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광장 설계, ″다양한 해석이 가능한 디자인, 담론이 오가는 공간″

[인터뷰] ㈜CA조경기술사사무소 김재환 소장, 조용준 소장, 서울시립대 김영민 교수 - 2
라펜트l기사입력2019-02-15

새로운 광화문광장 설계안이 뜨거운 감자인 것은 바닥포장패턴이 ‘촛불모양’으로 읽힐 수 있다는 것과 세종대왕·이순신 동상 이전 이슈가 있기 때문일 테다. 이에 대해 설계자들은 어떤 의도를 가지고 설계한 것일까? 이들은 광화문광장이 어떠한 공간이 되길 바라는 것일까?


㈜CA조경기술사사무소(이하 CA조경)의 김재환 소장, 조용준 소장, 서울시립대 김영민 교수에게서 최근 이슈에 대한 생각과 협업과정에서의 에피소드, 그리고 설계자로서 이 공모전에 대한 의미 등에 대해 들어보았다.


㈜CA조경기술사사무소 김재환 소장, 조용준 소장, 서울시립대 김영민 교수


촛불모양의 포장계획이 많은 이슈를 만들고 있습니다. 어떤 의도로 디자인되었나요?


조용준 소장(이하 조용준) : 개인적으로 공모전 진행하면서 가장 어려웠던 부분이 광장의 포장디자인이었습니다. 지상광장은 바닥포장패턴(이하 포장패턴)을 어떻게 디자인하느냐에 따라 풍경이 크게 달라집니다. 김영민 교수님의 리서치와 팀원들의 패턴 스터디가 도움이 되었습니다. 의미를 부여하거나 임의적으로 만든 복잡한 패턴을 광장에 채우고자 했던 초기의 방식을 과감히 버리고, 심플하면서도 다양성을 가질 수 있는 포장형태에 집중했는데 이것이 좋은 결과를 만드는데 주요했던 것 같습니다.


여러 이미지들로부터 영감을 받았습니다. 결과적으로 900㎜×900㎜ 화강석 모듈의 그리드 체계를 만들고, 각기 다른 크기와 모양의 부정형 원을 새겨 넣었습니다. 이는 종묘마당의 박석포장, 김환기 화백의 작품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월드컵 응원의 모습, 촛불 이미지와 닮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보는 사람마다 다르게 느낄 수 있다는 점입니다. 저희가 디자인 할 때 포장패턴에 특정한 하나의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저희는 포장패턴을 통해 광화문광장의 역사적인 사건들을 은유적으로 표현하고, 한국적인 경관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고자 했습니다. 시민들의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도록 열어두었습니다. 따라서 이 포장패턴이 개인의 가치를 존중하고 나아가 화합을 이루는 민주주의의 이념적 가치를 상징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김재환 소장(이하 김재환) : 가장 가까운 과거에 촛불집회가 광화문광장에서 있었고, 이는 여러 의미 중 하나의 이미지로도 해석이 될 수 있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실제로는 여러 가지의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김영민 교수(이하 김영민) : 포장패턴에 대해서는 건축 입면을 보고 공부했습니다. 스위스의 건축가 헤르조그 & 드뫼롱의 작업들을 많이 참조했습니다. 구조와 형태는 간결하지만 표면에 대한 엄청난 연구를 하거든요. 굉장히 심플해야 하는 광장에 예술적인 효과를 주려면 표면의 효과라고 생각했습니다.


독일의 철학자 아도르노는 아우슈비츠를 비판하면서 현대문명 자체를 비판했습니다. 당신의 대안은 무엇이냐 물었을 때 ‘미메시스(mimēsis, 모방)’라는 얘기를 해요. 그냥 베끼는 것이 아니고 과학기술이 발전된 고도의 문화에서 사람들이 지금까지의 문화와 다른 것을 할 수 있는 가능성을 모방의 가능성이라고 했습니다. 미메시스는 조금 다른 모방입니다. 예시로 별자리를 보고 운명을 점쳐보는 행위를 보면, 실질적으로 사람과 별은 아무런 관계가 없는데 인간은 거기에서 어떠한 연관관계를 짓습니다. 사람의 운명을 별자리에 모방을 하는 거죠. 전혀 상관없는 것들에서 연관관계를 맺을 줄 안다는 인간의 능력에서 새로움의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예술의 핵심으로 보고, 긍정적인 반응을 얻을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과학은 인과관계에 의해 논리적인 귀결에 이르지만 미메시스는 인과관계가 없음에도 연관관계를 만들어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김환기 화백의 그림을 가까이서 보면 네모안의 점들로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의도하지 않았지만 멀리 떨어져서 보면 어떤 한 형태가 드러납니다. 네모안의 동그라미는 서로 침해하지 않아요. 서로 존중합니다. 촛불도 주도적 정치적 세력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정당이 했던 것도 아니에요. 네모 같은 개개인이 모여 큰 형상을 만드는 것이 우리나라 민주주의의 가치를 대변한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저희가 제시한 포장패턴을 봤을 때 아이들 눈에는 동물로 보일 수도 있고, 누구에게는 촛불, 누구에게는 태극기일 수도 있는 것입니다. 누구도 강요하지 않은, 각기 다른 저마다의 감흥이 나타날 것이라는 것이 의도였어요. 새로운 가능성이 있다는 점과 강요하지 않았는데 하나가 되는 것. 이러한 의미가 포장패턴에 의미가 녹아있습니다.



세종대왕 동상과 이순신 동상 이전에 대한 문제도 갑론을박이 있습니다. 동상을 이전하여 광장 본연의 비움이라는 가치를 찾는다는 설계 의도가 담겨있는데 동상의 위치나 크기가 광장 본연의 가치에 얼마만큼 영향을 미치는 것인지, 이전함으로써 얻는 이점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조용준 : 처음에는 동상을 이전하지 않고 시민들이 편하게 위인들의 모습을 경험하게 하고 싶었습니다. 두 개의 동상 기단부(이순신 장군상 : 10.5m, 세종대왕상 4.2m)가 너무 거대해 시민들이 친근하게 다가갈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두 개의 동상을 마치 엘리베이터처럼 위아래로 움직이게 해보자는 아이디어를 제안했었습니다. 내려가다보면 어느 높이에서는 시민들의 눈높이에 닿을 수 있고, 지하공간으로 더 내려가게 된다면 위인들의 전시공간이 될 수도 있는 아이디어였습니다. 따라서 평상시에는 지상광장은 비워지고, 시민들은 지하광장에서 두 개의 동상을 만나는 거죠. 그런데 특정한 날은, 예를 들어 10월 9일 한글날에는, 세종대왕상이 광장으로 올라오는 겁니다. 그날은 세종대왕의 업적을 기리는 특별한 이벤트를 광장에 담는 겁니다. 하지만 너무 급진적인 아이디어라 배제되었습니다. 


저희는 광화문광장을 온전히 시민을 위한 공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또한 시민들이 광장의 중심에서 북안산과 광화문광장의 풍경을 경험하게 하고 싶었습니다. 그렇다보니 동상 이전을 위한 적절한 위치를 고민했고, 세종대왕상은 세종로공원의 한글마당에 이전하는 것을 제안했습니다. 그리고 이순신 장군상은 현재 행정안전부 위치에 이전 계획을 세웠습니다. 이는 행안부 터가 과거 조선시대의 삼군부 터로서 군부의 상징공간이기 때문입니다


김재환 : 60년 전 1968년에 이순신 동상을 세웠을 때, 동상이 있는 그 위치는 가로 한가운데 꼭짓점에 있었습니다. 보통 서양의 광장이나 도로의 중심에 높은 것들을 세웠죠. 그러나 지금은 광장 전체가 다 보행공간이 되다보니 너무 높게 느껴집니다. 세종대왕 동상 같은 경우에는 부피가 커서 북악산과 광화문 대부분을 가리고 있고요. 이러한 의미로 옮기는 것을 고려했었습니다. 역사적인 인물들은 광장의 주역인 시민들에게 자리를 내주고 옆에서 바라봐주는 모습으로요.


김영민 : 의견이 분분하죠. 시민토론회에 갔더니 역사분야에서는 이순신 동상을 없애야 한다는 주장을 하시기도 합니다. 저희의 안은 지상부를 완전히 비운다는 개념이었기에 두 동상 이전에 대한 생각도 있었던 것이고요.


미스 반 데어 로에라는 독일의 건축가의 작품을 보면 항상 조각상들을 하나씩 넣었어요. 극도의 추상성을 이룬 공간에서 감흥을 느끼려면 이에 상응하는 구상성이 같이 있으면 안 되기 때문입니다. 이순신 동상에는 어떠한 역할이 있다고 봅니다. 광장을 비웠는데 그 앞에 이순신 동상이 있음으로써 추상적인 공간이자, 비워버린 공간을 극대화시킬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세종대왕 동상은 광장의 중간에 있고, 규모 또한 너무 커 부정적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더 크다고 생각합니다.




서울시립대학교 조경학과 김영민 교수



협업의 과정에서 에피소드나 힘들었던 점이 있었다면?


조용준 : 김영민 교수님이 처음에 아이디어를 주시고, 연구년이라 미국으로 가셨습니다. 그래서 연락하는 시간이 저희는 오전에, 김영민 교수님쪽은 오후 9~10시쯤이었습니다. 김영민 교수님 가족이 전부 미국에 있었기 때문에 1시간 정도 전화하다보면 아이들을 재워야 하는 시간이 왔습니다. 그러면 아이를 재우고 다시 이야기를 하곤 했습니다. 서로에 대해 믿음이 있었고, 두 번째 협업이라 서로 솔직한 이야기들이 오고갔기 때문에 편하고 효율적으로 협업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공모기간이 연말을 끼고 있었어요. 연말에 쉬는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에 네명정도만 프로젝트를 진행했어요. 그때가 최종적으로 디자인을 정리하고, 주요 컨셉과 스토리를 정리 할 때였는데, 회사사무실안에서만 회의를 하니까 너무 지치는 거예요. 안그래도 피곤한데 회의실 공기가 탁하니 다들 얼굴이 누렇게 뜨더라구요. 그래서 자주가는 회사 1층 커피숍에서 끝장토론을 통해 많은 것들을 결정했어요. 그때 정리된 디자인, 개념, 구제적인 아이디어들이 끝까지 가게 되었습니다. 연말인데도 함께했던, 김희웅 팀장, 이재현 대리, 김수린 사원에게는 더욱 고마웠어요. 


김재환 : 보통 현상공모를 준비하면 한 달 이상 거의 철야를 하거든요. 현상 제출하는 날이 되면 파김치가 되는데 이번 현상은 철야를 한 날이 제출하기 전 하루 이틀이었어요. 야근을 최소화했죠. 철야가 길어지면 프로젝트를 수행함에 있어서 처음에 시작했던 그 열정이 점점 약해지고 수동적으로 바뀌는 등 여러 가지 안 좋은 점들이 있기도 하니까요. 이번 같은 경우는 그런 점에서 의미 있지 않았나 싶어요. 오히려 야근이나 철야를 하지 않아서 효율이 더 있었던 것 같아요. 이번 현상을 계기로 다음부터는 충전의 시간을 가지면서 작업에 임하려고 합니다.


김영민 : 특이한 협업이었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같이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처음에는 제가 하고 중반 프로덕션은 CA조경에서 이끌면서 저에게는 코멘트만 받았습니다. 마지막 내용정리는 또 제가 하고요. 회사는 효율적이어야 하기에 기본구상을 위해 헤맬 틈이 없는데 제가 앞서 그러한 시간들을 보낼 수 있었습니다. 그간의 현상공모에서는 심도 있는 스터디를 하기 어려웠는데 광화문광장은 좋은 기회가 됐다고 생각합니다. 저의 의견을 CA조경측에서 받아들여 준 것 또한 감사하고요. 그래서인지 협업에서 힘들었던 점이나 큰 의견충돌은 없었습니다.



마지막으로 한 마디 부탁드립니다.


김재환 : 광화문광장 현상공모에 당선이 되었습니다. 당선 이후 2~3주 동안 이렇게나 관심을 끌어본 공모는 처음입니다. 서울의 중심축으로서, 시민들의 이야기를 담아내는 큰 그릇으로서 풀어야 할 과제에 설계가로선 쉽지 않은 무게감을 다시 한 번 절감하게 됩니다. 마지막으로 공모 준비 때부터 고생해 주시고, 앞으로도 계속 함께 해주실 유신 김석기 전무님, 윤진호 부장님, 선인터라인의 김희진 소장님께 감사의 말을 전합니다. 또한 든든한 버팀목이자 힘이 되어준 CA조경 직원들에도 가슴 깊은 감사의 말을 전합니다.


조용준 : 예전에는 아름다운 것을 만드는데 집중했습니다. 그러다보니 어느 순간에 제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나는 어떤 디자인을 하는 사람인지에 대한 의문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과거에 제가 참여했던 프로젝트들을 되돌아보았습니다. 또 기회가 되어 해외에서 경험을 쌓았습니다. 이 과정 속에서 나름대로 공간을 대하는 가치관이 생겼고, 추구하고자 하는 개념들이 생겼습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이번 광화문광장 현상설계의 개념과 디자인이 두 달의 공모기간동안 만들어졌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CA조경 안에서 배워왔던 경험과 제가 고민하고 추구해왔던 생각들이 어우러져 오랜 시간을 거친 결과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제 실체화를 위한 또 다른 시작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저희가 제안한 광화문광장의 아이디어들이 개념에 그치지 않고 정말 좋은 공간으로 시민들에게 돌아갈 수 있도록 열심히 노력하겠습니다.


김영민 : 다른 설계의 가능성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제가 추구하는 설계는 담론을 만들 수 있는 설계입니다. 작업들을 통해 담론을 만들 수 있으나 아무런 기회에 누구나 다 그렇게 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이러한 담론은 설계가들이 만들어내지 않아도 됩니다. 글 쓰는 사람들이 비평을 하면서 만들어 주기도 합니다. 많은 예술가들이 대단한 작품을 만들었지만 딱히 설명을 못한다면 해설을 해줄 수 있는 것이 비평가의 역할이니까요. 그런데 중요한 것은 설계가도 어느 정도 의식을 해야 비평이 가능해집니다. 설계가가 의도한 것을 정교화하고 이론화하는 것도 비평의 역할이기 때문입니다. 가장 좋은 것은 설계가 자체가 비평가의 역할을 하는 것일 테죠. 외국의 설계가들은 자신의 이론이 있고 거기에서 차별화를 합니다. 저는 그게 어떠한 사유였으면 좋겠습니다. 감각적인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은 충분히 차별화가 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CA조경이라는 좋은 회사와 함께 광화문광장 설계를 하면서 담론을 제시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 것이라 생각합니다.




_ 전지은 기자  ·  라펜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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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사진 _ 정남수 기자  ·  라펜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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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버그린 바닥패턴에 따라 풍경이 달라져 제일 어려운 부분이었다고..,? 한숨이 나온 대목이다. 어떤 공간에서 어떤 행위들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인가를 생각하는 것이 본질이다. 패턴이야 어떻든 돌바닥인 것은 마찬기지인데 돌바닥 위에서
어떤 행위가 일어날 수 있겠는가 한번 생각해보길..패턴이 아닌 재질을 바꾼다면.? 잔디라면?
이 장소는 촛불의 역사만 있는 것이 아니다. 가까이는 조선조 육백여년 나라의 기틀을 이루던 육조거리가 품격높게 자리하고 있기도 한 장소이다
2019-0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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