설고 생소한 영역이다. 그렇기에 많은 기회가 잠재되어 있지만, 동시에 그 기회를 여러분에게 소개해줄 수 있는 인원은 찾기가 아직은 많이 힘들다. 본인이 직접 뚫어가며 활동 해야 한다는 뜻이다. 국내에는 지스타나 인디크래프트 등의 행사들이 있고, 게임이나 HCI, 가상경관에 대한 다양한 학회들이 있다. 이런 행사와 학회에 직접 찾아가서 정보를 모으고 사람을 만나고 프로젝트에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 활발히 활동하고 본인을 알릴 수록(물론 실력이 있다는 전제하에) 기회가 찾아올 것이다. 본인 작품을 인스타그램과 같은 SNS에 꾸준하게 올리는 것도 한 방법이 될 수 있다. 게임 개발 모임이라던가 인디 개발 동호회에서 활동하는 것도 좋은 시작이 될 수 있다. 학과에 그런 동호회가 없다면 하나 만들어 보는 것도 권한다. 그렇게 시작하여 스타트업이 생기고, 새로운 플랫폼이 태어난다. 무엇이 되었든 과감하게 행동하는 것이 필요하다.
일곱 번째, 가상경관으로 취업을 희망한다면, 게임 업계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올 것이다. 게임 업계에는 크게 두 가지 유형의 업체가 있다. 메이저의 대형 게임사, 그리고 스타트업. 그리고 어느 쪽이든 요즘 점점 공채가 줄어들고 있다. ‘사라지고 있다’가 맞는 말일지도 모르겠다. 대신 경력자들에 한하여 지원을 받아 선별하는 방식으로 바뀌고 있다. 자. 이건 우리에게 굉장한 기회가 될 수도, 또 동시에 난감한 악재가 될 수도 있다. 왜냐하면 보통 게임 내 공간을 구현하는 팀은 아트팀 혹은 디자인팀이지만, 게임 공간을 기획하는 인원들은 기획팀이다. 여기에서 뭔가 이상한 점을 느끼지 못하였는가? 게임 업계에는 공간을 구현, 조립하는 부서가 있고, 공간을 기획하는 부서가 있지만. 공간을 설계하는 부서가 없다. 놀랍게도, 정말 그렇다.
믿기 힘들겠지만 국내외에 공간설계 인력이나 팀을 따로 두는 게임 업체는 극히 드물다. 대부분은 아트팀이 기획안을 보고 바로 시공에 들어간다. 마스터플랜이라는 개념도, 용어도 모른다. 도면이 아닌 시방서를 보고 공간을 만든다고 해야 하나. 그 탓에 아직까지 게임 업계는 너무나도 많은 기회비용이 소모되고 있다. 그렇기때문에 여러분들이, 공간을 설계할 수 있는 여러분들이 해당 업계로 진출한다면 그 가치는 상상 이상으로 높다. 여태 해당 업계에서 난감했던 부분들을 시원하게 긁어주는 귀한 인재가 될 터이니 말이다. 하지만 문제는, 여태 그런 보직이 없었던 만큼 지원 과정이 꽤 애매모호 해진다. 회사 지원 과정에서 기획자와 디자이너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거늘, 그 사이의 징검다리는 존재하지 않는다. (참고로 게임 업계에서 ‘디자이너’ 혹은 ‘아트팀’이라 함은 실제로 구현을 맡는 시공자에 가깝다.) 심지어 아트팀으로 선택을 하면 모델러 혹은 레벨 디자이너라는 세부 타이틀들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나마 레벨 디자이너는 설계를 하지는 않지만 공간을 시공하기는 한다. 하지만 모델러라 함은, 앞서 언급되었던 조소 장인을 의미한다. 그쪽은 우리와 무관하다.
그럼 실제로 가상경관을 설계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전공을 살리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다양한 방법들이 있겠지만, 개인적으로 나는 우선 기획자 혹은 레벨 디자이너로 지원을 하되, 포트폴리오와 자기소개서에서 본인의 전공과 여태 훈련받은 내용들을 어필하기를 추천한다. 중요한 것은 실공간 설계가 가능하며, 공간과 사람 사이의 상호교환에 대한 이해가 있다는 점, 그리고 나아가 게임에 익숙하고 가상경관을 구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전자만 가능한 인원은 조경학과에 많다. 후자만 가능한 인원은 이미 해당 업계에 흔하다. 하지만 이 둘이 모두 가능한 인원은 정말 귀하디귀한, 여느 게임 업계라도 당장 납치할 만큼 탐나는 인재이다.
만약 게임 업계가 아니라면 어떤 직업을 가질 수 있을까? 이건 좀 난해한 질문이다. 미래가 어찌될 지 쉬이 예상하기 힘든 탓이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우리는 가상경관을 게임을 위해서만 쓰는 순간을 곧 졸업할 것이다. 마치 인터넷처럼 말이다. 이제 우린 말초적인 재미가 아닌 보다 건설적이고 실용적인 용도로 인터넷을 사용한다. 가상경관은 역시 현재 그 변환의 과도기에 서 있다. 심지어 코로나라는 사태 때문에 그 과도기가 살짝 더 급진적이 되었다. 조만간, 우리가 여태 생각지 못했던, 가상경관을 활용하는 생산적인 플랫폼이 등장하고 산업이 확장되어 보다 많은 이들이 정교한 가상경관을 요구하게 될 것이다. 실공간의 설계 감각으로 가상경관을 만들 수 있는 전문인력에 대한 수요는 계속 늘어나리라.
하지만 정확하게 그 산업이 어느 영역에 어떤 형태가 될지는 아직 소원한 탓에, ‘게임 업계가 아니면 앞으로 어떤 직업이 대두될까요?’라는 질문에는 답을 주저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개인적으로 대학원도 좋은 솔루션이라고 믿는다. 여태 조경학과에서 조경을 배웠다면, 이를 기반으로 대학원에서 좀 더 세부적인 연구를 진행하며 시대 흐름을 예상할 수 있는 안목을 기르는 것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모르겠다. 뭔가 다양하고 실용적인 여러 말들을 해주고팠는데, 괜히 다들 아는 뻔한 이야기들만 나눈 게 아닌지 걱정이다. 게다가 아직 내공이 부족하고 다수의 인원들을 대상으로 서면으로 이야기 하려 한 탓에, 역시 깊이 있고 전문적인 이야기를 논하기도 어려웠다. 보다 많은 조경학과 학생들이 가상경관에 관심을 가지길 바란다. 새로운 영역이라 꺼려지는 것도 당연히 이해가 되지만, 여러분들이야말로 조경계에서 가장 과감할 수 있는 분들이 아닌가. 그런 의미로 나는 염치없게도 여기저기에 내 메일 주소를 뿌린다. iikimss3@gmail.com이다. 혹 조금이라도 이쪽에 관심이 있는데 어찌할지도 모르겠고, 주변에 딱히 상담 하기도 힘든 학생들이 있다면 언제든 연락 주기를 바란다. 비록 타국에 있긴 하지만 같이 고민을 하고 보다 실용적인 방법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 글 _ 김익환 교수 · 이스탄불 공과대학
-
다른기사 보기
iikimss3@gmail.com
기획특집·연재기사
- · [녹색시선] 기부로 탄생한 공원 리틀아일랜드
- · [녹색시선] K엑스포 유치 실패가 2033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 유치에 주는 교훈
- · [녹색시선] 법과 조직의 맛을 보게 하라
- · [녹색시선] 고향 군위가 그립습니다
- · [녹색시선] 젤리코 어워드와 한국조경
- · [녹색시선] 마을정원 모델 미하라정원
- · [녹색시선] ‘모두의 집’ 리와일딩 건축 공모전의 초대
- · [녹색시선] 고대 히타이트 가상경관 제작일지 2편
- · [녹색시선] 모듈화, ICT, 드론을 통한 탄소중립형 조경 기술의 발전
- · [녹색시선] 역사경관지구의 조경수의 역할과 보존
- · [녹색시선] 영국에서의 공원녹지 평가 Part Ⅰ
- · [녹색시선] ‘정원’이 되어 가는 하천’에 대한 염려
- · [녹색시선] 오삼이의 죽음, 그가 던진 메시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