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목길을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_비로소 ‘아는’ 사람이 되는 것

[오피니언] 이훈길 논설주간(ㄱ_studio 대표)
라펜트l이훈길 논설주간l기사입력2014-07-03
골목길을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_비로소 ‘아는’ 사람이 되는 것

이훈길 대표(ㄱ_studio)

개그우먼 허안나가 국민 남동생 이승기에게 점점 다가가는 동안 ‘3m 격식 있는 거리, 1m 일상 대화의 거리, 46㎝ 숨결이 닿는 친밀한 거리’라는 자막이 바뀌면서 둘 사이의 간격을 좁혀나간다. 그리고 친밀한 우리 사이를 [페리오46㎝]로 지키라고 이야기한다. LG생활건강의 치약 광고이다. 이 광고는 최근 개그맨 김준현이 여장을 하고 나와 ‘3m 몸매가 눈에 띄는 거리, 1m 얼굴이 드러나는 거리, 46㎝ 하얀 미소가 닿는 거리’로 패러디 되었다. 한번쯤 광고를 보면서 3m, 1m, 46㎝의 거리가 무슨 의미가 있는지 궁금했을 것이다.

미국의 문화인류학자 에드워드 홀은 그의 저서 [숨겨진 차원]에서 사람들이 영토권을 바탕으로 타인과의 상황에 따라 공간의 크기를 선택하는 것을 밝혀내고 이를 네 가지로 분류하였다. 그는 사람들이 인식하는 공간을 가족, 연인 또는 친한 친구에게만 허용하는 밀접한 거리, 친구나 회사동료와 같이 일상적인 대화를 나누는 개인적 거리, 회의나 모임에서 사용되는 사회적 거리, 강의공간의 강사와 청중들과의 거리인 공적인 거리로 분류했다. 밀접한 거리는 자신의 몸으로부터 0.5m(46㎝) 이내, 개인적 거리는 1.2m 이내, 사회적 거리는 3~3.6m 이내, 공적인 거리는 3.6m 이상의 거리를 말한다. 보통의 대화는 대개 1~3미터의 거리에서 이루어지고 이 거리에서 일반적으로 사람 사이의 접촉에 필요한 세밀한 부분을 느낄 수 있다. 


인사동의 옛 골목길은 작은 공간으로 오밀 조밀 이루어져 있다.  Ⓒ이훈길

하지만 우리가 보통의 대화를 나누며 서로 접촉할 수 있는 거리가 일상적인 주변에 놓여있는지 의문이다. 도시 기능의 다양화, 산업화, IT 기술의 발달로 인한 익명성 그리고 자동차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짐에 따라 도시와 주거지역은 점차 친근하게 느낄 수 있는 공간과 함께 접촉의 기회가 사라지고 생명력을 잃어 가는 추세에 있으며 이는 도시를 더욱 무료하고 단조롭게 만들고 있다. 지금 우리 동네에서 내가 ‘아는’ 사람이 몇 사람이나 되는지 생각해 보자. 아마 두 손을 다 쓸 필요도 없을 것이다. 친밀한 거리(Distance)가 사라진 거리(Street)인 것이다.

작은 공간은 따뜻하고 친근하게 인지되는 경향이 있다. 작은 크기의 공간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볼 수 있도록 도우며 작은 공간 내에서 전체를 살펴보며 작은 디테일을 만끽할 수 있도록 한다. 옛 골목길은 바로 그 작은 공간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차가 다니지 못하는 3m 이내의 길들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는 개인적 거리인 1.2m와 사회적 거리인 3.6m 중간에 위치한다. 사적 공간과 공적 공간이 내밀하게 연결되어 있는 길이라 다양한 사람들의 접촉과 이야기가 생겨나는 공간이다. 그 골목 사이사이의 작은 공간과 틈 사이에서 꽃은 피어난다. 조경은 그 가운데에 놓여있다. 보통의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골목길이 살아 숨쉬기 위해서는 좁은 도시 뒷골목에라도 기어이 꽃을 피우고 싶어 하는 조경의 마음이 필요하지 않을까? 우리에게는 멋지고 화려한 조경이 아니라 주변에서 쉽게 만지고 바라보고 냄새를 맡을 수 있는 골목길 에 알맞은 조경이 필요하다.

개개인의 생활공간을 도시로 이어주는 역할을 하는 골목에 자연스러운 조경이 녹아있는 장소와 사적인 공간과 공적인 공간의 유기적 연결 속에서 수많은 이야기들이 흘러나가고, 흘러들어오는 유연한 경계를 가진 조경 공간 안에 녹아있는 따스한 커뮤니티 형성의 희망을 우리는 버릴 수 없다.

임석재는 [서울, 골목길 풍경]이라는 저서에서 골목길을 ‘공간의 종합선물세트’라고 이야기한다. 골목길은 다양한 변화 속에서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인사동의 골목길은 일제시대, 양반네들이 살던 대형필지가 소형필지로 분화되면서 만들어졌고, 계동이나 가회동의 경우는 해방직후 택지개발로 만들어졌다. 그리고 철거민의 집단이주지였던 봉천동의 골목길은 택지개발로 만들어져 격자형이다. 그런데 이렇게 생성된 골목길이 점점 사라지고 있다. 서울의 많은 달동네가 아파트 단지로 변했고, 그나마 남아있는 골목길들도 차로 점령되어 주차장으로 쓰이고 있는 현실이다. 어쩌면 더 이상 골목길이 필요하지 않는 시대이기도 한 것이다.

그러니 더 이상 골목길의 낭만보다 골목길 안에서 부담 없이 다른 사람과 함께 있을 수 있는 기회의 공간에 관심을 둘 필요가 있다. 도시나 주거지역에서 골목길에서의 만남의 기회와 일상의 활동으로 인해 사람들은 함께 존재할 수 있다. 서로 만나고 귀를 기울이면서 다양한 여건에 놓인 사람들의 활동을 경험하게 된다. 집으로 돌아갈 때에 일부러 먼 길로 우회하여 돌아감으로써 골목길의 산책을 즐기거나, 누군가의 집 대문 근처의 계단에서 잠시 앉음으로써 이미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동네 사람들과 함께 이야기 나눌 수 있다. 뭔가 흥미로운 볼거리가 골목길에서 이루어진다면 가끔은 창밖을 내다보는 일 역시 괜찮은 일이다. 다른 사람과 함께 있는 것, 다른 사람을 보거나 그들에게 귀를 기울이는 것, 다른 사람으로부터 자극을 받는 것은 혼자 있는 것에 대한 대안으로서 긍정적인 경험이 될 수 있다. 사람은 여러 가지 형태의 모습으로 다른 사람과 함께 있기 마련이며, 그 다른 사람이 항상 특별한 사람일 필요는 없다.


동일한 공간 속에서 함께 걸으며 존재하는 삼청동의 골목길 Ⓒ이훈길

골목길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동일한 공간 속에서 함께 존재해야 한다는 것이다. 즉 접촉이다. 단순히 다른 사람과 함께 자연스럽게 걸으며 발생하는 접촉이다. 짧은 대화의 주고받음, 길에서의 간단한 의견교환, 어린이들과의 잡담 등 대부분 순간적으로 일어나는 기회의 공간이다. 접촉은 이렇게 간단한 수준으로부터 시작하여 참여를 희망하는 수준으로 발전해 나갈 수 있다. 무엇보다도 사람은 다른 사람과의 공존하는 과정을 통해 평범하지만 중요한 것들을 배울 수 있다. 이러한 경험을 통하여 우리는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세상과의 허물없는 관계를 성립할 수 있다. 골목길에서 종종 마주쳤던 사람이 비로소 ‘아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골목길에서 다른 사람을 경험한다는 것은 매순간이 새롭다. 이는 삶에서 가장 중요한 주제, 즉 인간에 관한 것이기 때문이다. 살아있는 도시는 사람들이 서로 접촉할 수 있는 곳에서 풍부한 경험이 존재하기 때문에 항상 자극적일 수 있다. 이는 다양한 색채와 형태의 건물로 채워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경험과 접촉을 무시한 채 계획되어 무미건조하고 생명력이 없는 도시와 비견될 수 있다. 지금 우리는 새로운 ‘만듦’보다 골목길과 같은 도시 안에 놓여 있는 ‘있음’을 잘 살피고 돌보아야 한다. 그러면 골목길에서 마주치는 이웃과의 아름다운 아침인사가 그리 먼 일은 아닐 것이다. 그 안 어딘가 사람냄새가 나는 친근한 골목길의 ‘있음’에 조경이 놓여있다.

글·사진 _ 이훈길 논설주간  ·  ㄱ_stud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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