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정원_ 네 번째 정원: 우리와 우리 도시의 경작본능(下)

경공환장: 다시 보는 일상, 느껴 보는 도시_1회
라펜트l안명준 조경비평가, 이형주l기사입력2013-01-18

경공환장(景空環場):

다시 보는 일상, 느껴 보는 도시

 

글_안명준 조경비평가

 

01정원_ 네 번째 정원: 우리와 우리 도시의 경작본능(下)

 

정원의 전환

 

정원은 자연물과 직접 연관된다는 점 말고도 또 하나의 특징이 있다. 그것은 정원의 본질이 돌봄(care)에 있다는 점이다. 재미있는 것은 정원이 가진 돌봄이 정원으로만 향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것은 자연과 인간 모두를 향한다. 예를 들어 정원사는 장수하는 직종에 속한다고 한다. 이에 대한 재미있는 해석은 정원이 스스로 살기 위해 익숙하고 자신을 잘 아는 정원사를 오래도록 돌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일정 부분 공감되는 것은 필자만의 느낌은 아닐 것이다.

 

우리시대에는 정원의 돌봄이 개별 정원사에게만 향하지도 않는다. 여기에서 정원의 새로운 확장이 펼쳐지는데, 특히 도시 정원은 사람과 도시 모두를 돌보면서 지구 정원을 되살리는데 중요한 기능을 한다. 우리 도시의 지속가능성을 지원하면서 정원 스스로와 인간, 도시 모두를 건강하게 해주는 것이다. 이렇게 보니 환경문제가 심각한 우리시대에 정원이 대중적으로 각광받는 이유 하나는 분명해지는 것 같다.

 

경제 성장과 시민사회 성장이라는 20세기 격변을 거치면서 정원은 사적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권력자나 자산가들의 호사취미 정도로 전락하는 수모를 겪기도 한다. 특히 공원이 빠르게 성장하면서 도시에 필요한 자연물을 거기에 두고 모두 즐기는 형태로 도시가 재편되면서 사적 영역에서 자연물을 직접 만지고 즐기는 행위는 비민주적이고 부르주아적인 것이 되어 버린다. 정원은 편견 속, 누구나 가지고 싶어하는 것이지만 누구나 가지지 못하는, 부럽지만 어려운 곳이 되어 버린 것이다.

 

이후 정원의 재발견(Reinviting Gardens)에 대한 논의가 1980년대 이후 서서히 강조되기 시작한다. 그것은 기술과 과학의 발달로 특정 계층에서만 가능하던 정원 즐기기가 성장한 경제 수준과 문화예술에 맞추어 누구나 생각해 볼 수 있는 자연 즐기기가 되었기 때문이다. 거기에다가 다변화된 사회문화로 정원의 가치가 재설정되기도 하고, 정원일의 의미가 다양하게 지적되기도 하면서 정원은 이 분야에서는 핫이슈로 부각한다. 급기야 마이클 폴란은 약 150년간 자연 찬미로 서구 자연관에 경종을 울렸던월든의 저자에게소로우도 결국 정원을 가꾼 것이라며 지구 정원에 대한 인간의 돌봄을 역설하기에 이른다.

 

이러한 변화의 핵심은 점차 정원이 편견의 대상이 아니라 도시에서 모두를 위한, 사적이지만 공적인 자연으로서 중요해 졌다는 점이다. 이것은 세계적인 추세로 우리 도시에서도 일상이 되어가고 있다. 새로운 정원은 모두가 공유하는 도시에서 시민의 것이고, 각자의 것이며, 자연에의 참여를 위한 것이 되고 있다. 각자를 주인공으로 만들어주고, 주인공의 의지대로 자연의 과정에 참여하게 하며, 서로 즐기고 교류하는 과정을 통해 만족스러운 소통을 이루는 것이다. 공사(公私)가 뒤섞인 채 지난 시대 공원이 주는 공공성을 정원에 요청하는 방향으로 개념적 진화가 시작된 것이다. 정원과 공원의 경계가 그렇게 흐려지면서 새로운 나이테가 만들어지고 있다.

 

인류가 그간 경험하지 못했던 메트로폴리탄이라는 배경 아래 새로운 정원이 재설정되고 있는 것이다. 지난 세기의 공원이 정원 변신의 첫 테마였다면, 지금 세기의 도시농사는 정원 변신의 두 번째 테마로 등장했다고 본다. 과거 공원은 모두의 것(공유)이자 도시계획 시설로서 정원의 본래와는 다른 기능으로 자리잡으며(개념 설정이 되고) 정원의 길이 아닌 다른 영역으로 떠나버렸다. 공원하면 큰 정원이라는 인상이 들지 않는 것도 이 때문이다. 21세기 들어서는 시끌벅적한 도시농사가 새로운 정원을 요청하는 두 번째 테마로서 도시 여기저기에 가득하다.

 

도시농사로 대표되는 자연물에 대한 시민들의 적극적인 참여 의지는 공원의 그것과는 판이하게 다르다. 도시내 시설로 공원이 자리잡았을 때에는 정책이나 선구자의 역할이 먼저였다면, 정원일로서 도시농사는 시민들 개개인의 차원에서, 각자를 주인공으로 지적하는 것이 먼저이다. 이렇게 확장된 정원을 이제네 번째 정원이라고 불러야 하지 않을까? 새로운 정원으로 우리도시에 가득하기 때문이고, 정원이 가진 생산의 측면이 자연물을 다루고자 하는 욕구와 함께 어떤 모습으로 도시에 작용하며 정원의 얼굴을 그려낼지 기대되기 때문이다.

 


"새로운 정원은 모두가 공유하는 도시에서 시민의 것이고, 각자의 것이며, 자연에의 참여를 위한 것이 되고 있다. 각자를 주인공으로 만들어주고, 주인공의 의지대로 자연의 과정에 참여하게 하며, 서로 즐기고 교류하는 과정을 통해 만족스러운 소통을 이루는 것이다."

그리고, 네 번째 정원

 

최근 우리 국민들의 자연 참여 욕구가 중요한 사회적 테마가 되었다. 도시농사, 주말농장, 수목원, 정원, 텃밭, 가드닝스쿨, 스쿨가드닝, 옥상정원, 실내정원, 공원, 공공정원, 숲해설, 올레길, 등산 및 야영, 꽃박람회, 정원박랍회 등 자연을 직접 체험하고자 하는 다양한 행태들이 문화적으로 활발하다.

 

이는 콘크리트 회색인프라 중심 삶의 모습에 대한 반성으로서 녹색의 자연, 녹색의 문화를 직접 체험하고 즐기고자 하는 시민들의 욕구를 그대로 반영한다. 그것은 웰빙, 삶의 질, 건강, 쾌적한 삶 등 다양한 어휘들로 설명이 되며, 우리시대가 녹색 중심의 도시 환경, 삶의 환경을 기본으로 요청하고 있음을 그대로 보여준다. 수목원, 식물원 등 자연물을 직접적으로 전시하고 유지관리하는 시설들이 많아지고 있으며, 자연을 즐기고자 하는 국민들의 욕구를 지원하기 위한 방편으로 마을만들기, 그린스트리트, 그린파킹 등 공적 영역에서의 지원도 활발하다.

 

이러한 방편들이 모여 자연물을 즐기기 위한 다양한 양상들로 정원문화을 형성하고 있다. 정원박람회, 꽃박람회, 시민참여 정원 등의 문화적 이벤트가 정례화되는 등 시민들의 기대와 호응이 점차 확산되고 있기도 하다. 또 담장허물기, 상자텃밭, 커뮤니티 가든 등 시민들이 주인공이 되어 직접 정원문화를 확산시키는 사례들도 흔하다. 우리시대 정원은 자연을 공유하는데 초점을 두고 진화 중이다.

 

따라서 현대 도시의 정원을 새로운 정원 유형으로 살펴야 하고, 그것을 정원의 새로운 원형으로 지적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자연을 즐기고 자연에 참여하고자 하는 과정과 연관된다. 현대 정원은 도시와의 관계 속에서 재설정되었고, 현대 도시가 없이는 이러한 유형의 정원이 발전하지도 못하였을 것이다. 채마밭에서 시작된 정원은 자연물을 사람의 의지에 따라 다루고자 하는 잃어버렸던 욕구를 간직하고 있다. 현대 도시가 아니면 정의되지 않는 정원의 새로운 측면, 그것을네 번째 정원이라고 부르고 싶다. 네 번째 정원은 인공 환경 속에서 결국 인간의 본능과 연관되며 본능의 문제를 다루게 해준다는 특징이 있다.

 

정원의 원형적 의미에서 출발한 현대 정원은 그 개념에서 문화적 확장을 이루었다. 현대 정원과 정원일(gardening)은 자연과 인간의 교감이 이루어지는 가장 기초적인 행위라는 측면에서 1) 자연물(인공물의 반대적 개념으로, 자생성이 있는 자연속 다양한 동식물과 유기물 등)을 다루는 행위, 2) 인간의 의지와 요구에 따라 자연물을 활용하는 방식, 3) 대체로 자연물을 선택하고 배치하고 유지관리하는 과정을 통해 자연과 인간의 교감을 추구하는 모든 활동, 4) 그리고 자연물을 매개로 사람과 사람이 만나 함께 즐기는 공동의 자연(공공정원(public garden))이라는 개념적 확장을 이루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그러한 활동들이 모여 지금 여기 우리 도시의 정원문화를 그려내고 있다. NewtWork.net

_ 안명준 조경비평가  ·  서울대
다른기사 보기
inplusgan@gmail.com
사진 _ 이형주  ·  환경과조경
다른기사 보기
klam@chol.com

네티즌 공감 (0)

의견쓰기

가장많이본뉴스최근주요뉴스

  • 전체
  • 종합일반
  • 동정일정
  • 교육문화예술

인기통합정보

  • 기획연재
  • 설계공모프로젝트
  • 인터뷰취재

커뮤니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