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공원_ 공유하는 일상: 우리 도시의 진화하는 공원(上)

경공환장: 다시 보는 일상, 느껴 보는 도시_2회
라펜트l안명준 조경비평가l기사입력2013-01-25

경공환장(景空環場):

다시 보는 일상, 느껴 보는 도시

 

글_안명준 조경비평가

 

02공원_ 공유하는 일상; 우리 도시의 진화하는 공원(上)

 

공원은 녹지와 함께 우리 도시의 대표적인오픈스페이스(Open Space)’이다. 이것을 염두에 두고 지금 우리 공원에 질문을 먼저 해보자. 우리 도시의 공원은 만족할 만큼 오픈되어 있는가? 시민 한명 한명이 주인공인 지금, 시민들의 창의적 일상을 받아들일 수 있는지 궁금하다. 그러나 대체로무엇이든 가능할 것 같은 열린 공간공원이 불편하고 부당하기까지 할 때가 많다. 공원이 불편한 이유, 아니 공원이라는 개념이 부당한 이유는 무엇일까?

 

공원의 발명: 사적 자연에서 공적 시설로

 

우리시대 공원에는 제약이 많다. 언젠가 해외파 한 조경가가 삼겹살을 구워먹을 수 있는 넓은 잔디밭의 공원을 아이디어로 얘기한 적이 있다. 하지만 우리 공원 아무데서나 그럴 수는 없다. 공원에서금지된 행위들은 법적으로 정해져 있는데 심지어 벌금까지 부과될 수 있다.

 

도심 여가공간에서 타인에게 직접적으로 피해를 줄 수 있는 것까지야 제한한다고 하더라도, 온갖 식품 배달이 가능한 공원에서 온 국민의 즐거움 중의 하나인 삼겹살 먹는 것이 불법이라는 것은 아쉽다.

 

이런 아쉬움 때문에라도 공원이 도시민의 여가를 얼마나 잘 지원하고, 도시민의 요구를 얼마나 잘 담아내고 있는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공원계획설계에 참조하기 위해 다양한 방식으로 설문과 연구가 꾸준히 진행되고 있기는 하지만 여전히 시원한 해답은 아직인 것 같다. 상황을 이해하고 생각을 이끌기 위해 먼저 공원이 어떻게 시작되었는지부터 살펴보자.

 

생각의 시작은 우리가 아는 공원이 수입된 개념이라는데서 시작할 수 있다. 살펴보면 우리 전통에서 공원은 별도로 존재하지 않았는데, 근대화 시기에 특별한 의미를 가지고 조성되면서 도시에 자리잡은 것을 알 수 있다.

 

이것은 우리보다 공원 문화가 먼저였던 서구에서도 비슷하다. 서구의 공원(public park)은 권력자들의 파크(Park)가 개방되면서 시작되었는데, 근대 이후 도시 기능이 강화되면서 성장한 것이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처음엔 공원이 도시에서 공유하는 자연이자 시설(Open Space)로 여겨졌고, 그러다보니 아무나 마음대로 쓸 수 없도록 자리잡은 것도 일견 이해가 된다.

 

정원과 공원은 다른 위상을 갖는데, 픽춰레스크 시대는 권력자와 예술가들에 의해 자연으로부터 경관(풍경)을 분리하여 그림에 담고, 또 담긴 경관을 정원으로 만들면서 한참풍경(picturesque)’을 문화예술로 즐기던 때였다. 풍경을 담아둔 정원은 아무나 가지거나 즐길 수 없는 것이었고, 풍경식 정원은 하나의 양식이 될 정도로 유행하기도 했다.

 

조경가 질 클레망은 이때를 건축가 겸 정원사에게 맡겨졌던 정원예술이 정원사 겸 화가의 손으로 넘어간 때라 지적하기도 한다. 이처럼 근대 이전의 정원은 경관(풍경, 자연미)을 담는 그릇(프레임)이었으나, 아무나 즐길 수 없는 사적인 것이었다.

 

이 당시 자연을 더이상 두려워하지 않고 아름다움의 대상으로 즐기게 된 것은 공원 탄생의 중요한 사회적 배경이었다. 공원의 출발을 살피면서 근대 정원을 말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또한 수렵원이었던 파크가 특권층의 관심으로부터 멀어지게 된 것도 중요한 배경으로 지적되곤 한다.

 

직접적으로는 18세기 영국을 중심으로 산업도시 노동자와 민주주의 성장으로 자연을 즐기고 활용하고자 했던 시민의 욕구가 공원 탄생의 동력이 되었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공원이 시작부터 시민으로 부터였고,

 시민에게 서비스되도록 설정되었다는 점이다."

공원의 원형: 버큰헤드파크와 센트럴파크

 

개념이 만들어지던 시점에 공원은 일반 시민이 쓰도록 만든자연을 담은시설이었다. 본래 공원은 산업화 시대의 도시문제 해결을 위한 방안으로 고안되었고, 도시에 도입할 자연이자 노동자들을 지원할 위생설비, 하수도 시스템 등과 같은 성격으로 등장한 것이었다.

 

그러므로 공원은 산업도시에 대한 사회적 발명품으로 시작되었고 지금 우리가 생각하는 공원과는 다른 의미를 가졌다. 그러다보니 공원은 단순히 정원의 확장이라거나 도시의 자연공간 정도로 이해되지 않는 것이다.

 

공원의 등장은 산업도시의 발달과 연관되지만 실은 노동자이자 시민의 성장이 더 큰 배경이었다. 최초의 시민을 위한 공원으로는 영국 왕실 정원과 파크를 시민에게 개방한 픽토리아파크(Victoria Park)로 알려져 있는데, 같은 1830년대에 세계 최초로 시민의 손으로, 시민을 위해 만든 버큰헤드파크(Birkenhead Park, 조셉 팩스턴 설계) 같은 사례가 등장하기도 한다. 이때부터 우리가 지금 아는 공원의 개념이 다져지기 시작했다고 할 수 있다.

 

이후 영국 중심의 공원 문화는 1840년대에 대서양을 건너 미국에 전해지는데, 영국의 풍경식 정원 양식이 함께 바다를 건넌다. 지금 우리가 공원하면 떠올리는 넓은 잔디밭과 그야말로 자연스러운 풍경은 여기에서 시작되었는데 그 첫 사례가 센트럴파크(Central Park)였다.

 

미국에서 공원은 앤드류 잭슨 다우닝(Andrew Jackson Downing) 1848년 처음으로 그 필요성을 제기하였는데, 1858년 이후 뉴욕 맨하튼 가운데에 프레드릭 로 옴스테드(Fredrick Law Olmsted)와 칼베르 보(Calvert Vaux)의 설계에 따라 센트럴파크가 조성되면서 본격적으로 이식증식되기 시작한다.

 

옴스테드의 공원시스템은 이후 미국의 많은 도시들에 영향을 주었는데 실제로 다양한 형태의 공원이 자리잡는데 큰 역할을 하기도 한다. 옴스테드의 작업들은 대부분 지금 우리가 아는 공원의 원류를 이루게 된다.

 

요약하자면 현대 공원은 버큰헤드파크를 중심으로 하는공공정원(public garden)’의 이슈에서 시작되었고, 센트럴파크를 중심으로 하는공공공지(public park)’의 기능에서 발전하였다고 할 수 있다.

 

무엇보다 오늘날의 공원은 (산업)도시의 성장 없이는 존재할 수 없었고, 도시에 이식된 시설로서의 공원은 20세기 도시의 성장과 발달을 거치면서 그 기능과 용도가 단계적으로 진화하며 지금에 이르게 된다.

 

이처럼 공원은 시점이 비교적 분명한 발명품이자 근대 시설이다. 센트럴파크는 지금도 도시공원의 원형으로 유명하고옴스테드 스타일(Olmstedian Style)’이라 불릴 정도로 전세계에 미치는 영향이 여전하다. 우리 신도시에 거의 빠짐없이 들어서 있는 중앙공원의 친정인 셈이다. 여기서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공원이 시작부터 시민으로 부터였고 시민에게 서비스되도록 설정되었다는 점이다.(계속)

연재필자 _ 안명준 조경비평가  ·  서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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