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la

100 장면으로 재구성한 조경사 #0 : 프롤로그

월간 환경과조경20141309l환경과조경

거꾸로 하는 시간 여행

역사를 서술할 때 대개는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 천지창조로부터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러다보면 언제 우리가 살고 있는 시간대에 도착할지 까마득해진다. 마치 등산을 할 때 정상에서 출발하여 하산을 시도하는 것처럼 불가능해 보일 때도 있다. 그래서 조경사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읽는 독자는 그리 많지 않다. 정원의 역사를 다룬 서적을 보면 거의 모두 이집트 벽화로부터 이야기가 시작된다. 이후 르네상스, 바로크, 자연풍경식 등 비교적 명확히 정의된 정원 양식들이 연속되고 20세기 초의 모더니즘까지는 그래도 어느 정도 윤곽이 보이지만, 이제는 모더니즘도 ‘고전 모더니즘’이 되었고, ‘포스트모더니즘’ 이후에는 더 이상 정원의 풍경을 표현할 말이 없어졌다. 아니 너무 많아졌다. 우리는 지금 정원 개념의 인플레이션 시대를 살고 있다. 정원이 많은 것은 행복한 일이지만 이를 정리해야 하는 역사 서술가의 입장에서는 난감하기 짝이 없는 일이다.


이번 “100 장면으로 재구성한 조경사”의 연재 의도는 바로 여기에 있다. 먼 과거로 돌아가 파라오의 무덤벽화를 파헤치는 고고학적 고찰을 해보려는 것이 아니라, 지금의 정원들을 둘러보고 이들이 파라오의 정원과 어떤 맥락으로 연결되어 있는지를 살피고자 하는 것이다. 총 34회에 걸쳐 이어갈 예정이며, 매 호마다 세 개의 장면을 소개하자는 것이 이번 연재를 기획한 편집진의 의도다. 지금으로부터 출발하여 지그재그 코스로 먼 과거에 도착하고 나면 거기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 이집트의 파라오일지 우루크의 길가메시 왕일지 모르겠지만 그때쯤 되면 그들을 만나도 그리 낯설지 않을 것이다.


고정희  ·  칼 푀르스터 재단 이사
다른기사 보기

네티즌 공감 (0)

의견쓰기

가장많이본뉴스최근주요뉴스

  • 전체
  • 환경과조경
  • 조경생태시공

커뮤니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