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창가의 단상

글_성장환 논설주간(LH 토지주택연구원 국토지역연구실 실장)
라펜트l성장환 논설주간l기사입력2014-05-08

창가의 단상


성장환  논설주간(LH 토지주택연구원)

 

 싸릿눈이 한참 휘날리던 지난겨울 어느 날 문득, 연구원 2층에 자리 잡은 필자의 연구실 창가에 늘 서 있던 나무에 새집이 있다는 걸 발견하곤 무척 놀란 적이 있다. 여름에 이 방으로 거처를 옮기고 겨울이 다 되도록, 내 의자에서 불과 2미터도 안 되는 창가 나무에, 새의 집이 자라잡고 있다는 걸 새까맣게 모르고 있었다는 게 신기할 따름이었다.


 나는 얼른 핸드폰을 꺼내들고 사진을 한 장 찍었다. 혹시라도 하는 마음에 기록해 두어야 할 것만 같았다. 여름 내내 새들이 날아와 재잘거리다 날아가도, 그저 잠시 쉬러 왔겠거니 여겼었지 그들의 보금자리가 내 보금자리 바로 앞에 나란히 있을 거라곤 상상도 못했다. 바로 눈앞에서 새들이 살고 있는 집도 알아보지 못하면서 도시를 연구한다는 사실에 내심 나 자신을 돌아보게도 했다.


 

 그러나 그것도 잠깐, 그 일을 일상의 부스러기로 잊고 지낸지 몇 달이 지난 오늘, 그처럼 가물었던 시기이지만 마냥 반가울 수도 없는 비가내리고, 바람이 꽤 불기에 창문을 닫으려다 또 한 번 깜짝 놀랐다. 분명 지난 주까지만 해도 잘 보였던 새 집이 보이질 않는 것이다. 나무의 잎이 그사이 눈에 띄게 자라서 도저히 새집을 분간하기가 어려웠던 것이다. ‘ 아 내가 못 알아 본 게 당연하구나, 도저히 찾아내기 어려운거였구나!...’ 필자는 지난 겨울 나를 질책했던 기억을 떠 올리며, 오히려 그 때의 생각이 짧았음을 깨달았다.


필자는 나무에 대해 문외한이나 마찬가지라, 이 나무가 무슨 나무인지 이름도 잘 모른다. 그 걸 꼭 알 필요도 없다고 생각한다. 좀 더 친해지면, 더 관심을 가지고 알아보게 되려나... 그러나, 이 나무는 내게 세상 어떤 나무보다, 어떤 조경작품보다 소중하고 친근하다. 늘 무심코 하루에도 몇 번씩 쳐다보지만, 언제나 그 자리에 있어주는 나무다.

 
 또 핸드폰을 꺼내 사진을 한 장 찍는다. 너무나 다른 풍경이다. 겨울에 보였던 새집뿐만 아니라, 주차장의 차들도 나뭇가지 사이의 풍광의 자투리들도, 훌쩍 자란 나뭇잎들이 온통 초록빛으로 바꾸어 놓았다.


 나뭇잎이 흔들리는 걸 보고는 바람이 부는 걸 알고, 잎사귀에 떨어지는 물방울들을 보고 비가 내리는 걸 안다. 그리고 계절이 바뀌고 있다는 것도...


 도시에서 조경은 이런 게 아닌가 싶다. 내 가까이에 그리고 늘 내게 자연과 시간의 신호를 보내주는 비타민과 같은 존재. 주변의 녹색을 한번 쳐다보고는, 피로를 풀고, 활력을 찾고, 생각을 정리하고, 혼자가 아님을 느낀다.


'내 옆에 이런 나무가 있어주어서, 난 얼마나 행복한가!'


얼마 전, 서울시청광장에서 “조경, 도시의 꽃이 되다”라는 글귀를 본 기억이 난다. 뭔가 좀 아쉬웠다. 약하다고 해야 할까, 소극적이라고 해야 할까? 그냥 도시의 장식, 치장에 불과하다는 느낌이었다. 좀 더 도시인에게 필수적이고, 생동적인 표현은 없을까? 조경, 도시의 활력이 되다, 에너지가 되다 등... 그래야 조경이 도시개발에서도 가장 중요한 핵심분야로 자리잡게 되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해본다.


연재필자 _ 성장환 논설주간  ·  LH 토지주택연구원 국토지역연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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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lan21@lh.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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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계획을 전공하시는 분이 조경을 보는 눈에도 조경분야에 대한 안타까움이 서려있음을 느낀다. 글의 마지막 부분에서 언급된 '조경, 도시의 꽃이 되다'라는 타이틀을 거는 우리 조경분야의 사람들! 그것도 아마 어느 조경 조직의 중견 조경 전문가 이상인 사람이 의견을 내고, 주위의 있는 사람들이 동의한 것이 틀림없을진데... 나 역시 그런 카피를 걸다니! 도대체 생각이 어느 시대에 머물고 있는 사람인지 참 한심하다고 생각했었다. 이 댓글을 다는 본인도 조경인으로서 참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다. 그리고 설움과 함께 분노가 치솟았다. 도데체 이 대명천지 밝은 지식사회에 아직도 우리 조경분야에는 갓쓴 조선시대 사람같은 분들이 어째 저렇게 너무도 당당하게 서있을까? 그것도 지도자급 전문가로서 말입니다! 아! 정말 우리 분야는 혁신해야함을 느낀다.' 생각의 혁신' 말입니다. 그 보다 먼저, 교육이 필요하겠군요! 아니 그보다 먼저, 자신이 최고라는 자만심부터 버리는 자세가 더 필요하겠습니다. 아니 그보다 더 먼저, 남의 얘기를 듣고 수용할 수 있는 겸허한 사람이 먼저 되어야 겠네요! 아니 그 보다 더 더 먼저 나부터 먼저 돌아 보아야 겠습니다! 나는 그런 시대에 뒤쳐진 사고의 카피를 내는 사람들의 부류와 혹시 같은 부류의 조경가는 아닌지?
2014-0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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