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에게 길들여진 자연, 가로수

[오피니언] 이훈길 논설주간(ㄱ_studio 대표)
라펜트l이훈길 대표l기사입력2015-01-29
모든 사람이 저마다의 무언가를 품고 태어나듯, 이 땅 위에서 태어나는 모든 나무들도 제 나름의 얼굴, 냄새, 성격을 가지고 태어난다. 무엇하나 같은 녀석이 없다. 세상에 단 하나뿐인 존재들이다. 하지만 가로수라는 이름으로 불리기 시작하면, 모든 나무들은 하나같이 동일시된다. 인간에게 길들여지면서 개성을 잃어버리고 거세당한다.

가로수가 만들어준 의사자연의 그늘과 색깔 Ⓒ이훈길

사람들은 회색의 콘크리트 도시를 어떤 방식으로든지 살 만한 곳, 건강한 곳, 걸을 수 있는 곳으로 만들려는 다양한 시도들을 한다. 그 중의 하나로서 조성된 화단과 꽃을 담은 화분들 그리고 가로수는 보도 위에서 자연을 모방한 녹색의 위로를 안겨주지만 획일적으로 존재할 수밖에 없다. 가로수들은 묘목에서부터 철저히 사람의 손에 의해 생산되고 관리되기 때문이다. 거기에는 신선한 감흥과 생동감 있는 생명력이 없다. 생명력이 관리됨으로써 가로수들은 무생물과 같은 취급을 받는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가로에 나무들을 심는다. 그리고 가로수가 만들어준 의사자연의 그늘과 색깔들로부터 위안 받으며 즐거워한다. 그 위안은 대리만족에 가깝지만 우리는 가로수 없는 거리를 삭막하다고 생각한다. 도시와 길들을 자연과 구별하기 위해 만들었으면서도 그 내부에 인위적으로 조성한 자연이라도 없으면 불안해하는 것이 인간이다.

가로수의 역사는 매우 오래되었다. 고대 이집트의 상형문자에는 도로 위에 나무가 있는 형태를 볼 수 있으며, BC 5세기경 중국에서는 ‘열수(列樹)’라는 말을 사용하였다. BC 14세기경 이집트에서는 무화과나무 계통을, BC 5세기경 그리스에서는 버즘나무를 가로수로 식재하였고, 고대 중동지방에서는 유실수(有實樹), 즉 무화과나무·편도(扁桃:아몬드) 등을 가로수로 심어 가난한 사람이나 나그네들이 따먹게도 하였다고 한다. [정치적 풍경]의 저자 마르틴 바른케는 서양에서 가로수가 심어진 것은 대개 16세기부터라고 한다. 1537년 빈의 프라터 공원에는 밤나무 가로수 길이, 1580년 무렵에는 선제후 아우구스트 1세가 자신이 거주하던 드레스덴으로 조성되어 있는 모든 도로에 과일 나무를 심게 했다. 파리에서는 1647년에 왕비들이 왕비 산책로로 광대한 가로수 길을 만들었다. 이 가로수 길들은 물론 자연을 즐기거나 환경을 아름답게 한다는 단순한 목적에서 심어지지 않았다. 그 나무들의 일차적인 목적은 길 양옆의 농지에서 일하는 농부와 서민들로부터 가로수 길을 산책로로 삼는 귀족들을 보호하는데 있었다. 동양의 진시황은 황제 전용대로를 만들면서 길 양쪽에 가로수인 소나무를 심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러므로 가로수는 동서양 모두에게 자신이 지배하고 있는 공간을 장악하기 위한 수단이자 상징으로 전국을 연결하는 도로와 더불어 권력의 재현으로 활용한 것이다.


가로수 중 플라타너스는 1년에 가지가 평균 3m 이상 자리기 때문에 가로수 가지치기를 한다.

현대에 와서 도시의 거리에 놓이는 가로수, 꽃들은 그림 같은 풍경으로 만들어낸 인위적인 자연이다. 비록 그 규모는 작고 초라할지라도 도시에 인위적인 자연을 들여옴으로써 도시의 추악함을 은폐하려는 의도가 있는 것이다. 물론 그 은폐는 비난할 수 있는 것만은 아니다. 가로수나 꽃조차 없다면 도시는 더욱 견딜 수 없게 삭막하게 느껴질 것이다.


사람과 도시와 자연이 함께 공생하여 도시에 생명력을 불어넣어야 한다.

관리되는 자연, 즉 의사자연을 유지하기 위해서 도시의 가로수들은 학대 받으며 동시에 보호받고 관리된다. 겨울이 끝날 무렵이면 가로수들은 가위와 톱날에 의해서 잘려나간다. 1년에 한 번씩은 가로수 가지치기 사업으로 가로경관을 저해하거나 각종 안전사고와 민원을 유발하는 도로변 가로수를 대상으로 가지치기를 실시한다. 가로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가차 없이 가지가 잘린 가로수는 인간이 자연을 관리하는 방식을 잘 보여준다. 그 결과 나무들은 봄이 아직 오지 않은 도시의 거리에서 처량하고 가혹한 모습으로 남아있다. 하지만 봄이 되면, 대개 플라타너스인 그 가로수들은 잘리고 남은 가지에서 연두색의 새싹을 보이기 시작한다. 그리고 여름이면 모든 상처를 잊었다는 듯이 가지들을 뻗어 올려 도시를 녹색으로 뒤덮어 버린다. 가을이 되면 낙엽이 지고 단풍이 보기 좋게 변해 세계가 움직이고 변하고 있음을 가련한 도시의 사람들에게 보여준다. 그래서 가로수는 그 연원이 어디에 있든, 설사 의사자연에 지나지 않는다고 해도 도시경관을 조성하는 필수 품목처럼 자리 잡았다. 공원 녹지가 도시의 허파라면 가로수들은 녹색의 동맥으로 도시를 유기적으로 살아있게 만들어준다. 이처럼 도시경관의 주요 요소인 가로수를 의사자연이 아닌 자연 그대로의 생명력을 불어넣기 위해서는 가로수를 인간의 손으로 길들이기보다, 사람과 도시와 자연이 함께 공생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 봐야할 것이다.

_ 이훈길 대표  ·  ㄱ_stud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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