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럼] 우리들의 조경이야기

글_박도환 GS건설 건축설계팀
라펜트l박도환l기사입력2018-08-28


우리들의 조경이야기


_박도환 GS건설 건축설계팀


1. 건설사에서의 조경인

건설회사에서 하루의 시작은 생각보다 굉장히 빨리 시작된다. 아침 7시 반 전후에 회사에 도착해서 하루를 시작해서 늦은 시간까지 진행이 된다. (근로시간 단축이 시행되기 전까지만 해도..)

2018년 분양 예정 프로젝트 29개, 세대수 약 3만 세대, 진행 중인 프로젝트 70여개, 기타 FS검토 등...현재 필자의 회사에서 설계담당자 5명이 진행 중인 업무이다.

하루의 시작은 그날의 업무 스케줄을 결정하는 것부터 시작된다. 오전은 집중근무 시간으로 사업승인도서, 착공도서, 실시도서 등을 검토하는데 대부분의 시간을 보낸다. 잘 모르는 사람들은 설계는 설계사에서 전부 진행하는데 건설사에서는 무슨 설계 검토를 하는지 궁금해 할 수 도 있다. 하지만 각 건설사 Identity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담당자의 검토가 없으면 어렵다. 또 건축, 전기, 설비, 토목 등 다른 공정 간의 협의가 적재적소에 이루어지지 않으면 시공 때 어려움을 겪을 수 있기 때문에 챙겨야 하는 부분이 상당히 많다.

하루에도 몇 건의 프로젝트 회의에 참석을 해 조경의 퀄리티를 올리기 위해 의견을 내고, 자리로 돌아오면 현장에서 걸려온 전화나 메일을 일일이 확인하고, 부랴부랴 설계사에서 보내온 도면을 열어 한 장 한 장 체크를 하며 대응한다.

그리고 잠시 엉덩이라도 붙일라치면 분양을 앞두고 있는 모델하우스에 가서 상담 도우미교육을 해야 하고 모형이나 카탈로그 등을 검토를 위해 해당 업체를 찾아가는 것도 조경의 업무이다.

또 조합원이나 입주자가 조경콘셉트에 대해서 궁금하다고 하면 저녁에 현장에 가서 콘셉트에 대해 설명을 해야 한다. 현장이 워낙 많고, 다양한 의견들이 많아서 수렴하는 게 쉽지가 않다.

정비 사업이나 공공프로젝트 수주 전에 한번 참여하게 되면 두어 달은 완전히 올인을 해야 하는 상황도 있다. 경쟁사를 이기기 위한 수많은 아이디어를 내야하고, 조합원들이나 평가자에게 어필하기 위해 차별화된 특화 아이템을 개발하는 것 또한 조경 담당자의 몫이다.

이렇게 조경뿐만 아니라 조경이 관련된 모든 업무에서 종합적인 일을 담당해야 하기에 건설사에서 조경인으로 살기위해서는 카멜레온 같이 다양한 얼굴을 만들어야 한다. 필자는 당사에 입사하기 전에 4년 정도 공무, 예산, 현장관리 등의 경험을 쌓았던 것이 현재 업무에 많은 도움이 되었으며, 어느덧 실무 경험이 강산이 두 번이나 변한 20년이 되었다.

20여 년 동안 “조경업의 그릇이 작다”, “우물 안 개구리이다.” 라는 얘기는 술자리에서 어김없이 나오는 넋두리이고, 얼마 안 되는 조경관련 잡지나 신문에 자주 등장하는 단골 주제에 너무 뻔한 내용이라고 생각하겠지만 설계나 시공뿐 아니라 건설사 내에서 필자가 직접 겪으며 느끼는 조경은 작지 않은 업무를 진행함에도 입지의 한계에 부딪히는 아쉬움에 조경의 그릇을 키우고 싶은 간절함을 가지게 된다.


2. 작은 시스템의 변화가 주는 울림의 힘

보통 조경설계사에서 건축설계사와 계약하는 조경설계비는 대지면적 평당 5~6천원 수준이다. 그 정도의 설계비가 책정된 것도 불과 몇 년이 안 되었다. 당사뿐만이 아니라 타 건설사도 비슷한 수준이 아닐까 생각한다. 똑같은 일을 하면서 건축보다는 훨씬 못 미치는 설계비를 가지고 업무량은 거의 비슷한 수준으로 진행되고 있으며, 매번 건축에서 변경되는 배치를 가지고 항상 여러 번 수정을 해야 하는 불편함도 감수해야 한다. 그러다 보니 설계비는 작고, 일은 많고, 기간은 짧아도 2년~3년의 설계기간동안 수많은 도면을 그려내도 건축설계사의 경영난으로 수금이 안 돼 유능한 인재를 잃는 조경설계사가 허다하다.

2014년 당사에서는 건축사업부와 주택사업부가 합쳐지면서 건축설계팀으로 새로운 변화를 하게 되었다. 가장 먼저 시작한 업무가 새로운 설계 입찰시스템을 도입한 것이다.

당사 설계사 POOL을 활용하여 기존의 최저가 입찰방식이 아닌 현상설계를 통해 실시설계사 선정하고 건축설계사와 계약하는 방식에서 당사와 직접 계약하는 방식으로 변경하였다. 설계사에서는 적절한 설계비를 제시를 하고, 건설사에서는 원하는 품질을 얻을 수 있는 윈-윈 전략을 구축하였다.

건설사와의 직계약은 건축설계사의 경제사정에 의해 2차 피해를 입기도 했던 하도급 시스템의 고충을 제쳐두고서라도 설계를 진행할 때에도 건축설계사의 입김에서 자유롭지 못했던 종전의 방식을 이겨내는 데 큰 몫을 한다고 생각한다.

설계사는 필자처럼 조경의 입장에서 설계의 타당성을 한 목소리로 같이 높여주는 든든한 지원군을 얻게 되어 보다 주체적인 설계를 진행하게 되었고 이전보다 경쟁력 있는 설계비를 받게 되었으며, 이러한 좋은 일감을 따내기 위해 사람을 충원을 하거나 디자인의 품질을 올리기 위한 일에 집중하게 되고 결국 설계사의 전문성이 올라가게 되는 결과로 이어졌다.

이는 곧 설계사 직원의 복지까지 이어지며 설계사의 이직을 줄이게 되는 부가적 효과까지 볼 수 있었다.

5여 년 동안 입찰시스템은 단점을 보완하면서 계속 발전해 왔다. 이제는 조경이 건설사에서는 어떤 공정보다도 우선시 되는 공정으로 자리매김하였으며, 수주전에서도 조경이 건축과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로 전면에 나서고 있는 실정이다.

또한 직계약의 시스템에서 나온 좋은 품질의 도면은 좋은 현장을 만드는 거름이 되고 저가 출혈을 막게 되며, 좋은 나무를 심게 되었고 현장에서는 설계사를 신뢰하며 도면대로 시공을 하게 된다. 결국 다른 논리에 의해 좌지우지되지 않고 소비자에게 만족할만한 공간을 만들어주게 된다. 집의 향이 맘에 안 들고 하자가 많아 불만이어도 조경이 너무 좋아 살만하다는 민원의 얘기를 종종 들을 때마다 이러한 시스템의 힘을 실감하게 된다.

작은 시스템이 가져다주는 변화는 생각 외로 그 울림이 크다.


3. 가성비 갑 조경

아파트의 경우 고작 욕실 타일만 한 단계 업그레이드해도 몇 수십억에서 백억 단위의 공사비가 올라간다.

하지만 조경은 어떠한가? 10억의 공사비만 올려줘도 외부환경의 오픈스페이스는 완전히 달라진다. 10억이 아까우면 5천만 원의 설계비만 더 줘도 공간은 몇 단계 업그레이드가 된다. 어느 현장, 어느 조합을 가도 구조나 기타 공종은 원가 절감이 필수항목이지만 조경은 예외다. 어떻게든 조경에 추가비용을 확보하여 단지를 업그레이드 하려는 노력이 모든 현장에서 이루어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몇 배의 공사비를 써도 티가 나지 않는 다른 공종에 비해 조경의 가성비는 갑이라 할 수 있다. 민원 해결용이 되었던 치장용이 되었던 조경에 대한 반응은 가히 고무적이라 할 만 하다. 특히 필자가 담당했던 반포자이는 외부공간이 유명하여 많은 방문객이 조경투어를 하는 것을 보면서 건설인으로서, 조경인으로서 자부심이 생긴다.

이제는 입주민들이 입주시점에 감사의 마음으로 플랜카드까지 붙여 줄 정도로 조경에 적극적이며, 조경 어워드에 출품을 재촉하기도 한다. 무조건 잘 해달라는 예전에 비해 주민 스스로가 단지의 가치를 높이는 노력을 하고 있다는 증거이다.

그 결과 조경이 잘 되어있는 아파트는 그렇지 않은 주변 아파트보다 가격이 좀 더 비싸다고 한다. 기분 좋은 얘기이다.


4. 코디네이션의 조경 “조경이 나아가야할 방향”

현장에서 조경의 위상이 높아진다면 조경이 가지는 힘은 몇 배로 커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조경은 건축과 기계, 전기, 토목 등 다양한 분야와 협업을 한다. 현장에서 조경콘셉트를 공유하는 일은 일상화 되었으며, 단지의 업그레이드를 위해서는 너나할 것 없이 모두가 아이디어를 내고 있다.

조경은 다른 공종과 다르게 가장 자기 분야가 확고하면서도 반면에 가장 경계선이 흐릿한 분야라 생각한다. 다른 분야에서 넘어오기도 쉽지만 역설적으로 다른 분야로의 외연의 확장이 가능한 분야이다.

경계선이 흐릿하다는 얘기는 예전에 조경 담당자가 아닌 현장소장이나 다른 공정의 의견에 좌지우지 되는 경우가 많았다는 것이고, 자기 분야가 가장 확고하다는 얘기는 이제 조경 담당자의 의견을 전적으로 믿고 지지해주는 분위기가 완전히 자리 잡았다는 얘기이다.

그동안의 아파트는 건축이 주도적으로 총괄을 하며 이끌어왔지만 이제 그 한계가 보이며 새로운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라 생각한다.

건축은 인허가나 행적적인 리더를 담당한다면 그 외에 큰 경관을 그리는 작업은 단어 의미 그대로 마스터플랜을 그리는 조경이 이끌어야 되지 않을까. 이는 건설사와의 직계약 시스템 변화처럼 작은 변화에서 출발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이전 LG 금곡빌리지에서 한 동을 없애고 조경공간으로 활용한 적이 있었다. 입주민의 반응뿐 아니라 한국 조경에서 새로운 시도로 평가받고 있다.

조경이 리드하는 앞으로의 아파트는 지금과 상당히 다를 것 같다. 예전에 비해 지금도 많이 개선은 되었지만 후배 세대들이 조경을 맘 놓고 편하게 일을 할 수 있는 환경이 더 만들어져야 조경에 자부심을 가지고 각자의 역할을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가지며 마무리 하고자 한다.
_ 박도환  ·  GS건설 건축설계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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