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디밭이 있는 집에 대한 환상 그리고 욕망

[오피니언] 이훈길 논설위원(ㄱ_studio 대표)
라펜트l이훈길 논설위원l기사입력2015-03-12
가을 날씨처럼 항상 푸르고 맑은 하늘, 그 아래 하연 집들이 잔디밭을 품고 그림엽서처럼 늘어선 마을, 더 할 수 없이 평화로운 풍경 속에 사람들은 언제나 즐겁고 유쾌하다.

영화 [트루먼쇼]에서 보여지는 마을의 모습이다. 트루먼쇼에 나오는 시헤이븐이라는 가상의 마을 풍경은 실제로 플로리다에 존재하는 시사이드(Seaside) 마을에서 촬영했다. 10만여 평 규모의 수백 채 집들로 구성된 이 마을은 부자들이 모여 사는 곳이다.

미국의 영화나 TV 드라마를 볼 때마다 한적한 마을 안에서 우리의 시선을 사로잡는 것들 중의 하나가 바로 집집마다 잘 가꾸어진 푸른 잔디밭이다. 대부분의 경우 그 잔디밭은 한적한 도로와 주택 사이, 주택과 주택 사이에 자리한다. 우리는 잔디밭이 있는 주택을 바라보면서 미래 자신의 집을 상상하면서 우리의 의지와 상관없이 낭만과 풍요로움, 단란함 등의 의미를 부여한다.


영화 [트루먼쇼]에 나오는 시헤이븐의 마을 풍경이다.

때로는 물을 주거나 잔디 깎는 기계로 잔디밭을 가꾸는 모습이 영화나 TV에서 보여지지만 가족과의 행복한 활동이 그림처럼 펼쳐지는 경우가 더 많다.

어린 아이들이 잔디밭에서 즐겁게 뛰어 노는 풍경, 잔디밭 빨랫줄에 빨래를 널면서 최진실이 ‘빨래~끝~’을 외치듯 여유로운 풍경, 잔디밭에 앉아 행복하게 대화를 나누는 풍경, 친구들을 초청해 즐겁게 파티를 여는 풍경, 저녁이 되면 이웃사람들을 초대하여 바베큐 파티를 하는 풍경 등이 우리가 스크린을 통해 엿보게 되는 잔디밭의 모습들이다.

 그러나 정기적으로 잔디를 깎고, 물을 주고, 잡초를 뽑아주는 일은 잘 보여주지 않는다. 영화나 TV에서는 잔디를 깎고, 물을 주는 행동이 노동이 아닌 가족과의 즐거운 여가 생활로 표현되기도 하지만 물을 주는 활동만으로 잔디가 스크린에서 보여지는 모습으로 가꾸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것을 심고, 가꾸며, 잡초를 뽑는 보다 번거로운 행동을 필요로 한다. 실제로 잔디가 심어져 있는 주변의 공원이나 관공서에서 볼 수 있는 보다 일반적인 풍경은 쪼그리고 앉아 잔디 사이로 자란 잡초들을 열심히 뽑는 아줌마들과 아저씨들의 모습이다.

우리가 생각해 봐야할 일은 동일한 잔디밭이라도 미국인들에 의해 읽혀지는 의미와 우리가 읽는 내용이 다르다는 점이다. 미국인들은 기능적인 이유보다 문화적인 이유로 잔디밭을 생각한다. 그들에게 잔디는 한 가족의 화목과 집안의 평안함 그리고 가시적이지 않은 거주자의 성실함을 가시화하는 일종의 기호에 가깝다. 놀이와 휴식을 위한 기능적인 공간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근면함이나 가족주의와 같은 미국 중산층 가정의 모습을 보여주기 위한 하나의 장치이며, 이데올로기인 것이다. 이러한 이데올로기적 장치로서의 잔디밭은 영화나 TV의 스크린을 통해 긍정적인 모습으로 그려지게 된다.

전통적인 우리 삶의 풍경에서 잔디밭이 조성된 집은 찾기 어렵다. 우리의 경우 집과 도로 사이, 집과 집 사이에는 잔디밭이 아닌 마당이나 텃밭이 있었다. 우리는 문화적인 이유보다 기능적인 이유로 마당이나 텃밭을 바라보았다. 그것은 채소와 같은 먹을거리를 얻을 수 있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마당이나 텃밭은 근대화와 함께 기능적인 이유보다 문화적인 공간으로 변화되었고 신도시 주택들 사이에서는 서양처럼 잔디밭이 조성되었다. 점차 서구화되는 삶의 모습 속에서 집 앞의 잔디밭은 경제적인 부유함의 의미로 해석되었다.

미국의 영화나 TV에서 보여지는 여유로운 가족의 모습은 잔디밭이 있는 주택을 선망과 부러움의 대상으로 만들었으며, 어느 순간 내가 살고 싶은 집이 되어버린 것이다.


일산의 단독주택지이다. 우리가 살고 싶은 집은 어떤 모습일까?

내가 서있는 주변을 돌아보면 곳곳에 유사한 형태의 아파트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는 현실이 보인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아파트에 살고 있다고 해서 그들이 진정으로 살고 싶어 하는 집의 형태가 아파트라고 단정 지을 수는 없다. 아파트에 사는 이유는 교육, 방범, 교통과 같은 피하기 어려운 현실적인 이유 때문일 경우가 많다.

나와 우리가 살고 싶은 집은 집 앞에 잔디가 깔려 있고, 그 위에서 아이들이 뛰어 놀며 아빠는 뒤에서 흐뭇한 모습으로 지켜볼 수 있는 경사지붕의 양옥집의 이미지이다. 우리는 진정으로 살고 싶어 하는 집과 현실적으로 살아야 하는 집 사이의 모순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현실의 삶에서 소유할 수 없는 욕망은 살고 싶은 집에 대한 환상만을 가중시킨다. 그래서 살고 싶은 집의 이미지에서 잔디밭이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이유이다.

과연 우리가 원하는 집의 모습은 무엇일까? 잔디밭을 갖고 싶은 것인가? 아니면 욕망의 그늘에서 자기만족을 하고 싶은 것일까? 그 중심에 의사자연인 잔디밭이 놓여있다.

글·사진 _ 이훈길 논설위원  ·  ㄱ_stud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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