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더풀~' 쾨켄호프 플라워 가든쇼(1)

이정언 박사의 쾨켄호프 탐방기
라펜트l기사입력2014-05-29

 원더풀 쾨켄호프 플라워 가든 쇼  
 

                                         이정언 박사(선진엔지니어링 부장/조경기술사)



지난 5월초 황금연휴기간, 네덜란드 리세(Lisse)에서 매년 봄 3월말부터 5월 중순까지 개최되는 세계 최고의 유럽 플라워 쇼 중 하나인 쾨켄호프(Keukenhof)를 향해 몸을 날렸다.


물 먹은 솜처럼 묵직한 몸을 비행기에 던졌을 때 이 시간이 오기까지의 몇 일간의 고뇌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졌다. 이 여행은 쫓기는 일상 속에서 꼭 한번 이루어 보고자 했던 꿈이자 실천이었고 정신과 육체적 휴식에 대한 무의식적 갈망에서 빚어졌다. 더하여, ‘꽃보다 할배’에서의 배우 신구의 대사 한마디, “아무튼 저지르고 봐야해. 이게 옳다. 이걸 실행해야 되겠다. 그러면 그때 해야 돼. 특히 여행 같은 거는...”이라는 말은 황급하게 떠나게 되는 결심에 힘을 실어주었다.

 

조금 더 솔직해 지자면, 작년 가을부터 약 일주일 단위로 facebook에 게시되었던 쾨켄호프 준비와 이벤트 상황은 쾨켄호프 방문에 대한 동경을 심어주기에 충분했다. 조금 더 거슬러 올라가면 수년전부터 고개들기 시작한 정원에 대한 관심이 이 여행계획에 좀 더 채찍질을 가한 것이 아닌가 한다. 막상 쾨켄호프를 방문하고 보니, 그런저런 방문 모티브 자체는 잰 체하는 사술에 불과했다. 쾨켄호프는 꽃과 정원과 사람들이 어우러져 만들어내는 찬란한 봄 향연의 황홀경! 그 자체였기 때문이었다.


황지해 작가, 최근 황혜정 작가 등 한국의 정원가들이 첼시 플라워 쇼(Chelsea Flower Show)와 쇼몽 국제 가든 페스티벌(International Garden Festival of Chaumont sur Loire)등 세계적으로 명성이 있는 플라워 쇼에서 크게 두각을 나타냈다. 마치 박세리가 LPGA의 US 오픈에서 극적인 우승을 함으로써 한국 골프계에 관심이 뜨거워지고, 김연아가 피겨의 여왕으로 세계적 명성을 얻게 됨으로써 국내에서 피겨 스케이팅에 관심을 쏟게 되었듯, 그녀들로 인하여 한국에 정원 바람이 산들산들 불어오기 시작했다.


2010년의 경기정원박람회를 시작으로 순천만 국제정원박람회를 거치며 2014 코리아 가든 쇼, 최근 정원 관련 법 제정 논의까지. 지금은 정원이 조경계 화두의 주류를 이루고 있다. 


우리에게 너무도 익숙한 유럽의 정원 박람회들, 독일의 분데스가르텐 쇼. 영국의 첼시 플라워 쇼, 프랑스의 쇼몽 가든 페스티벌, 네덜란드의 쾨켄호프. 그 중 쾨켄호프는 대형 튜립꽃 축제 정도로 알려져 있을 정도로 우리에게 크게 알려져 있지 않지만 필자의 발길이 닿은 쾨켄호프는 그 이상의 무엇이었다.


사실 적지 않은 시간을 품어 온 꿈의 실현이었지만 정작 여행의 실행은 충분한 계획 없이 순식간에  달려들었다. 그렇기에 인터넷으로 숙소 예약을 시도했을 때 행사장 반경 20km 이내의 호텔은 이미 매진되고 없었다는 사실은 나를 놀란 토끼로 만들었다. 게다가 가격마저도 멀리 떨어진 하를렘, 레이덴 지역의 호텔에 이르기까지 성수기보다도 이미 높아져 있었다. 생각지 못했던 첫 번째 충격이었다. 그 많은 호텔들이 이미 다 매진되었다니! 쾨켄호프가 지역에 던지는 경제적 파급효과가 어느 정도인가를 상상하기에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결국 멀리 떨어진 노드위크안지(Noordwijk aan zee)에서 지칠 대로 지친 한 몸 뉘일 호텔을 얻을 수밖에 없었던, 조금은 가엾은(?) 여정의 시작이었던 셈이다.


쾨켄호프에 대해 잠깐 소개를 하면 그 시작은 1949년 당시의 리세(Lisse)의 시장이 구근 재배농가와 수출업자의 도움으로 전시정원(show garden)을 만들고자하는 아이디어를 실현한데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쾨켄호프 행사장의 평소 본래 모습은 공원이다. 평소에는 개방하지 않고, 많은 사람들이 찾기에는 조금 떨어져 있는 지역에 위치한 공원, 그러기에 행사시기 만개한 꽃이 모두 지고 없어지더라도 그곳은 숲과 운하, 그 자체만으로 완성도 높은 자연환경과 편안함으로 절경을 뿜어내는 장소이다. 다만, 3~5월 튤립이 한참 절정일 때, 튤립과 네덜란드 꽃 산업을 전 세계에 마케팅하기 위해 열리는 꽃 박람회, 그것이 바로 쾨켄호프이다, 거기에는 지역발전을 위한다는 속내가 감추어져 있지 않다.


쾨켄호프(keukenhof)라는 그 이름도 16세기부터 귀족들의 연회를 위한 야채와 허브를 재배하거나 사냥을 위한 장소로 이용되었기 때문에 ‘keuken’(부엌)을 공급하는 ‘hof’(정원)이라는 단어가 합성되어 만들어졌다고 한다. 그곳을 방문하는 세계 여러 나라 사람들에게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의 구근 화훼류의 전시를 통해 새로운 봄의 시작을 체험하게 한다고 해서 그 곳에선 ‘유럽의 봄’(the spring of europe)이라고 불리고도 있다. 쾨켄호프로 향하는 택시 속에서 나이 많은 택시기사의 친절하고 장황한 설명은 그렇게 계속되었다. 


쾨켄호프의 관람의 시작은 흔히들 하는 행사처럼 입구 줄서기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이 아니었다. 리세(Lisse)근교의 작은 소도시인 레이덴(Leiden), 하를렘(Haarlem), 노드위크안지(Noordwijk aan zee)가-이 지역 일대는 튤립으로 가득한 넓은 들판으로 네덜란드의 국력을 뽐내듯 위풍당당하고 화려했다- 실질적인 행사 준비 장소라고 할 수 있고, 그 중에서도 꽃차 행진이 시작되는 노드위크안지가 사실상의 쇼가 시작되는 곳이라고 할 수 있다. 이 흥미로운 꽃차 행진은 쾨켄호프를 위해 구근류를 재배한 마을 주민들이 평소 꽃 재배에 사용한 각종 농기구와 차량을 이용해 기획하고 실행함으로써 이벤트까지 주민참여로 이루어지고 있음을 잘 보여주고 있었다.



쾨켄호프 게이트



꽃화물차 공연


 꽃차 행렬 중에는 리오의 삼바축제 수준은 아니지만 보컬들이 화물차로 이루어진 꽃차 위에서 공연 판을 벌여 축제의 흥을 돋운다. 마치 영화 ‘대부’(God Father)에서 알파치노가 시칠리 섬에서 소박한 결혼식을 올리고 주민들과 함께 행진하는 것처럼, 농기구 꽃차들은 가로에 늘어선 관광객, 주민들의 시선과 웃음과 박수를 받으며 유쾌하게 행진해 나간다.



꽃차 퍼레이드



농기구 차량 퍼레이드


2만원에 이르는, 결코 싸지 않은 입장료. 반면, 오히려 소박하게 보이는 쾨켄호프 공원의 입구는 마치 수줍음 많은 시골처녀의 모습인양 내게 호기심 어리게 다가왔다.


그런데 입장하자마자 다가오는 쾨켄호프의 속살은 비행기 타고 가는 동안 보았던 영화, ‘겨울왕국’의 어린 안나의 영혼처럼 맑고, 순수하고, 아름다우며, 위대하게 느껴졌다. 갑자기 어둡던 마음속에 밝은 해가 떠올랐고 행복이 밀려왔다. 결코 후회하지 않을 것이란 느낌이 가슴 속으로 차올랐다. 쾨켄호프는 다양한 색상의 꽃과 패턴으로 첫 눈에 다가오는 튤립 꽃, 꽃들의 향연! 280,000㎡(약85,000평)에 이르는 광대한 면적의 공원에 4천여 종의 꽃이 만개한 쾨켄호프는 한마디로 천상의 세계였다.


그런데 어찌하랴! 꽃을 바라보며 피어오르는 환했든 마음이 세월호 사고의 어두운 국면과 순간 중첩되면서 우리가 아닌 ‘나’ 만의 기쁨이라는 생각에 미안한 마음이 울컥 치밀었다. 


출입 게이트를 지나 정원 속으로 들어가자마자, 쾨켄호프에 관해 내 머리 속에 자연스럽게 그려졌던 하나의 큰 느낌, ‘지역 주민들의 손’으로 튤립이 키워지고, ‘지역주민들의 참여’로 행사와 이벤트가 이루어지고, ‘지역발전의 동력’으로 이어지는 행사라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간 저장해 두었던 행사기획에 대한 기억이 일순식간에 확 달아났다.


눈앞에 펼쳐지는 튤립을 비롯한 수많은 꽃들의 향연, 그리고 짙푸른 숲들의 합창, 모네, 고흐, 세잔느와 같은 인상파 화가들의 거대한 살아있는 화폭, 아름다운 생명들의 향연이었다.



튤립의 향연


원래, 튤립의 원산지는 네덜란드가 아니라고 한다. 16세기 중앙아시아에서 유럽으로 흘러들어간 외래종이다. 네덜란드는 15세기 중반 이후 유럽에서도 영국과 함께 세계에서 가장 일찍 중상주의 정책을 펼친 나라로, 그 역사만큼이나 세계화의 뿌리가 깊기 때문에 세계의 문물을 받아들이는 데는 익숙한 국가이다.


그 과정에서 1593년 한 식물학자에 의해 원산지인 터키의 콘스탄티노플에서 네덜란드로 도입되어 현재까지 국가의 주요 수출작물로 많은 외화를 벌어들이고 있다.


1620년대, 재미있게도 튤립은 한 때 네덜란드에서 투기의 대상이 되었단다. 튤립이 비싼 값으로 거래되었고, 튤립 장사들 중에는 구근 값의 기복을 노려서 투기를 하기도 하고 여러 가지 품종의 값을 변동시키기 위해서 비도덕적인 방법을 쓰기도 하였다고 한다. 네덜란드에서 다양하게 개발된 튤립 품종 중 어떤 한 종은 귀족들만 지닐 수 있는 아주 값비싼 귀중품으로 거래되기도 했었고 워낙 귀한 품종이라 경매를 통해서 엄청난 돈을 지불하여야만 구할 수 있었다니! 그 꽃 한 송이 값이 그 당시 귀족들의 집 3채에 해당했다고 한다. 한 때 물 좋았던 우리들의 투기 대상이 아파트였던 것처럼, 네덜란드에서는 그 옛날 한 때, 튤립이 큰 돈 벌 수 있는 투기 대상이었던 것. 쾨켄호프를 방문해서 이 엄청난 양의 튤립을 보고 있으려니, 아이러니컬하게도 내가 큰  부자인 것처럼 느껴졌다.


쾨켄호프를 샅샅이 다니며- 꽃이라는 하나의 주제- 튤립이 주를 이루고 수많은 종의 구근류 꽃들로 이루어진 꽃밭이 어쩌면 그렇게 다양한 패턴으로 잘 디자인 되었는지 이곳저곳이 감탄으로 다가 왔다.


들판에 자연스럽게 펼쳐진 집단 경관의 튤립 군, 평탄한 지형에 기하학적 패턴을 그리며 조밀하게 그림을 그려내는 모자이크형 경관, 짙은 숲 사이사이를 자연스럽게, 기하학적 패턴으로 비집으며 끝없이 펼쳐지는 튤립의 행군. 그들이 빚어내는 색채‧패턴‧형태‧질감‧명암의 조화와 대비, 질서와 통일, 균형과 비례, 점진과 축 등 다양한 미의 법칙이 춤추듯 펼쳐지고, 끝없는 디자인으로 전개되고 있었다.


미와 예술의 경지에 다다른다는 것이 이런 것 아니겠는가? 라는 의문 아닌 의문이 나를 사로잡는 순간이었다.(2회에 계속)














글·사진 _ 이정언 박사  ·  선진엔지니어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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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ony2000@empas.com

네티즌 공감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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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너무 좋은 곳을 다녀오셨네요~
글에서 여성의 섬세함이 느껴집니다~
2014-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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