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시선] ‘정원’이 되어 가는 하천’에 대한 염려

정경진 논설위원(㈜휴론네트워크 대표이사)
라펜트l정경진 대표l기사입력2023-07-19

‘정원’이 되어 가는 하천’에 대한 염려




_정경진 ㈜휴론네트워크 대표이사
가천대학교 도시계획및조경학과 겸임교수
중부대학교 원격대학원 정원문화산업학과 겸임교수



해마다 이 계절이 오면 포털 사이트의 헤드라인을 숨 가쁘게 장식하는 뉴스가 있다. ‘전국 물 폭탄 예고, 최대 200㎜’와 같은 호우 특보이다. ‘장마전선’은 올해도 어김없이 한반도를 오르내리고 있고, 지금 이 시간에도 우리나라 하천 어딘가에서는 인명과 재산의 피해가 발생하고 있어 국민 모두의 특별한 관심과 주의가 필요한 요즈음이다. 

하천이라는 공간은 물이 흐르고 다양한 생물이 서식하는 건강하고 아름다운 곳이지만 1년 내내 평화롭지는 않다. 때론 물이 너무 많아서 걱정, 때론 너무 없어서 걱정, 유럽의 여느 하천들처럼 비교적 안정적인 수량과 수위를 유지하면 좋으련만(물론 유럽에서도 폭우 시 홍수, 범람의 피해가 발생한다), 하상계수가 큰 우리나라의 하천은 하계집중호우에 따른 수위의 변동이 너무나도 역동적이다. 바로 이런 곳에, 우리는 지금 정원을 만들고 있다.

2019년 3월, 남양주시는 ‘하천은 정원이다’라는 선언과 함께 ‘깨끗한 하천, 하천정원 거점도시 만들기’를 추진하였고, 하천변 음식 영업과 공작물 설치, 수질오염행위 근절 등 세부적인 실천사항을 결의하였다(남양주 뉴스, 2019). 2020년 5월, 춘천시도 건강한 하천환경문화 조성을 목적으로 공지천 내에 하천 정원을 준공한다고 밝히면서, 하천 퇴적물을 모아 정원을 조성하며, 보행자를 위한 자갈길 산책로, 자연목을 이용한 휴게쉼터, 체육시설과 잔디공원 등을 계획하였다(라펜트, 2020). 

2021년 6월, 전북 부안군은 신운천 일원에 산림청 공모사업으로 추진한 부안지방정원 조성사업을 통해 사계절 꽃을 감상할 수 있는 산책로, 초화류와 꽃나무, 체육활동과 야외공연, 행사 등을 진행할 수 있는 다목적 광장 등을 조성해 주민들이 자유롭게 산책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했다(쿠키뉴스, 2021). 그리고 가장 최근인 2023년 4월, 광명, 안양, 군포, 의왕 등 경기도의 4개 시를 관통하는 안양천 일대가 지방정원 조성예정지로 산림청의 승인을 받았고, 2026년 지방정원 개장, 2028년 국가정원 지정을 목표로 하고 있다(안양시, 2023).


하천정원화를 위한 지자체 추진사례

이와 같이 최근 5년간 여러 지자체에서 하천을 정원화(정원이라는 용어를 적용하는 다양한 유형의 하천 정비 사업을 포함)하려는 사업이 활발히 진행되어 온 것은 분명해 보인다. 이러한 배경에는 남양주시의 경우처럼, 오랜 시간 하천계곡을 독점, 사유화하던 음식점의 불법 점유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취지에서 시작된 경우도 있지만, 2019년 7월, 태화강이 국가정원으로 지정된 이후, 향후 국가정원을 목표로 관내 하천을 지방정원으로 지정받고자 하는 지자체들의 이해관계에도 원인이 있지 않을까 추정된다. 

하지만 2022년 3월, 안양천 지방정원 지정을 위한 주민공청회에서는 지자체의 바람과는 사뭇 다른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이 공청회에서는 하천 생태계를 훼손할 우려가 있는 안양천 지방정원 지정 및 조성계획을 반대하는 의견이 전달되었으며, 기존 생태하천 복원의 성과를 바탕으로 수달, 원앙, 도요새 등 멸종위기종이 살아갈 수 있는 생태하천으로 조성되어야 함을 강조하는 주민들의 견해를 확인할 수 있었다. 전국의 하천을 정원으로 만들 기세가 들불처럼 확산되는 것에 대한 우려의 마음들이었다.

물론 바라보는 시각에 따라 ‘생태하천’이든, ‘하천정원’이든, ‘지방정원’이든, 사소한 용어 하나에 큰 의미를 부여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지자체가 사업 예산을 확보할 수 있고, 더러운 하천을 깨끗하게 정비할 수 있으며, 시민들에게 친환경 휴식 및 체육공간을 제공하고, (검증하긴 어렵지만)관광산업 등 지역경제 활성화에 도움을 줄 수만 있다면, 정원이든 공원이든 상관없다는 인식과 함께, 불필요한 ‘소모적 논란’ 정도로 치부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자는 이번 지면을 통해 ‘하천’을 ‘정원’으로 네이밍(Naming)하는 순간 발생할 수 있는 몇 가지 상황에 대한 염려, 즉 미리 헤아려 걱정을 좀 해보려고 한다. 하천의 정원화는 과거 청계천복원사업이 종료된 이후, ‘제2의 청계천’이라는 수식어를 달고 전국의 하천을 청계천의 쌍둥이로 복제해 내던 상황과 유사할 수 있으며, 어쩌면 지자체마다 제2, 제3의 청계천을 양산하던 예전의 상황보다 더 큰 파장을 불러올 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19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우리나라 하천관리 방식은 ‘하천정원화’라는 개념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 당시 하천은 홍수 시 재난 방재를 목적으로 하천의 통수단면을 넓히고, 반복적으로 준설공사를 하고, 사행하천을 직강화하는 치수적 개념의 배수로 역할이 하천의 가장 주된 기능이었기 때문이다. 
 

치수적 목적의 하천정비사례

그러던 가운데 1995년 전후로, 오늘날 ‘생태하천’이라고 불리는 ‘자연형 하천(close-to-nature)’ 복원의 개념이 우리나라에 도입되었고, 독일의 근자연형하천, 일본의 다자연형 하천 등 환경선진국의 생태적 하천관리 기법을 벤치마킹하여 서울 양재천을 시작으로 하천의 생태적 관리 개념이 첫걸음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 이후로 약 10년 동안 자연형 하천 복원의 개념은 우리나라 전역으로 확산되면서, 콘크리트로 조성된 호안을 철거하고 주차장으로 사용되던 고수부에 갯버들, 갈대, 물억새군락 등을 조성하면서 바야흐로 자연형 하천의 전성시대가 열리게 된다. 그 당시에 복원된 양재천, 탄천, 전주천 등은 지금도 성공적인 하천복원의 대표적 사례로 알려져 있고, 안양천도 그 시기에 ‘안양천살리기’라는 사업을 추진하면서 안양천 본류와 지류에도 생태하천 복원 기술이 도입되었으며, 이 사업은 오염하천의 대명사였던 안양천이 건강한 생태하천으로 복원되는데 있어 매우 중요한 기폭제가 되었다.


우리나라 자연형하천사업 사례지_양재천, 전주천, 안양천

이후로, 우리나라의 많은 도시하천들은 수질, 수량, 생물 서식처의 회복은 물론 산책로, 자전거도로, 간이휴게시설 및 운동시설 등이 조화를 이루며 지역 주민들에게 사랑받는 명소로 변모하게 되었고, 심지어 인근 부동산 가격에 영향을 줄 정도로 사회적, 환경적 파급력을 갖게 되었다. 아마도 하천이 사람들에게 공원처럼 인식되기 시작한 지점도 바로 이때부터가 아닌가 생각된다.

그러나 2010년을 전후로 청계천복원사업, 4대강 살리기 사업 등 정부와 공공기관이 주도하는 초대형 하천정비 사업이 전 국민의 관심을 넘어 정쟁의 대상이 되었고, 그 이후로 서서히 하천이라는 공간의 본질과 정체성은 잊히고, 장기적인 목표와 방향성, 지속가능한 하천관리를 위한 철학과 패러다임도 모호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2023년, 우리는 하천의 미래를 ‘정원’으로 규정지으려 하고 있다.


청계천복원사업, 4대강살리기사업, 안양천 공원화사업


단순히 토지 활용의 측면에서 보면 하천의 정원화는 매우 효율적인 방안일지도 모른다. 하천은 주민들의 휴식, 운동, 여가활동을 즐길 수 있는 공공의 공간으로, 손바닥만 한 녹지 공간조차 확보하기 어려운 과밀화된 도심에서, 꽃밭을 볼 수 있고, 자전거도 탈 수 있고, 공연도 할 수 있는 흔치 않은 오픈 스페이스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천을 정원이라고 선언하는 것은 차원이 다른 문제이다. 하천을 정원으로 네이밍하게 되면, 하천이라는 공간의 특수성은 잊히고, 인식은 변질되며, 정원으로서의 기대감은 고착되면서, 하천 고수부를 여느 육지와 다름없는 평탄한 토지 정도로 오해할 수 있기 때문에, ‘정원이 되어 가는 하천’에서 발생할 수 있는 몇 가지 문제점을 살펴보고자 한다.

‘정원이 되어 가는 하천’에 대한 첫 번째 염려는 정원 조성 후 유지관리이다. 정원이 조성될 하천 고수부는 육지이기도 하지만 육지가 아니기도 하다. 홍수 시 수위변동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 고수부는 매년 여름 반복적으로 침수될 수 있고, 향후 얼마나 빈번히, 어느 정도 규모로 침식과 퇴적이 발생할지 가늠하기 어렵다. 국가정원 지정을 목표로 쏟아부은 예산, 정원의 조성과 유지관리를 위한 비용, 수해 발생 시 피해 및 복구비용 등 하천에서 정원의 아름다움을 감상하기 위해 지불해야 할 대가는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더 클 수 있다. 화려했던 정원 식물의 아름다움은 폭우와 함께 쓸려나갈 수 있으며, 멋지게 조성된 산책로와 광장은 퇴적토와 함께 매몰될 수 있다. 국민들의 소중한 세금으로 확보된 국비와 지방비는 언제까지 이 문제를 감당해 낼 수 있을까? 세상에 공짜 점심은 없다. 


홍수 시 수위상승으로 인한 하천 침수 사례

두 번째는 하천생태계의 교란과 훼손의 문제이다. 기본적으로 사람과 생물의 서식 영역에서는 교집합의 공간을 찾기 어렵다. 그래서 공간을 계획하고 설계할 때, 두 공간 사이에는 ‘완충역(buffer zone)’을 조성하곤 한다. 특히 하천과 같이 민감한 생태계는 작은 교란에도 큰 변화를 초래할 수 있어 하천부지의 활용은 더욱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 하지만 계획안을 통해 살펴본 하천 정원에는 잔디광장, 초화원, 쌈지공원, 파크골프장, 물놀이장, 주차장 등 철저히 사람의 편익을 목적으로 하는 시설들이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으며, 사람을 위한 공간의 확장은 마땅히 하천에 존재해야 할 다양한 생물의 서식처를 훼손하고, 개체수와 종다양성을 감소시키는 데 있어 명백한 원인으로 작용할 것이다. ‘하천’을 ‘정원’이라고 부르는 것이 결코 단순한 문제가 아닌 이유는 바로 이 지점에서 사람들의 인식 속에 인공시설물의 과도한 도입에 대한 ‘너그러움’을 주입하기 때문이다. ‘그래, 이 정도 시설물은 설치해야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즐길 수 있어, 여기는 정원이니까’

현재 우리나라 하천 전역에서 쉽게 관찰되는 단풍잎돼지풀, 가시박, 칡, 환삼덩굴 등 하천 생태계의 균형을 무너뜨리는 유해식물은 언제, 어디서, 왜 온 것일까? 어쩌면 이들이 건강했던 하천을 점거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무관심으로 방치하고, 그들의 난입에 면죄부를 준 것은, 하천을 바라보며 자전거를 타고 싶은, 거칠고 폭력적인 유해식물들 틈바구니에서 곱디고운 정원 식물을 감상하고 싶은 사람들의 무리한 욕심 때문일지도 모른다.    


과도한 인공시설물로 인한 하천변 유해식물 분포역의 확산

세 번째는 하천의 본질, 정체성 상실의 문제이다. 하천은 인공자원이 아니라 자연자원이다. 산림, 습지, 초지, 해안 등과 같이 인간과 도시의 생태계를 지키는 최후의 보루이다. 그렇기 때문에 건강한 하천이 지녀야 할 본질, 즉 멈추지 않고 흐르는 맑고 풍부한 물, 갈대, 물억새, 갯버들 등 하천고유의 식물로 종 다양성이 높은 수변, 침식과 퇴적, 수위변동이 역동적으로 반복되는 하상, 그 안에 다양한 포유류, 어류, 조류, 양서파충류, 곤충류, 저서무척추동물 등이 안정적인 생태계 피라미드를 유지하며 살아가는 곳이 바로 하천의 본질이며 정체성임을 기억해야 한다.

필자는 이러한 본질과 정체성이 우리나라 하천의 현재이자 미래가 되기를 바란다. 정원산업의 성장을 응원하고, 정원의 확장성에 공감하지만, 하천이라는 장소적 특성 앞에서는 신중한 머뭇거림도 필요하다. 혹여 ‘정원’이라는 용어가 하천의 정체성에 부합하지 않더라도 부득이 써야만 하는 이유가 있다면 사용할 수도 있다. 다만 하천이 지닌 가치, 오랫동안 유지되어야 할 본래의 특성이 ‘정원’이라는 용어로 인해 왜곡되거나 오해받는 일은 없어야 하며, 하천의 생태적 특성에 부합하는 ‘하천정원’의 개념과 세부적인 설계. 시공. 관리 지침 등을 촘촘히 마련해서 처음 기대했던 하천 정원화 사업의 선한 목적을 달성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하천을 포함한 대부분의 자연자원은 다행스럽게도 회복 가능한 잠재력과 탄성을 보유하고 있다. 지금도 이미 생물의 서식처가 되어야 할, 수많은 하천 공간이 공원처럼 이용되고 있는 우리나라의 현실을 감안한다면, ‘확산되어 가는 사람의 공간’과 ‘축소되어 가는 생물의 공간’ 사이에서 적절한 ‘균형’을 고민하는 것이 하천정원화 사업의 키워드가 되어야 할 것이다. 국가정원 지정이라는 목표를 향해 질주하는 성급한 사업화보다, 우리 지자체 관할 하천에 적합한 최적의 토지이용은 무엇일까에 대한 깊은 고민과 사회적 공감이 우선되어야 한다는 의미이다. 

같은 맥락에서 하천을 정원처럼 조성하고자 하는 지자체가 가져야 할 철학은 매우 명료하다. ‘정원’이라는 네이밍을 사용할 수는 있지만 하천의 본질을 유지하는 것에 최우선의 가치를 두어야 한다는 것, 그리고 관리 가능한 예산의 규모 안에서 최소한의 개발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아무쪼록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과장된 경제성 평가, 허황된 지표, 무리한 정치적 목표에 매몰되지 말고 하천 고유의 특성, 지역과 지자체 특수성에 부합하는 이상적인 하천 정원화 전략이 수립되기를 기대해 본다. 


해외 생태하천 복원 및 친환경적 하천정비 사례

글·사진 _ 정경진 대표  ·  ㈜휴론네트워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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