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시선] 아순시온에서(En Asunción)

김영민 논설위원(서울시립대학교 조경학과 교수)
라펜트l김영민 교수l기사입력2020-04-12
아순시온에서(En Asunción)


_김영민(서울시립대 조경학과 교수)




1
아순시온에서 2월은 더위의 절정이 지난 시기지만, 한낮의 열기는 아직 남미의 여름 한가운데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준다. 다시 걷기 시작한 지 10분도 지나지 않아 나는 그늘진 벤치를 찾아 물을 마셨다. 아순시온에서는 늘 목이 말랐는데 이 갈증은 아무리 물을 마셔도 해소되지 않았다. 다행히 아순시온에는 오랜 공원들이 많아 더위를 피하는 것이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녹음이 무성해 처음에는 당연히 공원이라고 생각했던 공간들은 알고 보면 대부분 광장이다. 플라자 데 아르마스(Plaza De Armas), 중앙 광장. 광장의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광장 주변에는 파라과이의 중요한 국가 행정기관들이 모여있다. 하지만 장소의 위상과는 달리 넓은 잔디는 대부분 죽어 흙바닥을 드러내고 있었다. 얼마 전에 큰 비가 왔었고 저지대에 살던 주민들은 한동안 이곳에 텐트를 치고 살아야 했다고 한다. 매년 홍수가 반복되기 때문에 여기의 잔디는 자랄 수가 없다. 광장 앞에는 새로 지은 현대식 국회의사당이 있었고, 그 너머로 거대한 슬럼이 있었다.

저쪽에서 남매로 보이는 여자아이와 남자아이가 놀고 있었는데 나는 애써 아이들과 눈길을 피했다. 어딘가 엄마가 있을 듯하여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어른은 나 혼자뿐이었다. 걱정했던 대로 여자아이가 나에게 다가와 말을 걸었고 스페인어를 모르는 나는 아무런 대답도 해줄 수가 없었다. 나는 가방에서 맨토스 사탕을 꺼내 주었다. 사탕을 받은 아이는 더이상 성가시게 하지 않고 남자아이에게 돌아갔다. 다시 거리로 나가려고 일어났을 때 여자아이가 나에게 다시 달려와 무언가를 주었다. 조그만 라임이었다. 여자아이는 하얀 꽃 같은 미소를 지어주었다. 라임을 손에 쥐고 도심을 한참 걷다가 호텔로 돌아갔다. 오후에는 영어를 할 줄 아는 매니저가 프론트에 있었는데, 나를 보고 인사를 했다. 라임이네? 라임을 잘라서 물에 넣어 마셔봐. 여기 사람들은 그렇게 한다고. 방으로 돌아가 라임을 잘라 물에 넣어봤다. 작은 라임 알갱이들이 흩어지며 물을 뿌옇게 흐렸다. 뿌연 물을 마시니 놀랍게도 저주 같던 갈증이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아순시온 도심


플라자 데 아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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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누엘씨의 자리는 한참 구석에 있었다. 한 국가의 환경부에서 중책을 맡은 사람의 사무실이라고 하기에 가구나 사무 도구가 너무 초라해 보였다. 마누엘씨 옆에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 노인이 동석했는데 이 사람의 역할은 알 길이 없었다. 나는 파라과이의 조경에 대해 알고 싶은 것이 많았지만, 사람 좋은 마누엘씨에게서 필요한 답을 얻을 수는 없었다.

“한국 선생. 파라과이는 한국보다 인구도 적고 돈도 적은 나라입니다. 한국은 발전된 나라이고 부자 나라입니다. 조경도 무척 훌륭할 겁니다. 적절한 조경수 리스트, 조경 관련된 계획 법규, 가이드라인, 한국 선생이 여기에서 만들어 주세요. 우리는 그런 것이 없습니다.”

점심시간이 다되어서 마누엘씨는 말을 마무리하고 털복숭이의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했다.

“마누엘씨, 아순시온의 나무는 한국의 나무보다 크고 사계절 꽃을 피웁니다. 아순시온의 공원과 광장은 한국이 공원을 만들이 훨씬 이전에 만들어졌습니다. 파라과이 사람들은 한국 사람보다 훨씬 공원을 사랑하고 잘 씁니다. 제 눈에는 말이죠.”

악수하면서 나는 이 말을 건네고 싶었지만 하지 않았다. 


아순시온의 식당


아순시온의 거리


3
내가 아순시온에서 가장 좋아하는 장소를 꼽자면 구도심에 네 광장이 모여있는 곳이다. 아순시온은 스페인의 옛 도시계획 기법을 따라 70m 정도의 정방형 블록들로 구성되어있다. 1542년 부에노스아이레스가 원주민들의 습격으로 파괴되어 피난처였던 아순시온이 본격적으로 개발되었다고 하니 아마도 광장의 역사는 500년 정도일 것이다. 이 장소의 재미있는 점은 서로 인접한 광장들이 하나의 공원처럼 보이지만 들어가 보면 완전히 다른 형태와 쓰임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북동쪽의 광장 이름은 “영웅의 광장”이다. 우리나라로 치면 현충원에 해당하는 팡테온에 부속된 공간이다. 상징적 광장이어서 그다지 할 일은 없지만, 녹음 아래 앉아 있으면 제복을 입은 군인들의 교대식을 볼 수 있다. 북서쪽의 광장은 “후안 오레리의 광장”이다. 후안 오레리는 파라과이의 역사가이자 언론인이었다. 광장은 방사형으로 설계되어 있었는데 그 가운데는 그의 흉상이 있었다. 전쟁 영웅이나 정치가의 동상이 아니라 좋았다. 이 광장 주변에는 괜찮은 식당과 카페, 상점들이 있어 기분이 좋은 거리를 만들고 있었다. 남서쪽의 “자유의 광장”은 유난히 녹음이 많아 공원이나 다름없었다. 가로변에는 노점 시장이 있었고 공원 안의 길은 구두닦이 부스가 점령하고 있었다. 부스는 높은 단 위에 의자가 있는 형태였는데, 그곳에 앉아 구두를 닦는 이들은 단 위의 동상처럼 보였다. 그곳에 앉으면 중요한 인물이 된듯한 기분에 사로잡힐 것 같았다. 남동쪽의 ”민주의 광장“은 최근에 재설계를 한 듯 스페인 건축가 엔리크 미랄레스를 흉내 낸 듯한 설계 언어가 많았다. 하지만 재료나 시공 솜씨가 그리 좋지 않아 완성도는 상당히 떨어졌다. 이 광장은 일종의 입체 복합 시설이었는데 지하에는 공용주차장이 있었고 건물이 일종의 지형건축처럼 광장과 결합되어 있었다.

이 광장들에는 사람이 늘 많았다. 그래서 볼거리도 많았다. 광장 하나, 하나를 따로 떼어 보면 그저 그랬는데 네 개의 광장이 모여 도시와 만날 때 만드는 힘은 상당했다. 특히 주말 저녁 때가 되면 광장은 주변 건물들과 하나의 공간이 된 듯 활기가 넘쳤다. 사람들은 광장과 공원을 사랑했고, 광장과 공원도 이 도시와 사람들을 사랑했다. 500년 동안 이 도시의 사람들은 광장을 그렇게 사랑했다. 


자유 광장의 구두닦이


영웅 광장의 팡테온


4
문제는 물이었다. 바냐도수르 지역은 거대한 유수지로 잠실과 맞먹는 면적이었다. 파라과이 정부는 이 지역을 신도시로 만들면서 전체를 매립하기를 원했다. 기존 도심과 이 지역은 8m 정도의 높이 차이가 있어 그 넓은 면적을 매립할 매립토를 구하는 것도 문제였지만, 가장 큰 문제는 물을 처리하는 것이었다. 우기 때 이 지역 대부분이 물에 잠길 정도로 반야도수르는 도시 전체의 홍수를 처리하는 역할도 하고 있었다. 만일 매립이 진행될 경우 기존 도심에도 심각한 침수를 발생시킬 수도 있었다. 게다가 유수지의 습지는 거대한 정화장치의 역할도 하고 있었다. 하수기반시설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아순시온은 자연의 정수장을 잃어버리는 셈이었다. 나는 도시계획 전반을 담당하고 있는 고박사님께 더 많은 저류 공원을 확보하는 것은 어렵냐고 물어보았다.

“저도 더 공원을 확보하고 싶은데, 그러면 수익을 낼 개발지가 줄어들어서…”

안된다는 뜻이었다. 며칠 동안 나는 저류 공원을 연구했고 몇 가지 유형과 사례들을 정리했다. 도시계획팀에게 내용을 보여주었다. 고박사님은 예상보다 더 내가 제시한 대안들을 좋아했다. 도시계획 이후에 시범 프로젝트를 진행하게 된다면 저류 공원을 만들자고. 

“이제 토목 수리팀에서 가능한지 계산을 해봐야겠네요.”
“그렇죠. 이런 방식이 가능한지 토목에서 검토를 해주어야겠지요.”

실무를 하면 늘 맞닥뜨리는 조경의 무능이 장벽으로 다시 다가왔다. 그게 올바른 대안이라고 배우고 직관적으로 그래야 한다는 것을 알지만, 계산으로 증명하지 못한다. 공식을 모르고 숫자로 설득이 불가능하니, 결국 토목에서 안 된다고 하면 안 될 것이다. 결국에는 이해심이 높은 토목 전문가와 협업 할 수 있기를 기대해야 하는데, 그런 경우는 거의 없다. 물론 숫자가 언제나 정답을 제시해주지는 않는다. 우리는 숫자만 따랐다가 실패한 수많은 사례를 배웠고, 그에 대한 새로운 디자인적 해법을 제시해야 한다고 배웠다. 그러나 숫자를 제시하는 법을 배우지는 못했다. 그래서 결정의 순간에 침묵할 수밖에 없고 물러설 수밖에 없다. 토목팀은 아직 파라과이에 오지 않았고, 토목팀이 한국에서 나를 회의에 불러줄지도 모르겠다.


반야도수르의 슬럼과 쓰레기매립지


5
18일 만에 돌아온 서울의 하늘은 흐리고 낮았다. 코로나 사태가 심각한 국면에 접어들고 있을 때라 공항과 거리에는 인적도 거의 없었다. 아순시온의 하늘을 떠올렸다. 산도, 높은 빌딩 숲도 없던 아순시온의 하늘은 너무나 파랗고 넓어 먹먹했다. 그 하늘에는 아순시온의 태양이 떠 있었는데, 한국의 태양이 아니었다. 아순시온의 태양은 눈이 시릴 정도의 높은 명도와 채도의 색을 지상에 그려, 아순시온의 모든 것은 나무도, 사람도, 물도, 건물도, 이제까지 경험해 보지 못한 선명함과 강렬함으로 각인되었다. 태양의 신은 남미에 살고 있을 수밖에 없었고, 태양이 신이 없는 우리는 아직 태양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

아순시온의 하늘
글·사진 _ 김영민 교수  ·  서울시립대학교 조경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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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mkim@uo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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