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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둡고 긴 터널을 지나며

월간 환경과조경201312308l환경과조경

몇 해 전 이맘때 한 시인은 “이렇게 천천히 기품 있게 흘러가는 가을은 참 오랜만이다”라고 했다. 시인의 밝은 눈에는 해마다의 가을이 모두 같은 가을이 아니다. 어느 해는 찬란하고 다른 해는 칙칙하고 또 유별나게 품위 있고 유장하게 흐르는 가을도 있다. 올 가을이 그랬다. 하늘은 높았고 흰 구름에 단풍은 고왔다. 온화한 기상 덕분에 모든 작물이 대풍을 이루었다. 그야말로 풍요롭고 아름다운 계절이었다.

하지만 이 가을 정취를 즐기기에는 조경인들의 마음이 너무나 무겁다. 지난 40여 년간 조경계에 이처럼 시름이 깊었던 시기는 없었다. 연중 하루가 멀다 하고 업계의 어두운 소식들이 전해졌다. 현장에서 겪는 어려움을 이 지면에 다시 옮기는 것조차 민망하다.

대학도 마찬가지다. 패기만만해야할 학생들에게도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피기도 전에 꿈을 접어야 하는 예비 조경가들과 눈을 마주치는 것이 힘에 버겁다. 그들에게 전할 희망의 메시지를 찾기 어렵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가 지나고 있는 이 어두운 터널은 춥고 습하며 그 끝도 잘 보이지 않는다. 이 어려운 시기에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이 험난한 시절을 어떻게 버텨낼 것인가?


동양 사상의 진수라고 하는 『주역(周易)』의 핵심은 “세상의 모든 것은 변한다”는 것이다. 사물이건 상황이건, 생각은 물론 사랑까지도 변한다. 그 무엇일지라도 변하지 않는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육십사 괘로 대변되는 삼라만상의 변화과정은 서로 교체 반복되므로 영원히 좋거나 영원히 나쁜 것은 없다. “궁하면 변하고(窮則變), 변하면 통한다(變則通)”고 했다. 세상에 끝이 없는 터널은 없다. 조경의 바른 길을 모색하며 다시 밝은 곳으로 나갈 준비를 해야 할 것이다.

홍형순  ·  중부대학교 환경조경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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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shong@joongb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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