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시선] 인어 이야기
구본학 논설위원(상명대 환경조경학과 교수)라펜트l구본학 교수l기사입력2016-07-17
인어 이야기

글_구본학 상명대학교 환경조경학과 교수
안데르센의 동화 ‘인어공주(The Little Mermaid)’는 아름다운 인어공주의 슬픈 이야기를 담고 있다. 바다에서 조난당하여 죽게 된 왕자를 구하고, 왕자를 사모한 나머지 마녀와의 계약을 통해 목소리를 희생하고 결국 사람이 되었으나 끝내 사랑을 이루지 못하고 바다에 몸을 뛰어들었던 이야기이다. 인어공주 외에도 목소리로 지나가는 뱃사람을 홀렸던 세이렌의 전설이나 로렐라이 언덕의 미녀도 인어의 영역에 속한다. 고대 페니키아 동전에 새겨진 반인반어의 여신 Atargatis나 그리스로마 신화의 트라이톤,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오안네스(Oannes/Adapa), 아시리아 여왕의 어머니 아타르가티스(Atargatis) 또는 데르케토(Derceto), 바빌론의 신 에아,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여동생 텟살로니케, 천일야화에 등장하는 바다 소녀 줄라나르(Djullanar)와 압둘라(Abdullah), 고대 중국의 진화론을 설명하는 회남자에 등장하는 해인 등 옛사람들은 신화나 전설 속에서 인어라는 존재를 때로는 친숙하게, 때로는 사람을 해치는 존재로 묘사하고 있다. 이는 이야기와 그림, 부조 등을 통해 지금까지 전해온다. 힌두교 비슈누신은 아바타의 하나로서 반인반어의 모습으로 지상에 내려오며, 심지어 노아의 부인과 3자녀가 인어라는 전설까지도 전해온다.
인어는 보통 상반신은 젊은 아리따운 여성의 모습을, 하반신은 물고기 꼬리를 지닌 전설 속 물고기 모양의 존재를 말한다. 때로 어인(merman)이라고 부르는 남성 인어와 함께 인어족(merfolk)이라고도 한다. 동서고금을 통해 인어 이야기는 전설이라기보다는 실존하는 구체적인 대상이 되고 있다. 실제 인어로 간주되는 바다 속 동물로는 남태평양의 듀공(Dugong)과 대서양 인도양의 매너티(manatee), 우리나라의 상괭이가 있다. 이들은 조난당한 어부를 구해주거나 바다 건너 저승과 이승을 연결하는 사자로 인식되기도 하며 때로는 뱃사람을 유혹하여 조난을 당하기도 한다. 상괭이와 듀공, 매너티 등 인어들은 IUCN Red List 취약(VU) 등급에 해당하며 CITES에 의한 멸종위기종으로써 국제간 거래가 제한되어 있다.
듀공이나 매너티는 2~4m 내외의 해어(바다소)로, 고기와 기름을 얻기 위해 밀렵이 성행해 선박의 프로펠러 등에 의해 죽거나 상처를 입어 멸종위기에 처해있기도 하다. 오랜 항해에 지친 뱃사람들은 멀리 저녁놀을 배경으로 바다에 몸을 기댄 채 아기에게 젖을 주고 있는 존재를 입에서 입으로 전달하면서 아름답고 관능적인 인어아가씨 모습으로 묘사되곤 하였다.
정약전의 「자산어보(玆山魚譜)」에서는 상괭이(상광어)와 옥붕어(玉朋魚)를 인어로 기록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토종 돌고래인 상괭이는 앞의 인어들보다 몸집은 조금 작은 형태로 동남아를 거쳐 멀리 인도양까지 얕은 바다나 하구에 살며 때로 강물에서도 발견되기도 한다. 미소천사 상괭이는 쇠돌고래의 일종으로 해돈어(海豚魚), 쇠물돼지, 수애기, 쇠물치, 슈우기 등으로도 불린다.
바다로 뛰어든 동화 속 인어공주는 공기의 딸(바람의 정령)이 된다. 대기 중을 돌아다니며 자신은 눈물을 흘릴 수 있게 되어 사랑의 아픔을 씻어버리고 온갖 생물에게 시원한 바람을 보내주는 불멸의 영혼이 되어 천국으로 들어가게 된다.
상처를 입었거나 혹은 부모가 희생된 어린 인어들을 보호하고 치료한 후 바다로 되돌려 보내는 노력들이 진행되고 있다. 예를 들면, 아마존 밀림 매너티 구호센터, 싱가포르 센토사섬 언더워터월드의 부모를 잃은 어린 듀공 그레이스(Grace) 치료 등이다. 더불어 그들의 서식처를 복원하려는 움직임들도 있다. 미국 플로리다 인디안리버(Indian River) 석호(Lagoon) 일대의 Pelican Island NWR에서는 펠리칸 섬과 습지를 복원한 결과, 매너티와 흰머리독수리 등 원 생태계가 살아나고 있다.
국내에서도 최근 치료를 마치고 회복된 상괭이를 야생 적응 훈련을 거쳐 바다로 돌려보내는 사례들이 종종 보도되고 있다. 오월이, 누리, 마루, 바다, 동백이 등 우리 바다를 지키며 사랑을 받았던 토종 인어 상괭이가 다시 바다로 돌아가고 그들의 서식처인 바다 생태계가 회복되는 날, 그들은 위기의 생태계 내 생물다양성 유지의 희망을 주고 불멸의 영혼이 될 것이다.
- 글 _ 구본학 교수 · 상명대학교 환경조경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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