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의 가치를 살리는 일” 자연제주의 환경문화활동

[최자호가 만난 조경인] 이석창 자연제주 대표 - 2
라펜트l기사입력2022-12-22

 

‘자연을 그리려 합니다’를 캐치프레이즈로 내세운 자연제주의 창업정신에는 유년시절부터 꾸준히 이어져 온 이석창 대표의 식물에 대한 지나칠 정도의 애착과 자연사랑이 녹아있다. 불모의 땅 동해의 바위섬 독도에 오로지 신념 하나 믿고 나무심기에 매달려 ‘독도의 기적’을 낳게 했던 일도 자연제주를 설립하는데 소중한 자양분이 됐다. 이밖에도 자연제주의 본업을 떠나서 제주사회에 이바지한 활동은 제주사회의 환경적·문화적 정체성을 형성하는데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쳐왔다.

이석창 대표는 제주도 서귀포가 고향이며, 건국대 임학과를 졸업하고 중앙대 대학원에서 농학박사 학위를 받는 등 꾸준히 식물을 공부했다. 특히 1986년부터 약 5년간 여미지식물원에서의 경험은 이석창 대표의 환경문화활동에 큰 동기가 됐다. 해외에 나가기 쉽지 않았던 당시에도 일본, 대만, 호주 등을 다니며 교육을 받고, 1,500여 종의 열대 및 아열대 식물을 동남아 등지에서 직접 수입해 현재의 온실식물원을 조성했다. 당시 단일온실로는 세계 최대규모(3,700평)로 알려져 있다.

“여미지식물원에서 식물에 대한 견문을 많이 넓힐 수 있었다. 식물뿐만 아니라 식물들이 가지고 있는 문화, 생태 등에 관심이 많았기에 젊은 시절에 좋은 공부를 많이 했다고 생각한다. 그때의 경험이 아직도 자리 잡아 지금의 나를 움직이게 하는 동력이 돼 3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식물의 문화를 찾아내는 일들을 지속적으로 하고 있다”

인간이 자연과 사회에서 살아가며 형성된 고유문화를 기억하고 계승 발전하기 위한 문화예술분야에 대한 자연제주의 관심은 매우 높다. 현대조경의 완성을 위해서도 생태와 문화컨텐츠의 접목은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분명히 지역의 가치가 있는 일들인데 방치돼있는 것들이 있다. 그런 것들을 끄집어내는 일은 상당히 중요하다. 생태적인 공간을 조성하는 것도 결국은 사람이 살아가는 공간이기에 문화적 맥락도 함께 짚어야 한다. 그리고 자연과 문화의 가치를 찾아가는 이 여정은 사람으로서 해야 할 일이자 보람을 느끼게 하는 일이다”

이석창 자연제주 대표


자연제주의 환경문화활동

이석창 대표는 제주도 문화재위원 등 다양한 분야에서 민간전문위원으로 행정에 참여해 왔으며, 또한 제주자생식물동호회장, 서귀포문화사업회장, 석주명기념사업회장, 하논분화구 복원범국민추진위원회 부위원장 등을 맡으면서 환경과 문화에 깊은 관심을 보여 왔다.

1990년대 초 이석창 대표가 제주자생식물동호회를 이끌던 시절에는 자생식물을 비롯한 희귀·멸종위기 식물보존 및 훼손지 복원에 앞장섰다. 당시 펼쳤던 환경감시활동은 제주도내 환경단체의 시초를 연 것이었고, 이제 그 뿌리가 도내 곳곳에 퍼져 있다.

또한 2003년부터 과거 5만년 동안 기후·지질·식생 등 환경정보가 고스란히 담겨 있는 생태계 타임캡슐인 하논분화구 복원·보전활동을 처음으로 시작해 수차례의 국제심포지엄, 정책제안 등을 통해 복원 필요성을 꾸준히 알려온 결과 IUCN(세계자연보전연맹) 등 국제사회의 지지와 공감대를 이끌어 내기도 했다. 문재인 대통령 정책공약에 반영하고 제주특별자치도에서 복원사업을 추진하기에 이르렀지만 아직도 해결해야 할 과제는 많다.(관련기사)

이밖에도 산림생태자원의 보존·육성과 중국 심양시 ‘한국의 동산’을 설계·시공으로 양국간 우호증진 및 국위선양에 기여한 공로 등으로 2003년 제2회 ‘산의 날’을 맞이하여 국무총리 표창을 받기도 했다.


푸른독도 가꾸기의 주역

1979년 식재된 곰솔, 독도나무식재지(1980. 4) / 자연제주 제공

이석창 대표가 독도와 인연을 맺은 것은 대학 2학년을 마친 후 1977년 군에 입대해 독도경비대 전경으로 복무하면서부터이다. 그때 마주친 독도의 모습은 나무 몇 그루 없는 초라하고, 춥고, 외로운 무인도였다고. 바다를 한없이 바라보면서 문득 떠올린 것은 이대로 보초만 서면서 기약 없는 시간을 때울 것이 아니라 자신의 전공을 살려 이 황량한 섬에 나무를 심어보자는 생각이었다. 그렇게 어린 시절부터 식물에 대한 남다른 관심과 전공을 살려 불모의 땅, 독도 동도에 해송 1,000여 그루 식재한 ‘70년대 푸른독도 가꾸기’ 주역이 됐다.

은사인 건국대 조태환 교수에게 독도에 이끼가 아닌 ‘나무옷’을 입혀보겠다는 의사를 편지로 알리고, 그의 기술지도를 받아 1979년 2월까지 4개월 동안 수목식재를 위한 현지조사를 끝냈다. 조사결과 확인된 독도의 식물상과 자연환경 상태는 ▲수목종은 5종으로 해송, 섬괴불나무(울릉도 자생 한국특산종), 아카시아가 각각 2그루씩 동도에 있으며, 개머루 10여 그루와 사철나무 20여 그루가 동도의 바위틈과 화구호 주위, 서도의 정상부근에 자생하고 있었다. ▲초본식물은 해국, 참나리 등 60여 종이 살고 있었다. ▲연평균기온은 12℃ 가량(겨울 2.5℃, 여름 21℃ 내외)이며 ▲강수량은 연 1,400㎜ ▲풍속은 평균초속 12m로 겨울에는 사람이 서 있기 어려울 정도의 강풍이라는 것이었다.

자연환경조사를 끝냈지만 식재의 어려운 점이 곧 드러났다. 강한 바람을 타고 날아오는 소금기가 나무에 달라붙어 식물세포의 원형질을 분리(파괴)시켜 말라죽기 쉬운 데다가 초소 12m의 강풍은 묘목이 활착하는데 막대한 지장을 초래할 것이라는 점이었다. 게다가 식재 적기인 3월 말에서 4월 초순까지의 강수량이 적고 흙마저 부족해 수분이 쉽게 증발하거나 바다로 흘러가 버리는 것도 큰 문제였다.

대비책을 마련한 뒤 묘목을 구하는 일에 착수했다. 자신이 소속된 울릉경찰서에 지원을 요청, 울릉경찰서는 울릉군청에 부탁해 해송 1,000그루를 얻었다. 묘목의 가식은 이석창 전경을 도와온 울릉경찰서 황보선 경장이 가마니에 흙을 넣는 것으로 해결했고, 3월 말, 독도에 도착한 묘목들은 일찍 가식 돼 어느 정도 활착력을 가지게 됐다.

4월 2일, 군청에서 분양받은 해송 1,000그루와 고향 서귀포에서 구입한 돈나무, 섬쥐똥나무, 다정큼나무 20그루를 비교적 토심이 양호한 장소를 골라 나무를 심었다. 전우들의 도움을 받으며 울릉도에서 가마니로 운반한 흙으로 북돋아 주었고, 그루당 3개의 지주목을 세워 풍해에 대비했다. 염해를 피하기 위해 비닐봉지를 만들어 나무에 씌웠다. 파라핀이나 라놀린(양털기름으로 초의 일종)을 흙에 뿌려 수분 증발을 억제하는 한편 서도에 있는 물골에서 힘겹게 물을 길어 규칙적으로 관수했다.

“나무를 심은 처음 한 달은 거의 한숨도 자지 못했다. 하루를 자고 나면 연약한 묘목은 2~3그루씩 바람에 날려 뿌리째 뽑혀 다시 심기를 반복했다. 수분 부족으로 말라 죽어가는 나무를 볼 때마다 혈관이 말라 드는 것 같은 고통을 느끼기도 했다. 그럴 때면 은사인 조 교수에게 편지를 보내 지도를 받았다”

묘목이 활착하는 데 가장 중요하다는 3개월이 지났을 무렵 나무 1,020그루 중 700여 그루가 완전히 살아남았다. 한그루만 살아도 성공이라며 이 ‘무리한 도전’을 외면하던 주위 사람들은 ‘독도의 기적’ 앞에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해방 후 수 십년 동안 당국이나 군민들이 나무심기를 시도했다가 실패했던 불모의 바위섬 독도에 푸른옷 입히기를 성공시킨 것이었다. 



독도 수목식재지 토키망(침입방지시설) / 자연제주 제공

그로부터 8개월 뒤 무럭무럭 자라는 나무를 두고 정든 독도를 떠났다. 섬에 방사된 토끼들이 부족한 수분을 섭취하기 위해 나무껍질을 갉아먹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나무에 가시철망을 씌워 토끼 접근을 막아줘야 했는데, 당시 20여만 원의 비용이 없어 이 일을 마무리 짓지 못하고 떠나온 것이 못내 아쉬움으로 남았다고.

제대 이듬해인 1980년 4월 산림청·경상북도 산림관계자와 현지 확인을 했을 때는 300여 그루가 살아남아 자라고 있었다. ‘푸른독도 가꾸기’의 공로로 이석창 대표는 대학 4학년 때 산림청장으로부터 감사패를 받았다. 우직스러우면서도 의지에 찬 한 임학도의 도전이 비로소 열매를 맺은 것이다.


서귀포문화사업회


석주명 선생, 석주명이 수집했던 나비표본 / 자연제주 제공

1943년 4월~1945년 5월까지 옛 경성제대 생약연구소 제주도시험장(현 제주대 아열대 농업생명연구소)에 근무하면서 나비 채집과 분류 연구, 제주 문화의 특수성에 주목해 제주도의 자연·인문·사회 등 총 6권의 ‘제주도총서’를 펴낸 제주학의 선구자인 ‘나비박사’ 석주명 기념사업과 학술연구사업을 주도한 결과 서귀포시에서 기념관 건립사업을 추진하게 된 것도 큰 수확이다.

석주명의 생애와 제주에서의 업적을 중심으로 한 장편소설 ‘나비와 함께 날아가다’(오성찬, 2004년)는 석주명기념사업의 기폭제가 됐다. 1997년 지역 문화예술인들을 비롯해 서귀포시를 사랑하는 인사들을 중심으로 사라져가는 자연환경과 문화복원사업을 위해 태동한 민간단체 서귀포문화사업회가 이석창 대표를 중심으로 출범했다. 2000년에는 도내 사회단체들과 함께 정방폭포와 송산동 소남머리를 있는 서귀포칠십리 해안선의 아름다운 경관과 환경파괴를 막기 위해 ‘서귀포시 워터프론트 개발계획’ 반대운동을 대대적으로 벌였다. 2003년 8월 이중섭공원에 ‘서귀포칠십리 노래비’를 설치하고, 서귀포를 사랑했던 예술인인 ‘이중섭과 남인수의 만남’을 주제로 재조명하는 행사를 갖기도 했다. 서귀포문화사업회는 올해 비영리 사단법인으로 재출범했다.

서귀포봄맞이축제 / 자연제주 제공

이석창 대표(서귀포문화사업회장)의 제안으로 만들어진 ‘서귀포봄맞이축제’는 다른 지역과 달리 따뜻한 기후, 자연, 역사, 문화의 고유성을 바탕으로 한반도에서 봄이 가장 일찍 시작되는 서귀포에서 개최되는 전통문화축제로, 2011년부터 매년 춘분을 전후로 이중섭공원에서 열린다.

‘복사꽃이 돗국물에 빠진 날’을 테마로 사라진 제주 고유의 전통문화와 그 가치를 재조명해 선인들의 지혜로운 공동체 삶을 계승·발전시키고, 이와 더불어 나눔과 미덕, 생명의 소중함을 공유하는 기회를 제공하여 시민사회의 공동선(共同善)을 구현하는 것을 축제의 기조로 삼고 있다.

서귀포봄맞이축제를 통해 처음으로 발굴한 문화컨텐츠는 ‘남극노인성제’이다. 고려 및 조선조 때는 노인성(老人星)이 인간의 수명을 관장한다고 여겨 나라의 평안과 백성의 무병장수를 기원하는 제사로, 춘분과 추분일에 맞춰 국가 제사를 지내오다가 조선 중종 때 폐지됐다. 이는 2013년부터 축제에 도입됐으며, 세종실록에 기록된 노인성제 제례 준비와 절차를 간결하게 구성해 국가 제사를 재현하고 있다.


남극노인성제 / 자연제주 제공


황근자생지식생복원 / 자연제주 제공


진달래꽃화전놀이재현, 서귀포걸궁재현 / 자연제주 제공


꽃나무 나눔행사 / 자연제주 제공

또 하나 주목할 만한 것은 ‘꽃나무 나눔행사’이다. 따뜻한 기후가 갖는 차별성으로 봄을 가장 먼저 여는 서귀포시에서 축제참가자에게 새봄의 정취와 함께 자연 속에서 인간의 심성을 심어주고, 자연과 생명의 소중함을 안겨주기 위해 마련됐다. 참가자들에게 대묘 수준의 꽃나무를 무료로 나누어 주어 집집마다 거리마다 봄꽃이 가득 피고 퍼져나가는 것을 기대하고 있다. 지난 9년 동안 참가자들에게 총 196종(중복종 포함) 19,000그루가 무료로 제공됐다.

이석창 대표는 “워낙 식물을 좋아했기에 식물들과 만난 순간순간이 전부 기억이 난다. 특히 대학생 당시 올리브나무를 아꼈던 마음을 생각해 보면 그 나무 한 그루로 굉장히 행복했었던 기억이 있다. 그 행복을 누군가에게 나누길 원하는 마음으로 매년 나무를 기증하고 있다”고 말한다.


스페인 타라고나 올리브나무 / 자연제주 제공

1977년 봄, 대학생으로서 실습을 하던 KIST 농장에서 뉴질랜드 Duncan & Davies nursery로부터 수입한 올리브나무 가운데 1주를 받아 집 마당에 심었다. 2년생으로 50㎝였던 이 나무에 대한 이 대표의 애착이 대단했다. 이듬해 이 올리브나무는 당시 부친의 사업장인 한국통신(KT)으로 이식됐다.

이후 농장을 개원한 이래 올리브나무를 수입하는 일이 부쩍 늘었다. 이 나무에 대한 청년시절의 추억과 애착이 가져다준 결과일지도 모른다. 현재 농장에는 400년생 20주, 200년생 30주 등 50여 그루를 비롯해 1,000주의 올리브나무가 스페인 Catalunya에서 건너와 자라고 있다.


전문가포럼 / 자연제주 제공

또한 놓치고 있거나 다시 짚어보아야 할 제주의 다양한 문화적 요소와 그 가치를 재조명하기 위해 제주전통문화 재조명 전문가포럼을 개최하고 있다. 제주전통걸궁의 재조명과 계승(2014년), 남극노인성제 재조명과 계승(2015), 서귀본향당 재조명과 계승(2016년), 제주전통음식문화 재조명과 계승(2017년), 제주문전제 재조명(2018년), 제주봄꽃문화 재조명(2019년), 에밀 타케의 정원조성 위한 전문가포럼(2021년)까지 다양하다. 포럼의 결과들은 정책적 공약으로 제안, 반영되기도 한다. 이밖에도 진달래꽃 화전놀이 재현을 비롯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이중섭공원


이중섭공원 / 자연제주 제공

1951년 이중섭 화가가 서귀포에 머물던 당시의 모습과 절박한 시대를 함께 살았던 이웃사람들의 삶의 흔적을 복원한 이중섭공원은 자연제주의 작품이다. 집터, 올레, 울담, 우영팟을 통해 이중섭이 제주에 왔던 1950년대 당시의 문화를 표현했고, 머귀낭(머귀나무), 댕오지(당유자), 신사라(신서란), 폭낭(팽나무), 뽕낭(뽕나무), 양애(양하), 모쿠실낭(멀구슬나무)을 식재해 당시의 식물문화를 반영했다. 사라져가던 서귀포의 옛 모습을 복원한 것이다. 이제는 미술관에 들어가기 전부터 시대적인 감각을 느낄 수 있다. 이후 자연제주는 자부담으로 이중섭공원의 가치를 높이는 생태경관 개선사업을 꾸준히 이어나가고 있다.


제주에 조경 교육 필요해

“제주도는 세계적인 관광지이기에 세계적인 디자인의 조경이 함께 성장해야 한다”고 말하는 이석창 대표는 제주의 조경산업이 성장하기 위해서는 대학이 교육기관으로서 인재들을 양성해야 하는데 조경학과가 없다는 것은 안타까워하고 있다.

제주는 한라산이 가지고 있는 수종만 해도 1800종 이상이 넘는다. 해발 고도에 따라 다양한 기후대의 식생이 분포하고 있고, 지형과 남북에 따라 또 다른 식물이 자라고 있다. 제주라는 공간은 좁지만 생물다양성이 굉장히 높다. 따라서 “식물학적, 생태학적, 인문학적인 소양을 가진 인재가 발굴돼 제주의 다양성을 이해하고 재해석해 적용하는 일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이석창 자연제주 대표
글·사진_전지은 기자 · 라펜트
다른기사 보기
jj870904@nate.com

기획특집·연재기사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