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마다의 풍경″ ; 감흥의 시간, 경관과 대화하기 - 1
경공환장: 다시 보는 일상, 느껴 보는 도시"경공환장: 다시 보는 일상, 느껴 보는 도시"
Part 2: 04 풍경(scenery) Ⅰ
“저마다의 풍경” ; 감흥의 시간, 경관과 대화하기
글_안명준 오피니언리더
조경시공연구소 느티 대표│조경비평가
풍경Ⅰ: 소공원에 담은 이야기, 대화를 바라는 경관...
풍경에는 감흥의 시간이 필요하다. 그것은 지각과 인식으로 시작된 생각이 시간을 부르기 때문이다. 소환된 시간은 그렇게 감흥으로 이어진다. 풍경이란 그렇게 나타나는 하나의 개별 현상이다. 그러나 그것이 쌓이면 일상이 되고 장소가 된다. 우리시대 시간은 속도를 만들고 있는데, 속도를 사는 시대에 풍경의 속도와 단계를 생각해 보자.
공원을 정원으로
순천은 도시가 정원을 표방한다. 국가정원의 도시이기도 하고 크고 작은 정원들의 잔치가 가득한 옛도심을 가지고도 있다. 순천부읍성 터를 중심으로 도시재생사업이 활발하게 추진 중이기도 하다. 그 중에서 옛 성터 외곽 부근 옥천변에 한동안 버려져 있던 낡은 일식 건물과 대지가 2016년 6월 소공원으로 재탄생하였다. 이곳은 전통정원을 표방하며 새로운 공원문화를 선보이고 있어 일반적인 공원 조성의 방식과는 차별화 된다.
공원과 정원의 경계가 애매해지고 있다는 지적이야 오래 되었지만, 그 중심에 시민들의 참여와 적극적인 활동이 자리하고 있음이 주목받은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시민참여가 오래도록 논의되어 왔지만 공공의 공간에 정원과 같은 사적인 활동 공간이 적극적으로 반영되기 시작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게다가 연구를 바탕으로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공동으로 공원부지에 정원을 표방하며 가드닝을 생활화한 시도와 결실은 이번이 처음이 아닌가 싶다.
한국적 전통정원 “유선원(遊仙園)”은 그렇게 만들어졌다. 문화체육관광부의 전국 공모를 통해 한국적 생활문화 공간 조성의 시범 대상지로 선정되고, 소공원부지로 준비되고 있던 옛 집터가 전통정원 양식의 현대화를 테마로 하는 공원이자 정원으로 재탄생하게 된 것이다. 정원의 명칭은 신선과 관련된 지명에서 착안하고 순천의 지역성을 반영하여 지어졌고, 기본설계는 기 연구된 전통 정원문화의 한국성을 반영하여 작성되었다. 기존 연구를 참조로 한 전통정원의 양식과 요소를 바탕으로 대상지의 현황을 반영하며 정원의 윤곽은 그렇게 그려졌다.
대상지는 만만치 않았다. 옛 일식 건물은 근대문화유산 가치가 논의될 정도였고, 콘크리트 지하 벙커와 수준급의 일본식 정원, 20여 미터에 달하는 커다란 나무들 등 초점에 따라 해법이 크게 달라질 수 있는 대상지의 오래된 역사적 층위는 쉽게 해법을 보여주지 않았다. 그러나 꼭 사업 목적 때문만이 아니더라도 본래부터 정원이었던 곳을 함께 즐기는 정원(공원)으로 탈바꿈 시키는 것은 어렵지 않게 결정내릴 수 있는 사항이었다. 제반 여건은 이를 수용하기에도 충분했다.
정원을 풍경으로
그렇게 정원을 만들어야 했다. 그것도 현대적 전통정원의 방향이어야 했다. ‘원로’와 같은 새로운 기법들을 부각시키면서도 대중적으로 전통정원의 새로운 맛을 보여주어야 했다. 어떤 면에서는 설계가 쉽게 진행될 수도 있다. 질항아리 같은 키치적 요소만 아니라면 전통재료는 생각보다 많지 않기 때문이다. 문제는 재료가 아니라 내용이었다.
그런 점에서 소공원 부지를 가꾸기가 먼저인 정원으로 변신시키는데 전통성(한국성)이 어떤 이야기로 펼쳐질 수 있는가가 문제였다. 관조적 감상 중심의 정원이 아니어야 했고 대상지가 가진 역사적 층위도 하나의 배경으로 활용해야 했다. 무엇보다 우리시대 정원문화는 아직 여물지 않은 기회였다.
정원을 만들어야 했지만, 생각은 풍경 만들기로 이어졌다. 가꾸기조차 풍경이어야 했다. 그렇게 정리하니 가꾸기와 풍경(미적 감흥) 사이의 간극을 어떻게 풀어야 할 지로 생각이 모아졌다. 더군다나 대상지는 공원 부지로서 많은 사람들의 일상공간이자 도시관광요소이기도 하고 대상지 그 자체로 이야기 가득한 장소였기에 이를 어떻게 새로운 풍경으로 재설정하는지가 결국 문제의 핵심이 되었다. 그렇게 한정하니 설계는 의외로 쉽게 진행되었다. 수평성에 기반하는 새로운 우리식 정원문화, 그것을 보여주는 방향이어야 했다. 담을 내용과 이야기는 이미 충분했다.
풍경을 일상으로
경관과 풍경은 달랐다. 그것은 지금 보니 결국 관점의 차이에 다름 아니었다. 설계는 마무리 되었고, 날씨 사정에 따라 겨울, 봄, 여름을 거치며 공사 모습이 그대로 노출된 채로 대상지의 모습이 변화해 갔다. 그 과정을 시민 모두가 지켜보았다. 담에 둘러싸여 감추어졌던 공간이 비로소 경관으로 자리하게 된 것이다. 비록 공사중인 험한 모습이었지만 먼저 새로 놓인 보행로를 따라 땅의 변화가 그대로 모두에게 열려 있었다. 그러니까 공사과정부터 완성까지 일상이 되었던 것이다. 거기에는 나름의 의도도 있었다. 셉티드 기법을 고려한 자연감시가 그때부터 시작되길 바랐던 것이다. 중층 식재를 적게 하여 어느 방향에서 보아도 전체가 한눈에 보이게 한 것도 그런 배경이 있다.
전통 식재를 고려한 소박한 정원 식재(농진청 한승원 박사팀 협조)
한동안은 맨땅과 시끄러운 공사 소리에 즐겁지 못했지만 다들 기대에 차있었음은 쉽게 느낄 수 있었다. 특히 시청 직원들의 관심은 대단했다. 방지와 정자가 자리 잡으며 큰 틀이 형성되었을 때는 주민들의 기대 목소리도 들려왔다.
그 사이 많은 에피소드들이 쌓여가며 한동안 갖혀있던 공간이 변신하는 모습은 그렇게 점차 일상에 안착했다. 경관이 풍경이 되어가는 모습을 시민과 행정이 모두 함께 했던 것이다. 그래서 준공식은 잔치이자 새출발이었다. 새로운 마당에서 전통 혼례까지 치렀으니 공간의 쓰임까지 새로 시작된 제대로 된 새 풍경이 되었다. 그렇게 준공식은 새로운 풍경이 새로운 쓰임을 얻은 날이기도 하다.
전통이 현대적 쓰임으로서, 시설 부지에 새롭게 들어선 것은 처음이 아닐 것이다. 그러나 전통이 토대가 되고 변화 과정 전체가 공개되고, 감추어졌던 경관이 새로운 풍경으로 진화하며 일상이 된 사례는 우리에게 그리 많지 않다.
풍경이 경관에서 주인공을 소환하는 개념이라면, 유선원은 그것에 충실한 풍경으로 태어났다. 이제 정원의 본질을 토대로 하는 가꾸기가 중요한 시점이다. 순천시는 5인의 주민 리더 “유선원 지킴이” 지정으로 그것을 고려한 세심한 가꾸기 지원 실천이자 시민 주인공화 요청을 보여주었다. 우리식 정원문화는 이렇게 공원의 진화로도 나타난다.
* 실천을 중심으로 하는 경공환장 Part 2는 사정상 연재가 한동안 늦춰졌습니다. 너른 양해를 바라며, 향후에도 이론적 접근보다는 실천적 접근을 우선하는 방식으로 진행합니다.
- 글·사진 _ 안명준 조경비평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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