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人道)의 의자는 모두 어디로 갔을까?

[오피니언] 이훈길 논설주간(ㄱ_studio 대표)
라펜트l이훈길 대표l기사입력2014-12-24
평범한 길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상적인 풍경들은 다채롭다. 보도를 걸어가고 있는 사람, 집 근처 거리에서 놀고 있는 아이들, 벤치나 계단에 앉아 담소를 나누는 사람들, 길거리에서 인사를 나누는 사람들 등 길에서 이루어지는 도시생활의 모습이다. 생활공간으로서의 길에는 여러 종류가 있다. 도로, 차도, 인도, 보도, 길, 거리, 통로, 산책로, 보행로, 뒷골목, 복도, 가로 등 쓰임과 사용에 따라 다양한 형태의 이름으로 불리고 있다. 하지만 도시의 길인 도로는 크게 차도(車道)와 인도(人道)로 나눌 수 있다. 말 그대로 차도는 차를 위한 도로이고, 인도는 사람을 위한 도로이다. 차도는 거칠 것 없이 넓게 뻗어 있어 자동차들이 빠르게 움직이고 있으며, 인도는 가로등, 간판, 가드레일 등이 차도에 떠밀려 인도로 올라와 사람들의 길을 막는다. 도로는 사람을 위해서라기보다 자동차를 위해서 만들어진 모습이다. 그러므로 인도란 여유 있게 걷기 위한 공간이 아니다. 차에서 내린 사람들이 건물로 가기위해서 스쳐 지나가는 복도일 뿐이다.

도시는 차도의 속도를 따라 움직인다. 자동차의 속도에 맞추다보니 인도에 머무는 사람들은 드물다. 사람들은 어디론가 시간에 맞추어 가기위해 바삐 걷고, 바삐 뛴다. 무엇인가 바뀌었다는 인상을 지우지 못한다. 사람이 여유롭게 거닐 수 있는 인도가 먼저이고 다음이 자동차를 위한 차도가 아닌가. 우리가 누려야 되는 걷기의 즐거움은 사라졌다. 그와 함께 걷다가 쉴 수 있는 인도의 의자들도 어디론가 없어졌다.


길을 걷다가 마주치게 되는 일반적인 인도의 의자들이다.

걷다가 어딘가에 앉아서 머무르며 쉰다는 것은 주위의 풍경과 경관을 같이 공유한다는 의미이다. 비록 주변의 풍경과 경관이 철저히 인위적이고 의도적인 것으로 가득찬 공간일지라도 눈에 보이는 것들을 바라보고 생각할 수 있는 여유를 가지는 것, 즉 여유시간을 소유하는 것이다. 하지만 일상에서 만나는 인도의 의자들은 앉을 곳이라는 기능만 있다. 시각적, 육체적, 정신적 휴식의 여유를 가질 수 있는 공간적 배려는 없다.

도시공간에서 어느 정도 쉬어야 할 필요가 있는 사람은 서 있는 것이 피곤하다는 걸 느끼며 어딘가 앉을 곳을 찾을 것이다. 그러나 차도의 부속공간이 되어버린 인도에는 아주 드물게 의자와 벤치가 놓여있을 뿐이다. 이 또한 의자가 놓여있는 위치나 장소, 디자인까지 모두 앉아서 쉬기에는 적당해 보이지 않는다. 앉아서 쉬라기보다 잠깐 엉덩이만 걸치고 지나가라는 뜻처럼 보인다. 사실 매우 다양한 물체가 앉는 데에 사용될 수 있다. 계단, 받침대, 돌, 볼라드, 기념물, 분수 혹은 도시의 길바닥 그 자체도 이용이 가능하지만 생활 속 길에서는 앉을 수 있는 도시적 요소가 풍부하지 못하다.

도시의 인도에 놓인 의자들은 몇몇 경우를 제외하고, 놓인 장소와 생김새가 각박해서 휴식이나 여유를 허용치 않는다. 먼저 차도와 인도를 가르는 가드레일이나 건물에 바싹 붙어서 놓인 위치와 점유 면적이 인색하다. 의자가 차지하고 있는 면적과 차도에서 차 한 대가 점유하는 공간을 비교하면 그 인색함이 확연히 드러난다.

심리적인 면에서도 의자가 점유하고 있는 공간은 충분치 않다. 사회 심리학자들은 인간이 자신의 영역을 침범당하지 않았다고 느끼기 위해서는 타인과의 적절한 거리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이러한 공간을 확보하기 위해 우리는 벤치에 앉을 때, 한쪽에 사람이 앉아 있다면 반드시 거리를 두고 앉지 옆에 바싹 붙어 앉지 않는다. 하지만 인도의 의자, 아니 도시 전체에서 그러한 공간을 확보한다는 것은 어렵다.


의자의 위치와 디자인이 머물도록 유도하는 데에 중요한 요소이다. 철로 된 튜브 모양의 의자(왼쪽)와 한 번화가의 범퍼 겸용 금속 파이프 의자(오른쪽)는 문제가 있는 해결방안임을 보여준다.

물리적이고 절대적인 공간이 비좁기 때문에 인도의 의자들은 한 줄로 늘어서게 된다. 마치 영화관의 의자들처럼 나란히 인도, 아니면 차도 쪽만을 향하고 있는 이러한 배치 방식은 그곳이 마주 앉아 대화하는 장소가 아님을 강조하는 것이다. 대기업이 소유하고 있는 빌딩이 제공하는 공개공지 정도만이 그래도 쉴 만한 공간을 확보하고 있는 장소들일 경우가 많다. 소공원과 유사한 그 공간들은 의자가 차지하는 점유 면적이 상대적으로 넓고 여유가 있다. 


인사동길에 놓여있는 돌벤치이다. 그러나 이용자들은 이런 종류의 불편한 의자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인도에 놓인 의자의 디자인 또한 기능과 재구성 이외에는 아무것도 고려하지 않은 듯이 간단하고 기능적이다. 단단해 보이는 두터운 나무와 스테인리스 강철과 화강암, 플라스틱이 주재료들이다. 아마 이 재료들은 내구성과 값이 싸다는 이유로 선택된 것이다. 디자인 또한 수많은 익명의 사람들을 고려한 것처럼 기본적인 기능에 충실하여 오래 앉아 있을 수 없도록 등받이가 없게 불편하게 디자인되어 있다. 의자 등받이가 없으면 누구도 오래 머무르지 않는다. 가장 좋은 좌석은 등받이와 팔걸이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도시 벤치나 독립적으로 있는 의자 등이다. 사람들이 오랫동안 머물고 싶거나 앉아 있는 동안과 앉았다 다시 일어날 때 보호가 필요한 노인들에게 의자와 팔걸이는 편안함을 제공해 준다.

이따금 거리를 거닐 다 보면 길거리에 나와 있는 의자와 평상들을 볼 수 있다. 사무실이나 가게에서 사용하던 의자 가운데 교체되거나 수명이 다한 의자의 일부가 보도나 골목에 나와 새로운 공간을 만든다. 가장 좋은 의자는 다양한 유형의 벤치일 수 있으나 사람의 손길이 닿는 이동식 의자가 될 수도 있다. 파리의 공원이나 뉴욕시의 브라이언트 공원(Bryant Park)에는 자유롭게 이동식 의자들이 놓여있다. 이 이동식 의자는 이용자들이 부지, 기후, 전망이 좋은 곳으로 의자를 옮기도록 하는 융통성을 발휘한다. 의자를 주변으로 옮길 수 있는 자유는 특수한 상황에 필요한 사회적 공간을 배열할 수 있어서 그 자체로 가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계절에 따라 보관될 수 있는 이동식 의자의 간편함은 또 다른 장점이기도 하다.

서울시가 12월 15일에 <인도 10계명>을 발표하였다. 서울시민의 보행자로서 마땅히 누려야 할 보행권 보장에 관한 내용들이다. 하지만 어디에도 인도의 의자에 관한 내용은 살펴볼 수가 없다. 인도의 의자에 앉아 여유를 가지고 머물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설치 위치, 디자인 그리고 충분한 점유 공간에 대한 고민이 아쉽다. 인도의 의자는 기능 이상의 시각적, 육체적, 정신적 휴식의 여유를 즐길 수 있는 공감이 필요하다. 자동차가 아닌 사람을 배려한 인도로써, 의자뿐 아니라 앉아 있을 만한 도시적 요소가 풍부한 공간이 되기를 바란다.


옮길 수 있는 의자는 도시에서 편안하고 융통성 있는 체류 및 휴식기회를 제공해 준다.
_ 이훈길 대표  ·  ㄱ_stud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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