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 없는 길을 걷고 싶다

[조경명사특강]임승빈 교수의 도시사용설명서_2회
라펜트l기사입력2013-02-03

 

자동차는 인류의 편리한 생활도구이지만, 보행을 위협하는 흉기이기도 하다.

 

80년대 중반 우리나라에 마이카 시대가 도래하면서 자동차에 대한 열렬한 사랑이 시작되었다. 당시 처음 차를 구입한 사람은 바깥에서 비바람을 맞으며 서있는 자가용이 불쌍한 생각이 들어, 옆에서 편하게 자고 있는 부인이 얄밉게 보일 정도였다고 한다.

 

이와 같은 자동차에 대한 사랑은 도시구조에서도 그대로 나타나 보행자보다는 자동차 중심의 가로구조가 형성되었으며, 자동차가 보행로를 점령하는 것에 대해 너그럽게 받아들여 온 것도 사실이다.

 

자동차문화가 일찍이 발달한 서구에서는 2000년경 뉴어바니즘(New Urbanism)운동이 일어나 도시에서 보행을 장려하는 정책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2000년 이후 자동차 중심의 도로정책이 대중교통 중심, 그리고 보행자 중심의 정책으로 서서히 바뀌어 가고 있으나 아직은 갈 길이 멀다.

 

보도를 걷다보면 주차된 자동차를 피해 다녀야하는 일을 모두가 겪고 있다. 짜증이 나지만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일 정도로 일상이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는 도시설계 과정에서 전혀 의도치 않았던 일이다. 도시 미관과 쾌적한 보행환경을 위해 가로에 면한 건축선(대지내에서 건물이 설 수 있는 한계선)을 대지 경계선으로부터 후퇴(1m~3m)하도록 한 것인데 여기에 주차를 하고 있는 것이다.

 

주차공간은 각 건물 내에서 해결해야 하는데 보도화된 공간을 점유하고 있는 것이다. 도로의 주차관리는 각 지자체 소관인데 이러한 불법주차를 단속할 행정력이 부족한 것이다.

 

 

강남구 서초동_ 보도를 가로막은 주차로 인해 보행자들은 차도로 돌아가야 하는 것에 짜증내기보다는 오히려 무감각해지고 있는 실정이다(). 보행자를 위한 건축선후퇴 공간이 주차장으로 불법 전용되고 있다().

자동차의 불법 보도점령에 대처하는 방법이 없지는 않다. 건축선이 후퇴한 폭만큼 차도변 보도에 녹지를 만들어 주차가 불가능하게 만드는 것이다.

 

최근 가로수를  연결하는 띠 녹지를 많이 조성하고 있는데 이를 보다 적극적으로 수용하여 보도 폭을 줄이고 가로수연결녹지를 만들면 주차가 원천적으로 불가능해지고 가로 전체의 녹시율(시계내 가시녹지의 비율)을 높일 수 있어 보다 쾌적한 가로가 될 것이다.

 


강남구 신사동_ 주차를 못하도록 대지경계선에 화분을 놓고 있다(). 보다 바람직한 방법은 건축선 후퇴한 만큼 차도 쪽에 녹지를 만들면 주차를 못하게될 뿐아니라 차도와의 완충공간이 확보되어 쾌적한 보행공간을 만들 수 있다().

이러한 예로서 최근 서구에서 도입하고 있는그린스트리트를 들 수 있다. 이는 보도에 주차하는 문제를 해결할 뿐 아니라 빗물의 적극적 활용을 도모하는 개념으로서 수자원 절약, 홍수 예방, 도시열섬 완화, 녹시율 증대 등의 다면적 효과를 도모할 수 있는 방법이다.

 

미국 시애틀에서는 녹지에 벤치와 놀이기구를 결합해 보행자 편의를 도모하는 동시에 커뮤니티공간 기능까지 하도록 하였는데 이는 매우 바람직한 방향이라 할 수 있다.

 



미국 시애틀_ 차도와 보도사이에 벤치를 결합한 녹지를 만들어 보행자를 보호하고 있다. 또한 저장된 빗물을 이용한 펌프시설을 하여 놀이공간으로도 활용되며, 수로를 만들어 빗물이 녹지를 통과하면서 지하로 배수되도록 하는 그린스트리트 개념을 도입하였다.

 

녹지도입이 어려운 좁은 도로인 경우에는 시차제를 도입하여 보행이 많은 시간대에 차량출입을 제한하는 방법이 있으며 인사동 등에서 이미 도입하고 있다. 야간 보행자가 많은 동대문 의류상가에는 야간에 차선을 줄여 보행로로 제공함으로써 보다 쾌적한 보행환경을 만드는 것을 고려해볼 수 있다.

 

서울시는 차선을 줄여 도로중앙에 보행전용의 광화문 광장을 만들었고, 이에 더하여 주말에만 차 없는 거리로 하는주말형 보행전용거리를 광화문과 세종로 사이에 조성할 예정이다. 앞으로 이와 같은주말형 보행전용거리를 확대 시행할 예정인데, 이는 보행자우선을 지향하는 바람직한 도로정책이라 할 수 있다.

 


인사동_ 아침 10시부터 저녁 10시까지 차량을 통제하여 자동차 없는 거리를 만들었다. 차 없는 길은 언제나 활기차고 여유롭다.

 

서울 신사동 가로수길에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그중에서 보도의 규모가 걷기에 적당한 인간척도를 지녔다는 점을 들 수 있다.

 

보도의 폭이 약 3m 정도인데 이는 자동차가 주차하기에는 좁고 두 세명이 함께 걷기에는 충분한 규모이다. 더구나 가로수가 심어진 곳은 보도폭이 2m로 줄어들어 자동차의 주차는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따라서 자동차 방해를 받지 않고 상점 쇼윈도우를 아이쇼핑하면서 천천히 이야기를 나누며 걷기에 편리한 공간이 자연스럽게 형성된다.

 

또한 일렬로 늘어선 가로수는 차도와 경계를 이루며 차량으로부터의 심리적, 실질적 보호기능을 하고 있다. 건축가 이경훈교수가 "가로수길의 매력은 자동차 방해 없이 걸을 수 있는 보도가 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한 관찰에 전적으로 공감하게 된다.

 

가로수길_ 주차하기에는 좁고 걷기에는 적당한 보도 폭을 지녀 자동차 방해를 받지 않고 걸을 수 있는 것이 가로수길의 매력이다.

 

이렇게 차량을 제한하면차는 어디로 다니고 주차는 어떡하란 말이냐?’라고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차량에 대한 열렬한 사랑을 이제 떠나 보낼 때가 되었다. 조금 불편하더라도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이 쾌적한 도시환경조성과 건강증진에 기여한다는 인식이 보편화되어야 한다. 그리고 이를 뒷받침할 편리한 대중교통이 확충되어야 한다.

 

더불어 도심지내 주차용량을 줄임으로써 주차가 어렵고 요금이 비싸지면 자연 도심으로의 차량진입이 감소될 것이다.

 

뉴욕 맨하탄의 번화가 중심에 위치한 메이시 백화점과 6000석 규모의 세계최대 극장인 라디오시티 뮤직홀에는 전용주차장이 없으며, 맨하탄에 주차하고 점심을 먹으면 주차비가 점심값보다 비싸게 나온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주차에 대한 우리의 고정관념을 근본적으로 바꾼다면 자동차의 위협을 받지 않고 편안하게 보도를 활보할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이 있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게 될 것이다.

 

‘가족, 연인과 함께 걸을 수 있는 쾌적한 도시의 길을 보고 싶다

‘유모차, 휠체어가 안전한 도시의 길을 걷고 싶다

연재필자_임승빈 교수 · 서울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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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ungbin@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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