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경아의 정원은 ‘생활’이다"

[인터뷰] 오경아 오가든스 대표
라펜트l나창호 기자l기사입력2014-08-24

작가 오경아의 행보가 눈부시다. 김해 클레이아크라는 미술관 정원에 한글을 담는 작업을 했고, 여름에는 경기도 평택 안정리로 달려가 마을에 꽃을 심었다. 동대문디자인파크에 옥토퍼스란 이름의 가든숍도 문을 열었다. 지금은 강원도 속초로 옮긴 작업실에서, 정원 대중서 집필에 몰두하고 있다. 방송작가와 가든디자이너란 다른 갈래의 직업과 작업이 그녀 안에서 비벼지면서, 새로운 싹이되어 자라고 있었다. 그것은 우리 정원문화의 스펙트럼을 넓히는 새로운 시도로 점철된다. 오경아 작가의 지나온 발자국과 머리 속 현재 고민이 궁금했다.


오경아 대표(오가든스)


인터뷰에서 처음 그녀가 꺼낸 말은 ‘한국성’이었다. 영국에서 정원공부를 한 오경아 작가지만 그때부터 지금까지 머리 속에서 놓지않던 끈은 ‘한국적인 그 무엇’에 대한 열렬한 탐구였다.


‘우리시대의 한국정원은 무엇일까?’로 참 오랜시간 고민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한국의 정원을 과거에서만 찾고, 그 형태에 생각이 머물러 있더군요. 몇 백년 전 한국정원이 만들어질 당시와 지금 모습은 많은 것이 바뀌었습니다. 수도권과 도시를 향해 사람들이 몰려들었고, 그곳에 아파트가 들어섰습니다. 이제 특별한 날이 아니라면 한복을 입는 사람도 없어요.

그럼에도 우리는 한국인입니다. 한국사람이 한국사람인 이유들, 즉 정체성이 있을 텐데...


그렇다고 기왓장과 토담이 지금 우리의 모습을 아우르진 않는다고 봅니다. 정체성을 찾는 근본으로 파고들었죠. 그러다 하나의 키워드를 찾았습니다. 바로 말과 글이죠. 저는 언어가 살아있다고 생각합니다. 없는 말이 생겨나기도 하고, 예전에 쓰던 말이 없어지기도 하는 것처럼, 쉴 새없이 변화하기 때문이죠. 문화와 정원 역시 끊임없이 움직입니다. 이제는 현재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살아있는 키워드를 정원에 넣어야 합니다.




그래서 미술관앞 한글정원이 탄생했다


한국 정원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첫 번째 여정이 클레이아크 김해미술관에 강병인 선생님과 기획한 한글정원입니다. 특정 소재와 디자인 아이콘에서 나아가 우리 문화가 녹여진 말과 글, 그리고 그림을 통해 가든랭귀지라는 커뮤니케이션 영역을 시도하려 했습니다.
 
디자인을 하다보니 글꼴에도 관심이 많았습니다. 출판에 계신분들은 공감할 테지만, 영어는 글자 자체로도 아름답습니다. 반면 한글로는 같은 느낌을 연출하기 어렵죠. 한글이 미워서가 아니라 타이포그래피에 대한 지원이 적었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글꼴만 놓고봐도 영어 폰트에 비해 한글의 숫자는 단촐해 보입니다. 글자로서 우리문화에 대한 지원을 바라는 마음도 정원 속에 담았죠.
 
이 정원에는 유명 캘리그라피스트인 강병인 선생님의 글자를 통해 시인 이상의 시를 표현했습니다. 시인 이상의 존재와 글 자체가 발산하는 키워드도 생각했지요. 물론 이번이 끝이 아닙니다. 앞으로 한글정원을 시리즈를 이어가면서 깊이감을 더하고 싶습니다.





클레이아크 김해미술관 '한글정원'(ⓒ오경아)


정원의 발견, 대중의 발견


글을 쉽게 쓴다는 것, 쉽지 않은 평생 숙제같아요. 같은 말을 쉽게 전달하면 잘 이해됩니다. 정원의 발견’ 과 같은 책을 쓰려고 했던 이유가 거기에 있습니다. 영국에는 대중을 상대로 하는 가든 원예서가 많아요. 재미있게 읽으며 활용하곤 했죠. 한국에도 관련서적이 의외로 많아서 놀랐습니다. 문제는 책에 쓰인게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거죠. 어려운 한자, 일본말이 정제없이 지금까지 이어져 왔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저 조차도 이해가 어렵더군요. 그래서 자료를 참고할 때 한국책을 한 번도 보지 않았습니다. 영어로 된 책을 보고 제가 익힌 습득영어로 바꾸어 풀어놓았죠. 학술적인 용어가 되진 못할 수 있겠지만 ‘대중이 정원을 더 쉽게 만나는 길이 되어주진 않을까’라는 생각이었습니다.


글이 쉽다고 내용까지 얕을 순 없어요. 원예는 깊은 과학적 지식이 수반되기 때문이죠. 원리를 한번 이해하고 나면, 식물이 살고 죽는 다양한 이유들을 찾을 수 있습니다. 공식처럼 식물에는 정답이 없습니다. 같이 심은 옆집 자작나무는 잘자라도 우리집 자작나무는 죽을 수 있습니다. 이 책은 모범 답안을 드리는 교재가 아니라, 그 답을 찾아가는 방법론을 말하고 있습니다. 다만 쉬운 문장을 통해 스스로 익히도록 돕는 것이죠.


사실 ‘정원의 발견’은 정원학교 시리즈 중 처음 나온 책입니다. 2탄은 영국 가든디자이너 11명을 중심으로 ‘가든디자인’에 대해 풀어보고자 합니다. 오랜시간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아온 정원도 돌아보고요. 가령 18세기 풍경식 정원을 대표하는 윌리엄 켄트와 그의 정원 ‘ Rousham garden’을 소개하며, 그 속에 담긴 생각과 기법을 우리 화단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는지에 대한 ‘오경아식 Tip'을 제공하려 합니다.  



오경아 작가의 장화




오경아 정원은 그래서 '새롭다'


영국 에식스 대학교(The University of Essex)에서 공부하며 디자인한 정원이 있습니다. ‘느림’을 컨셉으로 했는데, 밀란 쿤데라의 동명소설에서 모티브를 따왔죠. 그는 책에서 ‘스피드는 두려움’이라고 했어요. 시속 200km 오토바이에서 쾌감을 느끼는 이유는 공포가 모든걸 잊게 만들고, 기억을 없애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반대로 느려지면 많은 생각이 찾아온다고 해요. ‘달리면 할 수 없는 생각이, 걸음을 통해 가능해 진다’일텐데요. ‘느림의 정원을 통해 많은 기억들을 찾아오게 하자’는데 생각이 모아졌죠. 결국 다른 출품작들을 제치고 1등을 했습니다. 컨셉을 푸는 방식이 독창적이었다는 평가가 나왔죠.


지난 4월엔 하나은행의 후원으로 2014 서울리빙디자인페어에 ‘Green Lights'를 출품했습니다. 초록불은 ‘가도 좋다’는 신호입니다. 스콧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의 개츠비는 옛 연인 데이지에게 초록빛 등대불을 비추는데, 이대로 가도 좋다는 ‘희망의 메시지’로 해석이 가능합니다. 그것에 착안해 조성한 정원이 ‘Green Lights'죠. 잠시 지나치더라는 공간이어도 좋다는 ‘허용’을 담으려 했습니다. 전반적인 작품의 느낌은 간결하면서도 conceptual한 이미지로 초록불과 기다림의 장소를 입체적으로 표현하는데 주력했습니다.  다양한 미디어와 결합할 수 있다는 점이 제 나름의 강점이라고 생각합니다.



Green Lights(ⓒ오경아)


정원, 경계를 넘어


제 정원은 ‘생활’과 떨어뜨릴 수 없습니다. 가장 잘 할 수 있는 분야이기도 하고요. 그런 저에게 경계는 사실 크게 와닿지 않는 단어입니다. 책을 쓰고, 마을을 아름답게 꾸미고, 정원을 디자인하고... 이러한 활동을 통해 대중과 정원이 생활 속에서 더욱 친해지도록 하는 일이 제가 가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간혹 저의 들쭉날쭉한 행동반경에 오해하시는 분이 계시긴 합니다.


6월과 7월 경기도 평택시 팽성읍 안정리에서 마을재생 프로젝트 ‘마을이 꽃이다’의 총괄기획자가 되어 일을 진행했습니다. 그동안 정원이라는 것을 문화적으로 해석하고 싶었는데, 마침 경기농림진흥재단과 연이 닿아, 프로젝트를 맡게 됐습니다. 처음 본 안정리는 묘한 마을이었어요. 대규모 미군부대가 큰 비중을 차지했습니다. 주민 구성은 부대를 보고 들어온 상인, 토착민, 다문화 가정 등이 혼재되어 있는 상태였죠. 원주민과 이방인간의 보이지 않는 알력도 있었고요. 이를 둘러싼 다양한 이해관계로 갈등이 발생하기도 하는 등 마을 분위기가 다소 거친 상태였습니다. 그래서 경기농림진흥재단은 ‘정원’이란 문화 코드를 통해 융화를 시도하게 됐죠.


먼저 주민가드닝 컨테스트를 실시해서, 주민이 조성한 예쁜꽃밭을 선정해 선물을 드렸어요.  그 속에서 가든디자이너들이 텃밭을 이쁘게 꾸밀 수 있도록 도움도 드렸습니다. 또 스쿨가드닝이라고 해서, 초등학교 찾아가 1X1m 박스에 직접 꽃을 심도록 하였는데요. 어린이들의 감각에 무척 놀랐습니다. 외부 환경에 많은 관심을 가져온 이유 때문인지, 감각이 뛰어나더군요. 숨은 보석을 발견한 기분이었습니다.


안정리처럼 저는 가든디자이너로서 문화를 통해 다양한 경계를 넘나들고 싶습니다. ‘조성’만이 전부는 아니거든요. 관심사를 넓히는 것이 그래서 중요하죠. 해외에 나가면 미술관을 꼭 가볼 정도로 미술전시를 즐기며, 패션쇼와 건축작품에도 관심이 많습니다. 기본적으로 문학작품을 읽는 것은 물론이고요. 모든 것이 다 저에겐 하나의 영감으로 작용합니다.


가령 패션쇼를 가면, 두 계절을 앞선 트렌드를 제시합니다. 경향에 대한 키워드를 잡는 제 나름의 방법이죠. 문화적 패턴도 이렇게 가겠구나란 예상도 하게되고요.






안정리 '마을이 꽃이다' 프로젝트(ⓒ오경아)


시대가 바뀌면, 정원문화도 변해야


한국에 정원문화는 있었지만 원예문화는 없었던 것 같아요. 우리나라는 마당 안에 인위적인 관수를 통해 식물을 키우지 않았습니다. 담을 낮추고 주변경관을 끌어온 것이었죠. 그래서 주변의 산과 강이 우리의 정원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다보니 굳이 식물을 심을 이유가 없었죠. 그런데 지금은 도시화와 주거문화 변화로 주변 풍경을 마당에 담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내 집안에서 꽃을 키우는 원예가 새로 대두된 것이고요. 그래서 다양한 나라의 정원을 우리식으로 해석할 수 있는 여지가 많습니다. 바람직하게만 간다면 복합적인 정원문화를 만들어 낼 수 있을거란 가능성이 보이는 것 같습니다. 비워져있기 때문에 담을 수 있는 거잖아요.


다만 우루루 쏟아졌다가 빠져나가는 과열증상은 경계해야 합니다. 특히 우리나라 국민적 정서는 문화스펙트럼이 한쪽으로 급격하게 쏠림으로써 다양성에 대한 구분이 적은 듯 합니다. 정원을 일회성 이벤트로 생각하는 움직임도 경계해야 합니다. 그래서 지금 정원문화가 광풍이 불었다가 사라지는게 아닌가란 걱정도 듭니다. 언제 사그러질지 모른다는 불안감이지요. 그러나 정원은 조금씩 차근차근 가야되는 문화입니다. 정원분야를 리딩하는 그룹 역할이 상당히 중요합니다.




작가성과 대중성 사이


정원을 사람들의 생활 속으로 넣고 싶어요. 그 가운데 작가정신까지 녹여내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두 갈래의 길이지만, 연결된 길입니다. 

제가 생각하는 작가의 정원은 반드시 메시지를 끌어안고 있어야 한다는 거에요. 보기좋고, 이쁜 정원은 상업적으로 풀어야 되겠죠. ‘메시지가 있지만, 누구나 할 수 있는 정원’에 방점을 찍고 싶습니다.


지난해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에 모델정원으로 ‘씨드뱅크’를 출품했습니다. 우리 식물의 종자보호와 지구 환경을 풀어보고자 했습니다. 그 중에서 주안점을 주었던 컨셉이 ‘리사이클링’이었습니다. 오래된 것이 돋보이는 공간이야 말로 ‘정원’이라고 생각해왔거든요. 대부분의 디자인은 ‘새로운 것’을 좋아하고, 오래된 것은 버려지는 일이 많습니다. 어떤 스마트폰 신형이 나왔다고 하면, 기존 디자인은 묻히기 마련이잖아요. 반대로 정원은 오래된 것과 상성이 좋은듯 합니다. 식물과 오래된 무언가가 만나면, 그 디자인이 살거든요. ‘씨드뱅크’에 설치된 모든 설치품들이 재활용되어 사용된 것도 이 때문입니다. 심지어 정원에서 발생하는 쓰레기까지 리사이클링 시켜 지속가능한 디자인이 되도록 했습니다. 이러한 제 작가적 메시지가 어느 만큼 전달되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러다 전시 막바지 정리를 하던 중 마감정리를 하시는 청소부 아저씨가 전시된 쓰레기통에 턱 앉으시더니 ‘우리에도 이런거 하나 있었으면 좋겠네’라고 하시더라고. 무릎을 탁 쳤죠. 제가 꼭 하고 싶던, 듣고 싶던 말이었기 때문입니다. 나중엔 ‘우리집도 해보자’로 바뀌었으면 더할 나위가 없겠죠. 생활 속에서 가능한 ‘만만한 디자인’이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으로 항상 충만했습니다.


지인들은 파격적이고, 그럴듯하게 만들어 상도 받을 수 있는 디자인을 해보라고 조언합니다. 사진도 그럴듯하게 찍힐 수 있게 말이죠. 그런데 그게 저랑 맞지 않아요. 가고자 하는 방향도 아니고요. 사람들이 ‘나도 이것 정도는 할 수 있겠다’가 제 컨셉이고 기초이기 때문입니다. 보여주는 정원은 제 지향점이 아닙니다.


글을 써오던 경험, 방송과 미디어를 다루었던 경험의 접목이 가든디자이너 오경아 전반에 큰 줄기를 이룬다고 봅니다. 즉 정원으로 글을 쓰고, 방송을 하고, 작품을 만드는 것이죠. 즉 글을 쓰더라도 정원에 대한 글이 쓰는 것이고, 전시를 해도 정원을 가지고 할 것입니다. 그래서 오경아의 정원은 미디어입니다. 정원과 관련된 방송도 만들어보고 싶습니다. 교양, 오락, 어느 유형이 될 진 모르겠지만, 정원과 방송을 연결해 새 영역을 구축하는 것까지 생각하고 있습니다.


일반대중과 함께 걷는 정원, 제가 가고자 하는 길이 그것입니다.



인터뷰는 동대문DDP에 있는 옥토퍼스 가든에서 진행했다. 이 곳은 오경아 대표가 운영하는 가든숍으로, 아기자기한 정원용품이 전시/판매되고 있다. 참고로 그녀는 DDP 내부의 실내조경도 함께 맡아 진행하였다.



글·사진 _ 나창호 기자  ·  라펜트
다른기사 보기
ch_19@hanmail.net

네티즌 공감 (0)

의견쓰기

가장많이본뉴스최근주요뉴스

  • 전체
  • 종합일반
  • 동정일정
  • 교육문화예술

인기통합정보

  • 기획연재
  • 설계공모프로젝트
  • 인터뷰취재