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초탈하여 산속 깊숙이 은일하며 살았던 순천의 초연정 원림(順天超然亭園林)

[조경명사특강]이재근 교수의 ‘한국의 별서’ 16회
라펜트l이재근 교수l기사입력2014-06-20


爰居爰處 枕流嗽石 滌蕩盡臼之愁 洗盡胸膈之滓 物外淸趣 人間至樂 孰有加於此哉 逍遙於此
“이곳은 거처하면서 흐르는 물로 양치질하고 돌을 베개 삼으며, 때 묻은 근심을 씻어내고 살만한 곳이다. 가슴에 응어리 진 찌꺼기를 온전히 제거할 수 있다. 사물 밖의 맑은 정취와 인간의 지극한 이러한 즐거움을 이보다 누가 더 보태줄 수 있으랴!”
-조기중의 초연정 창건사적기-


초연정 내원도(김영환.2014)


초연정 위치도

전남 순천시 송광면 삼청리 왕대마을에 위치한 초연정(超然亭) 원림은 1836년 청류헌 조진충(聽流軒 趙鎭忠: 1777∼1837)이 옥천 조씨의 재각으로 건립하면서 자신의 학문과 수양의 장소로 삼은 별서이다. 처음에는 건물이 초가였으나 1864년 아들 조재호(趙在浩)가 기와지붕으로 중수했고, 1890년에 이르러서 연재 송병선(淵齋 宋秉璿: 1836∼1905)이 ‘초연정(超然亭)’이라 명명하였다. 그 후 1896년과 1925년에 중수하였고 6.25로 폐사(廢舍)된 것을 1986년에 복원공사를 통해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된 것이다. 1990년 2월 24일 전라남도 기념물 제127호로 지정되었고, 2007년 12월 7일에는 ‘순천 초연정 원림’ 명승 제25호로 지정되었다. 

초연정의 본제(本第)인 옥천 조씨의 일가는 이곳 왕대마을에서 화순군 남면 대곡리 한실마을로 옮겨갔는데 1991년 주암댐이 축조됨에 따라 한실마을 지역일대가 수몰되어 현재 남아있지 않다.

조진충은 「초연정기」에서 ‘본인은 이곳에 은거하면서 옳은 일만 실천하고 남이 알아주는 것에 대해서는 관심을 갖지 않았다. 간혹 허름한 차림에 갈건(葛巾)을 쓰고 이곳에 찾아와 노닐곤 하였으며 아득히 세속에서 초탈한 사상을 지닌 듯이 살았다. 그러나 작정자가 한때 이곳을 버리고 세상으로 나갔어도 사람들은 여전히 찾아와 놀다가곤 하였다.’ 라고 하였다. 이는 이곳이 가히 사람들이 은일하여 쉴만한 곳임을 피력하고 있는 것이다.


초연정내부

송병선의 호는 연재(淵齋)로 송시열(宋時烈)의 9세손이다. 이 정자를 초연정이라 명명하고 편액한 송병선은 당대에 상당한 학문적 경지에 오른 사람이었다. 옥천 조씨 문중의 유생들은 연재 송병선을 스승으로 모시고 소학과 사서삼경의 경전을 배우고자 하였다. 이러한 사실은 송병선의 『연재선생문집(淵齋先生文集)』卷22 중「유월출천관산기(遊月出天冠山記)」에 나타나 있다.

“월출산과 천관산을 유람하고 보성의 우산에 이르러 목미암에서 향음례로 참배하고 모후산으로 들어와 조씨 초연정에서 강학하고 곡성을 갔다.”
“到寶城之牛山 習禮於木美菴 人母候山 講學于趙氏超然亭 過谷城地.”


후면에서 본 초간정의 외원(가을강충세.2013)


후면에서 본 초연정의 외원(여름강충세.2013)

그는 학행(學行)으로 천거 받아 제주(祭酒)에 기용된 뒤 서연관(書筵官)ㆍ경연관(經筵官)ㆍ대사헌(大司憲)을 지냈다. 옥천 조씨 문중에서 이렇듯 구한말의 큰 선비인 송병선을 초빙하여 초연정에서 강론하게 한 것은 주목할 만한 일이다. 이것은 그만큼 당시에 옥천 조씨 문중의 활동이 두드러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1905년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송병선은 망국의 울분을 참지 못하고 음독 자결하고 말았다.

순천 초연정 원림에 관련되어 알려져 있는 시문은 총 35편으로, 이중 10개의 시문에 대한 의미론적 해석을 종합해 본 결과 자연예찬, 선현칭송, 도가사상, 유가사상이 많이 나타났다. 시문에서는 원림의 시초와 조성연대, 조성배경, 동기, 정명의 유래를 두루 살필 수 있다. 또한 산, 계곡, 바위 등 별서주변의 아름다운 경치를 노래하였고, 그 곳을 관리하며 조상의 뜻을 계승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또한 자연 속에 은일하는 도가사상과 군자의 도를 지키는 유가사상이 나타나며, 술잔을 기울이고 시를 읊는 유유자적한 풍류의 의미경관이 도출된다.

초연정은 모후산(930m)자락 동쪽 기슭 해발 약 400m 자락에 위치한다. 이곳은 일반 구릉지나 평지에 건립되어 확 트인 경관을 감상하는 별서와는 달리 깊은 자연계곡을 이용한 독특한 예로 볼 수 있다. 초연정이 위치한 모후산(930m)은 전라남도 순천시의 주암면과 송광면, 화순군의 동복면과 남면에 걸쳐진 산으로 서쪽으로는 용문치, 동쪽으로는 남방재가 있어 산줄기가 십자 모양으로 발달하고 그 사이로 하천이 흐른다. 산의 동쪽에서 발원한 삼청천 등이 보성강 본류와 함께 주암호를 형성하고 있다.


초연정 외원도(김영환.2014)


초연정근경2(여름강충세.2013)

1836년 조기중은 「창건사적기(創建事蹟記)」에서 초연정의 입지와 주변 환경에 대해서 “후산 아래 왕대동이 있다. 산수의 기운이 어려 가히 “별유천지 비인간지야(別有天地 非人間地也)”라고 할 수 있다. 그 안에 봉우리 하나가 있는데 높이는 하늘을 닿을 듯하고 땅에 똬리를 틀 듯 자리 잡았다. 생김새의 흐름은 구불구불하고 어려 있는 정신은 맑고 깨끗하며 좌우가 가지런하면서도 겹겹이 울타리처럼 두르고 있으니 이곳의 모양이야말로 마치 왕이 구중궁궐에 거처하고 있으면서 장수들이 군막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모습과 같다.”라고 하였다. 

초연정 원림은 크게 내원(內園)과 외원(外園)으로 구성된다. 내원은 도로와 담장이 맞닿아 있으며 정자의 작은 앞뜰과 수석(水石)이 함께 어우러져 있고, 정자 뒤편에는 거북이 모양의 큰 자연석이 있다. 「초연정중수실기(超然亭重修實記)」에는 정자, 담장, 연못, 누대, 큰 문, 작은 문 등이 묘사되어 있는 점으로 보아 당시 규모가 어느 정도였는지를 추측해 볼 수 있다. 하지만 현재 연못은 초연정 주변에 수풀이 우거져 그 흔적을 찾아 볼 수 없다.


초연정배치도

정자 옆으로 급한 경사를 따라 내려가 보면 자연계곡을 중심으로 암반과 계류 등이 외원을 구성하고 있다. 순천 초연정 원림의 경관구성요소는 산, 물, 바위가 가장 많이 등장한다. 이것은 외원이 초연정을 구성하는 주요소임을 말해주며, 모후산의 전경이 외부경관의 주 조망점으로 구성되고 있음을 뜻한다. 또한 3월과 9월에 선조를 추모하는 활동이 봄ㆍ가을 계절별 요소로 나타나, 조상을 숭배하는 마음과 효도를 칭찬하는 내용이 자연스럽게 녹아있음을 알 수 있다.


초연정의 원경(여름강충세.2013)


초연정계곡(여름강충세.2013)

외원의 암반에는 초연정과 관련이 깊은 왕대사적(王垈事蹟)기문과 침류대(枕流臺)를 비롯하여 옥천 조씨 문중원의 이름과 송병선이 새겨져 있다. 왕대사적은 고려 공민왕이 피신해 살았다는 왕대마을의 유래와 연혁을 다루고 있으며, 옥천조씨의 입향조와 그 후손들이 그 뜻을 기려 각석을 하였다는 내용이 담겨있다.

또한 침류(枕流)란 본디 ‘돌을 베고 잠을 잔다.’는 뜻으로 물가에서 자연과 더불어 산다는 의미이다. 즉 초연정의 외원이 예로부터 맑은 물이 흐르는 풍류의 장소임을 입증하고 있다. 주변 바위 위의 암각은 주로 옥천 조씨 문중원의 이름인 건립자 조진충의 호 청류헌(聽流軒)과, 조병익(趙秉翼), 조장호(趙章浩), 조병우(趙秉祐), 그리고 송병선(宋秉璿)이 음각되어 있다.


조진충별업 암각


입구쪽에서 본 초연정원경(겨울강충세.2013)

암각기법은 사상이나 철학을 보여주거나 자연에 장소성을 부여하는 방식으로, 이름을 붙임으로써 정원의 소유주를 나타내기도 한다. 일부 지역의 경우에는 뜰이 넓지 못하고, 정원을 화려하게 꾸밀 만큼 경제력이 되지 않을 때 썼던 것으로 분석된다.

명승 ‘순천 초연정 원림’은 명승으로서 충분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된다. 하지만 한편으로 초연정 원림은 다음의 몇 가지 문제점이 있어 시정을 요한다.


초연정계곡(가을강충세.2013)

첫째, 진입로 정비가 시급하다. 현재 초연정은 주변에 수목이 우거져 있어 입구가 차단 되어있는 상태로, 담장 뒤편에 맞닿아 있는 도로를 통해 진입하고 있다.

둘째, 초연정 원림에는 총 3개의 문화재 안내판이 있다. 하지만 모두 명승으로 지정되기 전에 설치된 것이어서 초연정 연혁에 대해 모호하게 되어있다. 이는 사후 검증을 걸쳐 안내판에 반영해야 할 것이다.

셋째, 시문에서 나타난 연못을 발굴해야한다. 연못 터는 진입로와 마찬가지로 수목이 우거져 흔적을 찾지 못했다. 추후 발굴과 측량을 통해 복원해야 한다. 

넷째, 초연정에는 편액이 없다. 그리고 초연정에는 창녕 조병기(昌寧 曺秉琪)가 쓴 「경차초연정운(敬次超然亭韻)」 판상 한 점이 걸려있다. 송병선이 직접 쓴 편액도 있다고 기록되어 있고 조후섭(趙後燮), 조인섭(趙仁燮) 기문, 아천석(我泉石)이라고 쓴 현판도 있었으나 행방이 묘연하다. 이러한 편액들을 모아서 본래의 장소인 이곳으로 옮겨 놓을 필요가 있다.


계곡쪽에서 본 초연정원경(겨울)

순천 초연정 원림은 외원과 주변 자연경관의 보존이 잘 되어 있어 경관적 가치가 높게 평가된다. 향후 자연경관을 해치치 않는 범위 내에서 탐방로를 조성하고 시문을 통해 스토리텔링기법을 활용, 주변 문화재와 연계함으로써 지역의 중요한 문화관광자원으로 탈바꿈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초연정. 화순을 지나 모후산자락 깊은 계곡으로 가는 길. 비록 조씨 문중이 모여 살던 한길마을은 주암호에 가리어 사라졌지만, 그들이 제사와 은일을 위해 넘나들었던 별서를 찾아가는 길.

복원정비계획이 잘 이루어져 조진충과 송병선이 이루었던 선비의 삶과 철학을 세상 사람들에게 알렸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보성강 및 섬진강 별서수계도(김영환.2014)
연재필자 _ 이재근 교수  ·  상명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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